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70)
  • 7화

    “개애새끼들아!”

    망귀가 발악했다. 그는 마치 타오르는 화염처럼 악다구니를 내질렀다. 그 기세는 거칠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이상했다. 싸움을 앞두고 가장 선두에서 전진할 때 항상 긴장하고 두려워했으며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던 것이 망귀였다. 그가 전투에서 다른 적들의 신경을 끄는 짓을 이렇게 대범하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망귀를 아는 자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망귀의 모습은 전과 후가 달랐고 이상했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사람처럼 본성이 사라지고 그 역할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후욱!”

    쉬이이익!

    반면 도훈은 날쌘 바람처럼 움직이며 타오르는 광전사같이 움직이는 망귀를 보조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것은 실로 불과 바람이었다. 타오르는 불의 주위를 도는 바람은 불의 기운을 더욱 키우고, 불의 위협스러운 모습을 숨겨준다. 이는 상생(相生)의 법칙이니, 곧 합격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드높이는 것과 같았다. 일류 합격술이 가지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였다.

    멈칫.

    당연히 산박은 두 사람의 숨 막힐 정도로 빈틈없는 합격술을 침을 삼키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섯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팽팽한 싸움이 유지되고 있어서였다. 평범한 패싸움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더욱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2대5의 싸움이 백중세를 유지하는 건 정말 구경할 맛이 났다.

    ‘가장 중요한 키는 망귀다.’

    그 덕분에 여유를 가지게 된 도훈은 두 다리를 더 쉽게 놀리고 상·하체를 더 대범하게 비틀며 폭풍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1레벨 던전의 수준을 생각하면 최고 수준의 ‘기술’이라고 품평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지익.

    “큭.”

    거칠게 움직이는 만큼 도훈은 자신의 상처가 덧나고 피가 새어 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둘의 합격술은 수십 년을 단련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재능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불과 바람의 합격술’.

    1레벨 던전을 전전하며 던전을 공략하는 초보 던전 사용자의 뒤통수를 쳐 죽이며 성장한 두 사람은 운명 공동체적 성향으로 ‘레벨 업 시스템’이 내어준 선택지를 통해서 그 기술을 획득했다.

    똑같이 1레벨 던전을 공략해도 각자 가진 기술과 주문의 개수는 활동한 기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초행 파티가 한 달 이내에 만들어진 것만 해도 우스운 꼴이었다. 더군다나 네 명 전원 1레벨 던전을 처음 노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확률이었다. 초행자일수록 경험 있는 팀에 속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묶여서 활동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망귀와 도훈은 초행이 아니었고, ‘불과 바람의 합격술’이라는 훌륭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기술을 얻기 위해서 희생된 사람의 숫자만 열 명이 넘었다. 다섯 팀을 잡아먹었다는 뜻이었다.

    ‘레벨 2가 되어서 2레벨 던전을 공략하러 가는 순간, 난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이런 격전을 겪는 것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미래를 위해서 그들은 1레벨 던전을 초행자들과 함께 클리어하며, 마지막에는 그들의 목에서 피를 쏟아낼 것을 결의했다.

    사람을 잡아먹고 얻은 기술인 만큼 두 사람의 합격술은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쉬익!

    발톱파도괴물의 날카로운 앞발톱이 오만방자하게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견망귀를 노렸다. 하지만 발톱파도괴물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단번에 서로 위치가 바뀌면서 망귀가 이미 휘두른 무기가 괴물의 앞발을 후려쳤다.

    발톱파도괴물은 단번에 휘청거리며 옆의 놈과 뒤엉켜 나뒹굴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일어났다. 피를 흘리고 뼈가 드러났음에도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게 발톱파도괴물이었다.

    “크아아아!!”

    그들이 무서운 이유는 전투 불능에 빠뜨리는 게 매우 힘들다는 점 때문이었다. 가히 약에 취한 전사나 다름없었다.

    그 괴물의 맹렬함 속에서 버티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밀착한 상태에서 최고의 효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레벨 높은 던전에 가도 분명 그 효능은 비슷할 터였다.

    쐐애애액!

    시은이 쏜 화살이 한 놈의 등판에 꽂혔다. 놈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홱 돌리며 시은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돌린 놈은 갑자기 앞으로 넘어졌다. 무릎이 크게 땅에 찍혔다.

    질질질!

    호랑이치고는 작은 호랑이가 발톱파도괴물의 발목을 물고 고갯짓을 하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와드득!

    발목이 분질러지며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산박은 괴물의 다리를 입에서 떼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문을 읊었다.

