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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25/270)
  • 25화

    <묘실 던전>

    산박은 팀원의 장비를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시은은 타이트하지만 신축성 있는 복장에 가죽 장비를 추가로 착용하고 있었다. 급소에는 두툼한 가죽 방어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환도와 석궁 그리고 받은 섬광 단검과 화염 물약을 소지했다. 여분의 화염 물약은 팀원들에게 돌렸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한 병씩 나눠 드릴게요.”

    강합은 장창을 버렸다. 그렇다고 쌍검을 들지는 않았는데, 수륵의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살려면 방패를 들거나 긴 사거리의 무기를 들어야 했다. 산박이 창을 내려놓으라고 했기에 그는 검과 방패로 무장했고, 강철 무구를 두껍게 입은 중보병이 되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한 자루의 투척용 창인 재블린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창을 써보니까 좋더라고요. 그래서 투척용으로 하나 소지하고 싶어서요.”

    “기술도 있으니까, 좋은 선택을 하셨어요.”

    산박이 그를 칭찬했다. 그는 기술로 기본 투척술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창을 두 자루 이상 지니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무게 때문이었다. 던전에서는 끝없이 움직이고 야영한다. 그것도 며칠을! 이를 감당하려면 무게를 줄여야 했다. 보급도 짊어져야 했고 부산물을 가져올 배낭도 들고 가야 했다.

    충호는 검과 방패 그리고 섬광 단검으로 가장 단순한 장비를 하고 있었다. 다만, 조금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크게 달랐다.

    가장 먼저 속이 텅 빈 큰 강철 방패를 소지했고, 또 따로 원형 방패를 지니고 있었다. 혹시 안이 빈 강철 방패를 못 쓰게 될지도 몰라서였다. 그 외에는 받은 섬광 단검과 섬광을 써버리고 능력을 잃은 일반 투척용 단검이 있었다.

    이렇게 장비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서로 숙지한 뒤에 던전 안으로 들어섰다. 던전의 입구가 그들을 집어삼키고, 어디론가로 이동시켰다. 그 감각은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무언가였다.

    정신을 차린 산박은 곧바로 팀원을 확인했다.

    “괜찮아요? 특이 사항 있으신 분?”

    “없어요.”

    “없습니다.”

    “없습니다.”

    모두 깔끔하게 대답했다.

    산박은 주변을 확인했다. 기이한 문양이 벽의 바닥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뻗어 있었고 통로는 대단히 넓었다. 마치 왕궁 같았다. 벽의 밑에 있는 그림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는데, 모두 노동하는 노예들이었다. 거기에 천장처럼 문양을 놓고 각 계급의 벽화가 층층이 벽에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무슨 던전이죠?”

    시은의 말에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돈이 많고 던전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산박이 즉답했다.

    “묘실 던전입니다. 일반 던전이고, 가장 일반적인 던전이죠.”

    산박은 일반 던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취득하고 있었다. 거기에 들어간 돈은 꾸준히 끝도 없이 계속 그 가치를 유지할 것이었다. 지식은 곧 힘이었다.

    간단한 브리핑을 하고 일행은 곧바로 짐을 풀었다. 묘실 던전은 던전 사용자들이 공략하기 위해서 발을 열심히 놀리지 않아도 되는 던전이었다. 저 끝도 없이 보이는 통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였다.

    “시간이 되면 알아서 묘실로 향하는 입구가 열릴 겁니다.”

    어렵지 않은 던전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조금 빡세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기습을 전혀 할 수 없어서였다. 오로지 정면 승부. 그것이 1레벨 던전부터 시작되는 일반 던전인 묘실 던전이었다. 0레벨에는 혼자 가든 두 명이서 가든 상관없지만 1레벨에서는 네 명을 무조건 꽉꽉 채워야 하는 이유였다.

    물론 그러지 않는 팀도 많았다. 실력과 돈이 받쳐주기 때문이었다. 허나 산박의 팀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스크롤도 없었고, 물약은 있었지만 그건 구매해서 있는 게 아니라 시은이 나눠주는 것에 불과했다.

