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70)
  • 6화

    ‘젠장할, 이런 미친 경우가 다 있나.’

    오도훈은 바들바들 떨며 식은땀을 닦아냈다. 일이 이렇게 꼬여버릴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1레벨 던전의 풍운아가 바로 성기사 오도훈이 아닌가?

    이 염병할 성기사는 사제와 신성 법술을 공유하는 게 많았고 오도훈은 재수가 없게도 1레벨부터 사제의 신성 법술을 가지게 되었다. 오직 성기사로서의 아이덴티티는 ‘방패술(기술)’ 하나뿐이었다. 그가 가진 다른 기술은 성전 기도였다. 지능과 지혜를 보정해 주는 사제 기술이었으나 성기사가 지능과 지혜가 높아 봤자였다.

    ‘애초에 낮으니까.’

    신성 법술 중 깊은 겸손을 제외한 다른 하나는 빛의 망치로, 공격 주문 같지만 천만의 말씀! 그저 어두운 던전을 밝혀주고 아군의 정신력을 안정시켜 주는 멘탈 케어형 주문이었다.

    사제였기에 분명 버프형 주문은 필요하다. 인간의 멘탈은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구잡이식으로 결성된 팀에 사제가 있으면? 어느 정도 화합이 이루어진다. 주문으로 최소한의 유대를 전투 중에 강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능과 지혜가 낮아서 사제 대신 성기사를 택했지만 가진 관련 기술은 방패술뿐! 오도훈이 타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그 어떤 팀에도 들어갈 수 없었고, 태산박처럼 팀을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케어하며 실질적인 훈련을 진행해서 불완전한 팀을 한 달 넘게 꾸역꾸역 이어지게 할 끈기도 없었다.

    남은 것은 사악한 존재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건 도훈이 스스로 선택한 악의 길이었다. 그에게 희생된 던전 사용자의 숫자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던전 공략의 시스템 자체가 엉망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머리가 살짝 맛이 간 것처럼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괜찮아요?”

    등을 쓰다듬는 견망귀에게 도훈이 속삭였다.

    “일단 협력해서 던전을 클리어한다. 오히려…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알았다.”

    속닥거리는 그들은 단번에 합의에 이르렀다. 무슨 결정이 나오든 일단 수긍해야 할 정도로 지금 이 상황은 황당했다. ‘개릉 던전’의 베테랑 던전 사용자 오도훈이 초장부터 박살이 났다.

    ‘이건 무조건 몸을 사려서 돌아가야 한다.’

    그가 몸을 추스르는 동안 팀은 약간의 변경이 이루어졌다. 망귀가 선두에 서고, 산박이 그 옆을 지켰다. 도훈은 가장 후방을 맡았고 시은이 중앙을 잡았다.

    “함정형 던전입니다. 뭐든지 쑤셔보고, 파악하고 공략해 나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하루 혹은 3일, 그게 안 된다면 5일 이상을 체류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만큼 많은 수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던전을 한 번 도는 것과 똑같았다. 체류 기간은 상관없었다.

    ‘함정형 던전’은 가장 거지 같은 던전이었다. 현대 사회는 돈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되는 던전은 형편없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반대를 해야 할 오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깨 부상을 당했고, 1레벨 던전 사용자의 수준으로는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었다. 자잘자잘하게 찢긴 면봉 같은 붕대를 상처 깊게 넣어서 단단히 지혈하는 게 최선의 조치였다.

    ‘내가 선두라니.’

    바짝 긴장한 견망귀의 걸음 속도는 걸음마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이시은이 쥐고 있는 횃불은 천장을 확실하게 비추고 있었고, 산박 또한 긴 횃불을 길쭉하게 뻗어 조금이라도 더 멀리 주변을 밝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 후방에 있는 오도훈은 불규칙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사위를 살폈다.

    쿠룩.

    멈칫.

    이상한 소리에 모두가 멈춰 섰다.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차린 건 바짝 긴장해서 땀으로 범벅이 된 견망귀가 아니었다. 0레벨 던전에서 혼자 다니며 어둠 속을 누볐던 태산박이었다.

    “왼쪽 땅 밑! 뒤로! 도훈 씨는 후방 확인을 다시 한번 더!”

    능숙한 명령어가 튀어나왔다. 0레벨 던전 솔로잉으로 산박은 이런 긴급함 속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예!”

    너도나도 뒤로 물러갔다. 동시에 땅이 크게 들썩이며 굵직굵직한 나무뿌리가 튀어나왔다. 땅 위에 있던 작은 꽃이 더듬이처럼 팔랑거렸다.

    “뀌이이이이!”

    뿌리 밑에 있는 거대한 아가리가 쩍 벌려졌다. 끈적끈적한 체액 덩어리가 단번에 투척됐고, 이시은을 노렸다.

