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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270)

2화

갈색늑대 한 마리를 확실하게 죽이고 도망친 산박을 던전 몬스터들이 바짝 날이 선 채로 추적했다.

킁킁, 컹컹컹!

동굴 형태의 통로였기 때문에 짐승의 후각과 청각으로 산박을 쫓는 일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웠다. 또한 도망치는 산박이 소란스럽기도 소란스러웠다. 단번에 던전 전체로 소란이 퍼져 나갔다.

강렬한 피 냄새에 이끌린 갈색늑대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산박은 최대한 피를 닦았지만 피는 그렇게 쉽게 닦아낼 수 없었다. 동굴의 정체된 공기 때문에 특히나 냄새가 오래 유지되었다.

“켕!”

누런빛을 내는 열매가 달린 수풀을 지나던 갈색늑대가 산박이 던진 슬링에 맞고 그대로 픽 쓰러졌다. 철구에 머리가 정확하게 찍혔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뇌진탕이 왔고, 갈색늑대는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발이 바들바들 떨렸다. 뇌신경이 근육 조직을 제대로 컨트롤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였다.

“끼이이잉…….”

사실상 전투 불능에 가까웠다. 그런 갈색늑대를 다른 갈색늑대 세 마리가 빠르게 지나치고, 조금 뒤에 고블린 또한 껑충 뛰며 지나갔다.

타다닥!

고블린은 매우 민첩했다. 또한 굉장히 분노해 있었다. 그 기세가 실로 흉포한 야생 동물 같았다. 난장판을 만드는 광인의 광기가 뭇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듯이 고블린 전사가 지닌 호전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화인이라 자칭하는 자들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고블린의 손에는 나무 몽둥이와 나무 방패가 쥐어져 있었고, 방어구로는 가죽 방어구를 두르고 있었다. 다른 투척 도구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방패 때문에 쓸 일이 적기 때문으로 보였다.

달리는 모습을 통해 고블린의 성질이 매우 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던전에 서식하는 나무와 수풀에는 작은 빛이 나는 열매가 달려있기 때문에 성질이 급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턱!

“컹!”

산박이 만든 함정에 다리가 걸린 갈색늑대가 크게 쓰러지며 단번에 다리를 접질렸다. 전력으로 피 냄새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늑대는 몇 바퀴나 땅을 굴러야 했다. 앞발의 관절이 역으로 꺾였다.

휘이익! 퍽!

산박이 단번에 모습을 드러내며 투석구를 던졌다. 그는 두 번의 투석으로 남은 두 마리의 갈색늑대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몇 년 동안 단련한 투석 스킬로 산박은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맞힐 수 있었다.

“끼아아아아악!”

고블린 전사가 고함을 내질렀다. 귀를 송곳처럼 찌르는 높은 소리였기에 산박의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휘이이익!

투석구가 원을 그리며 둥근 합금 탄환을 쏘아냈다.

텅!

고블린 전사가 그것을 막았다. 나무와 철 합금의 부딪침이었음에도 고블린의 방패에는 작은 균열만 생겼을 뿐이었다.

차아앙!

산박은 바짝 관리한 환도를 빼 들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이 주변에는 돌팔매질을 할 재료가 얼마든지 많아서였다.

“후우! 후우우! 후우!”

산박은 억지로 호흡을 정돈했다. 마구잡이식으로 호흡하면 마라톤을 하지 못하듯이 백병전에서 지구력은 매우 중요했다. 특히 그는 지구력이 낮아서 백병전을 할 때는 언제나 습관적으로 호흡을 강하게 조절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 두 눈에 공포가 서렸지만 정신력과 용기로 걷어냈다. 호전성이 대단한 고블린 전사와의 근접전은 누구나 힘겨워하는 전투 방식이었다. 그러나 산박은 결코 물러섬이 없었다.

“끼아아아악!”

“그아아악!”

산박은 함성을 내지르며 양손에 환도를 쥔 채 그대로 내려치기를 감행했다. 고블린 전사가 나무 방패를 들어 올렸다. 환도가 그대로 방패를 내려쳤다. 나무 방패는 움푹하게 무너져 내렸지만 박살이 나지는 않고 버텨줬다.

순간, 고블린 전사가 나무 몽둥이를 휘둘렀다. 길쭉한 나무 몽둥이는 내려치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허리가 굽혀진 산박의 목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퍽!

하지만 그 전에 산박의 왼발이 고블린의 사타구니를 후려쳤다. 휘둘러지는 몽둥이에서 힘이 쑥 빠졌다.

온 힘을 쏟는 듯 함성을 질렀지만 사실 산박의 첫 공격은 가볍게 내려친 것에 불과했다. 덩치가 큰 인간이 내려치는 것만큼 위협스러운 공격도 없었기에 가능한 기만술이었다. 상단 내려치기와 하단 올려 발 차기는 완벽한 연계였다.

촤아악!

고블린의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목이 잘리지는 않았다. 목은 가장 단단한 부위 중 하나였다.

고블린이 출혈로 죽게 내버려둔 산박은 쉴 틈도 없이 갈색늑대들의 멱을 땄다. 발로 걷어차서 혹시 모를 반격을 없애고, 그다음에 환도로 머리를 찍었다.