    산박은 시은에게 ‘별빛 물약’을 하나 내어줬다. 주문 피해를 상승시키는 물약이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들의 눈에 기이한 현상이 새겨졌다.

    그그그그그극!

    벽과 벽이 서로 맞부딪치며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 틈이 서서히 벌어지며 이내 큰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뭉개진 벽의 가루가 바닥에 눈처럼 가득 쌓였는데, 밟으면 푹신한 감각마저 들었다.

    스어어억!

    거대한 문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두 명이 들어갈 정도로만 열렸다.

    “준비되었으면 들어가겠습니다.”

    “예.”

    “옙!”

    “네.”

    세 사람이 모두 대답했다. 산박의 턱짓에 충호과 강합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안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산박이 그 뒤를 이었고 시은이 마지막으로 문을 지나쳤다.

    화륵!

    묘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기둥 곳곳에 회백색의 불꽃이 지펴졌다. 불꽃 아래 벽에는 양손으로 부풀어 오른 배를 감싸 쥔 여성이 들러붙어 있었다.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 채였다. 불꽃은 그 두개골 안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욱.”

    충호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시은도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충호의 끔찍해하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제법 볼만했다.

    그 외에도 회백색의 불꽃이 자리 잡은 기둥의 아래에는 머리 없는 깡마른 노인의 시체나 과장되게 쩍 벌려진 갈비뼈 위로 역으로 꺾인 다리 관절이 덮여 꽃처럼 장식된 어린이, 말라붙은 탯줄이 덜렁거리고 있는 아기가 불꽃을 짊어지고 있기도 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은 그들이 조금씩,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윽. 꺼억.”

    회백색의 빛 아래로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한이 큰 철퇴를 양손에 쥔 채 트림을 거칠게 하며 선두에 있는 충호를 바라보았다. 턱이 존재하지 않아서 혀가 목 아래에서 출렁거렸다. 혀끝에 가시가 돋아나 있고 끝부분이 부풀어 올라 마치 작은 철퇴 같았다. 쌍퇴좀비였다.

    “조심하세요. 묘실장은 100% 특수 장비를 하고 있습니다.”

    산박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놈이 쥐고 있는 철퇴에서 불꽃이 솟아났다. 쌍퇴좀비의 뒤로 좀비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파되거나 허물어져서 조금 아래로 내려와 있는 중갑을 입고 있는 좀비도 있었고 천 옷을 입고 있는 좀비도 있었다. 중갑옷을 입었다고 해도 그 양식이 모두 달라서 통일성이 하나도 없었다.

    그 숫자는 세 마리에 달했다. 묘실장까지 합치면 네 마리였다. 산박의 팀과 머릿수가 딱 떨어졌다.

    “어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묘실장만 조심하면 됩니다.”

    산박은 다시 한번 묘실장을 언급해서 강조했다.

    “충호 씨가 묘실장을 막고 강합 씨와 제가 다른 놈들을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시은 씨는 충호 씨가 위험하면 도와주세요.”

    “예!”

    언데드들의 이동 속도는 느렸다. 묘실장인 쌍퇴좀비는 그런 좀비 병사들과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 모습에 산박이 혀를 찼다.

    “시은 씨, 석궁 쏘세요. 그게 맞을 것 같네요.”

    “예.”

    시은이 볼트를 발사했고, 정확하게 좀비 병사 하나의 목을 꿰뚫고 갔지만 목이 축 늘어졌을 뿐이었다. 덜렁거리는 목에서 좀비가 이빨을 드러냈다. 좀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사지를 묵사발 내거나 척추나 머리를 박살 내야 했다. 시은은 배에 힘을 주며 한 걸음 다가가 그대로 허릿심을 이용해서 단번에 석궁을 장전했다.

