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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10/270)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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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상인 박조조의 빠른 행동과는 다르게 대장삵과 태산박은 증류수를 앞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으르렁거렸다.

‘평범한 드루이드 치료수가 아닌 빛깔이 나는 치료수를 만들어서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지! 건방진 인간이 날 도구 취급 하려고 해? 난 분명 말했을 터다! 전투할 때만 부르라고!”

“소환당하는 입장에서 상황을 왜 따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치료수나 만들어!”

양쪽 모두 뒤로 물러날 기색이 전혀 없었다. 산박의 경우에는 힘을 사용해서 소환한 만큼 소환수는 소환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캡틴 레오파드 캣의 경우에는 자신이 원하는 상황 속에서 소환자를 돕고 싶어 했고, 맹목적으로 그의 명령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소환자의 힘을 받고 소환되었지만 그 힘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서 사용하고 싶어 했다. 그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 차이 때문에 평행선을 달렸지만, 결국 두 팔을 들어 올린 건 태산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의 마법을 사용하려면 해당 주문이 필요했는데 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곧 박조조가 도착할 텐데…….’

도착했을 때 치료수를 보여줄 수 없다면 쪽도 이런 쪽이 없었다.

“좋다. 어떻게 하고 싶냐?”

대장삵은 당연히 거드름을 피웠다.

“이 세계에서 날 위해 고기를 바쳐라! 그게 첫 번째 나의 요구 사항이다. 치료수로 돈을 벌면 당연히 그 수익이 나지 않겠는가? 재주는 내가 부리고 소환자인 그대만 이득을 본다면 그것만큼 이기적인 것도 없다.”

“끙…….”

앓는 소리를 들으며 대장삵이 이어서 말했다.

“두 번째 조건은 전투에 항상 나를 불러야 할 것이다! 이를 어기면 안 된다.”

“알겠다.”

그건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세 번째로 난 나보다 약한 자에게서 반말을 듣기 싫다. 나를 높여서 불러라. 캡틴이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군.”

“그건 싫다. 너에 대한 호칭은 ‘삭아’다. 정신이 삭았다, 넌.”

산박은 작은 반항을 했다. 대장삵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이 고집스러운 소환물 때문에 산박은 골머리가 아파 옴을 느꼈다. 처음 느꼈던 그 신비함보다는 성격에서 오는 역겨움만이 남게 되었다. 대장삵은 첫인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대장삵은 존대에 대해서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니어서였다. 일종의 연막작전이고, 양보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대장삵은 영악했다. 존대를 하라는 조건은 그냥 산박에게 패배하기 위해서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대장삵에게는 사실 하등 상관없었다.

땡깡을 부리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고집스러움으로 두 가지의 조건을 획득한 대장삵은 고개를 빳빳이 들며 승리를 자축하는 포즈를 취했다. 산박은 재수가 없었지만 서둘러 증류수를 담은 유리병을 대장삵에게 내밀었다. 공장에서 만든 유리병은 열 개당 9,900원에 팔리는 300ml짜리 작은 용기였다.

“호웃!”

대장삵이 제자리에서 도약하며 한 바퀴를 돌았다. 물이 쏟아지며 증류수와 합쳐졌다. 하지만 괴이하게 물이 넘치지는 않았다. 실로 ‘마법’ 같았다.

동시에 물속에서 빛 가루가 모습을 드러내며 밤하늘의 별처럼 띄엄띄엄 자리를 잡았다.

“음? 이건 내 힘이 아닌데.”

대장삵이 당황해했다. 하지만 산박은 달랐다.

‘빛의 신 팔라딘이 나에게 내려준 ‘기도의 제단’의 효능이다.’

치료 효율이나 효력이 조금 더 상승할 터였다.

평범한 드루이드 치료수가 아닌 빛깔이 나는 치료수를 만든 산박은 사지를 묶은 돼지를 끌고 와서 창고 밖에 두었다. 미리 하루 동안 내버려 둬서 입가에 마른 침 자국으로 가득 찬 놈은 반항조차도 하고 있지 않았다.

드러러러렁!

트럭 소리가 나며 창고 앞에 트럭 한 대가 섰다. 차가 너무 커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시멘트 도로에 정차해야 했다. 그만큼 대형 트럭은 이 부동 지구에 어울리지 않는 덩치를 자랑했다. 이곳이 얼마나 낙후된 곳인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줬다.

“아이고오오! 태 사장니이임!”

박조조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껏 웃는 낯으로 산박에게 손을 내밀었다. 100원, 200원도 칼같이 싸우며 흥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는 웬 바보 온달 같은 놈처럼 굴며 어깨를 기울이고 상체를 숙였다.