그 모든 과정이 있고 난 다음 던전을 확실하게 끝까지 정찰했다. 다른 적은 보이지 않았다. 갈색늑대가 그렇게 목청껏 울었는데 안 오는 게 이상했다.

딸칵.

그제야 산박은 라이트를 켰다.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돈이 되는 것들을 모았다. 약재로 쓰이는 꽃과 버섯, 특수한 광물, 고블린의 가죽과 손뼈, 갈색늑대의 가죽과 꼬리.

‘됐다.’

가져온 물을 찔끔찔끔 써서 피를 씻어낸 태산박은 가방에 있는 것을 모두 꺼냈다. 대부분이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이고 지형지물을 이겨내기 위한 것들이었다. 암벽 등반을 상정한 장비도 존재했다. 통로형, 일자형의 던전이 있다면 수직 던전도 있는 법이었다. 그건 인간에 의해서 0레벨 던전으로 구분된 던전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투석용 탄환을 60발이나 들고 다니는 이유이기도 했다.

‘고블린은 0레벨 던전의 보스 몬스터. 결코 숨길 수 없지.’

보스 몬스터는 던전에 무조건 존재한다. 고로 고블린의 부산물은 절대 빼돌릴 수 없었다. 대신 산박은 특수 광물을 품속에 숨겼다.

모든 게 세금인 세상에서 0레벨 던전 사용자가 살아남는 방법은 당연히 몰래 파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수 광물은 5만 원~15만 원 사이에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열을 품거나 냉기를 흘리거나 물을 찔끔찔끔 생산하는 등의 효력을 지닌 특수 광물은 무너진 현대 사회에서 아주 중요했다. 불순물을 제거해야 어떤 특수 효과를 지닌 광물인지 알 수 있었는데, 복불복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었다.

가방 안에 있던 작은 배낭들이 가방 밖에 주렁주렁 열매처럼 매달렸다. 그곳 모두에 던전 아이템이 들어갔다. 꽃과 버섯들은 용량을 특히나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이런 여분의 가방은 ‘0레벨 던전’을 공략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나 다름없었다.

또한, 0레벨 던전은 여럿이서 입장해도 항상 혼자 남았기에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채집 활동을 마치고 땀에 전 몸으로 주저앉은 산박은 시간을 확인했다.

‘보스 몬스터가 죽고 두 시간이 지났다.’

앞으로 세 시간이 더 지나면 던전은 사라지고 산박은 현실 세계로 토해질 터였다. 그리고 내일이 될 때까지 ‘왕십리 던전’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산박은 눈을 감아서 억지로 잠을 자려고 애썼지만 땀 때문에 찝찝해서 몸만 쉴 수 있었다.

* * *

“헉!”

아찔한 감각과 함께 산박은 현실 세계에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그가 가져온 가방은 수색당했다. 물론 대충 검사를 하기 때문에 ‘특수 광물’을 들키지는 않았다.

“던전 아이템 취급세 1만 5천8백 원입니다.”

말을 들은 산박은 꼬깃꼬깃 몸 구석구석 숨겨놓은 지폐들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고, 던전 밖은 던전 물품을 사려는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물론 인기 없는 왕십리 던전의 경우에는 트럭이 한 대뿐이었다.

“태 씨! 왜 이렇게 늦게 나오세요?”

“평소랑 똑같은데요.”

산박은 대충 대꾸하며 즉발적인 효능이 있는 꽃과 버섯을 트럭 상인에게 건넸고 이어서 갈색늑대의 가죽과 꼬리, 고블린 전사의 가죽과 손뼈를 건네주었다. 흥정은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이루어졌다. 산박이 물건을 꺼내면 흥정을 했다.

“진통제 효과가 있는데 이게 왜 그램당 8백 원이에요? 미치셨어요? 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팔아 볼까요?”

“장난치세요? 말리면 무게도 사라지죠? 버스 터미널 가도 말려서 오라고 하겠죠? 그럼 더 못 받죠? 거기에 1레벨 던전 사용자도 요즘 0레벨 자주 다니죠? 값이 떨어지죠?”

죠죠 화법으로 정신없이 산박을 후려치는 트럭 상인 박조조의 말에 산박은 입을 다물고 물건을 내어줬다. 귀찮은 공정을 들이대면 할 말이 없었다.

“갈색늑대의 가죽은 안 사요.”

“이걸 왜 안 사요?”

“겨울이 아니니까요!”

갈색늑대의 가죽은 반려까지 당했다. 하지만 산박이 지긋이 노려보자 박조조는 별수 없이 가죽을 대형 저울에 올렸다.

“떨이로 만 원.”

“겨울이면 수표로 받는데요?”

“모아 놨다가 겨울에 파세요. 그리고 꼬리도 빨리 주시고. 꼬리는 하나당 3만 원.”

