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70)

4화

<1레벨 던전>

드루이드라는 적성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기에 지원자는 좀처럼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태산박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0레벨 던전을 공략하고 3~5만 원을 벌면서 기술과 주문을 숙련했다.

한 주가 흐르고 나서야 한 명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마검사입니다. 1레벨 던전 공략을 하고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드루이드입니다. 피차 특수 적성이기도 하니 일단 만나서 서로 미리 전력을 확인하는 게 어떻습니까?]

산박의 말은 실로 타당했다. 실제로 막 시작하는 공략 팀들은 훈련을 통해서 서로의 전력과 실력을 확인하고 연습한 이후에 던전 공략을 시작한다. 죽으면 끝이기 때문이다.

[아……. 예. 알겠습니다.]

금요일에 만남을 잡았다. ‘판타지 쇼크’ 이후로 대한민국의 인구는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수천만의 인구 중 살아남은 인구는 오백만 명도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다른 곳보다 특히 더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이 말 그대로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토 대비 희생자 수가 많았지 땅이 넓은 곳의 사망자는 더 대단했다. 지금에 와서는 전 세계 인구는 35억에 불과했다. 80억 인구가 한순간에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일본은 동과 서로 분단되었고 중국은 일곱 개의 국가로 나누어졌다. 그 외에 수많은 나라가 만들어진 상태였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서 대한민국의 노동력은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산박은 세종 공원이 있는 곳 인근의 버스 터미널에서 마검사 견망귀(甄網晷)를 기다렸다. 그는 공주시의 원룸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었고, 본가는 경상남도 있는 창녕이었다.

“혹시 태산박 씨 되십니까?”

“예. 견망귀 씨?”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 보였다. 산박 또한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악수를 했다. 첫 만남은 으레 분위기가 좋은 법이었다.

“공원에서 나머지 이야기를 나누죠. 커피 드십니까?”

“아, 감사합니다.”

공격장으로 활동한다면 자연스럽게 팀을 이끌어 가야 했다. 소소한 곳에 돈을 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돈으로 위엄은 살 수 없지만 상대에게 작은 빚 하나를 만드는 건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싼 아이스아메리카노에 시럽을 잔뜩 넣은 산박과는 다르게 망귀는 아메리카노에 다른 첨가물 하나 없이 마셨다.

공원은 한산했다. 금요일에는 누구나 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늙은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국가가 휘청거리며 연금 지급이 박살 났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생존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늙은이를 위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카드는 산박이 먼저 깠다. 그가 공격장이기 때문이었다. 산박이 자신의 패를 어느 정도로 까느냐에 따라서 망귀도 자신의 패를 보일 것이었다.

“이게 별빛탄입니다.”

“아, 예.”

시작은 가장 하찮은 주문이었다. 망귀는 실망한 기색이 큰 모습이었지만 이어지는 산박의 동물 변신에는 표정이 싹 달라졌다. 길쭉하고 낮아서 강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93.6kg짜리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예? 레벨 1이 아닌가요?”

그 말에 산박이 웃었다. 자신을 특별하게 보는 망귀의 표정에 쾌감이 기똥차게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대장삵, 나와.”

산박이 정신을 집중하고 조금 허세를 부리면서 말하자 캡틴 레오파드 캣이 물살을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냈다.

“와!”

호랑이 변신 때도 감탄 소리를 내지 않은 망귀가 감탄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산박의 콧대가 절로 높아졌다. 기분 좋은 미소도 지었다.

“호랑이로 변신하면 전열, 인간 상태 때는 후열에 서고 대장삵을 통해서 치료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당장 훈련하는 게 아니었기에 소개는 이 정도 선에서 끝을 냈다.

“저는 조금 특수한 기술과 주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귀는 산박이 가르쳐 주지 않은 기술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걸 이해해야지만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산박의 능력이 생각보다 출중한 탓에 그의 표정 속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정령 모방술이라는 기술을 통해서 주문에 스피릿(Spirit) 속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주문 강화형 기술입니까?”

주문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드루이드였기에 산박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질문에 망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을 펼쳤다. 오색으로 빛나는 오라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름다웠지만 혼란스러웠다.

“제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 말대로입니다. 스피릿 속성을 부여하면 효과가 무작위로 강화되고 변형됩니다. 그래서 확정적인 효과를 주기가 힘듭니다. 피해를 줘야 하는데 강화를 해주고, 한 명을 노려야 하는데 넓은 범위를 공격하게 되는 것 같은 겁니다.”

가장 끔찍한 기술이었다. 스스로가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화가 된다고 해도 변형된다는 것이 무시무시한 변수였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던전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변수였다.

‘정령 모방술 기술 레벨이 높아진다면 큰 효과를 주겠지만.’

1레벨 수준에서는 안 쓰는 게 좋았다.