“물건 하나 한번 확인해 보세요.”

산박은 낯이 간지러워서 악수하면서 얼른 본론으로 넘어갔다. 트럭 상인 박조조의 철면피는 하여간 알아줘야 했다.

빛깔이 나는 치료수를 보자마자 박조조의 눈이 반짝였다. 그건 상인의 광기와 같았고, 돈 냄새를 맡은 자의 눈빛이었다.

“시각적으로 굉장히 뛰어나군요, 사자앙님. 이 빛 무리는 뭡니까? 무슨 주문입니까?”

“신의 힘이 담긴 겁니다. 빛의 신 팔라딘이 가진 치유의 힘이죠.”

“호오…….”

박조조가 치료수가 든 유리병을 살살 만져 대었다. 안에 보이는 빛의 별 무리는 누가 봐도 특별해 보였다. 그 빛은 결코 인공적이지 않았고 매우 자연스러웠다. 또한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효력을 보셔야죠.”

산박이 칼을 꺼내 들었다. 돼지는 공기가 바뀜을 깨닫고 발악했지만 허사였다. 단번에 옆구리에 얕지만 길쭉하게 상처가 베이고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곳에 치료수를 붓자마자 빠르게 치료되기 시작했다.

“와우.”

외상을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어서 즉효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전투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던전에서는 무조건 필수였다. 또한 보험처럼 가지고 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터였다.

“얼마에 팔 수 있겠어요?”

“최소 3만 원 돈은 됩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판다면 5만 원도 받아도 될 겁니다.”

비싸지만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도 되어 보이는 게 치료수였다.

“하루에 몇 개 만들 수 있습니까?”

“최대 다섯 개요.”

실망스러운 개수였다. 하지만 현재 산박의 수준을 생각하면 많은 숫자였다.

“중상도 한 번은 해결 가능하니 1레벨 물품 중에서는 못해도 중등품이에요. 생산할 수 있는 숫자가 적으니 최대한 값을 높이 받고 팔아야 하는데, 그 때문에 팔리는 속도는 낮을 수밖에 없어요. 괜찮으시죠?”

박조조의 말에 산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싸게 팔면 빨리 팔린다. 제값을 주고 팔려면 느리게 팔릴 수밖에 없었다.

“사는 사람들의 수요도 생각해야겠죠. 마음 같아서는 30만 원, 50만 원에 받고 팔고 싶지만, 세상이 그리 돌아가는 게 아니에요.”

효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걸 쓰는 사람은 외상을 입는 사람들이다. 사제까지 있다고 생각한다면 비상약으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그것도 경쟁이 많았다. 고레벨 던전 공략자가 만드는 회복 물약은 금으로 사야 할 정도로 고가치 상품이었다.

“잘해 봤자 5만 원에 한 병을 팔 수 있고, 나한테 떨어지는 것도 있어야지요.”

“얼마를 생각하세요?”

진짜 돈 얘기였다. 박조조는 솔직하게 5만 원에 팔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에 속일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다섯 병에 25만 원이니까 10만 원은 내가 가져가야겠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마진이 무슨 40%예요? 7%.”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만 7천 원으로는 기름값도 안 되고 마력 충전도 어려운데!”

그 말에 산박이 그를 달랬다.

“그러니 제대로 된 걸 말하세요. 40%니 뭐니 개같은 중간 이윤 비율은 너무하지 않아요?”

“25% 합시다.”

“깔끔하게 24% 합시다. 만원 단위로 해야지 거래도 편하지 않겠어요?”

“6만 원이라……. 참, 나…….”

25만 원의 수익 중 6만 원을 가져간다. 산박에게는 19만 원이 떨어진다. 나쁘지 않았다. 유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좁은 땅에서 유통도 못 해서 손해를 본다면 정말 어리석었다. 이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잃는 게 많긴 하지만 처음엔 손해를 보고 시작해야 해.’

앙심을 품고 시작부터 삐끗하면 주춧돌부터 엎어질 수 있었다. 또 박조조의 수완을 믿고 있었기에 그걸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6만 원은 싼 가격이었다. 산박이 0레벨 던전을 공략하며 나온 부산물은 대부분 박조조에게 들어갔고, 그에게는 그 물품들을 말끔하게 팔아 치우면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품목 하나가 늘어나는 건 무조건 이득이지.’

