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70)
  • 13화

    <특수 던전>

    태산박은 봉수륵이 지닌 기술을 들을 수 있었다.

    “기본 쌍검술과 신병 교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 그럼 여기 오실 분이 아니실 텐데?”

    산박이 놀라워했다. 신병 교육은 자신이 지닌 기술을 다른 이에게 1년의 기간으로 만들어져 있는 커리큘럼을 통해 전수해줄 수 있는 기술이었다. 사람마다 습득률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특히나 정확한 레벨 업 기준도 모르고 사람마다 레벨 업 기간도 천지 차이였기에 신병 교육은 뛰어난 기술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기술을 하나 더 하사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훈련소에 있으실 분께서… 던전 공략요?”

    거듭된 산박의 말에 봉수륵이 조금 고개를 숙였다.

    “가르칠 기술이라고 해도 쌍검술 아닙니까. 처음에는 좋아했지만, 그 이후에는 이름만 선생이지 배우겠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원에서도 절 내쳤지요.”

    “사설 학원에 들어가셨군요.”

    “예……. 후회해도 늦었죠. 한번 제의를 거절하면 다시는 안 하는 게 공기업 아니겠습니까.”

    한순간의 돈에 현혹되어서 공기업의 제안을 거부하고 사설 학원에 들어갔지만 5개월 만에 잘리고 말았다. 생도를 못 끌어당기는 쌍검 검사 교육관 따위 돈만 먹는 축생이었다.

    “훈련 교사였던 만큼 쌍검 실력은 믿어 주십시오.”

    “당연한 말씀을.”

    그는 심심할 때 쌍검을 많이 휘두르며 다른 1레벨 검사보다 좋은 숙련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 가르치면서 깨닫는 것도 있을 터였다. 1년 차 교수와 10년 차 교수는 확실하게 다른 법이다.

    “무위(武威)는 뭘 가지고 계시죠? 순무(瞬武)인가요? 장무(長武)인가요?”

    전사 직업의 경우에는 기술 외에도 독특한 주문이 존재했다. 그게 바로 순무와 장무였다. 이를 무위라고 통칭해서 불렀다.

    “순무로는 일갈이라고 가지고 있습니다. 이목을 모으고, 목소리도 크게 지를 수 있습니다. 상대의 빈틈을 만들기도 좋고… 심약한 놈이라면 주저앉기도 합니다. 짐승을 겁주는 데 탁월합니다.”

    “아하.”

    산박의 반응은 둔탁했다. 그도 그럴 게 다른 상위권 1레벨 순무를 알고 있어서였다. 좋은 건 그냥 감추고 있기 힘든 게 인간이라는 족속들이었다.

    “나쁘지 않습니다. 사실 저희 파티에서는 특히 그런 게 중요합니다.”

    처음 리액션과는 다르게 산박은 뒷말을 덧붙였다.

    “정말입니까?”

    “그럼요. 제가 동물 변신을 하는데 사실 기습에나 좋지 정면 대결은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때 일갈을 지른 다음 제가 빈틈으로 파고들어 상대의 다리를 물어서 확! 당기면? 얼마나 좋은 그림이 나옵니까?”

    산박이 침을 튀길 정도로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미 동물 변신을 통해서 싸워 봤기에 떠올릴 수 있는 현실적인 장면이고, 그리고 싶은 그림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삼수박투라는 순무입니다.”

    “그럴듯해 보이는데요?”

    “주먹과 발을 써서 상대와 싸우는 순무라서 무기를 든 상태에서는 쓸 수 없습니다.”

    ‘미친.’

    절로 욕이 나왔다. 창칼, 온갖 괴물과 마주한 상태에서 주먹과 발을 쓴다? 에라이 쌍놈아 같은 소리를 들을 것이다.

    “커흐흠…….”

    산박이 표정을 숨기기 위해서 기침 소리를 냈다.

    “괜찮습니다. 호흡을 오래 맞추면 1레벨 던전 하나 못 깨겠습니까?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돈이다. 이래서 돈을 써야 한다니까.’

    돈 주고 모집 게시판에 글을 올린 만큼 이 자리에서는 산박이 갑이었다. 갑이 고개를 살짝 숙이니 을도 고개를 숙이는 법이었다. 돈을 쓰고 안 쓰고가 크게 차이 났다.

    산박은 그렇게 태생 전사 1레벨 봉수륵과 굳게 악수했다. 단신에 변변찮은 기술과 무위를 가졌지만 그의 마인드가 마음에 들었다. 겸손한 사람은 어디서든 평타는 갈 수 있었다.

    네 명 팀에 세 명이 모였다. 나머지 한 명도 바로 연락이 왔다.

    ‘조금 더 뜸을 들일까.’

    어림도 없는 소리. 산박은 서둘러 신청자와 통화를 하고 곧바로 카페 한 곳에서 약속을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길강합이라고 합니다.”

    “어디 길씨입니까?”

    “해평 길가(家)입니다.”

    “아, 해수욕장이 유명하지 않습니까?”

    “강에 있지만요. 하하하.”

