소설리스트

30화 (30/270)
  • 30화

    <붉은 천의 기수>

    쉬면서 산박의 팀은 마지막 보스전을 준비했다. 다른 묘실장들은 던전에 들어온 던전 사용자의 숫자에 맞춰서 오지만 ‘다섯 번째 묘실장’은 달랐다. 그는 무리를 전혀 끌고 다니지 않고 오로지 홀로 던전 공략을 하는 던전 사용자들과 싸웠다. 그리고 이놈을 잡으면 던전이 클리어된다. 바로 새하얗게 변한다.

    몇몇 팀들은 네 번째 묘실장을 잡고 현실로 귀환하지만 실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다섯 번째 묘실장이 지닌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익을 높이고 싶다면 반드시 다섯 번째 묘실장을 거쳐 가야 했다.

    또한 일 대 다수의 싸움이기 때문에 싸움을 피하는 이들은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고 팀장이 다른 이로 대체되거나 팀이 해체되기도 했다. 돈 욕심 때문에 팀이 해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처럼, 죽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흘려듣고 도전하는 이들이 많았다. 산박의 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이득을 포기하지 못했다. 수수료 0.1%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었다.

    “적 보스는 해골지휘마입니다.”

    산박은 욕심을 챙겼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는데, 애초에 이 던전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였다. 스마트폰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산박은 구두로 설명을 해야 했다. 그가 땅바닥에 대충 그림을 그렸다.

    말에 올라탄 기사. 그게 이 묘실의 보스였다. 기사라고 하지만 진짜 기사인지는 몰랐다. 그저 평범한 기수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그걸 아는 건 오직 해골지휘마 본인뿐이었다. 던전 사용자들은 해골지휘마가 강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그가 지휘하는 언데드 장군인지도 몰랐다.

    ‘황당무계한 작명이지.’

    있어 보이니까 추켜올렸고, 강하기 때문에 더욱 있어 보이는 이름을 얻었다.

    “해골지휘마의 말은 당연히 언데드고 좀비입니다. 거기에 마갑까지 걸치고 있어서 사실 말을 타격하는 건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해골지휘마의 강력한 점은 바로 언데드 말이었다. 놈에게 피해를 많이 주는 건 힘들고 어려웠다.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었다.

    “위에 올라탄 언데드 기사는 해골이며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좋아서 조심하셔야 합니다.”

    체중을 커버할 정도로 역공에 능했다. 홀로 상대하면 필패였다. 이를 산박은 강합과 충호에게 단단히 일러뒀다. 객기를 부리다가 객사할 수 있었다.

    강합은 이를 잘 알았는데, 사람이 던전에서 죽는 걸 똑똑히 봤기 때문이었다. 반면 충호는 자신만만해했다. 그런 그는 꼭 사고를 칠 것처럼 보였지만, 지켜볼 일이었다.

    “해골 기사의 장비는 매번 같습니다. 말 뒤쪽에는 재블린이 세 자루 있고 2.5m가 조금 안 되는 라이트 랜스를 소유하고 있으며 장검 한 자루와 등자 앞에 원형 방패 하나 그리고 등에 마름모꼴 방패를 메고 있습니다. 방어구는 상체만 강철 갑주고 나머지는 가죽이거나 없습니다.”

    산박은 라이트 랜스에 스치기만 해도 큰 부상을 입으니 특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주의 사항을 알린 뒤에는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놈을 잡는 데는 다굴이 최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에서 넘어뜨려야 합니다.”

    충호와 강합이 조금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까는 건드리면 안 된다면서요?”

    “피해를 주지 말라는 말이었고 선공략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쉽게 넘어뜨립니까?”

    “좀비 말을 상대하는 데 시간을 오래 끌면 본말 전도니까요.”

    시은이 덧붙이자 산박이 말을 이어 나갔다.

    “태클이죠. 말이라는 생명체가 지닌 약점은 측면이 매우 약하다는 겁니다. 다리의 밑부분 또한 앙상하죠. 허벅지는 대단하지만… 쉽게 다리를 다치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두 서로 눈치를 봤다. 가장 하기 싫지만 가장 해야 하는 일이 생겨서였다. 산박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누구나 하기 싫어했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이점을 주거나, 팀장이 자처해야 했다. 그리고 산박은 실로 이 작업에 어울렸다. 그는 작은 호랑이로 변하면 태클을 걸기도 용이했다. 옆에서 치기만 해도 말은 엎어질 터였다.

    ‘그래도 위험하다.’

    “지원자 없습니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필요하다면 팀 내적으로 특혜도 드릴 생각입니다.”

    특혜. 수익 배분이 분명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을 아무도 안 하니 웃돈을 주고라도 시키는데, 그걸 당장 반대할 수 없었다. 나중에 가서도 반대를 할 수 없었다.

