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70)
  • 11화

    * * *

    동물 냄새. 악취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냄새가 산박의 코로 깊게 맡아졌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0레벨 던전인지 태산박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넓적등멧돼지 던전이다.’

    지독한 짐승 냄새를 지닌 괴물이었다. 거기에 0레벨 던전에서만 나오는 괴물이며, 던전에 다른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를 ‘0레벨 멧돼지 던전’이라고 부르는 던전 사용자들이 많았다.

    멧돼지가 약해 보이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던전 사용자 최종 시험 중에서도 합격 점수를 받기 힘든 게 멧돼지 훈련이었다. 그만큼 이 0레벨 던전 종류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멧돼지 던전은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 내는 던전이었다. 던전 사용자 처형 던전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지독한 냄새다.”

    대장삵이 불평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산박은 곧바로 작전을 설명했다.

    “네가 어그로를 끈다.”

    산박은 바닥에 쪼그려서 원을 뱅뱅 땅에 그렸다. 짐승은 인간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기민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이용하는 방법은 당연히 전방에서 그냥! 그냥 팍팍 밀어 버리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소환자 너는?”

    “난 뒤에서 슬링으로 멧돼지들의 머리통을 부순다.”

    던전 식물이 미약한 빛을 내고 있었기에 원거리에서 공격하기 나쁘지 않았다. 물론 결코 밝다고 할 수 없었고, 서로 윤곽만 겨우 확인할 정도였다. 수풀이나 나무가 없는 곳은 칠흑이라고 말할 정도로 어두웠다. 산박과 대장삵은 합의를 하고, 출발했다.

    적은 금방 볼 수 있었다. 총 네 마리였다.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거나 한두 마리가 딴짓을 하러 갈 수도 있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대장삵의 무력을 제대로 확인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수틀리면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휘리릭!

    슬링이 빙글빙글 돌며 단번에 쏘아졌고, 어둠 속에서 돌이 날아갔다. 던전의 벽에 등을 긁고 있던 넓적등멧돼지의 머리에 돌이 정확하게 맞았다. 산박의 슬링 실력은 실로 대단했다.

    “꿹!”

    죽는 소리를 내며 쓰러진 넓적등멧돼지의 입에서 혀가 힘을 잃고 널브러졌다. 근처에서 딴짓하고 있던 넓적등멧돼지 세 마리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땅을 반쯤 파놓고 흙을 묻히며 뒹굴던 놈이 가장 마지막으로 일어섰다. 버둥거리며 구덩이에서 일어서는데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멧돼지의 무게는 수백 킬로에 달했고, 스치기만 해도 종잇장처럼 휘둘리는 게 인간이었다. 결코 근접전을 해서는 안 되었다. 두돈반 군 트럭도 박살을 내버리는 게 멧돼지라는 놈이었다. 하물며 던전의 멧돼지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넓적등멧돼지는 특히 후각이 비정상적으로 대단했다. 상대의 후각은 자신의 체취로 마비시키지만 그들에게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킁킁킁, 쿠쿼쿠컹!

    넓적등멧돼지는 큰 돼지 코로 호흡을 크게 하며 단번에 산박이 숨어있는 곳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이 덤벼들기 전에 침침한 어둠 속 수풀에서 대장삵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리고 하악질을 해대며 멧돼지들의 이목을 끌었다.

    “샤아아악! 캬아아!”

    날 선 울음소리를 내는 대장삵에게 멧돼지들의 머리가 홱홱 돌아가고 관심이 단번에 끓어올라 왔다.

    “뀌이이이익!”

    사타구니에 있는 성기가 바짝 흥분해 곧추서며 넓적등멧돼지들이 뒷발굽을 꼿꼿이 세워 엉덩이가 천장으로 툭 튀어나오는 독특한 자세를 취했다.

    투구두두둥!

