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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21/270)
  • 21화

    * * *

    태산박은 꿈을 꾸었다. 하지만 무슨 꿈인지는 파악하기 힘든 꿈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별빛으로 가득한 꿈이었다.

    카르마에 의해서 가로막힌 산박의 드루이드로서의 재능이 달 너머에 존재하는 우주를 가리켰지만 산박에게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허나, 그 무수한 별빛으로 그는 큰 영감을 얻었다. 당장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 거미줄같이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 별빛 은하수를 산박은 그의 두 눈에 각인시켰다.

    “으그그극.”

    산박은 오늘도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본래 다섯 병씩 납품하던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의 수를 세 병으로 줄였다. 0레벨 던전에서 힘을 사용하지도 않건만 그렇게 납품 수를 줄인 이유는 연구를 위해서였다.

    산박은 대장삵과 함께 콤비를 이루어서 0레벨 던전을 공략했다. 손에 들어온 건 1만 9천 원에 불과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제법 묵직한 일급으로 보이는 금액이었다.

    오후에 다시 세종시로 돌아온 산박은 연구에 임했다. 그것은 ‘별의 수련자(기술)’에 대한 연구였다.

    ‘모든 주문에 깃드는 게 가능하다면 분명 다른 이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그저 다른 물품에 빛 무리를 담는 것으로 던전 대전 상인 공회에 팔리는 것보다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그는 더 많은 돈을 원했고, 동시에 더 높은 힘을 손에 쥐고 싶었다.

    ‘혼자서도 압도적인 힘을 보유한다면…….’

    그렇다면… 산박, 자신은…….

    번쩍.

    섬광과 함께 증류수에 깃들던 별빛이 사그라들었다. 증류수에 담겨야 하는 힘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실로 무식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었다. 산박은 힘을 조금씩 줄여가며 최대한 적은 작은 별의 힘이 증류수에 깃들도록 했다. 이는 시간, 오로지 시간만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었다.

    하루에 쓸 힘을 모두 소비한 산박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정보를 취득해 나갔다.

    ‘1레벨 던전 주문 피해 증가 물약.’

    오늘 혹시라도 더 좋은 것이 나왔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매일 하는 확인 작업이었다. 그리고 산박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희소성이 대단하지.’

    2레벨 주문과 기술은 1레벨 던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적용되지 않았다. 마치 거세된 것처럼 사라진다. 그건 물건도 마찬가지였다.

    ‘1레벨 주문과 기술 중에 주문 피해를 증가시키는 물약은 적다.’

    종류는 많았지만 공급량이 부족했다. 고로 최소 7만 원짜리들이었다. 허나 던전같이 위험한 곳에서 물약은 안전빵이 가능하도록 했다. 돈 있는 자들은 잘만 사고 있었다. 그 덕을 산박도 보려면 1레벨 주문 피해 증가 물약을 만들어야 했다.

    ‘자신 있다. 그저 시간만 걸릴 뿐!’

    반드시 손에 넣을 것이다.

    ‘영혼 자극과 별의 수련자는 서로 상생한다는 걸 파악했다.’

    영혼 자극 기술은 산박이 처음 배운 기술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자연의 진리로 자극해 주문 위력의 증가를 도모하는 일이었다.

    ‘그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진짜는 원소 마법을 일시적으로 터득한다는 것이다.’

    보다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0레벨 원소 주문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원소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0레벨 던전 사용자는 주문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주문을 사용하지는 못해도 그것을 제어하는 기술은 획득할 수 있었다.

    ‘그게 중요하지.’

    이를 통해서 산박은 ‘작은 별의 힘’을 더욱더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물약에 들어가는 힘을 확실하게 조정하여 파악할 수 있었다. 별빛 또한 원소 마법의 계통이기 때문이다. 원소 마법을 완전히 모르는 것과 조금이라도 기술로 가지고 있는 것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또한 영혼 자극 기술을 통하여 별의 힘의 위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위력이 높아지면 더 많은 물약을 만들 수 있지.’

    고품질을 적게 파는 건 수지에 맞지 않았다. 그저 어느 정도 품질을 유지한 채 수량을 늘리는 게 베스트였다.

    ‘별빛 물약’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1레벨 주문 피해 상승 물약이었고, 2레벨 몇몇 카테고리의 상품과 가격이 비슷했다. 그만큼 1레벨 던전 사용자들에게는 손에 잘 안 들어오는 게 주문 피해 상승 물약이었다.

    ‘빛 무리 치료수는 계약에 묶여 있으니까, 박조조와 양귀문을 불러야겠다.’

    만남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치료수 납품을 그만두고 새로운 물건을 납품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빠를 수밖에 없었다.

    시각으로 보이는 게 좋은 빛 무리 치료수는 다른 상품에 소량 첨가하여 시각 효과를 돋우는 식으로 사용되고 있었기에 던전 대전 상인 공회에 있어서는 빛 무리 치료수를 얻는 게 더 이득이었다.

