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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15/270)
  • 15화

    하층으로 향하려고 준비하는 이들을 보며 대장삵이 울음소리를 짧게 내며 경고했다. 대장삵은 정확하고 중요한 순간에 짐승다운 감각을 보여 주었다.

    “싯! 저 위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빨리 숨어!”

    “이쪽으로!”

    산박은 말을 하고 난 다음에 동물 변신 주문으로 작은 호랑이로 변하여 팀을 이끌고 하층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에 숨었다. 상대를 더 잘 보기 위해서 동물로 변해야만 했다.

    “꺼, 꺼!”

    강합이 호들갑을 떨었다. 수륵은 난잡하고 소란스럽게 방패에 묶은 횃불을 서둘러 흙으로 덮어서 꺼뜨렸다. 흙에 덮인 횃불에서 연기가 조금 삐져나왔다. 그리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수륵은 손짓을 하며 횃불의 연기를 지웠다.

    “…….”

    아슬한 차이로 발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침묵 속에서 퇴화동굴인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탁!

    나무로 바닥을 두드리는 것 같은 지팡이 소리가 났다. 윤곽은 다섯 마리 이상이었다. 일곱 마리? 모른다. 더 될지도.

    어둠이란 것은 그러한 것이었다. 눈앞에 지나가도 뭔지를 몰랐고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상대가 약한 개체라는 걸 알아도 산박과 그 팀원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동물로 변신해 있는 산박은 다른 이보다 그나마 그들을 더 잘 구별할 수 있었다.

    ‘창 같아 보이는데. 길다……!’

    3m짜리 창은 되어 보였다. 평범한 창처럼 보였지만 끝이 곡괭이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내려찍는 용도로 보였다.

    그들은 군대처럼 진형을 갖추고 있었고 선두에 있는 두 마리는 등이 꼽추처럼 구부정했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도 눈에 들어왔지만 어떤 무장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꾸루타부라! 비사지!”

    그들 대장은 시끄럽게 떠들며 걸었다. 선두에 있는 등 굽은 괴물이 호다닥 앞으로 달려 나가며 뚝! 멈춰 서서 코를 킁킁거리기도 했다. 다른 감각은 퇴화되었지만 후각은 뛰어난 놈들이었다. 이를 잘 살리기 위해서 그런 독특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던전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았기에 직접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며 냄새를 맡아야 했다.

    꿀꺽.

    킁킁거리는 괴물들의 행동에 강합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수륵 또한 마찬가지였다. 횃불을 끈 것이 크게 후회되었는데, 혹여나 탄내가 맡아질까 봐서였다. 다행이라면 바람이 불지 않는 던전이라 냄새가 넓게 퍼지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3m짜리 창 때문에 구멍을 다닐 수 없어 보이는데…….’

    산박은 그들이 구멍을 통해서 이동하지 않는 점을 특이하게 여겼다. 동물 변신을 하며 훈련을 여럿 진행하면서 그는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었다. 구멍으로만 다닌다면 애초에 이런 굴이 필요도 없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들이 사라지자 산박은 다시 횃불에 불을 붙였다. 땀으로 범벅이 된 이들의 모습이 주홍빛으로 보였다. 후덥지근한 던전의 공기는 인간의 체력을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빼앗아 가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분위기가 전환되었기에 산박은 더욱 그런 땀을 더 자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최소한 몇 시간이라도 잠을 청해야 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몰랐다.

    ‘눅눅한 습기에 후덥지근한 공기까지……. 생각보다 위험할지도.’

    이런 상태에서 상대가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큰 위험이었다. 산박은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고 난 다음에 연거푸 입을 놀렸다.

    “어떻게 할까요? 저는 가능하면 싸우고 싶지 않은데……. 지금 저희들은 생각보다 많이 피곤한 걸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던전이 넓습니다.”

    은신처를 만들어야 할 때였다.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함정을 설치하고, 던전에 자신들의 땅을 다져야 했다.

    “피비린내 나는 상층에서 내려온 놈들입니다. 거기에 팀장님 말씀대로라면 지금 놈들을 쳐야 합니다. 무기부터 남다른 놈들 아닙니까. 제법 거물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산박은 고민했다.

    ‘일리가 있다.’

    전공(戰功)을 탐한다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야 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부터 아까의 그 대장 놈은 공에 눈이 먼 자처럼 보였다.

    반면 시은은 수륵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렇게 고래고래 지랄하는 놈이 무슨 거물이에요? 거물을 자극하게 될 방아쇠겠죠. 여기 두목의 자식이라든가. 그래서 건들면 그냥 뒤집히는 거죠.”

    “흠…….”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정보가 부족하다.’

    이 괴물들에 대해서 더욱더 조사를 해야지만 알 수 있었다. ‘1레벨 특수 던전’에 대한 정보를 구매하지 않은 대가였다. 1천 팀 중 한 팀이 걸릴까 말까 한 던전에 당첨된 것이었지만 개같은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희귀하다고 해서 좋은 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건 게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고, 현실에서는 평범한 게 좋은 것이었다.

    ‘1레벨이 되고 나서는 제대로 된 던전 공략 한번 못 해봤네.’

