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B 2 2
커럽트 베이비는 실질적으로 상대를 죽일 수단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전의를 잃거나 당황한 이들이나 그들에게 죽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지닌 것은 던전을 공략하는 자들을 확실하게 깎아 먹는 것이었다.
“괘애애애애액!”
가슴이 검에 의해서 꿰뚫린 커럽트 베이비가 버둥거리며 충호의 얼굴에 썩은 액을 쏟아냈다.
“크하악!”
충호는 거칠게 놈을 죽이고 난 후 얼굴에 묻은 썩은 액을 손으로 쓸어내며 참았던 숨을 뱉었다. 하지만 그가 더러워진 얼굴을 미처 다 닦아 내기도 전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뒤통수에 들러붙은 커럽트 베이비가 또다시 썩은 액을 쏟아냈다.
버둥거리는 충호를 대신해서 산박의 슬링이 그대로 커럽트 베이비의 몸을 쳐냈다.
‘개판이다!’
진형은 무너진 상태였다. 개개인이 서로 떨어진 채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는 까닭은 커럽트 베이비가 기둥에서 도약하여 단번에 들러붙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난전이 이루어졌다.
충호와 강합이 만들었던 굳건한 공간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졌다. 그리고 썩은 액 파티가 벌어졌다. 커럽트 베이비에게 물려 다친 이들도 있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캬아아앙!”
이 전투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하는 것은 대장삵이었다. 그는 벌써 열여섯 마리의 커럽트 베이비를 물어 죽였다. 커럽트 베이비의 목을 물어뜯으면 척추가 쭈르륵 딸려 나왔다. 입에서 이를 뱉어내고 대장삵이 껑충 뛰었다.
한 손으로는 슬링을 팽팽 돌리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에게 덤벼든 커럽트 베이비를 잡은 산박을 노리는 커럽트 베이비를 대장삵이 정확하게 낚아챘다. 대장삵은 떨어지면서 동물적인 감각으로 위치를 순식간에 바꾸고 커럽트 베이비를 그대로 땅에 내려쳤다. 등뼈가 우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럽트 베이비의 몸이 크게 출렁이며 놈이 축 늘어졌다.
그들이 흘린 피가 묘실의 바닥을 채우고 널브러진 시체에서 척추가 빠져나와 지하로 파고들어 갔다. 마치 지렁이처럼. 고함 소리, 죽이는 소리, 아기들의 끔찍한 고성. 이 때문에 시체의 척추가 지렁이처럼 움직이는 건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퍽! 퍽!
시은은 환도를 뽑아서 둔기처럼 커럽트 베이비의 두개골을 부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커럽트 베이비의 가슴을 밟았다. 남들은 하지 않을 짓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현재 감정적으로 변했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데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아기의 가슴을 짓밟는다는 행위가 그녀에게 짜릿한 배덕감을 선사해 주었다. 다른 이들은 커럽트 베이비를 자신을 공격하는 미친 괴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 괴물이 지닌 속성인 ‘아기’라는 것에 크게 집중해 있었다. 그 눈은 광기로 득실거렸다.
어느 순간, 묘실 안에는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크게 다친 사람 있습니까?”
산박이 주변을 둘러보며 팔뚝으로 얼굴을 훔쳤다. 전신이 썩은 냄새로 가득했다.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엄청난 소모를 겪은 것처럼 보였다. 족히 쉰 마리에 달하는 커럽트 베이비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 행위는 무기를 크게 휘두르게 했고, 덮쳐졌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전신에 힘을 빡 주게 되었다. 섬뜩한 괴물의 으르렁거림과 아기의 목소리가 뒤섞여서 자신의 귓가로 들려오면 전신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다.
“이놈들 뭐라고 불리는 괴물이에요?”
“커럽트 베이비. 무는 것이 전부고, 썩은 액 때문에 던전 공략하는 데 귀찮아지죠. 최대한 늦게 만나는 게 좋은데. 젠장할.”
산박이 욕을 했다. 그만큼 상대하기 싫은 언데드였다.
반면 시은은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몸에서 활력이 넘쳐났다. 마치 하루 열여덟 시간 학원에 끌려다니는 중학생에게 자유 시간을 3일 준 것처럼 굴었다. 언제 피곤해했느냐는 듯 컴퓨터부터 켜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 덕에 시은이 먼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땅은 피로 진창이 되지 않았고, 썩은 액으로만 진창이 되어 있었다. 어차피 뒤섞이면 검은색이었지만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게 중요했다. 그녀의 코는 피 냄새에 특히나 민감했다. 항상 굶주려 있기 때문이었다.
“척추가 없어요.”
“무슨 척추?”
“커럽트 베이비의 척추요.”