    귀문 부장과 트럭 상인 박조조 그리고 산박이 고깃집에서 마주했다. 이번에는 양귀문 부장이 세종시까지 올라왔다. 전에 산박과 조조가 대전까지 내려간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적은 양으로 많은 물약에 빛 무리 효과를 줄 수 있는 빛 무리 치료수의 가치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산박이 치러야 하는 위약금이 매우 낮았기에 양귀문 부장으로서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애초에 적은 돈을 산박에게 준 탓에 위약금 300%라고 해 봐야 껌값이나 다름없었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최소 두 배 값을 치르더라도 치료수 제작에 임하게 해야 했다.

    “오랜만입니다.”

    “예.”

    양귀문 부장이 서글서글하게 그를 맞이했다. 전과 다르게 의자에서 일어나서 악수까지 먼저 청했다. 산박은 그것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대전 상인 공회의 사정을 몰라서였다.

    박조조는 초조한 기색으로 고기 집게를 들었다. 그는 자신이 여기에서 가장 영향력이 적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개한 것을 제외하면 그냥 내쳐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용히 있자.’

    박조조는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수그렸다. 그런 상황에서 산박과 귀문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박의 소주잔에 술을 따라주며 귀문 부장이 말했다.

    “갑자기 위약금을 물고라도 치료수 납품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다른 물건을 납품한다길래 조금은 안심했지만, 저희 사정이란 게 굉장히 복잡해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상품마다 부서도 다 다르고……. 예? 아시잖습니까.”

    “알죠. 알죠.”

    대답하며 산박도 귀문 부장의 소주잔에 술을 담아 주었다. 박조조에게도 따라줬다.

    그는 산박의 편이었다. 중립을 선언하기에는 박조조가 가진 것이 발품 파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박조조는 친산박파가 되었다. 기업을 끼고 있는 양귀문 부장에게 붙는다? 미친 소리였다. 개인이 아닌 기업에 자신을 맡기는 놈은 패가망신하기 딱이었다. 정이 없어서다.

    “수익이 부족하셨다면 더 쳐드리겠습니다. 50만 원에 드리던 것을 10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1.5L, 모두 해서 100만 원요?”

    산박은 제법 놀랐다. 생각보다 큰돈이었다.

    “예. 두 배나 더 드리는 것은 그만큼 빛 무리 치료수의 시각적 효능이 뛰어나서입니다. 또 연구 결과 또 다른 효능도 있었습니다.”

    양귀문 부장이 문서를 하나 내어줬다. 산박이 이를 받아 들었다. 그사이에 박조조는 불판의 세기를 낮췄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계속될 것 같아서였다.

    ‘썅. 이럴 거면 왜 고깃집에서 만나자는 거야.’

    황당할 따름이었다.

    산박은 문서를 꼼꼼하게 훑었고, 이 문서가 1개월 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의 효능 보고서’. 빛 무리 치료수가 첨가된 물약의 효능이 소량 증가한다는 보고서였다.

    ‘알고도 말 안 해줬구나.’

    알려주면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을 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동안 침묵했고, 산박이 갑작스럽게 행동하자 놀라서 이제야 보여준 것이었다.

    “미리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기업이라는 것이 수익에 기대하는 게 크다 보니까…….”

    양귀문 부장이 의자를 살짝 뒤로 빼며 고개를 숙였다. 샐러리맨이라는 게 원래 사과하는 게 일이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대전의 양가(家)의 일원이라고 해도 숙일 때는 숙여야 했다.

    “원래 가치가 100만 원입니까? 아니면 제가 100만 원에 받아들일 거라 생각해서 100만 원입니까?”

    산박이 불쾌해하며 시비를 걸듯이 말했다. 하지만 귀문 부장은 미리 준비했던 멘트를 던졌다.

    “회사 내부 결정 결과 100만 원이 최선입니다. 다른 상회에 가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니까 이렇게 해드릴 수 있는 겁니다. 저희는 중저가품을 주로 상대하기 때문에 물량이 많고, 그렇기에 산박 사장님의 빛 무리 물약을 많은 곳에 몇 방울씩 떨어뜨려서 대량으로 효과를 획득할 수 있는 겁니다.”

    “음…….”

    뜸을 들여 보았지만 더 이상의 추가 권유는 없었다.

    “150만 원은 안 됩니까?”

    그 말에 양귀문 부장은 손사래를 쳤다.

    “말은 할 수 있겠지만 회의적입니다. 산박 사장님이 주신 거로 저희도 마진을 내야 하는데 그러면 하나 마나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양귀문이 덧붙여서 입을 털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저가품, 박리다매 형식이라서 실질 마진이 좋지 않습니다. 그걸 좀 감안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다른 상회를 찾으셔야 하는데, 이만큼 불러주는 곳은 없을 겁니다.”

