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270)

5화

* * *

태산박은 훈련 장소를 바꾸었다.

‘이시은 팀원이 할 수 있는 건 환경 변화. 공원에서 그런 연습을 할 수는 없지.’

마녀가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을 활용하고 적응하기 위함이었다.

블랙 포그는 전황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어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도주하거나 갑자기 적에 의해서 크게 무너졌을 때 사용할 수 있어 보였다. 거의 봉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머드 릭은 그나마 괜찮았다. 달려오는 상대를 넘어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격돌하기 전에 사용할 수 있어서 일회용이나 다름없었다.

‘그 외에는 자극 물약과 화염 물약에 기대야겠지.’

산박은 마녀 이시은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할 팀원은 아니었다. 냉정한 소리로 들렸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오래 함께하고 싶은 게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오든 말든 상관없었다.

‘더 좋은 팀원을 구하게 된다면 내쳐야지.’

그는 1레벨 던전 공략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높은 지혜를 통한 드루이드의 힘으로 확실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2레벨 던전 공략을 개시할 생각이었다.

‘처음이기 때문에 4인으로 도전한다.’

이어서 사제 또한 만났다. 사제의 이름은 오도훈. 늠름한 신체를 지닌 자였다. 보자마자 호감이 갔다.

“적성을 생각 없이 선택했습니다. 사제가 인기직이라길래 아무 생각 없이 사제를 택했었죠.”

왜 지능과 지혜가 낮은 도훈에게 사제 적성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때문에 도훈은 신성 법술의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물론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깊은 겸손(신성 법술).”

황금빛 가루가 도훈의 손에서 흘러나와 땅에 떨어졌다.

“지금은 상처를 입은 아군이 없어서 그냥 땅에 떨어지지만, 상처를 입은 분이 계신다면 그곳으로 황금빛 가루가 향합니다.”

수준은 낮았다. 하지만 출혈을 막는 데 아주 좋은 신성 법술이었다. 던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구시대적인 의료품에 비하면 즉효성이 뛰어났다. 연고조차도 사용할 수 없는 게 던전이었다. 신소재? 불가능했다. 평범한 붕대가 끝이었다. 물론 지식의 발달로 상처 깊이까지 넣을 수 있는 솜 같은 붕대부터 다양한 방식이 존재했다.

“잘 부탁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산박은 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가 방패술(기술)을 지닌 자이기 때문이었다.

‘든든한 전열이다.’

1레벨 던전의 평균 수준을 생각하면 위험도를 확 낮출 수 있었다. 아주 똑 부러지게 생긴 사제였고 몸도 다부졌다. 실로 전사의 육체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산박은 기쁜 마음으로 오도훈과 악수했다. 산박의 손을 도훈은 강하게 움켜쥐었다.

“오늘 훈련하는데 어떻습니까? 같이하겠습니까?”

“예. 첫날인데 어떻게 내빼겠습니까?”

“하하하.”

훈련에서 가장 특출난 영향력을 보여준 것은 사제 오도훈이었다. 그는 지혜와 지능이 낮아서 신성 법술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특출난 육체 센스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산박은 이상함을 느꼈다.

‘뭐가 저렇게 합이 잘 맞아?’

세 사람은 물 흐르듯이 죽이 잘 맞았다.

“천생연분이네요. 이렇게 잘 맞을 수가. 깜짝 놀랐습니다.”

도훈이라는 카드가 들어오자마자 팀의 분위기, 실력 자체가 변했다. 산박이 이를 크게 칭찬하며 박수까지 치자 모두 눈웃음을 지으며 텐션이 높아졌다.

“훈련도 생각보다 결과가 좋으니 회비를 걷어서 회식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1레벨 던전 공략 팀이 이제 전원 모인 것 아닙니까? 이런 날에 회식을 안 할 수야 없죠. 전 찬성입니다.”

망귀가 냉큼 찬성표를 던졌다. 시은은 그간 보여줬던 태도와는 다르게 신중히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여기서도 산박의 지혜가 돋보였다.

“우리 유일한 홍일점인 시은 팀원을 위해서 이분 집 근처에서 회식하고 헤어지죠.”

“그럼 전 찬성요.”

그녀가 단박에 찬성했다.

* * *

삼겹살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점원이 와서 가위로 슥슥 고기를 잘랐다. 소주 없이 맥주만 잔에 담기자 바로 건배가 이어졌다.

“팀 이름부터 짓는 게 좋지 않나요?”

“성씨만 앞으로 해서 태견이오는 어떻습니까?”

견망귀의 황당한 소리에 도훈이 입에 담은 맥주를 겨우 마시고 입을 손으로 가리며 콜록거렸다. 그 반응 덕분에 테이블에서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 팀 된다.’

산박 또한 입가에 미소가 절로 걸렸다. 물론 개개인의 능력치는 허술하지만 팀워크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온갖 잡담을 하고 수다를 떨었다. 팀 이름은 ‘팀 드루이드’가 되었다. 이 만남이 산박 덕분에 이루어진 것을 기념하는 작명이었다.