    짜증 나는 일에 이렇게 계속 얽히는 게 어처구니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정을 해야 했다. 산박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안 찔러보는 것도 우습다.’

    “대장삵, 놈들이 가던 길의 구멍 하나 잡고 수색을 해봐. 다른 놈들이 따라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게 아니라면 칠 건가?”

    대장삵이 물었다. 산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도 저도 아니면 치고 숨는 게 차라리 좋은 방법이었다.

    ‘어차피 들켰으니 제대로 된 장창을 쥔 놈들을 미리 박살 내는 게 낫다.’

    대장삵이 사라지고, 산박은 서둘러 전술 계획을 세웠다.

    “여기 길목은 너무 길이 많아서 전투하기에는 좋지 않아요. 언제 어디서 증원군이 나타날지 우리가 어찌 압니까? 그러니 일단은 한쪽 길로 들어가서 싸우거나 은신처를 건설해야 합니다.”

    대장삵이 가져올 정보에 따라 두 가지로 행동이 나누어져야 했고, 산박은 그 두 가지 모두를 입에 담았다. 이에 수륵이 의견을 냈다.

    “놈들을 덮쳐야 한다면, 상층으로 가는 길에서 덮치는 게 어떻습니까? 그곳에서 왔으니 다시 그곳에서 다른 놈들이 내려올 가능성은 한없이 낮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적들에게 의외성도 먹여줄 수 있고.”

    기습의 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었다.

    일행은 일단 대장삵이 돌아올 것을 고려해서 산박은 하층으로 향하는 길에 홀로 남고 나머지는 상층 길목에 숨기로 했다.

    몸을 옮기고 나서 시간이 흘렀다. 대장삵은 돌아와서 말했다.

    “구멍을 통해서 따라다니는 놈은 없어. 치려면 지금이야.”

    “알았다.”

    산박은 신호를 보냈다. 일행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최대한 빠른 걸음을 옮겼다. 벌레 농장으로 향하는 길목, 그 훅훅 꺾이는 길목에서 적들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억!”

    서둘러 가다가 수륵이 앞으로 엎어졌다.

    “이런 씨이발!”

    절로 욕이 나왔다. 아까 한 번 당할 뻔한 것에 그대로 당했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움푹 들어간 땅에 발이 훅 들어가면서 수륵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통로에 이런 게 있다는 게 너무 싫었다.

    산박이 서둘러 그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괜찮아요?”

    “씨발 괴물 새끼들이!”

    수륵이 거침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자 주변인들의 표정이 싹 굳었다. 산박도 안색을 굳혔다. 애새끼도 아니고, 사회에 진출한 성인이 욕을 찍찍 내뱉는 것만큼 꼴사나운 것도 없었다. 또한 그건 다른 이들을 낮게 본다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 후우. 욕하지 마시고, 일단은 갑시다.”

    “예? 아…….”

    그제야 수륵은 횃불을 묶은 방패를 옆으로 돌리며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멸이 스며들어 있었다.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은 결코 좋은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가 없었다. 남을 배려할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륵이 벌레 농장으로 들어가는 길의 오른쪽 벽에 붙었다. 횃불이 묶인 방패를 강합이 들어서 몸을 돌렸다. 그의 그림자가 길쭉하게 일어나서 통로를 덮었다.

    벌레 농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정면으로 보며 산박과 시은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별빛탄을 쏴서 통로 안쪽 시야를 밝힐게요. 그때 대장을 맞히세요.”

    “네.”

    “시끄러운 놈이니 어림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또 앞으로 나올 수도 있고요.”

    진짜 적이 나타났다는 생각에 공에 눈이 멀어 선두에 설지도 몰랐다.

    “방패 때문에 못 맞힐 것 같으면 아무 놈이나 맞히세요.”

    “네.”

    시은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집중할 때였고, 그 어떤 농담도 삼가야 했다. 강합은 화염 물약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손을 창으로 가져갔다.

    긴장한 채로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수륵이 긴장으로 땀에 젖은 장갑의 축축함을 견디기 어려워할 때쯤,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합이 횃불을 더욱 숨겼다. 뒤돌아선 그는 눈을 부릅뜬 채 때를 기다렸다.

    산박은 목소리가 갑자기 확 커졌을 때 별빛탄을 쐈다. 그의 손에서 빛이 뿜어지며 빠르게 날아갔다. 그 빛은 그들에게 도달하기 전에 이미 그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강합이 숨기고 있는 횃불의 빛에 때때로 시선을 두고 동공을 확장한 시은은 정확하게 대장을 노렸다. 놈은 다른 괴물들과 다르게 옷도 입고 있었다. 주름진 피부마다 천이 끼어서 쭈글쭈글한 옷이었다. 그렇기에 단번에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쐐액!

    장전해둔 석궁이 그대로 쏘아지며 대장의 목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무르디무른 축축한 피부는 그 어떤 저지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목뼈 또한 마찬가지였다.

    놈들은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제대로 잔향을 맡지 못했고, 대응이 늦었다. 또한 가장 선두에 대장이 나섰기에 살 수가 없는 형세였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

    푹!

