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270)

22화

* * *

산박은 ‘1레벨 던전 전방 직업 모집’에 대한 어플 내의 광고까지 사용했다.

‘역시 돈이야.’

돈을 내고 게시판을 여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그렇게 한 이유는 실질적으로 자신이 이끄는 팀이 경험자로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광고를 낼 정도의 수준이 된 것이다.

명백한 지위 상승이었고, 사람들이 많이 봐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두 번 모두 사망자가 있었지만 그런 건 넣을 필요가 없었다. 2레벨 미만 던전 사용자의 인권 수준은 범죄자보다도 못했다.

산박은 스마트폰을 집중해서 들여다보았다.

‘좋은 기술이나 직업을 가진 초행자 혹은 무난한 경험자를 영입해야 한다.’

1레벨 던전을 보다 쉽게 깨기 위함이었다. 전부터 돈을 써서 생기는 이득을 봤기에 산박은 쉽게 지갑을 열고 있었다.

반응은 곧바로 왔다. 광고한 만큼 노출도도 높고 효과도 좋았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지.’

산박의 팀이 1레벨 던전을 두 번 클리어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특수 던전’에 속하는 진화 던전을 클리어한 경력이 매우 컸다. 또한 팀원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음에도 한 달 이상 팀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중요했다.

그는 여러 사람을 면접 봤고, 그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사람을 뽑았다. 사실 큰 고민도 하지 않았다. 바로 발탁했다. 다른 사람을 끈덕지게 기다리기에는 그 후보자가 지닌 가치가 상당했다.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름은 서충호(徐衷灝). 당산 서씨로 통일 신라 때부터 있었던 씨족이고 가문이었다. 후덕한 곰 상에 푸근한 이미지를 지닌 덩치 큰 사내였다. 서글서글했고 부드러웠지만 덩치가 커서 간신배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서충호는 상투적인 말을 자주 하는 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덩치에 걸맞지 않게 ‘그림자 기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순수 전사는 아니었고, 주문을 쓸 수 있는 마검사 계열의 직업이었다.

당연히 마검사 계열답게 제한된 속성의 주문을 사용했다. 사용할 수 있는 횟수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허나 산박에게 중요한 건 그런 마법적 한계성을 지닌 그림자 기사의 단점이 아니었다.

‘서충호라는 자가 지닌 덩치, 기사라는 직업.’

그 장점 때문에 그를 선택했다. 세종시에 살고 있다는 것도 이점이 되었다. 훈련을 통해서 서로 합을 맞추기에 좋았다. 가문? 이런 곳에 흘러들어 올 정도니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자의 본적에 불과했다.

“전사로서의 역할을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 맡겨만 주십시오.”

그의 장비는 묵직한 사각 방패였다. 면접 때 그걸 가져올 정도로 그에게는 큰 방패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아무리 건장한 성인 남자라 해도 그 큰 방패를 전투에 쓰기에는 지구력이 부족했다. 던전에서는 계속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속이 텅텅 빈 것이라서요. 하하하! 0레벨 던전에서 이 속이 빈 큰 방패 덕분에 얼마나 편했던지!”

면적이 넓었지만 관통력에 약한 방패였다. 하지만 1레벨 던전에서도 제법 통할 터였다.

“아하. 따로 부무장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예. 준비하겠습니다.”

산박은 그제야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 훈련을 기약하며 서충호와 헤어졌다. 돌아가서 산박은 충호가 지닌 것들을 따로 문서로 빼놓고 다시 훑어보았다.

‘나쁘지 않지.’

그 덩치만 보고도 그를 기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1레벨 던전의 수준에서는 현실의 체급도 중요했다. 단신인 수륵이 그토록 허망하게 당한 것도 체격이 작아서이기도 했다. 97kg에 달하는 충호였다면 반격의 기회가 한 번은 있었을 터였다.

충호의 기술로는 늑대의 은밀함과 전사의 하체가 있었다. 둘은 실로 충호에게 잘 어울리는 기술이었다.

발소리를 줄이고 발을 놀리는 게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는 늑대의 은밀함은 전사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던전에서 최전방에 서야 하는 전사 입장상 상대가 자신의 소리를 덜 듣게 할 수 있으며 전투 시에 발을 현란하게 놀리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었다.

전사의 하체는 하체와 하체 균형을 더욱 발달하게 하는 기술이었다.

‘안 그래도 덩치가 큰데. 이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효율이 높을 것이다.’

그가 괜히 서충호를 급하게, 한 방에 영입한 게 아니었다. 기술과 신체가 딱 떨어졌다. 맞고에서도 짝을 치면 한 장을 받아 챙긴다. 남들과 똑같은 개수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그 강함이 달랐다.

‘주문은 뭐 좀 형편없지.’

하루에 단 두 번. 컨디션에 따라서 다섯 번에서 여덟 번 가능한 산박과 크게 달랐다. 그림자 칼날이라는 주문을 가지고 있었고, 검의 절삭력과 검의 길이가 소폭 상승하는 주문이었다.