    그렇게 하는 사이에 원거리 공격에 노출되자 좀비 병사들이 크게 소란을 떨었다. 그 광기는 자연스럽게 묘실장인 쌍퇴좀비에게도 번져 나갔다.

    “크아아아아!!”

    아래턱이 없었기에 혀를 타고 침이 질질질 흘러내렸다. 쌍퇴좀비가 그대로 달려 나갔다. 강합이 재블린을 던졌지만 가슴에 박힐 뿐이었다. 전혀 저지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놈의 출렁거리는 뱃살은 다른 좀비와 크게 다른 체중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네크로맨시에 정통하거나 네크로맨서와 싸운 경험이 많은 이는 이곳에 없어서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후우! 후욱! 후욱!”

    충호는 다가올 충격에 대비해 고개를 앞뒤로 움직이며 숨을 거칠게 쉬었다. 그리고 큰 방패를 들어 올려 바닥에 찍었다.

    “야, 이 개새끼야! 어디 함 부딪쳐봐!”

    …쾅!

    타이밍이 엇갈리며 큰 충격이 충호를 때렸다. 체급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에 충호가 방패와 함께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아직 좀비 병사들이 오지 않았기에 강합과 산박은 곧바로 판단을 달리했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놈에게 달려들었다. 산박은 미리 작은 호랑이로 변해 있었기에 그대로 쌍퇴좀비의 하단을 노렸고 대장삵은 쓰러진 충호의 방패를 강하게 짓밟으며 튀어 올랐다. 강합은 옆구리를 노렸다.

    “크아아아아!”

    쌍퇴좀비는 마구잡이로 철퇴를 휘둘렀다. 그런 놈의 눈에 시은의 볼트가 정확하게 박혔지만 그 어떤 경직도 일어나지 않았다. 튀어 올랐던 대장삵이 서둘러 허리를 활처럼 휘며 회피 동작을 했다. 무성의한 그 휘두름 속에서 대장삵이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다.

    촤악!

    물의 방어 막이 펼쳐졌고, 허무하게 찢겼다. 대장삵이 철퇴에 맞고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동시에 강합의 방패와 철퇴가 부딪쳤다. 궤도가 좋았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검의 휘두름이 무너졌다. 워낙 거구라서 빗맞았는데도 강합의 균형이 무너졌다. 이는 강합의 무재가 수재 수준도 안 되는 범재 수준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척도였다. 강합의 검은 쌍퇴좀비의 허벅지를 깊게 베는 것에 그쳤다.

    산박은 작은 호랑이로 변했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철퇴의 공격권에 있지 않았고, 쌍퇴좀비의 뒷발목 힘줄을 크게 한 입 하고 물러났다. 쌍퇴좀비의 무릎은 단번에 꿇리지 않았다. 놈은 발목 힘줄이 달아난 왼쪽 다리로 목발처럼 땅을 찍고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관심이 산박에게로 향했다. 갑자기 하체의 균형이 왼쪽으로 훅 꺾였기 때문이었다.

    “크아!”

    쌍퇴좀비가 산박을 향해 철퇴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냥 당해줄 산박이 아니었다. 산박은 회피 행동을 했다. 추켜 올라간 철퇴가 그대로 아래로 휘둘러지며 투척되었다.

    “컹!”

    산박은 몸을 굴렸지만 앞발이 철퇴에 그대로 찍혔다. 짓이겨진 앞발 한쪽으로 땅을 짚자마자 산박은 고통스럽게 포효하며 인간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쿵!

    “네 적은 나다!”

    몸을 일으킨 충호가 다시 한번 방패로 쌍퇴좀비에게 들러붙었다. 돌격했던 전과 다르게 쌍퇴좀비가 발악했지만 충호는 밀착해서 몸을 비볐다. 쌍퇴좀비는 무식한 놈이었기에 물러갈 줄을 몰랐다.