“1레벨 던전 공략 성공을 기원하며!”

“우호오옷!”

많은 준비를 거쳐 팀원이 총 네 명으로 결정되고 그 후로 한 달 동안 여덟 번의 훈련을 했다.

“내일 우리 팀은 ‘개릉 던전’으로 향합니다. 모두 오늘은 편하게 쉬고 무리하지 마세요. 한 달 넘게 준비한 첫 개시니까요.”

산박의 말에 모두 대답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팀을 해산시켰다. 하나둘, 짐을 챙겼다.

“어?”

견망귀가 허둥거렸다.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산박이 냉큼 다가왔다.

“아, 폰이 없어져서요. 어디에 떨어뜨렸나. 미치겠네, X발.”

절로 욕이 나왔다. 비싼 스마트폰인 탓이었다. 그 욕에 이시은이 툭 내뱉었다.

“공격장님 앞에서 왜 욕을 해요?”

“아! 죄, 죄송합니다.”

산박이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비싼 폰이던데, 같이 찾을까요?”

“아뇨, 아뇨.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못 찾으면 액땜했다고 치죠, 뭐.”

그 말에 산박은 망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자기 집으로 향했다.

망귀는 혼자서 폰을 찾다가 이내 포기하고 일시적으로 알뜰 폰을 구매했다. 폰을 구매하자마자 어디론가로 메시지를 보내고, 이내 알뜰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도훈이?”

―그래. 임마, 폰은 결국 못 찾았냐?

“엉. 못 찾았다. 제기랄, 그게 얼마짜린데. X같네.”

―보안은 철저하게 되는 거지?

“매번 지문으로 인증하고 비밀번호도 패턴이 아냐. 걱정 마. 열릴 일 없으니까. 그래도 메신저는 나가라. 나도 집에 가서 PC 버전으로 메신저 켜서 바로 방 나갈 테니까.”

―오케이. 계획은 그럼 그대로 진행하고?

“당연하지. 한 달을 넘게 기다렸는데 미쳤냐, 그만두게? 그렇게 쫄보냐?”

―새끼가, 쫄보는 뭔 쫄보야. 시끄럽고, 그냥 PC방으로 와라. 한 겜 하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메신저는?”

―PC방에서 깔면 되잖아, 개새끼야.

“욕하지 마, 씨X년아.”

킬킬거리면서 망귀는 서둘러 PC방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대화방에서 나가고 곧바로 게임을 좀 하다가 치킨 호프에서 치킨과 맥주를 즐겼다.

“이번 일은 좀 꼬였다. 그치?”

도훈의 말에 망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같은 날에 지원자가 또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재수가 없으려니. 그래도 다행인 건 여자란 점이지만.”

결코 같은 체급이 될 수 없는 게 남녀였다.

“제대로 된 주문도 못 쓰는 마녀잖아.”

“물약은 조심해야 해.”

“어차피 나눠 받잖아?”

맥주를 마시면서 마검사 견망귀와 사제 오도훈은 음흉한 음모를 꾸몄다.

* * *

산박은 잠에서 깨어났다.

“끄으응.”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일찍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였다. 산박은 켜져 있는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서둘러 짐을 챙겨 밖을 나섰다.

새벽 일찍 나온 산박은 다른 던전 사용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대한민국의 영토 중에 ‘판타지 쇼크’를 가장 직격타로 맞은 곳이 서울이었다. 그 외에 지방에도 던전은 있었지만 너무 고레벨 던전이거나 그렇지 않은 던전뿐이었다.

‘거리도 멀고.’

던전 경제는 매년 성장하고 있었고 던전 아이템의 국제 거래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다. 자국 소비가 많은 한국은 수출국은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고가품의 경우에는 미국의 달러와 많이 교환되는 편이었다.

산박은 고속버스 안에서 조용히 마음을 다졌다.

“오셨습니까!”

버스 터미널에서 똑같이 도시락을 사고 인력거를 타고 1레벨 던전인 ‘개릉 던전’에 도착한 산박을 본 견망귀가 냉큼 달려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산박은 웃으며 인사를 받아쳤다.

“전열에 설 수 있는 분 구합니다!”

곳곳에서는 오프라인으로도 팀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저렇게 외치면서도 온라인 구인 또한 실시간으로 열어놓고 있을 터였다. 팀에 구멍이 난 경우에 저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나 ‘개릉 던전’은 인기 있는 1레벨 던전이었다. 다른 1레벨 던전과 다르게 적의 숫자가 적게 나온다는 믿음이 던전 사용자들에게 퍼져 있어서였다. 자연스럽게 인적 자원의 유동이 빠르게 일어날 수 있었다.

“실례합니다! 바람 매입 트럭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최고가로 매입합니다!”

