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70)
  • 16화

    그것은 빛을 내는 보석이었다. 그 빛 속의 감촉은 부분마다 달랐다.

    ‘표면에 불순물이 들러붙어 있네.’

    이는 곧 이 빛을 내는 보석에 다른 광물이 뒤섞였다는 뜻이었다.

    ‘열(熱).’

    산박은 시은에게서 받은 그것에서 열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무조건 돈이다.’

    상품성이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당장 생각나는 건 온천이었다.

    ‘이놈 때문이었나.’

    또한 산박은 이 던전이 왜 이렇게 후덥지근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열 루비 광물’이라 불리는 이 던전 광물은 불순물을 제거할 수 없어서(제거하면 그 빛과 열을 잃기 때문) 크기가 빛과 열에 비해 크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온천, 외지에서의 보온, 열악한 환경에서의 온돌 등으로 쓰이고 있었다.

    지열 루비 광물은 특히나 자연인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던전 광물이었다. 과학 불신자들 또한 이런 특색 있는 던전 광물에 열광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사실상 보석과 함께 들러붙어 있는 다른 것도 하나의 구성체로 봐야 했다.

    “까끌까끌한 게 좀 만져지는데요.”

    수륵 또한 광물을 받아 들어서 만지작거렸다. 그 두 눈에 비친 보석의 불빛은 자연스럽게 탐욕스럽게 변했다. 수륵은 이것이야말로 자신들이 가져가야 할 부산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외부에서 가져온 가방 같은 것에 담아 놓으면 던전이 무너질 때 현실로 옮겨지는 형식이었기에 최대한 많이 담으면 담을수록 이득이었다.

    “바로 채광하고 싶기도 한데…….”

    산박은 고민했다. 적이 있는데 힘쓰는 일을 하기에는 리스크가 컸고, 이런 후덥지근한 상황에서 채광을 하는 건 더더욱 고민되는 일이었다. 인간은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히 뛰어난 건 아니었다. 지혜롭지 못한 곡괭이질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어 보였다.

    물론 수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자신의 의견을 곧추세웠다. 처음부터 문제가 되었던 자기 주관. 그게 이번에도 툭 튀어나왔다.

    “여기 있는 괴물들은 형편없지 않습니까. 그런 놈들은 신경 쓰지 말고 던전에서 나가기 전에 광물을 최대한 많이 챙겨 놔야죠. 방패로 드잡이질만 해도 손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들인데.”

    그는 이곳에 나오는 괴물들의 형편없는 전투력을 들어서 미리 이득을 취해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다. 특히나, 그들에게서 얻어 갈 게 없었던 싸움이었다. 지금까지 거둔 건 오직 강철 무구뿐이었다. 그런 건 철 스크랩으로 팔아야 했다.

    ‘판타지 쇼크’로 아무리 모든 것들이 고가치로 변했다고 하지만 철 스크랩은 오히려 가치가 낮아졌다. 파괴되고 분할된 중국에서 톤당 80달러도 안 되는 수준에 들어오고 있었다. 철광 산업도 사람이 있어야지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었다. 철을 쓰는 곳이 폭삭 망했는데 철 스크랩이 비싸질 리가 없었다.

    또한 규격화되지 않은 강철 무기는 던전 사용자에게 팔기 힘들었다. 킬로당 100원도 안 하는 게 철이었다. 그런데도 거둔 이유는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던전을 공략할 것 같아서였다. 챙길 것이 그것뿐이었다.

    중세 시대에는 철값이 금값이었을지 모르겠지만 현대에는 달랐다. 떡을 치도록 넘쳐나는 게 철 스크랩이었다.

    “이렇게 번듯한 부산물이 있으니 가방에 거둬둔 강철 무구들을 버리고 이걸 다시 담아야 하지 않습니까.”

    “쉿.”

    산박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수륵은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적이 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꾸 딴 의견을 내세우는 수륵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어서 한 행동에 불과했다.

    “수륵 씨, 던전이 그렇게 쉬워 보이세요? 그렇게 하실 거면 그냥 다시 신병 교육관으로 취직하세요. 나는 뭐 겁쟁이라서 신중하게 행동합니까? 눈치 없이 자꾸 왜 그러십니까?”

    “…죄송합니다.”

    분노가 깃든 산박의 말에 수륵이 냉큼 수그렸다. 그 또한 사회생활을 공으로 한 건 아니었다. 열 번에 두 번 정도는 자신을 수그려 가며 사회생활을 했다.

    “한순간입니다. 무슨 게임처럼 피통이 여러 개인 줄 아세요?”

    “죄송합니다.”

    사과를 두 번 듣고 나서야 산박이 수륵을 비난하는 것을 멈췄다.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하지만 진짜로 그런 체계를 지닌 팀이 있다면 벌써 죽어 나자빠졌을 것이었다. 철저한 상하가 존재해야만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 속에서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존경과 존중은 필요했다. 그게 없다면 패고 죽여서라도 굴복시켜야 했다. 야만적인 방법이지만 인류는 오랫동안 피와 폭력 그리고 공포로 아랫것들을 굴종시켰다.

