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70)

3화

다양한 색상을 가지고 있는 구체를 바라보자 그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흘러들어 왔다.

전사는 근력과 체력이 우월한 든든한 방패다.

레인저는 다재다능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복잡한 던전에서 어떤 식으로든 활약할 수 있다.

사제는 다양한 신 중 단 하나의 신을 섬기는 신도이며 믿는 신에 따라서 다양한 능력을 내보일 수 있었다. 마법사가 지능이 높아야 한다면 사제는 지혜가 뛰어나야 했다. 배우기보다는 깨닫는 것이 그들이었다.

드루이드는 ‘특수한’ 자들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들은 대자연의 방식을 좋아하며 몇몇 드루이드들은 영혼과 불멸을 좇기도 한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자연의 힘을 휘두른다. 특히나 지혜가 높아야 하는 적성이다.

용 기사는 ‘희귀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직업이다. 그들에게는 신체적 능력보다는 뛰어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어떤 존재감, 특출난 지도력과 언변, 육체 그 자체에 새겨진 매력이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직업이며, 용과 함께 성장한다.

벼락의 마법사는 ‘특별한’ 존재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매우 높은 의지력으로 벼락을 다루는 이 마법사는 다른 원소와 다른 종류의 마법은 일절 사용하지 못하는 벼락의 화신이다. 다른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지능보다는 지혜가 높아야 한다.

마검사는 ‘몇 없는’ 이들에게 허락된 직업이다. 평범한 근력, 민첩, 다소 낮은 체력과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갖춘 이들만 할 수 있으며 백병전과 마법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내보일 수 있다.

‘쉽게 선택할 수 없네.’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은 용 기사였다. 전사, 레인저, 사제는 시작부터 빼버렸다. 그는 특별해지고 싶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태산박의 존재를 특정합니다. 능력치를 수치화하고, 이를 불러옵니다.]

적성 직업이 조금 뒤로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바다색의 창이 떴다.

[능력치]

초기 평균 능력치 : 5.6(하위 80%)

근력(Strength) : 5

민첩(Agility) : 6

체력(Stamina) : 3

지능(Intelligence) : 4

지혜(Wisdom) : 10

매력(Charisma) : 6

‘뭐야, 기분 나쁘게.’

태산박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하위 20%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열 명 중에 8등 하는 놈보다 낮은 놈이라는 뜻이었다. 저걸 왜 보여 주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카르마의 선택이 당신에게 내려왔습니다. 능력치를 고려하여 본인에게 맞는 적성을 획득하십시오.]

능력 창이 왼쪽으로 움직였고 조금 멀어졌던 직업을 결정하는 구체들이 앞으로 다가왔다. 방금 산박이 느낌으로 클래스를 정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수치화된 능력치를 토대로 직업을 고민할 차례였다.

‘힘으로 싸우는 건 버린다.’

0레벨 던전 사용자가 되기 위해 5년을 교육받으면서 상위권에 랭크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중간 밑에서 맴돌았던 것이 산박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걸 다시 한번 수치로 확인한 것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용 기사와 마검사가 제외되었다.

‘평균 5.6이 하위 20%면 상위 10%는 못해도 평균이 8 혹은 9 이상이다.’

대부분의 능력치가 8~9 혹은 10일 수도 있었다. 근력이 두 배가 차이 나는 상황에서 굳이 근접 적성을 고른다?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남은 건 드루이드와 벼락의 마법사.’

사제도 뛰어나지만, 무력이 없는 사제는 반드시 뒷배를 가져야 했다. 산박의 꿈을 생각하면 할 수 없었다.

‘벼락의 마법사는 카운터당하기 쉽다.’

온갖 것들이 튀어나오는 던전에서 번개가 안 통하는 상대를 만난다면? 입만 쪽쪽 빨면서 기다려야 했다. 거기에 후방 포지션이다. 자연스럽게 산박의 눈이 나뭇잎의 연녹색과 나무의 갈색으로 가득 찬 구체를 바라보았다.

‘드루이드.’

무슨 적성인지는 잘 몰랐다. 망해버린 세상이다. 어느 정도 기본적인 지식은 교육을 받으면서 쌓았지만 드루이드라는 건 생소했다.

‘도박하기 싫으면 마검사도 좋다.’

다른 사람에게는 마법사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능력치에서 차이를 보일 것이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고민할수록 선택할 수 없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산박은 그대로 드루이드를 선택했다. 자신의 능력치로는 약간 마법사 같은 것으로 보이는 드루이드가 가장 나아 보였다.

파아아앗!

구체에 손을 대자 구체가 산박의 손을 타고 흐르며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드루이드 적성을 선택하였습니다.]