    휘릭!

    활을 뽑아 든 이시은이 바로 몸을 굴렸다. 처음 보는 타입은 아니었다.

    “뿌리아가리예요!!”

    정보화 시대에 던전 정보는 비싼 축에 들었지만 저레벨 던전의 정보는 차고 넘쳤다. 산박이 냉큼 말을 이어 받았다.

    “끈적 타입입니다! 접근전은 불가능! 제가 화염 물약을 던지겠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그나마 근접해 있던 산박이 침착하게 물약을 꺼냈다.

    “후우. 후!”

    산박은 깊게 숨을 내뱉고, 다시 한번 강하게 내뱉으며 물약을 던졌다. 정확하게 쩍 벌린 아가리 속에 물약이 들어갔다.

    ‘운이 좋군.’

    산박은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조준점 없는 투척이 잭팟을 터트렸기 때문이었다. 보통이라면 던전 나무를 부수고 말려서 장작을 만든 뒤에 공략하는 게 보통이었다. 1레벨 던전 사용자들의 수준 때문이었다.

    “뀌이이이이!”

    돼지 소리보다 더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화염이 불룩 튀어나왔는데 화력이 제법이었다. 움직임은 빠르지만 땅에 묻혀있는 놈이라서 초반 이동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중요한 공략 포인트였다.

    ‘묵히는 것보다 낫지.’

    산박은 제한된 자원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효과가 가장 최고조에 이를 때 아이템을 사용해야 했다. 그게 산박의 본능이었다.

    “활을 계속 먹여요!”

    그렇게 소리치며 산박은 별빛탄 주문을 뿌리아가리를 향해 쏘아냈다. 거리를 두고 있었고, 화상의 고통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가 기회였다.

    놀랍게도 망귀와 도훈 또한 양옆으로 능숙하게 우회해서 기회를 보다가 대뜸 무기를 휘둘러 뿌리아가리를 후려쳤다. 특히나 도훈은 적이 버둥거리면서 쏟아지는 흙 따위를 방패를 이용해 비스듬하게 막으며 무기를 휘두르는 면모를 보여줬다. 방패술 덕분에 공격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능숙하게 공격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었다.

    별빛탄에 얻어맞고, 시은이 쏘는 화살에 쏘이고, 양쪽에서 무기로 후려치니 뿌리아가리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한번 무너진 상태에서 재기조차 하기 힘드니 뿌리아가리는 그대로 탄내가 풀풀 나는 혓바닥을 길게 땅에 늘어뜨리며 쓰러졌다.

    퍽! 퍽! 푸걱!

    확인 사살 하듯이 망귀가 도끼질하듯 무기를 내려쳐서 뿌리를 잘라냈다. 뿌리아가리가 죽은 것을 확인한 네 명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보다 머리 두 개는 큰 놈이었기 때문에 간담을 서늘케 했다. 어디서든 덩치가 크면 무조건 먼저 먹고 들어가는 법이었다. 그 이점을 화염 물약으로 단번에 무너뜨린 것이 주효했다. 산박과 시은의 공이었다.

    “위쪽부터 천천히!”

    곧바로 시체가 해체되었다. 내부에 있는 수분을 미리 빼놓는 작업을 해야 했다. 던전은 습하고 제한된 공간인 데다가 바람도 잘 불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미리 해둬야지 하루라도 더 빨리, 편하게 나갈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크기도 컸기 때문에 무게를 빼지 않으면 혼자서 들 수가 없었다. 그만큼 뿌리에 수분율이 많은 게 뿌리아가리였다.

    뿌리를 제외하고는 쓸 만한 부산물이 없었다. 주술이나 마법에 쓰이는 거대한 눈알만이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가서 단단히 싸였다. 초월의 힘인 마법 같은 곳에 쓰이는 재료는 이상할 정도로 보존 기간이 길었기에 무식하게 검은 봉지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반면 뿌리아가리의 자른 뿌리는 던전 나무의 나뭇가지 곳곳에 걸쳐서 흙과 접촉하는 걸 막았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이유는 뿌리아가리의 뿌리가 감기의 천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감기에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수요가 대단했고, 값도 상당했다. 물론 그만큼 뿌리아가리만 전문적으로 노리는 공략 팀도 있어서 금값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진이 빠졌기에 자연스럽게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두 분은 상당히 용감하시더군요.”

    산박이 망귀와 도훈을 칭찬했다.

    “별말씀을.”

    “괜히 전열입니까?”

    그들 또한 전투 경험을 쌓은 자들이었다. 인성은 관계없었고, 음흉한 계략도 실력 앞에서는 그 어떤 영향력도 가지지 못했다.

    ‘못 덤벼들면 병신이지.’