    그 기묘한 균형 속에서 좀비 병사 세 마리가 공세를 펼쳤다. 쌍퇴좀비의 공격력과 돌진력이 너무 강해 산박은 투척 단검으로 좀비 병사 하나의 발목을 관통시켜 넘어뜨리고는 뒤로 물러나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눈이 새파랗게 타오르며 빛이 쏟아져 나왔다. 고양된 감정과 전투 속에서의 고통으로 자극받은 영혼이 불꽃처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영혼과 깊은 공명을 하는 영혼 자극 기술은 눈에도 그 영향을 끼쳤다.

    “후우우우우……!”

    별빛탄은 빠르게 발현됐고, 두 발, 세 발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들끓는 감정 때문에 별의 수련자 기술로 얻은 작은 별의 힘은 거미줄로 엮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산박은 깊게 한숨을 쉬며 감정을 제어했다. 불완전한 작은 별의 응축이 만들어낸 거미줄의 크고 작은 구멍에 별빛탄이 끼워졌고, 이내 하나가 되어 집중, 응축됐다.

    ‘집중성탄’. 다섯 발의 별빛탄과 영혼 자극을 통한 작은 별의 힘이 합쳐진 산박 고유의 주문이 쏘아졌다. 정확하게 쌍퇴좀비의 머리를 노렸으나 제어력이 무너졌다. 연습으로는 목표를 잘 노렸지만 집중성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문의 완성에 산박의 제어력이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결국 탈선이 잘 된다는 소리였다. 쌍퇴좀비의 오른쪽 어깨가 뻥 하고 날아갔다.

    툭!

    묵직한 오른팔이 떨어져 내렸고, 검은 시체액이 쏟아져 나왔다.

    “이야아아아!”

    강합이 이를 기회로 삼고 뒤로 돌았다. 그의 용맹한 소리에 자극받은 쌍퇴좀비가 고개를 돌리다가 그대로 균형을 잃었다. 한쪽 팔을 잃고 급하게 몸을 돌리는 어리석은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좀비가 넘어지자마자 충호가 방패를 손에서 놨다. 상대로 뒤로 급하게 빼는 듯이 보여서였다. 몸을 굴리고 등에 짊어진 원형 방패를 더듬더듬 찾는 모습에 시은이 소리를 꽥 질렀다.

    “뭐 해요! 덮쳐요!”

    “이런 씨이!”

    큰 방패가 떨어지며 쌍퇴좀비가 넘어진 모습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충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급하게 왼발에 힘을 줬다. 그러나 단번에 너무 많은 힘을 줘서 왼발이 쭉 미끄러졌고, 그대로 엎어졌다.

    그를 지나가며 시은이 환도를 뽑아 땅을 손으로 짚고 일어나려고 하는 쌍퇴좀비의 왼팔을 잘랐다. 그러고는 달려 나가던 기세를 그대로 이어 나가서 약한 도약을 하며 좀비 병사 하나에 헥토파스칼 킥을 날렸다.

    퍼억!

    좀비 병사가 그대로 5m를 굴렀다. 시체였기에 몸에 있는 수분기가 많이 사라져서 보기보다 체중이 없었다.

    주르륵 미끄러진 시은이 일어났지만 다른 좀비 병사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다시 쓰러뜨렸다.

    “크아아아!”

    좀비의 입이 쩍 벌려지고, 시은의 머리카락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바닥에 쓰러진 시은은 그대로 좀비에게 끌려갔다.

    섬뜩함이 그녀의 모든 세포를 쾌감으로 이끌었다. 붕괴, 파괴! 그리고 코앞에 있는 죽음의 감각은 모든 이성을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자극이었다.

    퍽!

    강합의 환도가 좀비의 두개골을 내려쳤다. 좀비 병사는 단번에 균형을 잃고 그녀의 앞에 꼴사납게 쓰러졌다.

    “괜찮아요?”

    그렇게 묻는 강합에 시은은 싸늘한 눈을 했다. 허나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고마워요!”

    쓰러진 좀비를 강합이 서둘러 밀어내 줬고, 시은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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