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70)
  • 8화

    * * *

    “반짝묵토 모으겠습니다.”

    “예.”

    산박의 말에 모두가 대답했다. 적당히 인원을 분배하지는 않았다. 두루두루 알아서 복합적으로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숫자가 적어서였다.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주변에는 바닥촉수가 죽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산박은 시체를 모으고 땅을 파서 시체를 집어넣었다. 단기간 있는 던전이라면 방치했겠지만 최소 5일 이상 이 ‘함정 던전’을 공략해야 했다. 시체를 땅에 묻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세균은 인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흉측했다. 그것 때문에 하루를 허비하기보다는 30분 고생하는 게 나았다.

    열심히 작업하는 산박의 눈에 짝을 지어서 장작을 주으러 가는 망귀와 도훈이 보였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먼저 다른 곳으로 향했던 시은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왜 왔어요? 의심받으려고.”

    “원래 사냥꾼은 자신이 당할 줄은 모르는 법이에요. 그래서, 언제 죽일 거예요?”

    산박은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망귀의 휴대폰을 시은에게서 받아서 모든 것을 확인했고, 파토 내지 않고 이곳에 왔다. 저레벨 던전의 초행자들을 덮치는 괴물을 가만히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제 기여도에 따라서, 소득 분위에 따라서 똑같은 법도 차등되어서 재판받는 게 현재의 대한민국이었다. ‘판타지 쇼크’가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전에는 소수만 누렸던 특권이 이제는 던전 사용자들에게 모두 퍼져 나가 있었다. 목숨을 건 만큼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던전 사용자가 되어서 0레벨 던전이라도 돌고 있는 이유는 특권 계층이 될 수 있어서였다. 당연히, 증거를 가지고 고소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처벌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0레벨 던전 사용자와는 다르다. 그들은 나와 같은 1레벨 던전 사용자들이다.’

    진짜 현역. 말단이기는 하지만 1레벨 던전을 공략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경제에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고 여겨진다. 당장 내년만 되어도 산박 또한 많은 사회 혜택을 누릴 수 있을 터였다. 돈에 미친 사회라고 욕할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지 돌아갈 수 있는 사회였다. 다른 국가는 더 심각했다.

    “아직 결심이 안 선 거예요? 그럼 왜 여기 들어왔어요.”

    “결심은 섰어요.”

    고아원에서 태어나 열한 살이 되었을 때, 이미 신부님에 의해서 청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산박이었다. 남을 죽여서 얻은 돈이 아니면 고아원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 피 묻은 감각이 착한 사람처럼 보이는 산박에게 아직도 들러붙어 있었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었다. 굶주렸던 고아원도, 농사일하는 신부와 수녀도, 뭐라도 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자신도. 모두가 결핍했기에 저질렀지만, 그 죄책감은 아직도 여전했다.

    “다만, 이번에 내가 은혜를 입혔으니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쌍으로 같이 가는데 아니라고요?”

    “쯧.”

    두 사람이 배신자라는 걸 모른다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웠다.

    “포션을 쓸까요?”

    “아니, 단칼에 죽여야 해요.”

    산박은 시은에게 단검을 건넸다. 시은이 단검을 허리에 차려고 하자 그것을 그가 말렸다.

    “옷 속에 숨겨놔요.”

    “아, 네.”

    없던 무장이 생기면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 또한 도둑이다. 상대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미리 점치는 산박도 얼마나 고생스럽게 성인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사이에 망귀와 도훈은 의견이 부딪쳤다.

    “죽이자고? 언제는 죽이지 말자며.”

    “어깨가 다 나았잖아. 우리 둘이서 하루 고생해서 던전 클리어하면 돼. 4일째에 죽이자.”

    “4일째에 죽이자고? 보통은 마지막 날에 죽이잖아.”

    그 말에 도훈이 고개를 저었다.

    “드루이드랑 마녀의 능력이 상당해. 5일째에 클리어가 될지도 몰라. 4일째가 가장 안전해.”

    “너무 갑작스러운데. 이렇게 변심하는 경우는 잘 없었잖아.”

    망귀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팀은 뭔가 일이 자꾸 일어나고 있었다. 이럴 때 섣불리 거사를 치르고 싶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릴……. 아무것도 모르는 연놈들 목 자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거기에 이번에는 레벨 업 시스템이 엄청난 걸 줄지도 몰라.”

    엄청난 것. 그건 하나밖에 없었다.

    “레벨 업을 할 수 있다고?”