박조조는 속으로 웃었다. 뭐든지 일단 쥐고 봐야 하는 게 상인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3만 원을 받았어도 수락했을 터였다. 밀당을 하지 않는 태산박은 여기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길면 일주일은 버텨봐야 할 것을 하루 만에 단숨에 끝내려고 하니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계약서를 쓰고 지장을 찍고 사인을 했다. 박조조는 여기에 도장까지 찍었지만 산박은 도장이 없어서 찍지 않았다. 또한 계약서를 한 장 접고 뒷면이 보이는 상태에서 접힌 부분과 뒷면에 동시에 찍히도록 지장을 또 찍어야 했다. 혹시라도 복사하거나 수정 혹은 재생산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상품 발급은 이미 받으셨고?”

“아뇨. 그것도 부탁하고 싶은데요.”

박조조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본인이 해야 해요. 난 팔아주는 사람이지 대리인이 아니에요.”

산박은 결국 박조조에게 상품 발급을 부탁하지 못했다.

“다 되면 연락해 주세요. 그리고, 기계를 돌리려면 기름칠이 필요한 건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박조조는 상품을 등록할 때 반드시 뇌물을 줘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실제로 산박은 5만 원이라는 뇌물을 공무원에게 줘야 했다. 해야 할 일은 많고 거기에 돈까지 얽히니 개판이 따로 없었다.

상품 발급에는 총 2주일 가까이 걸렸다. 문서가 통과되는 것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상품의 품질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산박은 문서가 빨리 통과된 것은 문서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5만 원의 기름칠을 했기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현장 공무원에게 다시 또 5만 원을 써야 했다.

“이제 파셔도 됩니다.”

“예.”

서류를 받고 산박은 학을 떼며 세종시 시청을 빠져나갔다. 문서를 또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문서→검증→문서의 비효율적인 일 처리 방식이었다. 세 명을 거쳐야 했기에 총 15만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박조조가 안 하겠다고 한 이유가 있었어.’

15만 원이 깨지고 2주일이 날아갔다. 이런 일을 누가 대신 맡아서 하겠는가? 물론 대신 하는 자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30만 원을 요구했고, 자연스럽게 산박은 공무원들의 앞에 서서 돈을 뜯겨야 했다.

‘내가 공무원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 15만 원이 자신에게로 그냥 들어온다면?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았다. 하지만 당하는 처지에서는 X같았다.

그다음 날에 산박은 박조조와 다시 창고에서 마주했다. 믹스커피를 마시며 박조조가 최종 서류를 확인했다.

“1레벨 상급이라. 이거면 무조건 팔립니다. 한국 사람들이 좋은 건 또 무진장 좋아하거든요. 물론 가성비가 있어야 하지만요.”

1레벨 상급이라는 등급은 ‘1레벨 던전 사용자가 만든 것 중에서 상급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평균적인 물품보다 1.5배 수준의 효력을 증명하는 등급이기도 했다.

최종 서류에는 그 외에 물약의 자잘한 능력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즉효성은 뛰어나지만 유지력은 낮고 용량 대비 효율이 높지 못하다는 점 등 다른 1레벨 상급 물약과 비교가 되어 있었다.

“톱급은 아니지만 즉효성 쪽에서는 21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30위 안쪽으로 체크되었다는 것 또한 주효했다. 물론 이 또한 1레벨 던전 사용자 수준에서 그러하다는 뜻이었다.

‘아쉽다.’

생각보다 효력이 좋자 박조조는 아쉬워했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물약의 숫자가 다섯 개뿐이라는 게 치명적으로 느껴졌다.

“물약 이름은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라고 지었군요?”

“예. 다른 드루이드 물약과는 좀 다르니까요.”

하루에 다섯 개씩 납품하고, 팔릴 때마다 전산상으로 금액을 받기로 했다.

트럭이 연기 사거리에서 빠져나가며 아스팔트 도로에 진입했다. 그걸 마지막까지 본 산박은 복잡한 마음을 느꼈다.

‘0레벨 던전이나 공략하러 가자.’

하루 단 한 번. 던전 사용자가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제한 조건이었다. 레벨이 높은 던전 사용자라도 똑같이 한 번밖에 던전에 진입할 수 없었다.

물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대장삵을 소환할 정도의 힘만 남기고 모조리 드루이드 빛 무리 치료수를 만드는 데 힘을 사용했기에 산박이 갈 곳은 0레벨 던전뿐이었다. 그곳에서 대장삵과 호흡을 맞출 생각이었다.

슬링을 휭휭 휘두르는 산박과 그 뒤에서 따라가는 대장삵 콤비가 0레벨 던전 ‘왕십리 던전’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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