‘정말로 형편없지.’

왜 있나 싶을 정도였다.

무위로는 순무로 칠난균(七亂均)을 가지고 있었다.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곱 종류의 수법이었다. 상당히 기대되는 순무가 아닐 수 없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상대를 농락할 수 있었다.

물론 정확한 무위의 가치는 이런 글씨로는 볼 수 없었다.

‘훈련을 통해서 차차 알아가 봐야지.’

누구나 패스할 수 없는, 팀 내부 훈련은 필수였다. 기술과 주문, 무위를 말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건 큰 차이였다. 생각보다 별로라면 서충호는 합격 통지를 받고도 다시 불합격 통지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런 위치에 있는 게 산박이었다. 줬다 뺏는 게 가능했다.

산박은 훈련 일정을 잡고 1주일 뒤에 만나서 훈련을 진행했다.

“일단 강합 씨랑 대련부터 해보시죠.”

“예.”

두 사람은 목검을 들고 서로 마주 보았다. 0레벨 던전 사용자라면 한손검을 제법 잘 써야 했다. 던전 중에는 좁은 곳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환도가 가장 값이 싸기 때문에 한손검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무기였다.

“체급 차이가 너무 나는데요.”

강합은 시작하기 전부터 엄살을 피웠다.

“최대한 실력만 맞춰보는 거니까, 열심히만 하세요.”

산박은 그런 강합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도 0레벨 던전을 주문과 기술 없이 클리어한 무인이었다. 이 대련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몸무게 차이만 20kg이 넘었다.

“하압!”

서충호가 범같이 달려들었다. 강합은 우측으로 피했다. 물론 충호도 냉큼 그곳으로 균형을 옮기며 그대로 목검을 찔러 넣었다. 한 번이라도 닿는 순간 상대의 기동력은 크게 상실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전에 강합의 장무 극악무도가 충호를 노렸다. 회피하면서도 매우 자연스럽고 움직임의 비효율성 없이 돌과 흙이 충호의 머리를 노렸다. 눈을 감은 충호가 뒤로 물러나고 싶어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 체구를 생각하면 그가 지닌 운동성을 단번에 거꾸로 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향하다가 뒤로 바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억!”

하지만 당한 것은 오히려 강합이었다. 상대의 무기가 어떻게 휘둘러지는지 모르는 충호가 그대로 상체를 뒤로 젖혀 넘어지며 다리를 휘둘러서 강합의 다리를 쳐버린 것이었다. 오른쪽 다리가 쩍 벌려지며 강합이 균형을 잃었고, 휘두른 목검은 애꿎은 땅을 때렸다.

팍!

승부는 3합도 이어지지 못했다. 워낙 체급 차이가 심해서 서로 단기전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됐다. 저 정도면 상급이다!’

산박은 주먹을 쥐었다. 벌써 팀원이 정해지다니. 전에는 한 달을 내리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광고하자마자 바로 그냥 확 잡아챘다. 역시 돈은 써야 제맛이었다.

* * *

“사람 있어?”

장 노인이 산박이 대여한 창고에 들어섰다. 마당은 횅했고, 고양이 몇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사료라도 챙겨주고 있는 듯했다.

“어이고, 이 망할 짐승 새끼가! 확!”

장 노인이 질색하며 화를 내자 햇빛을 받으며 눈을 조곤조곤 감고 있던 고양이가 호다닥 줄행랑을 쳤다.

“누구십니까?”

열린 창고 문에서 산박이 튀어나왔다.

“집주인 아니십니까.”

“장 어르신이라고 불러.”

“…….”

산박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장 노인은 껄껄 웃으며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늙었기에 내보일 수 있는 뻔뻔함이었다. 이 뻔뻔함을 안 쓰는 노인네들도 있었지만 그건 나이를 헛으로 들이켠 놈들이었다. 적어도 장 노인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남자가 혼자서 사니까 이런 거야. 내 저 부산에서 간호사 하는 젊은 처자를 아는데 소개해 줄까?”

“생각 없습니다.”

산박은 그리 말하면서 상을 내놓았다. 캔 커피가 떡 올려졌다.

“녹차는 없어?”

“영감님, 약속도 없이 그냥 오셔 놓고는 뭐가 그렇게 주문이 많으세요?”

“늙어 뒤지기 전에 먹고 싶은 거라도 먹어야 할 것 아녀.”

장 노인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번에 저 사람 살 것 같지도 않은 고아원 근처에 농지를 샀다며.”

“부동산에서 들으셨습니까?”

“내 부동 지구에서 산 세월이 있는데 그것도 못 들으면 머저리지, 머저리.”

“그래서 뭡니까?”

장 노인은 딴소리를 했다.

“여기 불은 때고 자나?”

“예?”

“장판도 없고, 바닥도 찹네. 이거 사람 사는 곳 맞나? 냉장고는?”

“아, 참, 나 진짜.”

