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0레벨 던전> (1/270)
  • 1화

    <0레벨 던전>

    태산박(太産樸).

    통나무를 크게 낳는다, 라는 이름 뜻이었다. 순서가 맞지 않지만 부모님이 그런 뜻으로 지었다고 했으니 딴소리는 못 했다.

    그는 오늘도 던전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검은색에 광택 없는 복장은 어두컴컴한 던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복장이었다. 광택이 전혀 없어야 했는데, 작은 빛에도 반들거리는 광택 제품을 입고 던전에 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등에 메는 가방은 착 달라붙는 형식의 가방이 아니었다. 걷고 달릴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외골격이 등과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외골격 배낭이었다. 무게가 무거워도 매우 가볍게 느껴질 정도의 최첨단 가방이었다. 산박이 가진 물건 중 가장 비싼 것이 ‘외골격 배낭’이다. 돈으로 99만 9천 원 하는 물건이고, 그것마저도 세일 때 샀다.

    허리에는 사람 손만 한 높이의 혁대를 복대처럼 매고 있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것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검이었다. 칼날만 55.63cm, 자루는 20cm의 총 길이 75.63cm의 환도(環刀)였다. 다른 무기도 많았지만 슬링을 통해서 괴물을 잡는 것이 주류 싸움법인 산박에게 환도 외의 것은 거추장스러웠다.

    투석구(投石具)는 가죽과 신발 끈보다 더 굵은 줄로 만들어진 것이고 사용하는 탄환은 철 합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꽈아악.

    산박은 투석구와 예비 투석구를 한 번씩 당겨서 튼튼함을 확인했다.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면 바로 교체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실전에서 죽을 뿐이었다.

    탄환은 무게를 가볍게 하려고 다른 금속을 30% 정도 섞긴 했지만 맞는 순간 골로 가는 흉악한 투사체였다. 크기는 주먹보다 작았으나 그것만으로도 0레벨 던전은 수월했다. 장탄 수는 60발로 화살보다 2~2.5배 많은 숫자였다. 그 압도적인 수량 때문에 슬링을 즐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좁은 던전에서는 사정거리보다는 파괴력이었고, 수량이 많아야 했다.

    새벽 네 시. 던전은 아침 일곱 시부터 초기화되지만 태산박은 일찍부터 밖을 나섰다. 세종시에서 서울시로 가기 위해서는 두 시간 삼십 분 남짓 걸리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기 때문에 더 오래 걸렸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산박은 그 인파에 들어갔다. 대부분이 검은색에 무광택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몇몇은 제법 빛깔 나는 장비 아이템을 끼고 허세질을 하고 있었지만 산박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고속버스에 올라타기 바빴다. 목적지는 버스의 앞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왕십리 던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십 곳의 0레벨 던전 중 하나였다. 서울에 있는 0레벨 던전으로는 왕십리 외에 노원 던전이나 관악 던전이 있었다.

    고속버스 내부에는 빈 좌석이 많았다. 많아 봤자 열두 명이 전부였다. 이 세상의 모든 경제는 던전으로 시작해서 던전으로 끝난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데도 빈 좌석이 많다는 것은 왕십리 던전이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뜻이었다.

    부르릉.

    고속버스가 시동을 걸었다. 창밖으로 푸른색의 마력이 슬슬슬 뿜어져 나왔고 버스 뒤로 화석 연료가 매캐한 연기를 뿜었다.

    산박은 쪽잠을 자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이 정보 저 정보를 들쑤시기 바빴다. 뉴스도 훑었는데, 특히나 던전 사용자는 뉴스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두는 직업군이 던전 사용자였다. 물론 산박은 레벨 0이었기에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기보다는 던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삭막하다.’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그나마 도로는 다시 제 모습을 찾았기에 버스가 덜컹거리지는 않았지만 무너진 건물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그 사이에 신축된 버스 터미널에 내린 산박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찾았다.

    “산빡이 형!”

    일회용 도시락을 바닥에 놓고, 때가 낀 파라솔을 드높이고, 옆에는 나무 판에 ‘도시락 5천 원!’이 쓰여 있었다.

    “왜 자꾸 자리를 옮겨? 누가 괴롭히냐? 0레벨 미만이면 혼내준다.”