“다른 기술은 가벼운 마법 방식이라는 기술입니다. 적은 마력으로 빠르게 주문을 완성하는 마법 체계입니다. 집중형이기에 산박 공격장님이 가지고 있는 주문 방식과 똑같아 보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여 주지만 위력이 약해지는 마법 체계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기술 이름만 들어도 척척이었다. 매우 직관적인 기술명 덕분이었다. 망귀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정령 모방술은 제가 온(on), 오프(off) 가능하지만 가벼운 마법 방식은 그게 안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주문 피해력이 낮아진다는 소리였다.

‘거기에 적성은 마검사.’

특성으로 인한 지혜 혹은 지능 획득이 적다. 산박은 그의 지능 능력치를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의 역린일 것이 분명했다. 산박은 그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 아니었다.

“주문은 어떤 게 있습니까?”

“포워드 쇼크(Forward shock)와 애쉬 파이어(Ash fire)가 있습니다. 모두 공격 주문입니다.”

“혹시 여기서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허공에라도요.”

“예.”

주문 시간은 매우 짧았다. 3초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완성되었다.

“포워드 쇼크.”

전방을 향한 광범위한 충격파. 하지만 그냥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위력이 약했다.

“애쉬 파이어.”

실망했던 산박의 표정이 확 살아났다. 실로 매캐한 검은 연기를 맡자마자 콜록하고 기침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재 가루를 연기처럼 뿌리는 엄지손가락만 한 불덩이가 부채꼴로 뿌려졌다. 개수는 세 개에 불과했지만 약 3m까지 뿌려지는 데다 뿜어지는 연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으로 보였다.

‘피해 주문이라기보다는 연막, 혼란 유도 같은 주문이네.’

그를 팀에 기용해서 쓴다면 애쉬 파이어가 주력 주문이 될 터였다.

“일단은 팀원이 모두 모이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금요일에 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예? 저, 정말입니까? 저는 얼마든지 시간이 됩니다. 0레벨 던전을 돌고 있어서 체력도 남아있고, 또…….”

그가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마음을 산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마검사, 누가 찾겠어.’

공격 마법인데 쓸모가 없었다. 포워드 쇼크는 그저 바람 생성기에 지나지 않았고 애쉬 파이어는 피해 주문이라고 불릴 수가 없었다. 딱 봐도 지능 능력치가 부족해 보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가벼운 마법 방식(기술)이 더해져서 형편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드루이드는 후열에 속했다. 당장 최고 능력치만 해도 지혜인 것이 산박이었다. 이런 상황에 마땅찮으나마 겨우 찾은 마검사를 내친다? 어리석다. 그와 계속 인연을 쌓으며 일단은 킵해두고 다른 곳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게 좋았다. 그 나름대로 다른 팀으로 갈아탈 수도 있지만 확신은 주지 않았어도 계속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조금 더 낮아질 터였다.

* * *

산박은 0레벨 던전을 돌고 매주 금요일마다 견망귀와 만남을 가졌다. 남자 둘이 모여서 하는 거라곤 서로 합을 맞추는 일뿐이었다.

“1번!”

산박이 소리를 지르며 단번에 동물로 변신해 우측으로 돌았다. 망귀가 마법을 사용해서 전방에 뿌렸다. 그곳으로 산박이 득달같이 뛰어들어 숨을 참고 조금 움직이다가 빠져나왔다. 숨을 참은 이유는 짐승으로 변했을 때에는 애쉬 파이어가 내는 재 가루와 재 연기가 매우 독해서였다.

1번 합격술은 연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호랑이가 단번에 적의 목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물어서 잡아당겨 쓰러지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다.

“2번!”

2번 합격술은 두 사람 모두 전열에서 싸우는 것이었다. 견망귀 또한 검사.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중단과 상단을 노리며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움직여 허공을 공격했다. 그사이에 산박은 작은 호랑이가 되어 우측에서 상대의 다리를 무는 척하며 아가리를 땅에 들이댔다.

“하아압!”

망귀가 능숙하게 달려들면서 쓰러진 상대의 목을 내려치듯이 롱 소드로 땅을 내려쳤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호랑이 변신이 정말 강한 것 같습니다. 평범한 1레벨 던전이라면 저희 두 명이서도 능히 가능한 것 아닙니까?”

산박이 칭찬하자 망귀도 냉큼 산박을 비행기 태워줬다.

“그래도 3인, 4인으로 가는 이유가 다 있으니까요. 천천히 기다려 봅시다.”

어차피 불러주는 이가 없었으므로 망귀 또한 어렵지 않게 그 의견에 수긍했다. 진짜로 1레벨 던전 공략을 주춧돌부터 쌓아 올리는 기분마저 들어서 그는 성취감과 열정이 바짝 올라가 있었다.

반면 산박은 그와 훈련을 함께하면서 그의 단점을 확실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검사인데도 체력이 낮다.’