    넓적등멧돼지의 넓고 평평한 등에서 뼈로 된 투사체 여섯 개가 한 번에 쏟아져 나왔다. 야구 선수가 투구하는 것처럼 매서운 속력이었지만 날렵하고 작은 대장삵을 맞추기란 힘들었다. 특히나 손으로 던지는 게 아니라 등에서 쏘아내는 것이기에 눈으로 보는 것과 투사체가 사출되는 곳의 차이가 매우 큰 것 또한 문제였다.

    물론 그걸 숫자로 커버할 수 있었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벌집이 되었겠지만 대장삵은 실로 기민했다. 대장삵은 모든 것을 피해내고 한 놈을 노렸다.

    ‘저 새끼가!’

    산박은 저도 모르게 대장삵의 무모함을 욕했다. 작전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타격은 자신의 슬링으로 해결하자고 했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촤악!

    대장삵의 날카로운 발톱이 멧돼지의 눈을 할퀴었다. 대장삵은 뒷발로 넓적등멧돼지의 코를 걷어차고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바닥에 착지했다.

    “뀌에에에엑!”

    넓적등멧돼지가 눈에서 피를 흘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주체를 못 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일단은 맞춰준다.’

    쐐애애애액! 퍽!

    난잡한 상황 속에서 산박은 윤곽을 봤다. 단순한 윤곽이었으나 대장삵의 사각을 노리는 넓적등멧돼지의 머리통을 슬링으로 정확하게 박살 냈다. 백발백중의 슬링 실력은 어둠 속에서 홀로 태양과도 같은 전공을 올렸다.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0레벨 던전 사용자로 머물러 있었던 그였다. 슬링 실력이 완숙의 경지에 달했고, 그는 이미 넓적등멧돼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반엄폐 한 놈보다 벽에 등을 긁는 놈을 노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시간이 가장 긴 놈을 초장부터 조지는 건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또 몸이 반쯤 가려져 있어서 타격에 실패할 수 있었다.

    상대를 잘 파악하고 시작한 전투였고, 기습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네 마리의 넓적등멧돼지가 널브러졌다. 그중에 한 놈은 우두머리였는지 머리에서 피가 진득하게 흐르고 있음에도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살아 있었다. 사지가 발발발 떨리는 게 뇌진탕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듯했다.

    푸욱!

    산박은 깨진 머리에 검을 쑤셔 박아서 끝장을 냈다. 그리고 단번에 부산물을 추리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진득한 곳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넓적등멧돼지의 배를 가르고, 갈비뼈를 몸 바깥쪽으로 꺾어 부수고, 반대로 몸을 돌려 반대편도 똑같이 해준다. 그다음에 목뼈를 부수고, 가죽과 살 근육을 걷어내고, 척추만 도려냈다. 넓적한 심장을 뽑아내는 것으로 부산물 획득을 끝내고 뒷다리를 도려내 밧줄에 묶어서 나무에 걸었다.

    가죽을 벗기지는 않고 도려낸 부위에 소금을 마사지하듯이 듬뿍 발랐다. 넓적등멧돼지의 가장 맛있는 부위였고, 비상식량으로 쓰기도 좋았다. 괴이하게도 괴물들의 고기는 잘 썩지 않는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자리를 옮긴 산박이 으르렁거렸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누구 맘대로 멧돼지를 공격하래? 시선만 끌면 되잖아.”

    “굼뜨기 짝이 없는 멧돼지다. 시력을 잃게 하면 내가 더 편해지는데 뭐 하러 공격을 안 해?”

    “이런 씨.”

    욕이 절로 삐져나왔다.

    대장삵은 역할 담당, 분업을 통한 전술이 지니는 이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독불장군이었다. 그 성향을 전투를 통해서 파악한 산박은 새롭게 전술을 짰다. 치료수의 경우처럼 대장삵이 절대 물러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넌 그것을 카리스마라고 말하겠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산박은 결코 대장삵과 의견을 부딪치지 않았다. 쓸모없는 감정 소모에 불과했다. 그에게 맞춰주는 게 승리하는 길로 빨리 가는 지름길이었다.