    사과를 받았기에 산박은 세 말 하지 않았다. 그 이상 가봤자 팀 분위기만 안 좋아질 뿐이었다.

    “우리가 직접 캐지 않아도 놈들이 캐서 모아둔 것이 있을 겁니다. 그걸 배낭에 넣고 내버려 두고 가면 던전 클리어가 되었을 때 우리 곁에 함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굳이 지금 채광하지 않아도 됩니다.”

    산박은 엄지만 한 지열 루비 광물을 바닥에 버렸다.

    “많이 모아놓은 곳을 발견했을 때 배낭에 넣도록 할게요. 일단 거둔 무기는 모두 버리죠. 배낭이 더 많아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산박은 팀에게 자신의 의견을 더욱 확실히 행동으로도 보여줬다.

    산박이 그러든지 말든지 대장삵은 자신의 발에 묻은 진흙을 핥아 먹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함께 맡아졌다. 대장삵은 털이 아주 잘 빠졌는데, 이물질이 묻은 털을 오랫동안 달고 다니면 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었다. 또한 캡틴 레오파드 캣은 겨울털과 여름털이 달랐기에 털이 알게 모르게 정말 많이 빠졌다.

    그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흙으로 묻어둔 배낭을 꺼냈다. 그 안에 담아둔 강철 무구들을 버리고 다시 곱게 접어서 배낭을 수거했다. 그 뒤에 다시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이제 쉬어야 한다.’

    다섯 시간이나 활동했다. 더 활동하는 건 체력이 받쳐주지 못할 공산이 컸다. 후덥지근한 던전 환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체력이 많이 낮아졌을 것이었다. 특히나 오고 가고를 많이 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특히 항상 전방에 섰던 수륵의 체력이 못 받쳐준다.’

    전략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합에게 창을 들게 하는 게 아니라 똑같이 방패를 들게 해야 했다. 교대로 최전방을 바꾸어 가며 간다면 그 부담감과 체력 소비, 정신력 마모를 크게 줄일 수 있어 보였다.

    “여기서 굴을 파고 잠시 휴식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후덥지근한데 굴까지 파서 들어가기에는…….”

    “그럼 불침번을 서야 하는데…….”

    일행은 그게 낫다고 여겼다. 온도가 충분히 높은 공간이었기에 얼어 죽을 일도 없었다. 불침번만 잘 선다면 능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퍽! 퍽!

    그들은 가장 먼저 땅을 팠다. 반엄폐를 하기 위해서였다. 누웠을 때 조금만 움직여 머리를 내밀면 주변을 볼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누웠을 때 상대가 가까이 오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누워봐요.”

    최대한 적게 파야 하기 때문에 마치 무덤처럼 팠다. 시은이 자신의 몸에 딱 맞은 구덩이에 쏙 들어갔다. 산박의 눈대중은 실로 대단했다.

    “사람 묻어 봤어요? 눈대중이 대단하네요.”

    “일 머리가 좋은 거겠지요.”

    산박은 피식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그의 과거가 살인 청부업자라는 걸 아는 자들은 결코 웃을 수 없을 것이었다.

    불침번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렇게 구덩이 속에 몸을 눕혔다. 첫 번째 불침번인 수륵은 눈을 비비며 열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 횃불을 땅에 박아 넣고 벽 밑에도 박아 넣었다. 멀리 있는 상대를 잘 보기 위함이었다.

    반면 일행이 엄폐하고 있는 곳에는 불씨 하나 두지 않았다. 상대가 발견하기 어렵게 하기 위함이었다. 특히나 횃불을 지나가면 동공은 수축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단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빛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면 큰 실수를 할 수 있었다.

    가장 피곤한 수륵이 가장 먼저 불침번을 서고 가장 싸우지 않은 시은이 중간에 일어났다. 말번은 전열에 선 강합이 차지했다.

    습격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산박을 불안하게 했다. 지성 종족이지만 그 어떤 추가 수색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던전의 어둠 때문에 마음이 피폐해진 것일 수도 있었다.

    ‘뭐든지 안 좋게 생각해 버린다.’

    그는 고갯짓을 하며 일어나 몸을 풀었다.

    출발은 매우 더디게 이루어졌다. 그만큼 일어나서 몸의 근육을 푸는 데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느리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래 하면 3일, 5일 걸리는 게 던전 공략이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출발은 어느 정도 느긋해야 했다. 한두 시간 빨리 하루를 시작했다가 골로 가기 십상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인간은 곧바로 쉽고 빠르게 격렬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으, 젠장.”

    수륵은 자신의 어깨에 흥건하게 묻어있는 피를 보고 질색했다. 목도 간지러운 것이 피부가 안 좋아진 듯했다. 잠자면서 계속 축축한 채로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디 좀 봐요.”

