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270)
  • 23화

    “이것을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1,500평의 무료 경작지를 획득한 수녀님은 크게 좋아했다. 물론 그 중간에 산박이 껴있어야 했지만 결국 거기서 나오는 수확은 자신들의 것이었다. 수녀는 장 노인과 산박에게 손을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모든 자원이 비싸지고 누구도 남에게 거저 주지 않는 세상이었다. 장 노인의 결단은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기 충분했다.

    “뭘 경작해볼 생각이세요?”

    “감자, 고구마, 된장 만들 콩에 쌈을 싸 먹을 상추나 배추도 좋고……. 고추장에 쓸 고추도 심으면 좋고요.”

    농사일은 평판이 제각각이었다.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했다. 하지만 산을 끼고 있는 당산 지구의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야산으로 먹을 것을 캐러 다니는 수녀님에게는 더더욱 손쉬운 일이었다.

    “한 달에 얼마씩 애들한테 월급을 주래요.”

    “누가요? 당신이요?”

    “장 노인이요. 그게 1,500평 주는 조건이래요.”

    산박은 손이 간지러웠다. 담배가 당겼다. 미치도록 당겼지만 참았다. 그는 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담배가 당기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고아원 애들은 열세 명이나 되었다. 인구가 박살 난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 숫자면 대단한 숫자였다.

    “한 명당 5만 원씩만 해도 65만 원이에요.”

    “너무 많아요.”

    큰돈이었다. 그 돈 액수를 보면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올 수 있었다.

    “그럼 3만 원씩.”

    “…….”

    수녀는 갈등했다. 그녀는 돈맛을 알았다. 신부가 산박에게 살인 청부업을 지시했고, 그 돈은 빚으로 허덕이는 고아원을 한 번 구제했다. 그 기억이 수녀에게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산박은 그렇게 매달 65만 원씩 수녀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녀는 합당한 곳에 그 돈을 쓸 것이었다. 손에 검은 것이 묻지 않도록 신부가 억지로 조심조심 키운 것이 수녀였다. 그녀는 순진하진 않았지만 순수했다.

    “자, 여기에 이렇게 비닐을 까는 거예요.”

    “왜요! 왜요!”

    “다른 잡초가 크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예요~”

    “왜요! 왜요!”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밭일했다. 온갖 것들을 심어야 했기에 논은 아니었다. 논에서는 벼 빼고는 뿌리가 다 썩기 때문에 밭이어야 했다. 그리고 세종시의 수도세는 높기로 유명했다. 뭐든지 비쌌다. 그렇기에 현실이 아닌 던전에서 자원을 찾아서 가지고 오는 이들이 많았다.

    산박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노동력이 있어도 그걸 쓰지 않는다. 돈이 있어도 투자하지 않는다. 경직된 경제. 시체처럼 뻣뻣하게 죽어버린 이 세상에서는 그게 당연했다. 물가는 전보다 낮아졌지만 그건 물량이 많이 풀려서가 아니었다. 돈 자체를 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화폐 경제가 붕괴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산박은 다시 장 노인을 찾아갔다. 그는 산박을 30분을 기다리게 했다.

    “사람이 왔는데 왜 이렇게 늦으십니까?”

    불만을 토로해도 그는 끄떡하지 않았다.

    “아~ 말 참 많네. 불만도 많고. 내가 너한테 맞춰줘야 해? 약속도 안 하고 와놓고서는 무슨…….”

    장 노인이 꽥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왜? 무슨 일로 온 거야? 보니까 하는 일도 많더구먼.”

    그의 말대로 산박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지닌 향상심은 괴이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장 노인은 그가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를 듣고 싶었지만 그건 함부로 물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애새끼들이나 그런 걸 쉽게 물어본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지능 딸리는 것들이 말을 쉽게 내뱉기도 한다. 그런 놈을 옆에 두고 있어야 했지만 아쉽게도 연기 가씨는 그리 큰 가문이 아니었다.

    “1,500평 그거 나중에라도 구매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한테 미리 팔지 마십시오.”

    “흠.”

    그 말에 장 노인의 눈에 생명력이 확 살아났고, 화산이 폭발하듯이 번져 나갔다가 사그라들었다. 장 노인은 척추가 바짝 당겨지는 기분에 휩싸였다. 산박의 현 상황에서 그가 그렇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강력한 행동력과 결단이 필요했는지 알고 있어서였다.

    “그 말… 진심이냐? 이 주변 땅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함부로 할 것이 안 된다.”

    “300평도 평당 500원에 샀는데 얼마에 치시려고 절 겁주십니까?”

    “흐하하! 이놈 정말 물건이다!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결정했구나. 정말이지…….”