전단지를 나눠 주거나 가벼운 호객 행위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수 능력을 지닌 던전 사용자에게 적극적 호객을 하기에는 그들은 일반인들이었다.

산박은 전단지를 확인했다. 품목을 세 개로 굵직굵직하게 나누어서 글자를 팍팍 크게 해놓고 중요한 매입 품목은 확실하게 아래에 적어 놓았다. 뒷면도 마찬가지였다.

전단지를 구경하는 사이에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뚝뚝 떨어져서 도착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산박이 앞장섰다. 필요한 처치를 받고 지하철 밑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전이되었다.

정신을 차린 4인 파티는 장비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어두컴컴한 던전에서 횃불을 켜 무기나 방패에 묶거나 손에 쥐었다. 혼자였다면 횃불을 켜는 미친 짓은 안 했겠지만 네 명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적으로 오인해서 같은 팀을 공격할 수 있었고, 그건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등을 맞댈 수 없는 아군만큼 팀에 도움이 안 되는 게 없었다.

“저는 때에 따라서 앞과 뒤를 오가겠습니다. 선두는 방패를 들고 계신 도훈 씨가 맡아 주시고, 그 옆은 망귀 씨가 맡아 주세요.”

“예.”

“후방에서도 적이 튀어나올 수 있기에 제가 가장 뒤에 설게요. 시은 씨는 중간에 서세요.”

“네에.”

포지션을 다시 한번 정했다. 그다음에는 이시은이 지닌 물약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각각 두 개씩밖에 들고 있지 않았다.

“후방에서 물약을 던질 수 있는 시은 씨와 제가 한 개씩 갖겠습니다.”

그 말에 견망귀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물약 던지는 게 뭐가 어렵다고요. 한 걸음 물러나면서 슥 던지면 되는데. 부서지기 쉬운 유리병으로 되어 있고요.”

산박이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거리 전투를 행하며 수류탄을 던지는 군인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은 실로 바보 같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근접전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무슨 이상한 소릴 하고 있어요?”

산박의 말에 망귀의 눈이 도훈에게로 향했지만 도훈은 가만히 있었다. 이에 망귀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살짝 웃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법 위력적인 물약이라.”

“그렇긴 하죠.”

이시은이 냉큼 그 칭찬을 받아들였다.

“그럼 이견은 없는 것으로.”

“예.”

포션을 분배하고 곧바로 던전 탐험이 이루어졌다. 발광하는 수풀, 벽과 동화되어 있는 나무. 평범해 보였지만, 그건 한순간에 일어났다.

촤악!

뭔가가 바닥에서 휘둘러졌고 단번에 전방을 걷고 있던 사제, 오도훈의 오른발을 낚아챘다. 갑작스러운 운동성에 덮쳐진 오도훈은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이를 악물고 위로 솟구치는 몸을 감당하기 바빴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1레벨 던전을 오래 다녔던 견망귀였다. 노도와도 같이 앞발을 냉큼 내디디며 검을 투척했고, 정확하게 촉수가 베였다. 녹색 체액이 허공에 쏟아졌다.

“끄악!”

땅에 쓰러진 오도훈이 그제야 비명을 내질렀다. 너도나도 달려갔지만 산박이 외쳤다.

“망귀 씨는 전방! 시은 씨는 후방!”

그렇게 소리친 산박은 서둘러 도훈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끔찍한 광경에 표정을 구겼다. 방패의 끝부분이 어깨에 부딪혔는데 가죽 방어구를 뚫고 박혀 있었다. 어깨도 조금 위치가 이상한 것이 탈골이 된 듯했다.

“이, 이거 방패를 뽑아야 할 것 같은데.”

“으흐, 으으으윽! 씨이이……!”

조금만 건드렸음에도 도훈이 벌벌 떨며 죽을상을 지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른 이들이 거리를 좁혀 왔다.

“깊은 겸손을 쓰세요!”

산박의 말에도 도훈은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그를 엄습하고 있었다.

어떤 유형의 던전인지 몰랐기에 한 방에 당했다. 그리고 보통은 타박상에 그칠 것이 재수 없게도 어깨를 크게 다쳤다.

결국 산박이 대장삵을 소환해서 어깨를 조금 치료하며 방패를 뽑아냈다. 피가 왈칵, 왈칵 쏟아져 내려왔다.

“으그그극.”

이빨이 부서질 것 같은 소리가 도훈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이내 깊은 겸손 주문을 사용해서 자신의 체력을 회복시켰다. 가진 모든 힘과 정신력을 쏟아부어서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이시은이 손수건을 꺼내 닦아 주었다.

“괜찮으세요? 제가 닦아 드릴게요.”

“고, 고맙습니다.”

‘함정형 던전’에 들어선 이들은 시작부터 고난에 부딪혔다. 물약의 배분부터 발을 삐끗하면서 정신력이 후위에 간 오도훈과 견망귀는 전방 주시를 게을리했고 그 대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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