    사람마다, 개인마다 레벨 업 하는 기간은 천차만별이었다. 최단 기간으로는 1년 만에 7레벨까지 오른 경산 대흥 필가(家)의 필전해(弼煎骸)가 있었다. 뼈를 달인다는 이름 뜻 그대로 엄청난 수련광이었다.

    “던전 사용자를 죽인다고 레벨 업씩이나 하겠어? 하지만 태산박이라는 사람을 봐. 이제 1레벨 초행인데 주문이 세 개야. 그런 놈을 죽이면 레벨 업 시스템이 ‘불과 바람의 합격술’을 준 것처럼 뭔가를 줄 게 틀림없어.”

    그건 분명 엄청난 기술이나 주문일 터였다. 드루이드는 대장삵을 소환하지만 자신은? 천사의 날개라도 얻을지 몰랐다. 혹은 신의 병사를 소환할 수 있다든가.

    “흐흐.”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다른 던전 사용자를 죽여서 기술이나 주문을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었다.

    * * *

    “나이스!”

    시은의 화살이 정확하게 ‘나무짐승’의 눈알을 맞추자 망귀가 즐겁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벌써부터 보상에 눈이 멀어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다른 이들과 확연하게 다른 시작을 한 태산박을 죽인다면 분명 특별한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터였다.

    나무짐승은 잔털이 많은 나무의 모습을 한 괴물이었다. 나무와 다를 바가 없었기에 아차 하는 순간 큰 부상을 당할 수 있었다. 몽둥이같이 딱딱한 나뭇가지에 맞으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그런 큰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함정 던전에서 가장 쉬운 놈이기도 했다. 혼자 다니기 때문이었다.

    “여기, 달군 돌을…….”

    두 사람의 살신성인적인 면모는 실로 역겨웠다.

    팀은 빠르게 던전을 클리어해 나갔다. 애초에 1레벨 던전 경험자인 망귀와 도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숙련자는 아니지만 0과 비교한다면 높은 숙련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 덕을 산박은 깊게 체감했다.

    ‘사람 백정이라고 누가 알았을까.’

    의심하면 뻔히 보이지만 의심 한 점 없을 때는 쉽게 넘길 수 있었다. 어지간히 인간을 혐오하는 자가 아니라면 두 사람의 관계를 바로 알아차리는 경우는 없었다. 대화를 할 때 확실하게 서로 정해놓은 게 있어서 접점이 적어 보이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해서였다. 인간은 사회성을 지닌 동물이고 그 때문에 ‘말’이 중요하다. 그걸 이용하는 도훈과 망귀는 정말 타인처럼 보였다.

    사냥꾼이 총을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먼저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사냥감이 된 산박과 시은의 인내심은 빠르게 바닥을 쳤다. 죽이기 전에 살을 찌우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3초도 기다릴 생각 하지 마세요. 미리 뽑고, 가서 단번에 내려치세요.”

    “네.”

    시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 산박은 도훈에게로 향했고 시은은 망귀에게로 향했다.

    75.63cm로 공장에서 양산되는 고품질의 환도가 주저하지 않고 도훈의 목에 틀어박혔다. 산박이 펄떡 뛰는 도훈의 배를 밟고 환도를 뽑자 피가 쏟아져 나왔다. 도훈의 손이 주변을 훑었다. 무기가 쥐어졌고 휘둘렀지만 그 무엇도 베지 못했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였다.

    산박이 추가타를 날리려는 순간, 끔찍한 소리가 퍼져 나갔다.

    “흐으아아아아아악!”

    “헤.”

    시은의 웃음소리는 산박에게 닿지 못했다. 그만큼 망귀는 끔찍하게 울부짖었다. 망귀의 전신이 화염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산박이 준 단검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화염 물약을 뿌려버린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생성된 화염이었다면 맞자마자 3초도 안 되는 순간에 죽었겠지만 특별한 힘과 기술로 만든 화염 물약은 달랐다. 진짜 화염보다 위력이 약했고, 유독 가스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아아아아아아악!!”

    망귀는 버둥거리고 뒹굴었다. 모닥불이 몸과 부딪히면서 불타던 장작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재가 허공으로 크게 올라오며 작은 연기를 만들었다. 그 속에서 움직임을 멈춘 망귀의 몸에 검은 재가 들러붙었다. 십 초가 넘도록 발악하던 망귀가 결국 죽었다.

    꿀꺽.

    끔찍한 최후에 산박은 마른침을 삼켰다. 인간이 절규하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했다.

