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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26/270)
  • 26화

    산박이 쌍퇴좀비를 마무리하고 네 명은 힘을 합쳐서 남은 좀비 병사를 죽였다. 산박의 단검 때문에 발목을 못 움직여서 그대로 엎어진 좀비 병사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반항했지만 뒤에서 뛰어 등을 밟고 머리를 쳐서 죽였다. 시은에게 헥토파스칼 킥을 맞고 떨어져 나간 놈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휴식은 나가서 해야 합니다. 묘실장이 죽으면 묘실은 무너집니다.”

    ‘끙.’

    산박은 그렇게 말하고 화끈거리는 통증을 참으며 쌍퇴좀비의 혁대를 살폈다. 모든 묘실장은 공통된 전리품을 내뱉는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혁대에 있는 스크롤 묶음 가방이었다.

    작지만 두꺼운 가죽 배낭이 혁대에 묶여 있었다. 산박은 그것을 열어 스크롤을 다섯 장 회수했다. 그리고 목에 걸려있는 금목걸이와 금반지를 빼내서 묘실 밖으로 나왔다. 무기를 챙기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불을 토해내던 쌍퇴좀비의 철퇴는 이미 써버렸기에 효능이 사라진 무쇠 철퇴에 불과했다.

    밖으로 나온 이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으윽.”

    화상의 고통에 강합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신음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흥분 호르몬이 사라지고, 차갑게 식은 몸은 매우 민감해졌다.

    산박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손에 피멍이 들고 살짝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불타는 철퇴에 정확하게 찍혔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면 지방층과 가죽이 두꺼운 작은 호랑이일 때 내려찍힌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 덕에 인간으로 되돌아왔을 때 상처가 줄어드는 효과를 얻었다.

    “치료할 수 있나요? 대장삵은요? 어디 있어요?”

    연거푸 쏟아지는 시은의 말에 산박이 지친 투로 말했다.

    “그때 맞고 역소환된 것 같아요. 사라지고 없더라고요.”

    흩뿌려진 피와 검게 타버린 털 잔해만 보일 뿐이었다.

    “소환은 됩니까?”

    충호가 따끔거리는 팔 때문에 인상을 찡그린 채 말했다. 당한 적이 없는 부위였음에도 달구어진 강철 보호구에 의해서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당장은 할 수 없어요. 힘을 다 써버려서……. 체감상 열두 시간 정도요.”

    자정이 지나야 치료를 할 수 있었다. 힘이 그때 모두 회복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때까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는 좋지 않았지만, 대장삵 때문에 회복 물약을 갖추지 않은 산박의 팀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화상 입은 사람들 와보세요. 물로 좀 식혀야 하니까.”

    강합을 제외하고 모두 옹기종기 산박 앞에 모였다.

    “시은 씨는 왜 눈썹이 탔어요?”

    “왼팔 자를 때 불똥이 튀었나 봐요.”

    발갛게 달아오른 곳도 곳곳에 점처럼 박혀 있었는데, 불꽃이 사그라지면서 거기에 당한 듯했다. 산박은 그냥 시은의 얼굴에 물을 부어 주었다. 식수를 소모하는 일이었지만 일반 던전에 해당하는 묘실 던전은 확실한 일정이 잡혀 있었기에 상관없었다.

    ‘무너지는 묘실에 가만히 있으면 돌아갈 수 있지.’

    기믹이 쉬운 던전이었다.

    전방에서 놈과 정면으로 싸운 충호는 한쪽 팔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기포 같은 것이 팔뚝에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곧 그곳에 물집이 크게 잡혔다.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불꽃 무기가 생각보다 강하구나.’

    체격이 큰놈이 사용하니 더더욱 그 효과가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큰 방패는 일그러져 있어서 몇 번 더 사용하기 꺼려졌다. 그대로 사용했다가는 밸런스가 무너져서 큰 충격에 몸의 균형이 이상해질 공산이 컸다. 결국 충호는 큰 방패를 통로에 두고 원형 방패를 들어야 했다.

    ‘상대가 나빴다.’

    충호는 팔을 물로 식히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전투에 대한 복기는 누구나 하게 되는 것이었다.

    ‘다음에 놈을 상대로는 피하고 밀착하는 게 좋겠다.’

    돌진력까지 덧붙인 놈과 정면 싸움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충호는 ‘쌍퇴좀비’에 대한 대처 방법을 터득했다.

    강합도 마찬가지로 생각에 빠져 있었다. 반면 시은은 산박에게 치근덕거리기 바빴다.

    “그거 뭐였어용?”

    “뭐.”

    전투 복기를 해야 하는데 시은이 방해하자 산박은 바로 반말부터 튀어나왔다. 이번 전투는 특히나 경험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쌍퇴좀비는 강력한 돌진 중보병 언데드였고, 그 덕에 전열이 단번에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좀비 병사가 조금만 더 스펙이 좋았다면 누구 하나가 죽었을지도 몰랐다.