    ‘오히려 보조하는 게 더 빠르다!’

    여럿이 뭉쳐있는 괴물들이었기에 작은 호랑이로 변해서 그 속에 뛰어들기에는 겁이 났다. 별빛으로 빛나는 탄환이 쏘아지며 괴물들의 뒤통수를 정확하게 후려갈겼다.

    “켁!”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맞은 괴물의 상체가 앞으로 숙여졌고, 그 기회를 망귀가 놓치지 않고 잡아챘다. 망귀는 무릎 보호대를 끼고 있는 무릎으로 괴물의 얼굴을 올려 쳤다.

    퍽!

    둔탁한 소피가 뿌려지고 앞니가 땅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한 마리가 뒷발이 박살 난 채 바닥을 기었고, 다른 한 마리는 별빛탄에 맞아서 빈틈을 보여 단번에 녹다운되었다. 사람으로 변한 산박은 슬링으로 놈들을 크게 타격했다. 남은 세 마리는 시은의 활 공격까지 보태서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확인 사살을 하겠습니다. 도훈 씨는 쉬고 계세요!”

    퍽! 퍽!

    쓰러져 있는 놈도 두 번을 때렸다. 머리를 치는 게 아니라 사지를 찔렀다. 머리를 공격하면 자연히 발톱의 공격권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키아아악!”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다시 덤비는 놈을 망귀가 능숙하게 처리했다. 휘두르는 발톱을 무기로 쳐내고 로우 킥을 날려 발 안쪽을 쳐서 밖으로 튀어나오게 해 균형을 무너뜨렸다.

    퍽!

    피와 살 조각 그리고 지방이 덕지덕지 붙은 검은 둔기 같은 타격감을 보였다. 그 때문에 괴물을 죽이는 것도 힘들었다. 괴물은 발이 뭉개져서 공격 수단이 사라지고 나서야 머리가 깨져서 죽었다. 마지막 놈이었기에 더 흉한 최후였다.

    “허억. 허으으.”

    덜덜덜, 딱, 따다닥!

    아드레날린이 사라진 도훈은 앓는 소리를 내며 덜덜 떨었다. 부상을 입은 상태로 격전을 소화했기 때문이었다.

    너도나도 그에게 모여들었다. 도훈은 입술이 새파란 것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배낭에서 꺼낸 붕대를 수건처럼 써서 괴물의 피를 닦아 내고 살피니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너무 많았다.

    ‘차갑다.’

    도훈의 피부가 차가운 걸 확인한 산박은 냉큼 처치를 시작했다.

    “벗으세요. 이러다가 저체온 옵니다.”

    햇빛 하나 없는 던전이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기에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서늘한 것은 위험했다. 도훈은 군말하지 않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망귀는 땔감을 준비하고 시은은 바짝 마른 지푸라기를 모았다. 산박은 다친 부위의 옷을 벗기기 위해서 옷을 잘라냈다.

    사악, 사악, 사악!

    현대 문물은 들고 와도 사라지기 때문에 자연물인 부싯돌을 사용해야 했다. 단단한 철에 부싯돌을 비벼서 가루를 내고, 지푸라기를 모아놓은 곳에 가루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부싯돌을 가까이 대고 부싯돌끼리 부딪친다. 그러면 불똥이 튀면서 불씨가 단번에 타올랐다.

    던전 사용자라면 준비된 상태에서 3분 이내에 불을 피울 테크닉을 익혀야 했다. 인구가 적어 시험이 특히나 어렵기로 유명한 한국에서도 당당히 시험 과목에 존재하는 항목이었다.

    타닥……!

    모닥불이 피워졌다.

    “오늘은 여기서 쉬죠.”

    산박이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제대로 된 전투를 두 번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되었다. 거기에 앞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며 함정과 싸우기도 했으니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양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체온을 지키던 도훈은 모닥불의 온기 덕분에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식은땀으로 가득했던 몸이 진정되었다. 시은이 눈치 좋게 알아서 붕대로 땀을 꾸준히 닦아준 것도 컸다. 경박해 보여도 할 건 다 해주는 따스한 마음을 지닌 모습이었다.

    “돌이 달구어진 것 같은데요.”

    망귀의 말에 산박은 그와 힘을 합쳐서 땅을 판 후 달구어진 돌을 집어넣고 다시 흙으로 파묻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열기가 흙을 통해 전해졌다. 그곳에 도훈이 누웠다. 등이 뜨뜻하게 되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터였다.

    ‘보자…….’