    “너 싸우고 싶은 대로 싸워라. 내가 네 옆이나 뒤를 노리는 놈을 슬링으로 처리할 테니까.”

    “이제야 말이 통하네, 소환자!”

    대장삵이 웃어 보였다. 산박도 웃었다. 전위를 당당하게 꿰찬 대장삵 덕분에 산박은 더욱 안전하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던전을 순식간에 돌파하고 빠져나온 산박이 박조조를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왕십리 던전에 매일 보이던 양반이…….’

    1레벨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를 얻어서 그것 때문에 1레벨 던전에서 장사를 하는 듯했다.

    “어서 옵쇼!”

    산박은 다른 트럭 상인에게 가서 부산물을 팔기로 했다. 등과 어깨에 짊어진 넓적등멧돼지 뒷다리는 당연히 팔 생각이 없었다.

    “등골 투사체 구멍 척추는 요즘 시세로 보자 보자 보자리~”

    트럭 상인이 뒤에 추임새를 넣으며 자신의 마진을 끼워 넣어 계산기를 두드렸다. 뒷말이 긴 상인 놈은 상종도 하면 안 되는 개새끼였다. 산박은 더 있을 필요를 못 느끼고 옆 트럭으로 향했다.

    “어어어, 어딜 가쇼!”

    트럭 상인이 말렸지만 산박은 손만 흔들 뿐이었다. 상인은 감히 던전 사용자에게 덤빌 생각은 못 하고 바닥에 침만 조용히 뱉었다.

    “어서 오십시오! 최고의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지켜보던 다른 트럭 상인이 바로 담배를 끄고 기똥차게 대답했다. 옆에서 하는 짓만 봐도 던전 부산물 파는 데 이골이 난 것처럼 보이는 산박이었다.

    등골 투사체 구멍 척추는 수질 정화에 탁월해서 유럽에 많이 수출됐다. 그 구멍을 수도관에 끼워 넣는 식으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척추 하나에 여섯 구멍. 개당 천 원이니까, 6천 원에 모시겠습니다.”

    “마진이 남아요?”

    산박이 혀를 내둘렀다. 0레벨 던전 부산물의 가격에 빠삭한 그였다. 구멍 척추를 구멍당 천 원씩이나 쳐주는 게 실로 놀라웠다.

    “유럽 쪽에서 난리도 아닙니다. 던전 사용자 유입 수가 적어서 0레벨 던전 공략이 적답니다. 그게 계속 이어져서 요즘 유럽 쪽에서는 1레벨 던전보다 0레벨 던전 부산물을 더 쳐줄 정도입니다.”

    “그런 거라면야…….”

    총 여섯 마리의 척추가 크게 비싸게 팔렸다. 3만 6천 원이나 되는 돈을 하루 만에 받을 수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늘은 되는 날인데……. 과연?’

    여섯 개의 넓적 심장이 봉지에 담겨서 올라왔다.

    “제법 크군요.”

    넓적 심장은 특히나 뼈에 좋고 골다공증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게 매우 컸다. 관절이 안 좋은 사람을 단번에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요가 많은 만큼 공급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상인은 심장의 크기를 줄자로 가늠하고 둘레도 확인했다. 한 번 주먹으로 쥐어짜서 피를 뽑아내는 과정 또한 거치고 무게를 달았다.

    “아무리 많이 쳐줘도 모두 쳐서 3만 원밖에 못 드립니다. 이거 세 개는 묶음으로 팔아야 해서 사실 제대로 된 건 세 개뿐입니다.”

    “팔겠습니다.”

    총 6만 6천 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 한 덩이라도 팔아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정말 마진 싹 빼드렸지 않습니까.”

    “크흠.”