    산박은 말없이 박조조가 구워놓은 고기 두 점을 젓가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소주를 한 잔 단번에 들이켰다. 술이 석 잔을 돌았다. 결국 손을 든 것은 양귀문 부장이었다.

    “110만 원에 해드리겠습니다. 제 권한으로는 정말 여기까지입니다.”

    “좋습니다.”

    산박은 냉큼 양귀문 부장의 손을 잡았다. 던전 대전 상인 공회의 넓은 유통망과 많은 소비자를 생각했을 때 그는 무조건 여기에 납품해서 이득을 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10만 원을 더 받았으니 볼 장 다 본 것이었다.

    새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아쉽게도 별빛 물약은 자신과 시은에게 지급하는 정도로 끝내야 할 듯했다.

    “좀 유동적으로 자유롭게 납품하고 싶은데요. 괜찮습니까?”

    “하아……. 정 그러시다면 용량에 따라서 지급을 달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아…….”

    그 외에 추가된 조항은 자유 납품 조항이었다. 산박을 위한 조항이었고, 던전 대전 상인 공회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항이었다. 허나 이를 산박이 무조건 요구했다. 던전 공략을 하는 현역이 물약 만드느라 수련도 자주 못 하는 건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로 친목을 다지고 헤어졌다.

    “최대한 자주 납품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 잘 좀 부탁드립니다.”

    박조조는 전에 가져갔던 돈을 그대로 가져갔다. 상승은 없었다. 그는 겸허히 이를 받아들였다. 물약 하나 운반하는 걸로 20만 원을 가져가는데 입을 놀리면 짐승 새끼였다.

    * * *

    세종시 부동 지구에서 당산 부동산을 영업하고 있는 함희두가 한옥 대저택에 들렀다. 장 노인이 그를 반겼다.

    “일 안 해?”

    “제가 언제 일을 안 합니까? 일하러 왔습니다.”

    “허허. 제법 큰 걸 물어왔나 보네.”

    그 말에 함희두는 고개를 제법 깊이 숙였다. 양근 함가(家)에서 내쳐진 그는 장 노인의 밑에서 살아왔다. 그는 장 노인의 충실한 부하였다. 그가 부동산 업자가 되고 그나마 힘들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장 노인 덕이었다.

    “들어와.”

    안방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상이 들어왔는데, 하나였다. 두 사람은 겸상하며 술을 마셨다.

    “전에 제가 창고 땅을 빌려준 놈을 낚아 왔지 않습니까.”

    “음. 칼 밥 먹고 사는 놈치고는 심성이 제법 괜찮았지.”

    무(武)를 숭상하는 일본과 다르게 문(文)을 숭배하는 한국인은 칼 쓰는 놈을 좋아하지 않았다. 명분이고 나발이고 베어 죽여 승리자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심했다. 스스로 떳떳해지기를 좋아하는 민족성이 있었다.

    “이번에 또 농지로 쓸 부지를 가져가더군요.”

    “그래? 1레벨 던전 공략자라면 그럴 돈이 없을 텐데.”

    “그렇게 좋은 곳은 안 가져갔습니다. 고아원 근처에 있는 공터를 내줬습니다.”

    그 말에 장 노인이 헛웃음을 지었다.

    “머저리 같은 놈이구먼. 굶주린 애들이 있는 곳에서 농사를 짓다니.”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뭔가 찜찜해서 조사를 좀 했습니다. 본래 출신이 그 고아원 출신이기도 했구요.”

    “그랬더니? 돈 냄새가 나더냐?”

    “아뇨. 돈 냄새는 맡지도 못했습니다. 고아원 애들한테 밭일을 맡기고 3할만 떼 가겠다더군요.”

    장 노인이 고개를 작게 끄덕끄덕거리며 술을 마셨다.

    “그런데 왜 날 찾아왔느냐?”

    “돈 냄새가 나서요.”

    “이 녀석이…….”

    장 노인이 성을 내자 그제야 함희두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돈 버는 데 귀신입니다. 트럭 상인과 제법 그럴듯한 사업도 하고 있고 두 명이서 합쳐서 50만 원 돈을 매일 번다더군요.”

    “하루에 50. 트럭 상인이 유통을 해주는 모양인데 많이 가져가 봤자 5만 원 가져가겠군. 인연이 있으면 10~15만 원.”

    오산이었다. 박조조는 20만 원을 챙기고 있었다.

    “여러 가지 하고 싶어 하는 청년인데, 저희가 도와주는 게 어떻습니까?”

    “돈도 먹고?”

    “예.”

    장 노인은 확답을 넣지 않았다.

    “내 사람 하나 붙여둘 테니, 그 전까지는 움직이지 마.”

    “예.”

    함희두가 물러갔다.

    세종시가 있기 전, 연기군의 지역 유지가 연기 장가(家)였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서 가문원이 모두 모이는 날은 추석과 설날뿐이었지만 그래도 정통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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