    산박은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대장삵을 소환해서 도훈을 치료할 힘이 남아 있는지 확인했지만 애매했다. 차라리 휴식해서 힘을 회복한 다음에 대장삵을 소환하는 게 나을 듯했다.

    ‘내 힘을 양도해서 치료 행위를 할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도훈의 어깨 상태가 심한 듯했다. 응급 처치 정도로는 앞으로의 던전 공략에 투입할 수 없어 보였다. 사람 하나, 하나가 중요한 이 시점이었다.

    ‘일곱 마리나 기습을 하다니. 1레벨 던전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다.’

    재수가 없었다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재수가 없었다. 산박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망귀와 도훈에게로 향했다.

    “…….”

    * * *

    산박은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끓인 물을 마셨다. 물은 마른 야채를 잘게 잘게 다져 넣은 야채수였다.

    후루룩. 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딱딱한 건조 육포를 먹고 불침번을 정해서 장장 열 시간을 충분히 휴식했다. 그다음에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며 산박은 대장삵을 소환했다.

    쏴아아아!

    “와!”

    물이 회오리치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대장삵의 등장은 실로 화려했다. 푸른 눈동자를 지닌 대장삵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코를 킁킁거렸다.

    “전투가 있었나 본데? 왜 다 끝나고 날 부른 거야?”

    “치료하는 데 쓸려고.”

    산박의 대꾸에 대장삵은 다친 도훈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굉장히 날렵하고 민첩해서 도훈이 움찔움찔거렸다. 대장삵의 민첩한 모습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흥! 날 부르지 않았으니 인간이 이 지경이 되지. 다음부터는 전투를 할 때 날 꼭 소환해! 머릿수에서부터 차이가 나야지 쉽게 이긴다고.”

    “알았어.”

    산박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론이었다. 실제로 일곱 마리에게 기습당한 산박의 팀은 큰 전투를 겪었다. 망귀와 도훈이 ‘불과 바람의 합격술(기술)’을 보유하지 않았다면 그때 팀은 전멸했을 터였다. 사람을 죽이면서 1레벨 던전을 공략해 부수입을 올린 대가는 그 기습을 버텨내는 동력이 되었다.

    푸슈웃!

    대장삵의 꼬리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며 허공에서 물결쳤다. 그리고 도훈의 어깨에 스며들어 갔는데, 고통으로 긴장된 도훈의 몸이 단번에 이완되었다.

    물의 힘은 그 어떤 힘 중에서도 효율이 굉장히 높았다. 힘이 부족하면 일단 물과 관련된 힘을 사용하는 게 보편적일 정도였다.

    “대, 대단합니다.”

    도훈이 절로 감탄했다. 단번에 상태가 크게 호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산박도 당황할 정도였다.

    “생각보다 효율이 높은데?”

    그 말에 대장삵이 고개를 빳빳이 들어 올렸다.

    “나를 과소평가하는 인간들은 지금까지도 많았지. 하지만 언제나 내 힘 앞에 굴복했지!”

    그 늠름함에 시은이 박수를 쳤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우쭐대는 대장삵이 마냥 귀여울 뿐이었다. 어깨를 움직이던 도훈은 고개를 틀며 감탄했다.

    “와. 이거 정말 대단한데. 영상으로 본 2레벨 던전 사용자 정도는 될 겁니다.”

    연신 감탄 또 감탄했다.

    치료하고 대장삵은 돌아갔다. 그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도훈이 다시 앞장섰는데, 함정을 빠르게 격파해 나갔다.

    ‘뭐 하는 거야? 다 들키겠네.’

    망귀가 도훈에게 몇 번이나 눈치를 줬음에도 도훈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빠르게 함정 던전을 지나갔다.

    “공부 많이 하셨나 보네요!”

    “그냥 감이 좋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방심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하하하.”

    망귀의 걱정과는 다르게 산박은 연신 감탄하기 바빴다. 최소 5일을 투자해서 깨도 두당 떨어지는 건 5~10만 원 내외인 거지 같은 던전을 빠르게 주파할 수 있어 보여서였다. 그가 경험이 없다기보다는 눈앞의 즐거움에 히히덕거리는 것으로 보였다.

    ‘흐흐.’

    그 모습에 도훈 또한 속으로 웃었다. 다쳤을 때는 겁이 절로 났지만 회복되고 나서는 완전히 돌변했다.

    ‘산박을 죽인다.’

    1레벨 초행 던전 사용자임에도 주문이 하나 더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산박을 죽이면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사람을 죽여서 ‘불과 바람의 합격술’을 레벨 업 시스템에게서 얻은 도훈이었다. 좋은 기술을 얻을 수 있다면 더한 짓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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