그 말을 들은 산박은 조심스럽게 죽은 커럽트 베이비의 몸을 뒤집었다. 상체가 너무 물렁물렁하게 흔들리는 것 같아 보였다. 손으로 등을 더듬자 척추의 뼈가 만져지지 않았다.
“모이세요.”
모두 서둘러 모였을 때, 어둠 속에서 무거운 벌레 소리가 흘러나왔다.
“끼이이이. 까드드드. 뀌익.”
놈이 다가와서 횃불의 불빛에 노출되었다. 크기가 상당했다. 하지만 그건 거미의 다리 때문이었다. 척추로 만들어진 네 쌍의 다리를 지닌 거미였고, 머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괴한 척추로 만들어진 촉수만 있을 뿐이었다. 척추 다리와 척추 촉수의 사이에 존재하는 몸통의 한 부분에 작은 주둥이만 있었다.
척추 촉수 하나가 커럽트 베이비의 시신을 하나 낚아챘다. 작은 주둥이에서 잇몸이 튀어나와서 단번에 커럽트 베이비를 포식하기 시작했다.
“…….”
산박의 팀은 이를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산박은 빠진 정보가 있음을 직감했다.
‘개새끼들, 이걸 안 말해줘?’
절로 욕이 나왔다. 모든 일반 던전 정보를 획득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더 많은 돈을 바쳐서 멤버십 등급을 올려야 하는 것 같았다.
“화염 물약을 하나 더 줘봐요.”
산박의 속삭임에 시은이 화염 물약을 건넸다. 현재의 팀 상태로는 도저히 놈과 승부를 볼 수 없었다. ‘척추촉수괴물’은 비주얼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에 놈은 포식할수록 뼈에 피와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산박은 그간 사용해온 슬링 숙련도로 순식간에 화염 물약을 두 개 슬링했고, 제법 멀리 있는 놈의 윗부분에 정확하게 맞힐 수 있었다.
쨍그랑, 화아아악!
화염은 단번에 번져갔다. 놈은 커럽트 베이비를 먹던 것도 잊고 난동을 부렸다. 일행은 서둘러 뒷걸음질 쳤다. 몸을 낮추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거리를 더욱 벌렸다.
쾅!
기둥에 괴물의 몸체가 부딪히며 척추가 무너졌다. 촉수가 기둥을 휘감으며 들러붙었고, 오징어처럼 말렸다. 새까맣게 타오르고, 약화되었고, 이내 몸체에 있던 주둥이가 쑤욱 튀어나와서 썩은 액으로 진창이 된 곳을 뱀처럼 기어갔다.
“놈!”
팀은 서둘러 달려갔다. 그 지렁이 같은 놈은 커럽트 베이비의 입 속으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비어있는 척추의 기능을 대체해 단번에 일어났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산박의 돌이 정확하게 놈의 머리를 때렸고, 놈이 진창에 엎어졌다. 강합이 던진 재블린이 척추에 박히자 놈은 사지를 부르르 떨더니 입을 쩍 벌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끼에에에에!”
목을 자르고 나서야 놈을 죽일 수 있었다.
“끝난 건가요?”
“전리품이 어디에 있을 텐데…….”
산박이 횃불을 하나 꺼내서 불을 지폈다. 수색 끝에 그들은 목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금목걸이가 세 개, 스크롤이 다섯 장 있었다. 그들은 전리품을 회수하고 서둘러 묘실을 나왔다.
‘집중성탄으로 정확하게 놈의 주둥이를 노렸다면 전투가 쉬워졌을 것이다.’
산박이 눈을 빛냈다. ‘척추촉수괴물’의 공략법을 파악한 것이었다. 그 악마 같은 비주얼에 겁을 먹어서 화염 물약을 두 개나 써버린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체에게는 화염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은 식수는 그대로 마시는 데 써야만 할 정도의 양뿐이었다.
‘그리고 하루를 더 버텨야 하지…….’
무너지는 묘실은 최소 3일은 지나야 현실로 돌아가는 길로 변했다.
다만, 집중성탄을 쓰지 않은 것이 큰일을 했다. 남은 힘이 존재하는 산박 덕분에 대장삵의 물의 마법을 통해서 몸을 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이세요! 모여!”
산박과 다른 팀원들이 밀착했고, 대장삵이 그들의 어깨 위에 올라갔다. 특히 그는 산박의 어깨 위에 올라가기를 원했다. 또한 대장삵은 산박의 머리 위에 한 손을 턱 하니 놓았다.
‘이 새끼…….’
마치 드래곤을 길들인 인간이 그들의 긴 목에 앉거나 안장을 놓는 것과 같았다.
대장삵이 다른 한 손을 천장 위로 들자 물방울이 모여들었다. 그 광경은 실로 신기했다. 제법 커진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물줄기에서 시작되어서 조금 더 커지더니 마치 장대비가 내리는 것처럼 떨어져 내렸다.
“하하하하!”