    “죄송해요. 다가갔는데 알아차려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단검을 뽑지도 않은 시은의 거짓말에도 산박은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저 눈썹이 홀라당 타버려서 눈알이 크게 보이는 망귀를 볼 뿐이었다. 두 사람의 처리는 시체를 던전의 땅에 묻는 것으로 끝났다.

    “깔끔하게 죽이던데, 그런 경험이 있어요?”

    “예전에 고아원에서 강요를 받았었죠.”

    산박은 진실 속에 거짓을 숨겼다. 그는 오히려 반겼었다. 제법 큰돈을 만질 수 있어서였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지금처럼 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결코 하지 않을 짓에 그때는 허겁지겁 손댔다.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은 데에는 누구보다도 매력적으로 생긴 시은의 외모 또한 크게 작용했다.

    “혹시 지금도… 하세요?”

    시은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 모닥불을 보고 옛날 생각에 잠긴 산박이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신부님이 죽고, 전 자유의 몸이 되었어요. 지금은 고아원을 운영하시는 수녀님을 조금 지원하며 제 살길 걸어가고 있어요.”

    사람을 죽였기에 하지 않아야 할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감성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계속 팀을 꾸리실 건가요?”

    산박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갈등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일을 당하고 이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강심장이나 둔한 사람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당장은 0레벨 던전을 공략하고 지내려고요.”

    “1레벨 던전 가실 때는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마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활도 잘 쏘는 시은은 훌륭한 전력이었다. 그 활 솜씨보다 물약이 지니는 가치 때문에 내쳐졌지만, 산박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예. 그때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남은 하루를 매우 더디게 공략하고, 두 사람은 그대로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나무짐승’을 죽이자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어?’

    0레벨 던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던전이 무너지면 그냥 공간 이동만 하는 식이 0레벨 던전이었다. 하지만 1레벨 던전은 달랐다. 새하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레벨 업 시스템의 목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레벨 업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사용자 태산박을 인식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현재 사용 가능 기능을 확인합니다. 필요 카르마 확인, 출력합니다.]

    작은 섬광과 함께 작은 제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

    깊고 낮은 남성의 노랫소리가 퍼져 나왔다. 그 속에는 용맹함이 깃들어 있었고,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쭉 뻗어 나왔다.

    [빛의 신, 팔라딘이 당신을 축복합니다. ‘기도의 제단’을 획득했습니다.]

    ‘이게 대체 뭐지?’

    어리둥절했다. 그 어떤 정보 사이트에서도 듣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던전 정보에 대한 폐쇄성은 대단해서 산박이 모를 수도 있었다.

    산박의 시선이 작은 제단으로 향했다. 1인용짜리 제단이었고, 딱 무릎을 꿇으면 끝이었다. 무릎을 꿇는 곳 앞에는 하늘로 향하는 검 한 자루와 기도하는 여자가 함께 있을 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기도의 제단에 머무르자 창이 떴다.

    [기도의 제단, 1레벨]

    빛의 신 팔라딘이 던전에서 악인을 처단한 자에게 주는 첫 은총이다. 치유와 관련된 행위를 할 때 작은 빛 무리가 나오며 치유를 도와준다. 그 수준은 미미하다.

    사용자 태산박은 사용자 이시은과 함께 1레벨 던전에서 견망귀와 오도훈을 심판했다. 그 두 사람은 22명의 죄 없는 이들을 죽였다.

    확인이 끝나자 레벨 업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다른 기능은 없습니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래.”

    빛이 산박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용맹함이 산박의 마음을 두드렸다. 하얀 공간에서 나왔지만 왠지 모를 고양감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지하철 통로로 빠져나온 산박은 가져온 배낭을 양손과 등에 짊어지고 올라가고 있는 시은을 볼 수 있었다. 네 명이 모은 부산물의 양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5일 만이다.’

    제법 긴 수염이 매만져졌다. 수염이 간신배처럼 자라나서 그는 수염을 기르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사망 수속은 금방 끝났다. 애초에 조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네 명이 모은 부산물의 가격은 총 합쳐서 40만 원을 받았다. 두 명이 살아 있었다면 10만 원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일당 10만 원이면 엄청난 수준이었지만, 목숨을 건 것치고는 낮은 금액이었다.

    ‘그게 현실이라는 놈이지.’

    판타지 쇼크 이전에 전깃줄에서 줄줄이 죽어가던 자들처럼, 현실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