    구미 해평 쪽에 있는 씨족이었다. 일본의 관동 지방에 그들 조상을 모시는 사당도 세 곳이나 되었다.

    “태산박 씨는 본가가……?”

    “협계 태씨입니다.”

    “아…….”

    “들어본 적 없을 겁니다. 강원도 깡촌에 있는 씨족이라…….”

    “그래도 양반 가문 아닙니까.”

    “이 한국 땅에 양반 가문 아닌 가문이 어딨습니까. 3천 년 태평성대를 이룩했던 곳 아닙니까.”

    “하하하. 그거야 그렇습니다.”

    서로 웃고 나서는 이름 뜻을 물었다. 이도 굉장히 중요했다.

    “강 이름 위에 대합조개 합입니다.”

    “가문이랑 너무 어울리는 것 아닙니까?”

    “많이들 듣습니다만, 사실은 태몽 따라 지었습니다.”

    “기술을 듣고 싶습니다만.”

    “예. 말씀드려야죠.”

    장신에 뼈밖에 없어 보이는 길강합은 자신이 지닌 것들을 막힘없이 말했다.

    “기술로는 기본 쌍검술에 기본 투척술을 가지고 있고, 무위로는 순무로 단수(短守)와 장무로 극악무도(極惡武道)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무위였다.

    “단수는 뭡니까? 처음 들어 보는데요.”

    “한 번 잘 막아주는 무위입니다.”

    “…극악무도는요?”

    “사악한 수법을 사용해서 적을 약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아…….”

    산박은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은 적당히 추켜올려 주며 악수를 나누었다. 전사는 일단 오케이였다. 이시은이 후열 보조고, 산박은 올 라운더였다. 앞을 든든히 받쳐줄 사람이 두 명 들어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산박은 그다음에 이시은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통화음이 두 번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앙!

    “오빠는 무슨 얼어 죽을 오빠예요, 시은 씨.”

    ―네. 그럼 뭐라고 불러요?

    “팀장님이라고 부르세요.”

    ―예, 팀장님. 던전 가는 거예요? 아니면 저랑 술 한잔하려고?

    “던전 사용자들 모두 모았어요. 이제 훈련해야죠. 합을 맞춰야 하니까요.”

    ―옙!

    그녀가 귀엽게 말했지만 산박은 기뻐하지 않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저 그녀의 매력적인 모습을 보고 들을 때마다 불타 죽은 놈의 최후가 떠올랐다.

    “끊어요. 훈련 시일은 문자로 보내 드릴게요.”

    ―넵!

    그녀까지 추가해서 산박의 팀은 3주 동안 맹훈련에 돌입했다. 그 훈련 속에서 산박은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를 스마트폰에 적어서 틈틈이 암기했다. 한 번 적은 걸로는 기억할 수가 없었다.

    ‘던전에 들어가서 전투가 시작되고 피로가 쌓이면 더더욱 그러겠지.’

    인간의 기억력은 상황에 따라서 극과 극을 달렸다. 이미 암기한 것도 매일 화장실에서 변을 보면서 복습하듯이 반복해서 봐야 했다.

    “오늘이 마지막 훈련이었습니다. 다음에는 1레벨 던전 공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와!”

    “하하하!”

    뒤풀이는 간단히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는 것으로 끝냈다. 물론 산박이 쏘는 것이었다. 시은은 특히나 쌈을 좋아해서 고기보다 채소를 더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으.”

    봉수륵은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결국 사이다를 홀짝였다. 길강합과 산박은 서로 경쟁하듯이 소맥을 비워냈다.

    방에 돌아온 산박은 결행일을 정했다.

    ‘나쁘지 않다.’

    모난 이가 없었다. 물론 때때로 자신의 의견을 툭툭 피력하는 전사 봉수륵이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위아래를 다져 놓았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팀이다.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실패하면 그건 하늘의 뜻이다.’

    물론 전과 다르게 변화는 존재했다. 1레벨 던전을 한 번 경험하고 많은 것을 깨달은 산박이었다. 가장 먼저 시은이 준 물약을 슬링으로도 투척할 수 있게 주문 제작한 고무줄을 열 개 준비했다. 대장삵과의 관계도 증진된 상태였다. 그는 더욱더 팀을 위한 행동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다.

    * * *

    D-day는 금방 다가왔다.

    “오늘 잘해 봅시다.”

    “예. 잘 부탁합니다!”

    그들은 전에 갔던 개릉 던전으로 향했다. 그곳은 ‘1레벨 던전’으로 한번 가면 계속 그곳만 가게 되는 게 보통이었다.

    ‘제발 이번에는 함정 던전이 나오지 않기를.’

    5일을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던전에 들어서기 전에 서로 장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활이 아니네?”

    “예. 비밀 병기예요.”

    시은이 웃으면서 석궁을 보여줬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제법 단련한 성인 남자도 석궁 하나 장전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었다. 석궁을 쓰기 위해서는 당기는 근육이 강해야 하는데 쉽게 발달시키기 힘든 근육인 탓이었다.