    좌중을 둘러본 산박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럼 팀장인 제가 이번 일을 하겠습니다. 던전 수익의 5만 원을 가져가겠습니다. 본래는 전방에 서신 분들이 나서 줬으면 했는데…….”

    그가 말을 줄이며 마지막 기회라는 듯이 충호를 한 번 바라보고 강합을 한 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고, 두 사람은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아까 자신만만했던 충호는 온데간데없었다.

    ‘제법 이야기를 들은 눈치인데.’

    사상자가 많이 나오는 괴물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묘실 던전의 보스인 해골지휘마였다. 그걸 어디서 들은 게 분명했다. 남에게 웃돈을 주고라도 대신 하게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은근히 이를 바랐던 산박은 입맛을 다셔야 했다. 물론, 후회하지는 않았다.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능히 가능하다.’

    동물 변신 주문으로 작은 호랑이로 변해서 그 민첩함으로 말을 쓰러뜨리면 될 일이었다. 산박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말을 넘어뜨릴 공격수가 생겼으니 그 위에 타고 있는 기수의 신경을 분산시킬 사람이 필요했다. 당연히 강합과 충호가 맡아야 했고 그들도 흔쾌히 수긍했다. 기수의 코앞까지 달려가서 말을 노리는 것보다는 기수의 무기를 막아내는 게 더 좋았다.

    “라이트 랜스는 막을 생각을 일절 하지 마세요.”

    산박이 또다시 랜스를 언급했다. 2.5m에 불과하지만 던전 사용자에게 그 정도로 긴 무기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긴 무기가 지닌 단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은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장창을 사용했던 강합이 바로 던져 버리고 검방으로 갈아탄 것만 해도 장창이 지닌 단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그 단점을 극복하고 전투 상황에서 장창의 이점을 끌어 올릴 숙련된 베테랑 장창병은 던전 사용자 중에 존재하지 않았다. 던전에서는 계속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수비적인 장창과는 맞지 않았고, 환경 때문에 버려지기 쉬웠다.

    하지만 늘 같은 던전에서 던전 사용자들을 맞이하는 기병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그는 던전에서도 능숙하게 장창을 다룰 수 있었다. 숙련도가 비슷하다면 당연히 리치가 긴 창이 유리하다. 고로 2.5m짜리 라이트 랜스를 지닌 기병에게는 이 상황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예.”

    모두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산박의 주의를 단단히 새겨듣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대답하는 충호의 시선이 시은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이를 눈치채고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애매한 행동이고 평범한 행동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호의 동공이 커졌다가 줄어들기에 충분했다. 음울진 모닥불의 불빛 때문에 시은의 행동은 더욱 야릇해 보였다.

    “듣고 있습니까?”

    “예? 예!”

    “집중하세요.”

    산박이 면박을 줬다. 하지만 오래 다그치지 않고 쉽게 넘어갔다. 성인이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터였고, 이런 걸로 서로 자존심 싸움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 산박과 충호는 함께 던전 공략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이 그와 함께하는 첫 던전 공략이었다.

    “라이트 랜스는 딱 한 번만 쓸 겁니다.”

    “한 번만요? 놓친다는 겁니까?”

    “예. 차징 할 때 손에서 놓아 버린답니다.”

    “특이하네요.”

    현대인이 생각하기에 랜스를 한 번 찌르며 손에서 놓아 버리는 건 황당할 수 있었다. 허나 한 번 찌르면 두 명에서 세 명이 관통되는 랜스의 특성상 기수가 이를 손에서 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산박이나 다른 현대인에게는 생소했다. 그들은 말에 타보지도 않았고 랜스 차징을 하지도 않았다. 갈비뼈가 있는 부분에 툭 튀어나온 랜스 고정대가 있는 것도 몰랐다. 팔의 힘을 보존할 수 있기에 라이트 랜스도 옆구리 거치대에 랜스 끝을 걸치는 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튼, 랜스를 손에서 놓기 전까지는 무리하지 마세요. 그다음은… 쓰러뜨리고 난 이후인데, 기술 싸움으로 가지 말고 힘 싸움으로 밀어붙여서 넘어뜨려 아예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정도입니까?”

    “해골지휘마는 리치 싸움에 뛰어나다고 해서요. 손목 잘린 전사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강합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돌렸다. 충호는 가볍게 농담을 건넸다.

    “너무 겁주시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 모습에 산박도 빙그레 웃었다.

    “남들이 하는 말을 그냥 말해준 것뿐입니다.”

    그때 시은이 손을 들었다.

    “팀장님.”

    “말해 보세요.”

    “그럼 언데드 상대로 장기전으로 가야 하나요?”

    “랜스만 피하고 제가 태클 넣어서 넘어뜨린 뒤에 다굴 놓으면 되니까 장기전은 안 갈 겁니다. 물론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대장삵을 통해서 물의 마법으로 체력을 최대한 회복시켜 드리겠습니다.”