[특성 자연주의, 다신교, 학자, 균형자를 획득합니다. 이것은 절대 불변의 특성입니다. 반드시 암기하고 주의하십시오. 카르마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산박은 특성 창을 불러왔다.

[특성]

1. 자연주의 :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싫어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좋아합니다. 과격한 행동을 싫어합니다. 원만한 해결을 좋아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도 3번은 권해야 합니다.(지혜 +1)

2. 다신교 : 다양한 종교를 인정합니다. 모든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요소라도 문화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지혜 +1)

3. 학자 : 대부분의 학문을 배우기가 쉽습니다.(지능 +1)

4. 균형자 : 모든 자연에 어울리는 자입니다. 태어나면서 부족한 것을 채웁니다.(5 미만인 능력치를 5로 고정합니다. 가장 먼저 적용되는 특성입니다.)

[능력치]

근력(Strength) : 5

민첩(Agility) : 6

체력(Stamina) : 5

지능(Intelligence) : 6

지혜(Wisdom) : 12

매력(Charisma) : 6

추가 능력치 : 0

변경된 것을 확인한 산박은 절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그럴듯해 보였다.

[특성을 부여받았고, 이를 확인하였습니다. 기본 기술과 주문을 획득합니다.]

[영혼 자극(기술)을 획득했습니다.]

[자연 대화(기술)를 획득했습니다.]

[동물 변신(주문)을 획득했습니다.]

[별빛탄(주문)을 획득했습니다.]

두 가지의 기술과 두 가지의 주문이 산박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한 명의 드루이드가 10년을 공부하고 얻을 수 있는 기본 지식의 관통이었다.

또한 산박은 뭔가가 깨어지면서 생기는 청량함을 느꼈다. 산박은 금방이라도 세계를, 이 대자연을, 그 무언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깨달음에서 오는 지식의 쾌락은 무언가에 짓눌렸고, 짓밟혔다.

“아!”

산박은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높은 지혜가 드루이드 적성의 기준치를 뛰어넘어 특별한 주문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이것은 업(業)의 현현이며 매우 심각한 현상을 초래할 수 있기에 카르마가 인정한 법칙으로 하향 조정됩니다. 대장삵(Captain Leopard cat) 소환(주문)을 획득했습니다.]

정신을 차린 산박은 항의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모두 카르마의 의지입니다. 터득한 기본 기술 두 개와 주문 두 개를 사용해 보십시오.]

산박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주력이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고, 그의 영혼을 자극했다.

눈을 뜬 그는 그 어떤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주변이 살짝 밝게 느껴졌다. 눈에서 광채가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산박은 주문의 위력을 증가시키고 일시적이지만 수준 낮은 원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원소 마법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지금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그극.

백색 공간에서 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박은 그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고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나무가 원하는 바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무는 타들어 가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자연 대화라는 기술명과는 다르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산박의 수준이 낮았다. 하지만 높은 지혜를 지닌 산박은 나무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었다. 벌레가 뜯어 먹는 나뭇잎에서 느껴지는 뜯어 먹히는 감각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쓸모없는 거긴 하지.’

그는 그다음 주문으로 넘어갔다.

동물 변신은 자신의 기본 체중을 기반으로 다양한 동물로 변할 수 있는 주문이었다. 코끼리로 변해도 기본 체중을 뛰어넘는 체구는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산박은 달랐다. 그의 체중은 78kg이었지만 높은 지혜 덕분에 그것보다 많은 93.6kg의 동물로 변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높은 지혜 능력치를 가지게 된다면 진짜 코끼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당장은 호랑이지.’

체급이 크게 차이가 나는 호랑이의 체중은 90kg~310kg까지 다양하다. 동시에 한국 사람이라면 일단 호랑이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맹수였다.

드루이드는 오직 정신 집중을 통해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그 외에 효율을 높이기 위해 영창을 하거나 수인을 맺고 싶다면 그런 기술을 얻어야 했다.

쏴아아악!

거칠지만 윤기가 있는 털이 삐져나오고 키가 살짝 작아졌으며 몸이 길어졌다. 꼬리가 자연스럽게 살랑 흔들렸다. 높이가 80cm쯤 되는 작은 호랑이가 되었다. 고개를 돌려보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다가 한 번 도약까지 해본 산박은 자연스럽게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엄청난데.’

날아갈 것 같은 활력감과 힘이 느껴졌다. 인간의 근섬유와 호랑이의 근섬유 차이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근력의 힘이었다.