    장 노인은 피가 들끓는 것 같았다. 이래서 젊은 피와 뒤섞이면 건강에 안 좋았다. 그들은 피를 흘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장 노인은 그것이 부럽지만 동시에 무서웠다.

    “300평 파는 놈들은 단타 치는 놈들이다. 쥔 돈이 없기에 땅을 오래 쥐고 있을 수 없지. 너한테 평당 500에 판 놈은 지금쯤 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을 거다.”

    “그럼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겁니까?”

    “그렇지. 서민들은 100원, 천 원에 목숨을 걸고 만 원 하나 깨기도 싫어서 버둥거리지만 정작 기십만 원 쓰는 건 순간적인 판단에 맡긴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땅으로 장사하는 놈들은 지독한 놈들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평당 얼마를 원하십니까? 두 배를 드릴까요?”

    산박의 당찬 소리에 장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술이 당겼다.

    “네 배를 달라면 줄 것이냐?”

    “예.”

    “어째서냐? 호구가 된 거냐?”

    “아뇨.”

    짧게 대답하는 산박의 눈에 신념이 깃든 것을 본 장 노인은 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상인이 상인과 마주 보고 있는 느낌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고객의 모습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우직한 자의 모습이었다.

    큰 목표에는 큰길이 필요한 법이었다. 네 배를 달라고 하면 그는 정말로 그렇게 줄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겠지.’

    사람을 가려내는 산박만의 방법이었다. 산박은 내치려는 놈에게 돈을 주었다. 자신이 갈 길을 방해하지 말라고 주는 깽값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피차 깔끔했다.

    “어디, 네 생각이라도 들어보자.”

    “싫습니다.”

    “어허, 이 녀석이……. 솔직하게 말하면 평당 천 원에 해주마. 그게 아니면 평당 2천 원에 1,500평을 넘기겠다.”

    평당 천 원이라고 해도 150만 원 돈이었다. 2천 원이면 300만 원 돈이다. 막대한 차이였다.

    ‘그만큼 자존심을 세울 생각인가. 아니지. 흐흐.’

    이상론도 정도껏이었다. 적어도 직접 뛰어다니며 돈을 버는 산박은 자신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고민은 하더라도 고개를 매정하게 돌릴 수는 없었다.

    산박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장 노인은 냉큼 소리를 쳐서 술상을 내오도록 했다. 산박을 잡아두기 위함이었다.

    “좋습니다.”

    술을 두 병 비운 산박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실리를 취하기로 했다.

    “보람이 있어서요.”

    “보람?”

    “예. 위험을 무릅쓰고 야산에 올라가서 멧돼지 만나는 것보다는 밭일하는 게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 아닙니까.”

    그 말을 장 노인이 받쳐 주었다.

    “던전도 안 가도 되니까. 자네는 던전 가는 걸 좋다고 생각 안 하는가 보지?”

    “아니요. 전 던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산박은 술잔을 놓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것은 ‘힘’을 말하고 있었다. 그 힘이 없었다면 산박은 굳이 피 묻은 돈으로 던전 사용자 교육 시설에 들어가지 않았을 터였다.

    ‘그냥 칼 하나 쥐고 하던 일 계속했겠지.’

    던전이 없었다면 사람을 죽이며 그저 방황하다 야지에서 죽을 운명이었다.

    “좋다. 돈만 준비되면 찾아와. 바로 계약서랑 토지 문서를 내어줄 테니.”

    “고맙습니다.”

    산박은 상투적인 말을 하며 바로 일어나서 장 노인의 집을 나섰다. 떠나는 그를 보며 장 노인은 빈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보람이라……. 허허.’

    그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밥버러지 같은 놈이 이상론에 빠져 있구나. 좋다. 난 그저 거기에 어울려 주며 뽕이나 따면 그만이다.’

    생각보다 현실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고 있는 산박이었다. 그리고 그는 돈을 끌어다 쓰는 업종인 던전 사용자였다. 그 사상에 찬성하는 척만 하면 돈을 잡아챌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계약이다.’

    산박은 모르는 계약이 장 노인의 손에 쓰였다.

    그렇게 산박은 덜컥 장 노인의 1,500평 땅을 미리 선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생각은 있었다.

    ‘먹는 건 비싸다.’

    던전 사용자들에게 파는 도시락도 수익이 짭짤했다. 그렇다고 산박이 도시락업에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시락 사업이 성행할 수 있도록 일차 산업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그는 모두가 달리는 곳에서 다른 트랙을 달리기로 했다.

    산박에게는 서비스업과 제조업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한 갈증이 존재했다. 그것은 그의 암울하기 짝이 없었던 어린 삶 때문이었다.