충호가 담백하게 웃으며 이 순간을 즐겼다. 다른 이들도 웃음소리를 냈다. 오직 시은만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한발 늦게 살짝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적당히 빨래 건조대도 만들었고, 그들은 그렇게 묘실 통로에서 하루를 보냈다.
* * *
깜빡 졸았던 시은은 또 네크로맨서 발루악과 조우했다. 전과 같은 묘지에서 발루악이 읊조렸다.
“힘없으면 비루하게 죽는다. 너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 텐데? 난 발루악이다. 죽음의 세바리악의 시종장이다!”
“전에는 종자 중 하나라며?”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힘! 그래……. 그래, 힘을 원하지 않는가? 네크로맨서의 힘! 내 시체를 언데드로 일으켜서 여기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꺼내 다오! 그리한다면, 넌 세상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
발루악의 기억이 모호한 것을 시은은 파악해 냈다. 그녀는 전과 다르게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대로 묘비에 걸터앉았다. 남의 묘비에 엉덩이를 들이미는 작태는 실로 흉했다.
“크크크.”
반면 발루악은 그런 모습을 크게 좋아했다. 결국 이시은에게만 발루악이 다가올 수 있는 건 그와 그녀가 동류이기 때문이었다.
“좋아. 한번 해보지. 수작질을 할 거면 지금 말해. 그 시체를 밟아버릴 생각이거든.”
확답을 주자 발루악이 진실한 어투로 말했다.
“난 그저 시체일 뿐이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시체에 묶여있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와 비슷한 자와 꿈을 통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물러갔다.
* * *
조잘거리는 소리가 시은의 귀로 들려왔다. 묘실장을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화염 물약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비교적 멀쩡한 상태의 세 사람이 숯을 태워 모닥불을 지핀 채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안 주무세요?”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시은이 묻자 모두 자다 일어난 것이라며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커럽트 베이비 당시에 질척거렸던 정신력은 빠르게 회복된 상태였다. 그때 느낀 큰 탈력감은 정신력 소모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살짝 눈치를 봤다.
“왜요? 무슨 하실 말씀 있습니까?”
산박이 눈치를 채고 말하자 시은은 확 질러 버렸다.
“비밀 통로가 있는 곳을 알아요. 꿈에서 나왔거든요. 거기 가보는 게 어때요?”
“무슨 꿈이었는데요?”
“네크로맨서가 나오는 꿈이었어요. 묘지가 있고, 묘비도 많고.”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자신에게 오면 큰 힘을 준다고 했어요. 제법 그럴싸한 황금 왕관도 쓰고 있었죠.”
시은은 없는 내용을 진실 속에 끼워 넣었다. 유능한 거짓말쟁이들이 하는 거짓말 방법이었다.
“흠.”
산박은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멤버십 등급이 낮아 정보 업체에서 일반 던전 정보를 모두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네크로맨서니까 마녀한테 접근한 것이겠지.’
“독특한 전리품을 얻을 수 있어 보이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전 상관없습니다.”
강합은 모호한 판단을 내렸다. 반면 충호는 시은의 섹시한 허벅지를 보며 냉큼 대답했다.
“당연히 가야죠. 시은 씨가 얻어낸 비밀 통로 아닙니까?”
시은은 충호가 자신의 허벅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몸을 조금 비틀며 더욱 허벅지를 돋보이게 했다. 충호가 침을 삼켰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너무 오래 쳐다봤다가는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서였다.
다시 고개를 돌린 충호는 시은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배시시 웃었고, 충호는 괜히 웃음소리를 냈다.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시은은 예뻤다.
“답은 나왔네요. 갑시다.”
활력이 남아있을 때 가기로 했다. 시은은 전투는 없을 것이라 말했지만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벽을 더듬으며 시은이 걸어갔고, 그 옆을 충호가 든든하게 지켜 주었다.
멈칫.
시은이 멈췄다.
“여기예요.”
그녀가 툭 튀어나온 검을 레버처럼 잡아당겼다. 기사의 몸이 쩍 갈라지며 그대로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은은 누구보다도 먼저 그곳으로 걸어갔다. 혹시 잘못될지도 몰랐기에 이들을 데려왔지만, 먼저 가서 네크로노미콘을 획득해야 네크로맨서 직업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어, 잠시만요!”
충호가 서둘러 그녀를 따라갔다. 산박이 두 사람을 불렀지만 그들은 듣질 않았다. 산박과 강합도 서둘러 안으로 향했다. 통로는 길지 않았고, 곧 하나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크로맨서 발루악의 집무실.
책 냄새와 곰팡내를 맡으며 시은이 그의 시체를 뒤졌고, 검은색의 양피지로 이루어진 책에 손이 닿았다. 닿자마자 그 책은 검은 가루로 변해 시은의 손가락을 타고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