    이런 중요한 전투 직후에는 그 생생한 감각을 더듬어 가야 했다. 인간의 감각, 기억은 형편없었다. 순식간에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하자.”

    “넵.”

    시은은 빠르게 물러갔다. 하지만 산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드루이드와 마녀는 결국 주문 사용자다. 그러나 시은이 지닌 주문 중에는 석궁의 피해보다 높은 주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전투에서 주문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였다. 원거리에서 석궁을 쏘는 게 더 나았다.

    그렇다고 팀이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 환도를 들고 돌진을 감행해 쌍퇴좀비의 왼팔을 깔끔하게 털어 먹었기 때문이었다. 과도 공도 엇비슷했다. 과를 지적하면 공을 말하면 될 뿐이었다. 결국,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지독히도 괴물 같은 면모가 있었고 음흉했다. 또한 그녀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조차도 몇 번이나 생각하는 치밀함을 가지고 있었다.

    ‘추가로 얻은 주문은 아냐.’

    그는 자신과 함께 1레벨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고로 추가 주문을 얻을 기회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노하우를 시은 또한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큰 기회였다. 집중성탄의 강력한 주문 피해는 시은의 몸과 정신을 달아오르게 했다. 그녀가 눈치 없는 짓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녀가 물러가자 산박은 전투를 복기했다.

    ‘대장삵 이 새끼는 멋대로 달려들었다가 멋대로 마법도 써버리고 멋대로 역소환당해 버렸다.’

    가장 큰 문제점은 대장삵의 자유도였다. 그는 정말 멋대로 행동했다. 그 결과 전투에서 활약 한번 못 하고 역소환당했다. 그 과(過)는 실로 컸다.

    ‘이번 전투를 계기로 확실하게 조져 놔야겠어.’

    대장삵은 이래도 저래도 살쾡이였다. 다른 삵보다는 체중이 더 나갔지만 그래도 삵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정면으로 달려들 줄은 몰랐다.

    ‘지가 대장군이야 뭐야. 젠장할.’

    작지만 좀비 병사를 충분히 붙잡아둘 수 있는 대장삵이 공에 눈이 멀어서 쌍퇴좀비를 노렸다고밖에 말할 길이 없었다.

    그 외에 딱히 자신의 실수는 없었다. 특기할 것이 있다면 생각보다 충호가 제대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은 도망치기 마련인데 계속 맞부딪쳤다.’

    이는 점수를 높게 줄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체격이 큰 놈을 상대로 한 번 넘어졌음에도 전의를 잃지 않은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앞으로도 충호는 무조건 중요한 인물이다.’

    천성이 전사였다. 키우면 무조건 A급이 될 수 있었다. 마인드는 이미 A급이었다.

    쿵. 쿵. 쿵.

    산박은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굵직한 떡잎을 자신이 찾았기 때문이었다.

    복기를 마무리한 그는 시은을 불렀다.

    “왜용?”

    “애교 좀 그만 부려요. 아깐 왜 보자고 했어요?”

    “그 엄청난 주문 있잖아요. 어떻게 하셨나 해서요.”

    “꿈 깨세요. 드루이드밖에 못 하는 거니까.”

    “그래도 말은 할 수 있자나요!”

    산박은 손사래를 쳤다.

    일행은 곧장 수면에 빠졌다. 하루에 하나의 묘실만 나오기 때문에 걱정 없이 잠잘 수 있었다. 기습 같은 것도 없었다.

    묘실 전투는 그만큼 힘든 점도 많았다. 특히 0레벨 던전에 익숙한 사용자들은 레인저처럼 기습과 원거리 공격으로 이점을 강하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서 전면전에 약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극복해야 했다.

    * * *

    조용히 모포를 덮고 잠자고 있을 때, 시은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떴음에도 주변은 묘실 통로가 아니었다. 바닥은 바짝 메말라 있었고, 회백색으로 변질하여 있었다. 곳곳에 묘지가 그득했고 썩은 나무가 기울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 그 나무에 까마귀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시은.”

    목소리에 시은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시은은 실로 냉정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삭막한 사내가 히죽 웃었다.

    “누구?”

    “난 네크로맨서 발루악이다. 죽음의 세바리악 님을 따르는 일곱 종자 중에 한 명이지.”

    “와! 그런 대단한 사람이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야?”

    시은이 다가가자 발루악이 뒷걸음질 쳤다. 그 모습에 시은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마녀. 초월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자였다. 네크로맨서 발루악은 그것을 경계하는 듯했다.

    “너에게 힘을 주마. 그 대신 날 밖으로 데려가 다오.”