    집중성탄의 관통력을 생각한다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들은 몇 가지 전술 토의도 복습했다. 시은에게는 마녀의 손길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엎어진 언데드 기사의 목을 움켜쥐며 주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이는 장기전에도 용이했다. 좀비 말에 주문을 소모하지 않고 바로 언데드 기사에게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집중할 겁니다.”

    “예.”

    이들은 모습을 드러낸 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굵은 기둥이 불규칙적으로 세워져 있는 매우 넓은 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문드문 횃불이 있었다. 빛도 어둠도 많은 장소였다.

    ‘기둥으로 만들어진 숲에 있는 것 같다.’

    대신 바닥은 평평했고 나뭇가지나 수풀처럼 방해될 만한 요소가 적었다. 그러나 불규칙적으로 세워진 기둥들 탓에 시야가 넓게 펼쳐지지 못했다.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기 실로 좋았다. 해골지휘마를 위한 장소였다.

    “이 녀석이 어딨지이?”

    산박의 팀과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싸워야 하는 게 해골지휘마였다. 강합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적은 하나였고, 자신들은 네 명이었다. 질 수 없는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던전 사용자가 네 명이었다. 괴물과 야수들이 득실거리는 0레벨 던전부터 착실하게 피를 쌓아온 전투원들이었다.

    촐랑거리는 강합의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강합에게 면박을 주기도 전에 푸르륵거리는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서였다. 푸르륵거리는 소리 속에는 그르릉거리는 짐승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 야만적인 울음소리와 함께 조금씩 말발굽 소리가 돌로 된 바닥을 때렸다.

    딱. 따그닥.

    딱.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속력감이 절로 귀로 전해졌다. 그림자가 크게 울렁였다. 일행은 그곳으로 눈을 돌렸지만 그 무엇도 지나가지 않았고 소리도 정반대에서 들려왔다.

    묘실을 울리는 소리는 방향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말발굽 소리는 울리고 울려서 끝없이 겹쳐졌다. 단번에 묘실이 시끄러워졌다. 기둥과 바닥 그리고 천장과 벽밖에 없는 공허한 공간에서 소리는 짐승처럼 날뛰었다. 또 드문드문 있는 횃불은 그림자를 거대하게 만들어서 팀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산박의 팀은 자연스럽게 한곳에 모였다. 해골지휘마가 어디서 나타날지 몰랐다. 불규칙적으로 배치된 기둥이 여기서 이빨을 드러냈다.

    ‘사방이 기둥으로 막힌 것 같다.’

    뭉치면 시야는 좁아진다. 흩어지면 눈이 많은 만큼 넓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대로 진형이 벌어질 리가 없었다. 개개인의 거리가 좁혀졌고, 무리의 시야는 줄어들었다.

    그곳에서 해골지휘마가 거리를 좁혔다. 시야에 들어왔을 땐 이미 코앞이었다. 라이트 랜스에서 붉은 천이 펄럭거렸다. 때가 묻고 습기가 스며들어서 검붉은색이 되어 있었지만 확실한 민병대의 붉은 천이었다.

    횃불 때문에 모든 것이 주홍빛으로 타올랐다. 해골지휘마의 등장도 자극적이지 않았고, 그 횃불의 색에 물들어서 자연스러웠다.

    언데드 민병대 기수, 그의 돌격은 매서웠다. 완벽한 전술이었다. 숲에서 말을 타며 게릴라를 했던 그의 삶이 녹아있는 한 방이었다.

    그 타깃이 된 강합이 몸을 던졌다. 허나 라이트 랜스는 앞으로 뻗어 나가 있지도 않았다. 반 호흡 차이로 라이트 랜스가 움직였고, 정확하게 강합이 몸을 던진 곳으로 움직였다.

    언데드 민병대 기수는 상체뿐만 아니라 골반까지 틀어 모든 힘을 실었다. 발을 단단히 받칠 수 있는 등자가 있었기에 골반과 무릎까지 순간적으로 틀어버릴 수 있었다.

    그 모든 과정 이후에 반동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기수는 라이트 랜스를 손에서 놓았다. 푹 꺼지면서도 30cm를 쭉 뻗어 나간 라이트 랜스는 정확하게 강합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꽝!

    흉측한 소리가 났다. 강철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강합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엎어졌다. 허벅지에 250cm짜리 라이트 랜스가 그대로 관통되었다. 뼈까지 박살이 났다. 그 고통은 모든 인식 체계를 무너뜨렸고, 인지 능력을 깨뜨렸다.

    살짝 오른쪽으로 틀며 속력을 유지한 채 유유하게 빠져나가는 놈에게 동물로 변신해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산박이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했다. 말이 옆으로 단박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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