갈색늑대의 꼬리는 아주 고가에 팔렸다. 특수한 효능을 가지고 있어 없어서 못 파는 것이 던전갈색늑대의 꼬리였다. 사골로 우려내면 아무리 대량의 물에 넣고 끓여도 맛이 났고 배가 든든해지기 때문이었다. 요즘 세상에 식량을 대용량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큰 가격에도 산박은 갈색늑대의 꼬리를 가방에 나있는 갈고리에 박아서 달았다.

“이건 쓸데가 있어서.”

“킁. 그게 가장 잘 팔리는 건데.”

산박이 웃었다. 박조조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고블린의 가죽은 방어구로 쓰이고 벌레 퇴치용 아이템에 사용되는 재료였다. 하지만 1차 생산자나 다름없는 산박에게 주어지는 금액은 5천 원에 불과했다. 그냥 삶으면 끝인 던전갈색늑대 꼬리와는 다르게 마법사가 제작을 하거나 공장에서 가공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탁.

“고블린 손뼈. 가장 비싸게 사주세요.”

주문 아이템에 무조건 쓰이는 것이 고블린 손뼈였다. 주술, 마법, 신성 법술, 흑마법 등 어디에 써도 항상 이득이 생기는 게 고블린 손뼈였다.

“요즘 고손 시세가 안 좋아요.”

“그런 말씀 하지 마시고요. 뭔 밑밥을 깔아요. 내가 병신이에요?”

산박이 손을 흔들며 돈 내놓으라는 제스처를 강하게 취했다.

“에헤이! 병신이라니! 0레벨 던전 공략하는 사람이 왜 병신이야! 큰일 날 소리를! 정말 큰일 나요! 큰일!”

“그래서 얼마예요?”

“하, 참 내……. 2만 5천 원 선이에요. 나한테 떨어지는 것도 겨우 2천 원이라고요. 트럭 유지비도 안 나와요, 진짜로. 내가 괜히 여기까지 와요? 아무도 안 오는데 나만 오잖아요.”

“시장가가 5만 원인데 무슨 2천 원 마진이에요.”

“2만 8천 원.”

“제가 3만 원, 그쪽이 2만 원.”

“아니! 킥킥, 시장가가 5만 원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2만 8천 원 할 거 아니면 나 안 사요.”

산박은 2만 8천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용량은 컸지만 제대로 된 돈벌이는 아니었다. 그의 손에 들어온 돈은 4만 9천 원에 불과했다.

‘그래도 오늘 수확이 크다.’

갈색늑대의 꼬리를 무려 다섯 개나 얻었다. 이건 큰 재산이었다.

태산박은 그길로 다시 세종시로 향했다. 갈 때는 터미널까지 걸어서 가야 했다. 왕십리 던전은 인기가 없어서 인력거가 없었다.

그의 집은 세종시 당산 북쪽에 있는 ‘부동 지구’였다. 작은 강이 동네를 관통하고 있어서 탈수로 죽을 일은 없는 곳이었다. 특징이랄 건 그거 하나뿐이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 보통은 원룸 혹은 폐가를 조금 손보고 들어가거나 세종시에서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산박은 혼자 살지 않았다. ‘당산 고아원’. 그가 세 살 때부터 자라 온 곳. 그곳이 그가 자고 일어나는 곳이었다.

고아원은 예전에 비해 절반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지원을 받고 살아가기 때문에 다섯 살만 되어도 농사일을 도와야 할 정도로 사정이 열악했다. 그나마 당산 고아원은 0레벨 던전을 공략하는 던전 사용자인 태산박의 지원 덕분에 굶는 애들은 없었지만 산박은 그 이상의 지원은 하지 않았다. 큰 꿈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오늘은 돈 대신 이걸 드리려고요. 적어도 이번 달은 이걸로 충분히 지낼 수 있을 거예요.”

“이 귀한 걸…….”

수녀님이 마중을 나왔다. 기독교 중에서도 천주교에 속한 고아원이지만 종교는 이미 의미를 잃었고 규합력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녀가 수녀복을 입고 있는 것도 그저 옛날의 습관에 불과했다.

고된 농사일로 나이에 비해서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새까만 피부를 지닌 수녀님이 고개를 숙이며 갈색늑대 꼬리를 받아 들었다.

산박은 2층에 있는 개인실에 짐을 풀었다. 원래는 신부님이 지내던 곳이었지만 그분은 4년 전에 돌아가셨다. 산박이 던전 사용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을 때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분이 준 지원금 덕분에 그는 던전 사용자가 될 수 있었다.

특수 광물을 이용해 물을 데워서 씻고 책을 조금 읽다가 산박은 잠에 빠져들었다. 동시에 송곳에 찔리는 것과도 같은 고통을 느끼며 눈을 번쩍 떴다. 산박은 모든 것이 새하얀 공간에 벌거벗은 채 홀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필요 카르마 획득. 레벨 시스템을 활성화합니다. 사용자 태산박.]

[사용 가능 적성을 확인합니다. 적성 확인. 출력합니다.]

산박의 눈앞에 광채를 뿜는 구체들이 튀어나왔다. 모두 제각각 색이 달랐다. 산박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전사. 레인저. 사제. 드루이드. 용 기사. 벼락의 마법사. 마검사.]

‘희귀한 직업이 네 개?!’

그는 깜짝 놀랐다. 그만큼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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