    “음……. 싫어.”

    “마녀는 성장하기 힘들다.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언제까지 그런 석궁과 환도같이 야만스러운 걸 쓸 생각이냐?”

    시은은 팔짱을 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네크로맨시를 배우게 해주겠다. 그곳에 있는 시체를 일으켜 세워라. 그런다면 난 밖으로 나가서 널 도울 수 있다. 통로의 벽에서 뭉툭하게 튀어나온 기사의 검이 나올 때까지 걸어가 이를 강하게 잡아당기면 새로운 묘실이 나온다. 거기엔 적도, 아무것도 없다. 내 시체와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이 존재할 뿐이다.”

    “…….”

    시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주문을 읊어서 마녀의 손길을 쏘아 보냈다.

    “넌 더 강해질 수 있다! 날 믿어라!”

    그렇게 서둘러 외친 네크로맨서 발루악은 단번에 가루로 변해서 사라졌고, 시은은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기분 나쁜 꿈이야.’

    그런 시은의 눈동자에는 탐욕이 존재했다. 마녀에 네크로맨서인 자신을 상상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발루악은 기분 나빴다. 동족 혐오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 혐오는 끔찍할 정도로 컸다.

    * * *

    자정이 지나자마자 산박은 대장삵을 소환해서 개지랄을 떨었다.

    “미안하다. 내 실책이다.”

    그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앞으로는 내 명령을 들어.”

    “난 나보다 약한 놈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판단을 잘못했으니까, 들어.”

    “…….”

    삵의 양쪽 고양이 주둥이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불만이 가득 차오른 볼이었지만 산박은 그런 것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 새끼는 너무 다그치면 안 된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

    그냥 호랑이라고 봐야 했다.

    “말 안 해? 난 너를 꾸준히 배려해 왔어. 너의 가치를 보고 고기도 사 먹여주고 계속 밖으로 나오게 해줬지. 내가 해줬던 만큼을 요구하는 건 아냐. 적어도 내가 한 것을 보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화답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음…….”

    부탁 조를 섞자마자 대장삵의 반응이 달라졌다.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단순히 그렇게 끝내지는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네 말을 우선적으로 들어주지.”

    “좋아.”

    그렇게 확답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대장삵은 말을 지킬 것이었다. 그 높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지킬 것이었다.

    “일단은 물의 마법으로 화상부터 치료해줘.”

    “알았다.”

    화상 치료는 어렵지 않았다. 많은 힘을 소비하지 않았다. 실로 간단했다. 하지만 대장삵이 없을 때 견딘 고통이 컸다. 모두 고통 때문에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어 있었다. 그 덕에 또 휴식을 취해야 했다.

    이미 모습을 드러낸 묘실을 두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서야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일행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횃불을 두 개 붙여서 방패에 묶었다. 그러는 사이에 묘실에 있던 언데드가 관심을 보였다.

    “꺄르르르!”

    “꺄햐!”

    아기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강합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욕을 했다.

    “아, 제기랄. 진짜…….”

    횃불의 불빛에 기둥에 들러붙은 새하얀 피부를 지닌 아기가 히죽거렸다.

    “끄에에엑.”

    그 입에서 썩은 액체가 쏟아져 바닥으로 후두두둑 떨어졌다. 작은 체구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 쏟는 액의 양은 기이할 정도로 많았다.

    “끼햣!”

    커럽트 베이비가 그대로 뛰어내려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곳곳에서 아기들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동시에 다른 한 마리의 커럽트 베이비가 가장 후방에 있는 시은의 뒤통수를 정확히 덮쳤다. 시은은 소리 하나 지르지 않고 놈의 팔을 잡아서 그대로 잡아당겨 앞으로 패대기쳤다. 아기가 썩은 액을 쏟아냈고, 시야가 차단되었다. 조금 찐득거리고 물컹거리는 질감이 존재하는 썩은 액이 시은의 얼굴을 덮쳤다. 그 덕에 시은은 녀석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환도가 땅만 쳤다.

    커럽트 베이비는 바퀴벌레마냥 기민하게 기어가다가 그대로 껑충 뛰어 기둥에 들러붙더니 쌩하니 올라갔다. 다른 이들이 이를 막거나 도와주기에는 거리가 제법 있었다. 그때 재블린 한 자루가 그대로 아기의 등에 박혔다.

    “끼에에에에!”

    짐승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기가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이를 신체가 버티지 못했고, 피와 살과 뼈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아기의 머리가 뒤로 돌았다. 그 머리에 시은의 화살이 그대로 박혔다.

    커럽트 베이비 하나를 죽이자마자 곳곳에서 짐승 소리가 터져 나왔고, 흉흉한 소리를 내며 사위를 포위했다.

    “온다!”

    숫자는 어둠 때문에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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