산박은 한참을 시달려야 했다. 매정하게 내치기에는 장 노인이 온 목적이 궁금했다. 산박은 거기에 휘둘렸다.

“이제 뭐 때문에 오셨는지 말씀하시죠.”

근처에서 반찬을 사 와 텅 빈 냉장고에 한 줄을 채워놓고 나서야 장 노인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참에 농사일을 좀 더 크게 해보는 건 어떤가.”

“더 크게요? 하지만 땅을 더 사기에는 좀 그래서요.”

“누가 땅을 더 사래? 내 안 쓰는 공터가 있으니 거길 쓰라는 소리지.”

“대가는요?”

그 말에 장 노인이 펄쩍 뛰었다.

“어이쿠! 이놈 봐라? 날 돈독으로 환장한 놈으로 모네? 내가 언제 돈 달랬어!”

“그럼 그냥 줍니까?”

그 말에 장 노인이 소주를 찾았다. 산박은 대놓고 콧김을 내뿜으며 일어나 작은 소형 냉장고에서 시원한 소주를 꺼내 왔다. 내친김에 잔도 두 개를 챙겼다. 안주는 포장도 안 된 마른오징어였다. 그저 노란 고무줄에 한 묶음 묶어져 있었다.

“고아원 애들을 시켜서 농사를 짓는다며. 요즘같이 일하기 힘든 시대, 모두 눈을 벌겋게 하고 칼 들고 던전 가는데 기특하다, 이거지.”

“그래서 무료로 땅을 내준다? 아닌 것 같은데.”

산박이 의심스러워하자 장 노인이 호통을 쳤다.

“그래! 이놈아! 그렇게 해서 이 부동 지구에 새로운 바람이 불면~ 나도 뭐 하나 건질 게 생길지도 모르지. 헌데, 그래도 너한테는 무조건 이득 아니냐? 응? 그리고 왜 뒤에 반말을 찍찍 싸고 그래? 너도 나처럼 사타구니 관리가 안 되느냐?”

“아! 무슨 소리를!”

저급한 소리에 산박이 소리를 지르자 장 노인이 웃으며 잔을 비웠다. 예의상 산박도 술을 따라주긴 했다.

“이러니저러니 생각 깊게 하지 말어. 너한테 700평, 1,500평 주면 넌 그걸로 고아원 애들 데려다가 일 시키면 그만 아니냐. 내가 뭘 더 달라고 했더냐.”

“음.”

“대신!”

장 노인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걔들한테도 최소한의 돈은 쥐여줘라. 추수해서 나오는 걸 7할 넘겨준다고 해도 돈을 매달 어느 정도씩은 지급해 줘라. 어디서 그냥 날로 먹으려고 해?”

“어디까지 참견하시려고.”

“애들 칼 밥 안 먹이겠다는 건 좋다. 하지만 돈도 안 주고 부려 먹는 건 안 된다. 알았어?”

그 말에 산박이 한숨 쉬며 말했다.

“예.”

“몇 평? 500, 700, 1000, 1500.”

“땅 부자시네요.”

“시끄럽고, 딱 말하기나 해. 당장 정하기 힘들면 함 씨 찾아가서 물어보든가.”

“이왕 무료로 주시는 거 1,500평.”

“허이고. 욕심 봐라, 욕심. 배 터져 죽어라. 그래. 껄껄.”

장 노인이 웃으면서 내일 당산 부동산의 함희두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가 땅을 안내해줄 것이라 하였다.

그사이에 함희두는 연기 장가(家)가 만드는 비료를 트럭으로 업어 왔다.

“이렇게 많이 해도 됩니까?”

장지건(章知腱)의 말에 희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은 배 터져도 최대치의 땅을 달라고 했을 거다. 욕심이 있는 양반이야. 그러니까 칼 밥 먹고 살지. 당장 굶어 뒈져도 고개 숙이고 구걸하는 놈들이 많지 사시미 들고 던전 가는 놈 봤어?

비료는 당연히 가장 쌀 수밖에 없었다. 자체 제작한 것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살 수밖에 없었다. 그도 이득이고, 자신도 이득이었다.

경직되다 못해 굳어버린 경제에서 돈의 가치는 끝도 없이 올라가서 현재 최저 임금은 100만 원이었고, 그마저도 지켜지는 일이 없었다. 중앙 정부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기형적인 경제 구조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지방? 살인죄를 저질러도 업어주고 가려주는 게 지방의 떡심이었다. 좁은 세상에서 여기 가도 이 사람 만나고 저기 가도 저 사람 만나고 그 가족들도 보는데 정의 집행? 마누라한테 머리채 잡히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잘~ 처신해야 했다.

‘장 노인이 고아원 애들한테도 산박이 돈을 쥐여주게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그게 될까?’

부동산 업자 희두가 보기에는 산박도 개잡종 놈의 새끼였다. 월급도 없이 식량을 빌미로 고아원 애들을 부려 먹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