    시은이 물을 손에 묻히며 수건으로 수륵의 목과 어깨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이를 번갈아 해서 깨끗하게 만들었다.

    “조금 피부가 붉어요. 피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데…….”

    “액땜했다고 쳐.”

    강합이 수륵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그제야 수륵은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말의 음습함은 마음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땅에 다 같이 구덩이를 파고 들어갔는데 오직 수륵만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준비 다 됐습니까? 특별히 말하고 싶으신 분?”

    “없습니다.”

    “없어요.”

    팀원들의 대답을 듣고 난 다음에 수륵이 다시 앞장을 섰다. 최전방에 설 인원을 한 명으로 정한 실수를 현지에서 바로 고칠 수는 없었다. 강합은 방패를 연습하지 않아서였다. 연습하지 않은 무기를 실전에서 드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대부분이 눈대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무기는 자신의 몸 감각의 연장선에 있고 형태에 따라서, 힘을 보내는 곳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 제법 큰 방패는 그 숙련도의 영향이 더 컸는데, 윗부분을 후려치는 걸 막지 못해서 자기 방패에 앞니가 나가는 일이 많을 정도였다.

    그런 리스크를 명령하는 순간 리더 실격이고, 그런 리스크를 떠안는 순간 전사는 전사가 아니었다. 쥐새끼나 간신배나 다름없었다. 그냥 다 죽자는 소리로 들어도 무방했다. 그렇게 포지션이 유지된 채로 그들은 아래로 향했다.

    후끈거리는 던전 광물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빛을 내는 특성상 광물은 시선을 확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시야가 은은하게 밝혀져서 주변을 살피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 환경을 보고 산박은 빠르게 판단했다.

    “수륵 씨, 방패에 묶여있는 횃불을 강합 씨에게 주세요. 안 그래도 더우실 텐데 조금이라도 덜 더우셔야죠.”

    “아, 예!”

    수륵은 당장 방패에 묶어둔 횃불을 강합에게 건넸다. 강합은 이를 장창의 날밑에 묶었다. 검게 창날이 그을렸지만 상관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덜 덥도록 최대한 위에다가 묶었다. 그래도 전사랍시고 창날 밑에 묶은 게 용했다. 그만큼 바람 한 점 없는 던전에서 열기를 내뿜는 통로에 있는다는 건 고역이었다.

    깡! 깡! 깡!

    일행은 곧 곡괭이질을 하기 바쁜 퇴화동굴인을 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괴물같이 생긴 놈들이었다. 그들은 작업을 하기 바빠서 산박의 팀이 왔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산박은 수륵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속삭였다.

    “열 세고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세요. 양옆을 보조하겠습니다.”

    “예.”

    산박은 이를 강합에게 전했고 석궁 장전을 마친 시은에게는 외곽 놈을 노리라고 말했다. 달리는 와중에 오인 사격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수륵은 슬금슬금 움직이다가 천천히 속도를 높였다. 강합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를 보고 강합도 페이스가 올라가는 속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여러 번 훈련해 봤기 때문이었다. 첫 페이스 속도만으로도 향후 페이스를 딱 맞출 수 있었다.

    타다닥!

    곡괭이질 소리 속에서 들려오는 거칠고 빠른 발걸음 소리에 동굴인들의 병 걸린 것처럼 보이는 눈이 돌아갔다. 적이 달려오고 있음에도 그들은 눈만 껌뻑였다. 눈이 퇴화되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코만은 열정적으로 킁킁거렸다. 맡아지는 인간의 땀 냄새와 호르몬에 퇴화동굴인의 전신이 크게 들썩였다.

    “끼, 끼에에!”

    너도나도 곡괭이를 버리고 벽에 있는 구덩이로 달렸다. 하지만 그걸 놓칠 사람들이 아니었다.

    콱!

    장창에 허벅지가 찔리자마자 퇴화동굴인이 그대로 엎어져서 구슬프게 울었다. 네 마리의 동굴인은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그 피가 대지를 적셨다.

    “후우!”

    깔끔하게 그들을 모두 죽인 산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느껴지는 인기척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조금 거리를 두고 다가오던 시은이 입을 가렸다.

    “헉.”

    “왜요?”

    모두가 궁금증을 띄우며 주변을 둘러봤다. 하등 이상한 점이 없었다. 시은이 바닥을 가리키고 나서야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퇴화동굴인들이 흘린 피가 거꾸로 솟아서 벽을 타며 서서히 흙을 적시고 있었다.

    꿀꺽.

    ‘특수 던전’답게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었다. 그 피는 끝도 없이 올라가 천장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퇴화동굴인의 시체는 바짝 말라 버렸다. 방금 죽었음에도 15분 내에 모든 피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빠져나갔다.

    거리를 두고 대기하며 이를 가만히 지켜본 던전 사용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증유(未曾有)의 공포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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