    마지막 가서 트럭 상인이 자신의 본색을 드러냈다. 받은 게 있어서 산박도 야멸차게 내치지 못했다. 상대가 앞서 두 품목을 크게 양보했는데 입을 싹 닫는다? 상도덕이 아니었다.

    결국 산박은 뒷다리 열두 덩이 중 세 덩이를 트럭 상인에게 팔아야 했다. 100g당 450원 선으로 도매가에 넘겨주었다. 그걸로도 5만 7천 원을 받았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12만 3천 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대박 중의 대박이었다. 0레벨 던전을 두세 번 공략한 것과 같았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금일봉을 받은 날이었다. 산박은 오랜만에 술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대장삵도 함께하고 있었다. 기어코 고기를 먹을 생각인 듯했다.

    “침 좀 닦아라.”

    “헉.”

    멧돼지 뒷다리를 통구이로 구우니 냄새가 정말 죽여줬다. 거기에 더해서 향신료도 곁들이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마늘을 한 주먹 쓰는 향신료의 나라가 대한민국이었기에 대장삵은 정신을 못 차렸다.

    “꺼어어어어어억!”

    대장삵은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 모습을 보며 술을 한 잔 마신 산박이 기분 좋게 웃었다. 내일 시간이 나면 뒷다리 몇 개를 고아원에 가져다줄 생각을 하며 산박도 그대로 드러누웠다.

    * * *

    트럭 상인 박조조는 대전특별시에 도착해서 곧바로 둔산 지구로 향했다. 그곳은 대전 시청이 있는 곳이며 큰 번화가이기도 했다.

    “여보세요?”

    ―사람을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야?

    “양 부장님, 아직 약속 시간도 안 되었습니다.”

    ―어디쯤이야?

    “다 도착했습니다.”

    ―쭈꾸미로 와.

    “예.”

    ‘화끈 쭈꾸미집!’이라고 된 한옥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양복을 입은 중년인이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양 부장님.”

    “트럭 바꿀 때 되면 또 불러줘.”

    “허하하.”

    그 말에 박조조는 별 대답 없이 웃어넘기며 앉았다. 그들은 붉은 양념으로 칠해진 주꾸미로 적당히 배를 채우고 근황을 나누었다. 양 부장이라는 중년인은 소주를 반병 마셨다.

    “그래서 보여줄 게 있다며? 시답잖은 건 아니겠지?”

    반병 남은 소주를 밀어내고 젓가락을 놓은 뒤 물티슈로 입을 닦으며 이쑤시개를 손에 쥔 부장 양귀문(陽貴文)이 본론을 물었다.

    “던전 대전 상인 공회 앞에서 가벼운 걸 왜 꺼냅니까? 부산 잡아야 하는 곳 아닙니까?”

    “어허, 무슨 부산을 잡아. 쓸데없는 소리를!”

    말은 그렇게 해도 양귀문은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서울이 판타지 쇼크로 싹 박살이 나고 남은 건 경상도와 전라도뿐이었다. 경기도는 서울 난민들 때문에 늪을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박조조가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를 꺼내서 양 부장에게 보여줬다. 양 부장은 이를 확인하고 눈을 빛냈다.

    “어떻습니까? 빛 무리 이펙트가 상당하죠? 거기에 희석해도 병 전체에 빛 무리 이펙트가 유지됩니다.”

    치료수 한 방울을 물을 담은 컵에 떨어뜨리자 단숨에 물 전체에 빛 무리가 번졌다.

    “대단한데.”

    양 부장이 유리잔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탄했다.

    “얼마에 팔려고 왔어?”

    “하루에 1.5L로 50만 원입니다. 50만 원에 빛 무리가 생기는 특별한 물약을 소비자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한 방울에 유리잔을 빛 무리로 가득 채우게 하는 거라…….”

    “치료수의 효과도 있죠.”

    “음…….”

    양 부장이 뜸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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