    산박이 뿌리아가리에 마녀 이시은의 화염 물약을 성공적으로 넣었을 때부터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부에서 타오르는 화염의 고통! 1레벨 던전 괴물은 결코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산박은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미소 지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이 던전은 이미 깬 것이나 다름없네요. 전열이 이렇게 든든한데, 거기에 도훈 씨는 부상 투혼까지……. 오늘 또 하나 배워 갑니다.”

    도훈이 괜히 뒷머리를 긁으며 쑥스러워했다.

    휴식을 취하고 그들은 다시 움직였다. 그들은 바닥에 가만히 있는 갈색의 촉수를 단번에 찾아내서 곤죽을 만들었다. 산박의 칭찬으로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 망귀의 눈썰미를 피할 ‘바닥촉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닥촉수는 수는 많았지만 가져갈 부산물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얻을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처음 바닥촉수와 조우했을 때와 달리 여유를 되찾자 일행은 그 주변의 땅을 팠다. 묵빛에 윤기가 반지르르 나는 토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반짝묵토’라 불리는 것이었다. 복불복에 운이 적용되는 것이라 많은 바닥촉수를 죽여도 얻기가 요원한 것이었다. 또한 채취를 위해서는 노동력을 좀 투자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4인 공략. 거기에 함정형 던전? 기대 이하의 수익이 손에 쥐어질 것이다. 이는 신생 팀에 있어서 엄청난 위기였다. 힘이 들더라도 수익을 위해서는 반짝묵토를 채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짝묵토는 식물의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물건이었다. 잔뜩 모아 두었다가 작물 하나 값이 확 오르면 그걸 단번에 생산해서 돈을 챙기는 식으로 이용됐다.

    ‘그래도 비쌀 수가 없지.’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일찌감치 국가에서 반짝묵토를 관리하고 있었다. 까라면 까야 하는 게 대한민국이라고 욕부터 박을 수도 있지만 채취해 온 반짝묵토의 30%만 의무적으로 국가에 판매하고 나머지 70%는 민간에 팔 수 있었다.

    ‘그 30%가 크긴 하지만.’

    싼 가격에 풀리는 그놈의 30% 때문에 시장 가격은 값싼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1레벨 던전 공략 팀으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이쪽 한쪽 벽에 놔두고 출발합시다.”

    흙이었기에 무게가 컸다. 자연스럽게 검은 봉지가 아닌 거친 포대에 담겼다. 지퍼로 되어 있었기에 잠그는 것도 쉬웠다.

    “키아아악!”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팀을 적극적으로 노리는 괴물도 존재했다. ‘함정형 던전’의 특성을 역이용하는 기습 괴물들이었다. 이들은 약했지만 기습이라는 이점 때문에 종종 던전 능력자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괴물의 앞발과 뒷발에는 큰 곡선을 그리며 위로 툭 튀어나온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 있었다. 흡사 공룡 랩터의 발톱 같았지만 네 발에 모두 있었기에 더욱 위협적이었다. 괴물은 썩어서 곪아있는 사람의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배는 쩍 갈라져서는 바짝 말라붙어 있었는데, 기괴한 형상의 물결무늬가 마른 생살에 새겨져 있었다.

    ‘발톱파도괴물’.

    흉악하게 묘사되는 것과는 다르게 체구는 초등학생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몸높이가 90cm밖에 되지 않는 짐승이더라도 인간을 능히 죽일 수 있었다. 1레벨 던전 사용자들이 가장 만나기 꺼리는 놈들이었다.

    놈들은 어둠 속에서 천장에 발톱을 박아 넣으며 이동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눈으로는 찾을 수 없었고 발톱을 천장에 천천히 박아 넣기에 불을 지핀 상태에서는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모닥불이 타는 소리는 생각보다 크고 보다 귀에서 가까이 들리기 때문이었다.

    “크르르앙!”

    산박은 단번에 작은 호랑이로 변해 자신을 향해서 뚝 떨어진 발톱파도괴물의 목을 물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을 비틀며 단번에 털어냈다. 놈은 작은 호랑이가 된 산박의 몸부림에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휘청거리기만 하다가 목이 꺾이고 부서져서 그대로 죽어 버렸다.

    “컹!”

    산박은 몸을 옆으로 튼 상태에서 반대편으로 훌쩍 도약했다. 시은을 덮친 놈을 똑같이 덮쳐 목뒤를 문 상태로 목을 이리저리 비틀어 대며 발톱파도괴물의 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괴물은 3초도 안 되는 사이에 그대로 축 늘어졌다. 운동을 하는지 시은은 자신을 덮친 발톱파도괴물을 스스로 밀어내고 단궁을 들어서 지원 사격을 시작했다.

    “이야아아!!”

    그사이에 망귀와 도훈은 둘이서 등을 맞댄 채로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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