자신과 비슷한 유형이었다. 그렇기에 검사로 갈 수 없어 마검사를 선택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능이 높지 않은데도 마법사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산박과 달랐다.

‘차라리 검사나 전사를 하지.’

산박의 경우에는 지혜가 높았기에 사제나 드루이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견망귀는 모든 능력치가 어중간했을 터였다. 지능이 높지 않기에 마법사로서는 애송이고, 체력이 낮아서 전사로서의 가치도 낮다.

물론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지구력은 낮지만 근력은 그래도 평균 이상이다. 나쁘지 않다.’

단기전에서는 확실하게 좋았다. 그 이상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스트라이커 혹은 서브 공격수로 써먹을 수 있었다. 누구나 기피하는 특수 적성인 산박에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팀원이었다.

망귀와 함께 팀 연습을 한 지 2주 뒤에 연락이 한꺼번에 왔다.

[적성은 마녀입니다. 아직 자리 있나요?]

[사제 오도훈이라고 합니다. 공격장님 되십니까?]

산박은 시간 차를 두고 두 사람을 모두 보기로 했다. 두 명 모두 후열이었지만 모두 반편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무슨 적성인지도 모를 드루이드 공격장에게 연락을 해 왔다. 1레벨 공격대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오우야.’

마녀는 세종시에 살고 있었기에 곧바로 만남이 성사되었다. 그녀는 약간 보랏빛이 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로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고 있었다.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허벅지가 상당했다.

1레벨 마녀가 된 만큼 그녀 또한 홀로 0레벨 던전을 공략한 자였다. 2인으로 다녔을 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산박에게 홀로 연락해 오지 않았을 터였다. 여자 혼자 0레벨 던전을 공략하자면 자연히 어느 정도 신체를 단련할 수밖에 없었다. 육체적인 매력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 매력 능력치가 분명 높아 보였다.

“마녀 이시은 씨 맞습니까?”

“어머. 공격대 오빵? 생각보다 건장한데.”

목소리에서 콧소리가 뚝뚝 묻어 나왔다. 0레벨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 만든 몸을 보고 시은이 산박의 전신을 훑었다.

“바로 실력 검증을 해도 되겠습니까?”

“뭐가 그렇게 급해용? 일단 커피 한잔 같이해용.”

용용거리는 마녀의 말에 산박은 헛기침을 하고 제법 진지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산박은 인내심을 가지고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정말 어려 보이는데 몇 짤이에요?”

“스물한 살입니다.”

“어머, 그럼 최소 열여섯 살 때 교육소로 들어갔다는 소리? 난 스물세 살.”

“들어간 건 열두 살 때입니다. 그리고 은근슬쩍 반말은 좀.”

“어머어머! 정말 대견하시다앙!”

짝짝짝!

산박은 커피를 최대한 빨리 들이켰다. 얼음까지 남김없이 오도독 씹었다. 매력적인 여성이었기에 망정이지 너무 가벼운 언행을 일삼고 있어서 썩 불편했다. 그 기색을 느꼈는지 이시은의 콧소리가 점점 줄어들어 가더니 사라졌다.

“다 드셨죠? 가시죠.”

“예…….”

냉랭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시은이 졸졸 산박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연금술을 통해서 두 가지의 물약을 만들 수 있었다. 주문도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검은 안개를 뿌리고 땅을 진흙으로 만드는 게 전부였다. 블랙 포그(Black fog, 주문), 머드 릭(Mud lick, 주문). 썩 좋아 보이는 주문은 아니었다. 환경을 조정하는 것에 불과했고 그 범위도 좁았다.

‘하지만…….’

자극 물약, 상대의 피부 자극력을 극대화시켜서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드는 흉악한 독극물과 화염 물약이라 이름 지어진 화염병 수준의 화력을 보여주는 공격 물약을 쓸 수 있었다.

‘못 먹어도 고다.’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물약은 몇 개 들고 갈 수 있습니까?”

현대 화기조차도 던전에 들어가면 먼지로 변한다. 산박은 이런 물약 또한 제약이 있을 거라 여겼다.

“1레벨 던전은 안 가봐서 모르지만 0레벨 던전에는 한 개씩밖에 못 들고 가요.”

“혹시 모르니 세 개씩 챙겨 와요.”

“던전 들어가서 나눠줄 거예요.”

어디서 뒤통수를 몇 번 맞았는지 이시은이 칼같이 대꾸했다. 거기에 타협은 없어 보였는데, 산박은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여자가 시은 대원 혼자인데, 괜찮죠?”

“예? 여자가 저뿐이에요?”

“예에…….”

그 말에 시은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이 오물거리는데 산박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치고 들어갔다.

“일단 다음 주 금요일에 팀 훈련이 있으니 몇 번 경험해 보시고 판단하시죠.”

산박은 바로 빤스런을 치며 그녀의 결정을 뒤로 미루게 만들었다.

“네. 뭐, 그렇게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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