    오로지 7일을 굶어본 자만이 굶주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닌, 배가 점점 차오르고 몸의 모든 감각이 아릿해지는 그 감각은, 배부른 자들은 결코 알 수 없었다. 잘못된 것을 먹고 위에 차오른 위액을 끝도 없이 입으로 쏟아내며 맡았던 위액의 끔찍한 악취도 그들은 모를 것이었다. 절대로.

    * * *

    산박이 보유한 기술은 세 가지였고, 영혼과 자연과 별에 대한 기술이었다. 서로 완벽하게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기술이었지만 대자연이라는 거대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았다.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있어서였다. 이는 별빛탄의 변형을 연구하는 데 깊은 영감을 주었다.

    1레벨 던전을 두 번 공략하며 사용했던 별빛탄은 도저히 쓸 수가 없는 주문이었다. 너무 나약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갈증은 자연스럽게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게 만들었다.

    ‘가장 간단하게 주문의 피해력을 높이는 방법은 힘을 더 많이 쏟는 일이다.’

    실로 단순했다. 그렇기에 비효율적이었다. 주문에는 그마다 한계가 있고 힘의 양이 맞춤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고정량을 넘으면 효율이 뚝 떨어졌다. 조금 강한 별빛탄을 쏘자고 다섯 발 쏠 힘을 쏟아부어도 그 힘의 증가량은 5배는커녕 1.8배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다. 컨디션에 따라서는 2배가 되기도 했다. 주문은 정신력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기술적으로 다가서야 했다. 가장 먼저 작은 별의 힘을 별빛탄에 부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산박은 산란하는 별의 힘에 집중했고, 이 산란하는 별의 힘까지 응축시킨다면 반드시 주문력이 강해질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빛의 산란성, 이를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영혼 자극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허나 아쉽게도 산박은 전투 시에 영혼 자극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사용할 정도로 반복 학습이 필요했다.

    ‘고치면 되는 거니까.’

    산박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고, 내부에서 흰색 기류가 동공을 타고 뱅글 한 바퀴 돌았다. 영혼 자극을 통한 눈의 변화는 매번 달랐다. 인간 영혼이 지닌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그 변수는 감히 범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수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재조차도 잡아먹힐 수 있는 위험한 초월 자원이 인간 영혼이었다.

    영혼 자극을 통해서 주문 위력이 증가하는 건 기본이고, 더 나아가서 주문에 대한 제어력이 높아졌다. 위력을 증가시킨 주문을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산박은 그 추가 위력과 잉여 제어력을 이용해서 원을 그렸다. 별빛탄에 깃든 작은 별의 힘을 잉여 제어력을 이용해 움직이고, 추가 주문력이 그것을 덮었다.

    ‘아, 조금 부족하다.’

    산박은 힘이 무너져 내리는 걸 느끼며 아쉬워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마치 거미줄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원이 별빛탄의 주위에 만들어졌다.

    “…….”

    산박은 본능적으로 그 구멍에 또 다른 별빛탄을 집어넣었다. 큰 구멍을 메우고, 작은 구멍을 비집고, 또 다른 별빛탄이 들어갔다.

    숭숭 뚫린 불완전한 주문 체계가 뛰어난 지혜로 순식간에 모습이 변모했다. 산박의 정신이 거미줄로 엮인 작은 별의 힘을 끌어모았고, 별빛탄 다섯 개가 그대로 응축되어서 하나가 되었다.

    빛이 강렬해지며 보라색을 띠었다. 빛은 야산의 나무 몇 개를 그대로 뚫고 뻗어 나가 25m를 질주했다. 엄청난 관통력을 지니게 되었지만 본래 50m였던 사거리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아쉽다.’

    중거리 샷이 가능했다면 그 파괴력을 더 많은 곳에서 더 자주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뼈아픈 단점이었다.

    또 캐스팅 주문이 길었다. 발사 전까지 주문 시간이 매우 길어졌는데, 최소 15초는 걸렸다. 전투 시에는 더 걸릴 것이 뻔했으므로 18~25초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하나하나 산박이 스스로 짜야 했기 때문이었다. 카르마가 내려준 주문이 아니었기에 마치 우주선에서 장기간 활동하다 지구로 내려온 우주 비행사의 움직임처럼 힘겨운 주문 행동이었다. 특히 정신력의 소모에서 산박은 버거움을 느꼈다.

    이 강력한 한 방 주문을 산박은 ‘집중성탄(集中星彈)’이라 이름 지었다. 영혼 자극 기술을 통한 추가 주문력으로 작은 별의 힘을 유동적으로 제어하여 불완전한 거미줄로 만들고 그 구멍에 다른 별빛탄을 끼워 넣은 뒤에 응축하는 주문이었다. 번거로웠지만 1레벨 던전 사용자가 감히, 감히 손에 쥐기에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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