별빛탄은 손쉬웠다. 손을 펴고 주력을 모으며 별빛으로 변환시켜 응축 발사하면 되었다. 속력은 제법 빨랐다. 하지만 사거리는 50m도 안 되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위력이 크게 감소하는 게 별빛탄이었다.

‘기본 주문이니까.’

별빛탄의 유효 사거리는 10m가 고작이었다.

대장삵 소환은 기본 주문이 아녔으므로 테스트해 보기도 전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드루이드의 기본서가 지급됩니다.]

한 손으로 잡기도 힘든 무식한 책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걸 양손으로 잡자마자 산박은 눈을 떴다. 손에는 드루이드의 기본서가 그대로 있었다. 세로 길이가 30cm가 넘고 두께도 15cm는 되어 보였다. 무식하리만큼 장난이 없는 책이었다.

책을 펼친 산박은 몇 페이지도 못 가서 바로 덮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이미 있는 게 들어가 있을 뿐임을 알게 되어서였다.

‘드디어.’

0레벨 던전 사용자로 활동하며 0레벨 던전만 1년 하고 반을 공략했다. 남들은 다 금방금방 되는 걸 자신은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산박은 알 수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은 뒤로 사라졌다. 앞에 있는 1레벨 드루이드라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대장삵 소환.’

주력이 터져 나가며 허공에 뿌려졌다. 나선이 그려지고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며 물소리가 났다. 아니, 실제로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산박은 서둘러 이불을 치웠다. 하지만 사방으로 튄 물은 이불에 닿기 전에 다시 허공으로 모여들었다.

물이 모이면서 반짝 빛이 나는 외뿔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만들어졌다. 밝은 바다색의 뿔 아래로 물이 출렁거리며 삵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새하얀 털을 지닌 소동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고양이 눈에는 멋진 카리스마가 담겨 있었다. 괜히 대장삵이 아니었다.

“반갑다, 드루이드.”

상남자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물 같아 보이는데, 정령인가?”

“영물이다.”

캡틴 레오파드 캣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적은 없군. 왜 날 부른 거지?”

“첫 소환이라서 실험 삼아 불렀다. 일단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려 줬으면 하는데.”

산박의 말에 대장삵은 맥 빠진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딱히 산박에게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그가 소모한 주력 때문이었다.

“나는 물의 영물이다. 드루이드인 네가 나에게 준 주력만큼 물 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

“물 마법의 특징은?”

“회복 마법에 특히나 효율이 높고, 웬만한 마법보다 주력의 소모가 적다.”

“싸움은 좀 할 줄 알고?”

“목뒤를 물어뜯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

대장삵이 3cm나 되는 송곳니를 보여 주었다. 찍히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터였다.

“돌아가 봐도 좋아.”

산박은 대장삵을 돌려보냈다. 그는 물이 되어서 단번에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바닥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있을 뿐이었다.

‘나쁘지 않다.’

적의 뒤를 잡을 정도로 날렵하고 다양한 물 마법을 쓸 수 있었다. 적을 교란하기도 좋았다. 물을 얼굴에 맞으면 숨이 확 막혀서 어푸푸거리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주력이지.’

산박은 기본 주문을 다섯 번 정도 쓸 주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장삵은 당장 뛰어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난 산박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곧바로 ‘던전 공략 어플’에 접속했다. 가장 많은 던전 사용자들이 이용하는 어플이었다.

1레벨 던전 카테고리. 공격대 모집 카테고리.

‘0레벨 던전은 교육을 받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확보했기에 혼자서 공략했지만 1레벨 던전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2~3인이 팀을 짜서 공략을 하는 게 1레벨 던전이었다. 물론 혼자서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산박은 아니었다. 그는 드루이드라 전후방에서 활약할 수 있지만 1레벨 던전에 입장해 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었다.

[드루이드입니다. 세종에 살고 있고 서울 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마법사를 찾고 있어서.]

산박은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미 점찍어둔 직종이 아니면 받아주지 않았다. 누구나 아는 적성은 누구나 알 만큼 효과적이었기에 다른 적성은 기피하는 경향이 매우 심했다. 괜히 어설픈 사람을 받았다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이기 때문이었다.

‘젠장할. 이거 그냥 내가 공격장이 되어야겠다.’

던전 공략 어플에서는 결제를 해서 캐시를 얻고 이를 통해 방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게 싫으면 다른 방을 돌아다니며 들어갈 곳을 찾아야 했는데, 드루이드라는 생소한 적성을 받아줄 곳은 없었다. 안 그래도 2인, 3인으로 운용되고 많아도 4인인 데다 4인도 거의 지인끼리 가는 종류의 것이라 이런 곳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개릉 던전 공략하실 분 구합니다. 3인/초행/드루이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