    “뭘 그런 눈으로 봐요? 열심히 했거든요. 보실래요?”

    훈련할 때 보여주지 않았기에 더욱 그런 눈초리가 심했다. 결국 이시은은 모두의 앞에서 시범을 보여야 했다. 석궁의 끝을 땅에 놓고 허리를 숙여서 상체를 최대한 밑에 둔 다음에 다리 하나를 뒷걸음질 쳤다가 살짝 앞으로 나아가면서 단번에 상체를 들어 올렸다.

    “후웁!”

    철거덕.

    복잡한 기계식 석궁은 이 던전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서 대신 가져온 무식하고 가장 기본적인 석궁이 그대로 장전되었다.

    “와.”

    “그걸 한 번에?”

    모두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시은이 어깨를 으쓱했다.

    “전에 1레벨 던전 돌았을 때 활로 쏴도 그냥 덤비는 놈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더 공격력이 높은 무기를 써야 할 것 같아서 석궁으로 바꿨어요.”

    “잘하셨어요. 근데 훈련 때 보여주지 왜 지금 보여줘요?”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그녀의 눈이 능글맞게 변했다. 남을 놀라게 하는 건 그녀에게 큰 재미였다. 그리고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도 큰 유희였다.

    처음 면접 볼 때와는 다르게 전사 두 명 또한 장비가 바뀌었다. 특히 장신에 체중이 덜 나가는 길강합은 쌍검을 버리고 창을 들었다. 높은 시야를 지녔기에 투창 다섯 자루도 등에 메고 있었다. 팔다리가 쭉쭉 뻗어있는 길강합은 창을 쓰기 가장 적합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다.

    ‘몸무게가 낮아서 최전방은 아니다.’

    그 또한 그걸 알고 있었기에 쉽게 수긍하고 무기를 바꾸었다.

    장비가 바뀐 건 봉수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혼자서 최전방을 담당해야 했다. 전방에 강합도 있겠지만, 그가 그보다 앞에 있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는 상체를 모두 가릴 정도의 큰 방패를 들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관이 강했기에 오히려 설득이 쉬웠다. 산박이 확실하게 전술적인 이득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검사인 수륵은 무조건 쌍수검을 들어야 한다는 고집이 없었다. 그는 무인이었기에 오히려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관이 강한 만큼 행동력도 뛰어났다.

    이렇게 변화된 상태에서 던전에 진입하게 되었다. 던전은 시작부터 다른 던전과는 다른 냄새를 풍겼다.

    ‘던전 식물이 없다.’

    새카만 어둠이 그들을 덮쳤다. 보통이라면 희미하게 빛나는 던전 식물 때문에 제법 시야가 보이지만 여기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여기 이쪽으로 벽이 짚이네요.”

    강합의 말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모였다. 산박은 그곳에서 별빛탄을 손에 담았다. 빛이 사방을 밝혔다. 하지만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부싯돌로 횃불 하나 켜세요.”

    “예.”

    미리 준비해 놓았던 횃불을 땅에 놓았다. 부싯돌 두 개가 무식하게 부딪히며 불똥을 튀겼다. 운 좋게도 십여 번의 시도 끝에 불이 붙었다. 산박은 그 상태에서 대장삵을 불러왔다.

    “던전의 이 축축한 냄새. 흐흐.”

    광전사 같은 멘트를 날리고 대장삵이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거 계속 유지하실 수 있습니까? 횃불보다 밝기가 좋은데.”

    산박은 고개를 저었다. 별빛탄은 공격 주문이기 때문에 유지하려고 하면 비효율적으로 힘을 소비했다.

    횃불은 가장 선두에 설 수륵이 방패 옆에 묶어서 고정했다.

    “이게 대체…….”

    주위를 둘러본 이들은 혀를 내둘렀다. 던전의 벽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벽에 손을 짚었던 강합 또한 어느새 벽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벽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는데, 통로처럼 보였다. 또한 대형견도 들어갈 것처럼 구멍의 크기가 컸다. 최소 1m, 최대 5m마다 구멍이 하나씩 존재했다.

    “한번 안쪽에 집어넣어 볼까요?”

    횃불을 창에 묶어서 구멍 안쪽을 살펴보자고 수륵이 의견을 내놓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요. 그냥 얄팍하게 무너뜨립시다.”

    사람들은 무기를 거꾸로 잡고 뭉툭한 손잡이 부분으로 큰 구멍 위쪽을 두들겨 패서 구멍을 적당히 메꾸었다. 하지만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젠장. 이거 감당이 안 됩니다.”

    “인정합니다. 이래서야 끝이 없습니다.”

    산박 또한 땀을 닦았다. 왠지 모르게 후덥지근한 던전이었다.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계속 체력을 빼는 것도 위험했다.

    “일단 휴식하고 이어서 계속 진행합시다.”

    “예.”

    ‘1레벨 던전에 대한 정보는 돈을 주고 사야 해서 안 샀는데, 이거 후회가 되는구나.’

    산박이 아쉬운 생각을 했지만 이미 배는 떠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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