    석궁에서 쏘아진 볼트는 그대로 적 대장의 목을 관통했다. 목뼈에 걸렸음에도 화살은 그대로 대장의 목을 꿰뚫고 뒤의 놈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원시적인 구조를 지닌 석궁이었음에도 맞는 괴물의 육체 내구도가 너무 낮았다. 그 무른 피부와 나약한 뼈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이야아아아!”

    별빛탄이 한 발씩 쏘아지는 와중에 수륵이 고함을 지르며 방패로 대장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길목을 틀어막았다. 강합 또한 몸을 홱 돌려서 창 중간쯤에 묶인 횃불을 쑥 올린 다음 장창을 양손에 쥐고 퇴화동굴인을 향해서 내려찍고 휘둘러 댔다.

    “크아아악!”

    방패병은 수륵의 방패질과 무기를 막다가 방패를 그대로 떨어뜨렸다. 손목이 충격을 못 버티고 뭉개져 버렸다. 별빛탄에 얻어맞은 뒤에 있는 창병은 맞는 족족 살덩이가 떨어져 나가고 뼈에 금이 갔다. 인간과 비교하면 어처구니없을 만큼 나약한 종족이었다.

    빠르게 무력화되는 여덟 마리의 괴물들을 본 수륵은 마치 영웅이 된 것처럼 거침없이 괴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팔뚝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고, 밟았다. 강합 또한 능숙하게 그를 보조했다. 시은은 그사이에 다섯 발을 장전해서 쏠 수 있었다. 산박은 별빛탄을 모두 소모했고, 대장삵은 놈들의 다리 사이를 지나가며 신경을 분산시켰다.

    완벽한 호흡 속에서 일어난 찰나의 전투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일이었고, 퇴화동굴인 병사들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졌다. 전투 시간은 3분도 이어지지 않았다.

    방패에 묻은 뼛조각을 닦아낸 수륵이 헛웃음을 지었다.

    “뭐가 이래요? 너무 약한데요? 무기를 들고 있어서 다를 줄 알았는데.”

    방패만 때려도 방패를 쥐고 있는 손목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나약한 괴물이었다.

    ‘괜히 겁먹었네. 하긴 1레벨 던전인데 이렇게 많은 지성 종족을 상대하라는 게 웃겼지.’

    산박 또한 안심하고 강철 방패와 강철 창 그리고 무기들을 수거했다. 제대로 쓰지도 못할 무기들임에도 단단한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렇게 약한 육체라면 이런 장비들은 의미가 없지 않나요?”

    시은이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건 산박도 마찬가지였다. 종족의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 무기들이었다.

    ‘구멍으로 다니며 어둠 속에서 기습을 해야지 정상인데. 황당하네. 뭔가 ‘퇴화’된 놈들 같다.’

    뭐 하는 괴물인지는 몰랐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산박의 추측대로 퇴화동굴인들은 본디 구멍으로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사회적으로 높은 자는 구멍으로 다니지 않고 몸을 드러내고 다니는 걸 즐겼다. 계급이 낮아 구멍을 기어 다녀야 하는 자들과 달리 통로로 돌아다니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문화였다.

    동시에 그들에게 맞지 않는 장비 또한 그들이 통로로 다니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걸 운용하려면 구멍 기습보다는 냉병기 시대의 인간들처럼 진형을 짜야 했다.

    물론 그 사회 현상의 단편을 보고 그 모든 것을 추측하는 건 일행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일행은 하층과 상층을 제외하고 다른 곳을 신나게 다니며 퇴화동굴인들을 학살했다. 그들은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

    “끼이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학살당한 퇴화동굴인의 피가 땅에 흘러내렸다. 괴이하게도 그 피는 여러 갈림길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바닥에 약간 경사가 져있어서 피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모여 진창을 만들어 냈다. 그 피 냄새는 산박의 팀이 각 갈림길을 오가면서 퇴화동굴인을 죽일 때마다 농밀해졌다.

    “이걸로 하층이랑 상층만 확인하면 될 것 같은데요.”

    “하층으로 가죠. 피비린내가 심했던 상층에 아마 보스가 있을 것 같아요.”

    산박의 제안에 수륵이 대답했고, 모두가 짧게 대답했다.

    질퍽. 질퍽.

    “갈림길이 왜 이렇게 진창이 되었지?”

    “다른 곳에서 죽인 괴물들의 피가 여기로 흐르나 보네요.”

    퇴화동굴인의 낮은 전투력 때문에 방심한 그들은 잡담을 나누며 하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는 동굴인들이 광석을 캐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곡괭이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깊다.’

    “매우 깊은 곳에서 곡괭이질을 하나 본데.”

    “이걸 봐요!”

    시은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주홍빛을 발산하고 있는 광물이 박혀 있었다. 손으로 뜯을 수 있게 쉽게 돌출되어 있었다. 크기는 엄지손톱만 했다.

    “캐보죠. 쉽게 떼어질 것 같은데.”

    키가 큰 강합이 창으로 광물 근처를 부숴서 광물을 떨어뜨렸다. 시은이 그것을 주우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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