    애들이 낄낄거렸다. 산박은 짜증을 내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5천 원을 꺼냈다. 흥정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서울에 사는 이들은 나라에서 버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방이 득세하고, 서울은 망한 세상이었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어린 나이에 장사를 시작한 애들에게 매정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아, 요즘 도시락이 좀 팔려서 자리를 잡기가 힘들어.”

    “청소년 주제에 사장님처럼 말하네?”

    “사장 맞거든.”

    앳된 얼굴을 한 남자애가 산박의 말에 대꾸하며 도시락을 건넸다. 노란색 고무줄로 묶여있는 두 통짜리였다. 아래에는 김밥이 들었고 위에는 산나물볶음과 김치가 들어 있었다. 나라에서 주는 나라미로 만드는 것이기에 양이 많은 게 특징이었다.

    산박은 제법 많이 쓴 티가 나는 검은 봉지를 꺼내 도시락을 넣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 나도 빨리 던전 사용자가 되어야 하는데.”

    “응, 교육 5년~ 그동안 돈 갖다 바쳐야 해.”

    “지독한 세상이다.”

    “사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적어도 0레벨 던전에서는 죽지 않도록 대한민국은 5년의 기간 동안 훈련을 시킨다. 지옥 같은 훈련이지만 그 덕에 웬만한 선진국보다 0레벨 던전 실종자(사망자)의 숫자가 적기로 유명했다.

    “그럼 청소년이, 난 간다.”

    “방심하지 마!”

    “방심은 무슨!”

    산박이 주먹을 휘두르며 웃었다. 열 걸음 가서는 그 웃음도 싹 사라졌지만.

    “인려억거어!”

    앙상한 팔다리를 한 채로 노인이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냈다. 곳곳에서 인력거 소리가 난무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던전 사용자에게서 돈을 받고 싶어 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서울에 도로가 새로 보수되면서 택시가 등장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왕십리 던전 가는 데 얼마예요?”

    산박의 말에 노인이 조금 생각하더니 깍듯하게 말했다.

    “5천 원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는 인력거에 올라탔다. 택시보다 두 배 내지는 세 배는 싼 것이 인력거였다. 특히 왕십리까지 가려면 택시는 절대 타면 안 되었다. 택시비가 3만 원 이상 나오기 때문이었다.

    인력거는 값이 쌌지만 느렸다. 그사이에 산박은 조용히 마음을 바로잡았다. 곧 던전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매번 왕십리 던전에 가지만 똑같은 던전이라도 항상 과정이 다른 것이 던전이었다. 방심하면 안 되는, 그야말로 진짜 실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였다.

    인간의 힘으로 0레벨 던전을 극복하다 보면 ‘레벨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게 되는데 그때부터 진짜 던전 사용자로서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0레벨 던전의 벌이도 쏠쏠했다.

    ‘평생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

    늙으면 약해진다. 아무리 날고 기는 던전 사용자라고 해도 늙으면 소용이 없었다. 마법사 같은 예외 직군도 있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직업’이라는 것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주어지는 몇 개의 선택지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으면 고를 수도 없었다.

    ‘왕십리 던전’은 지하철의 입구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대로 내려가면 던전에 바로 진입하게 되기 때문에 그 주변을 싹 밀고 벙커처럼 되어 있었다. 외부의 침입을 콘크리트로 무식하게 막고 있었고, 오직 한 개의 출입문만 존재했다. 그 출입문에조차도 바리케이드, 트럭이 돌진하는 걸 막기 위한 철 송곳이 있는 장판 등이 있었다. 유사시에 사용되는 천막으로 덮인 기관총 진지도 1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두 명의 군인과 두 명의 경찰이 던전을 지키고 있었다. 서로 소속이 달랐기에 어색함이 흐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

    경찰은 산박의 인사에 손으로 경례하며 화답해 주었다. 산박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옆에 있는 여경이 내민 기기에 엄지 지문을 찍었다. 여경은 바로 뜨는 신상 정보를 훑어 나갔다. 최근 던전 물품 납품 내역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산박은 경찰을 지나칠 수 있었다.

    “수고하세요.”

    산박은 군인들에게도 인사했다.

    “충성.”

    군인들은 짧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산박은 바로 0레벨 던전에 진입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감각이 비틀렸다. 정신 또한 어지러워졌다.

    “아.”

    정신을 차려보니 멍하게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이 수십 번째였음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정신력을 높이면 되겠지만 그건 1레벨이 되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킁킁.”

    산박은 가장 먼저 곳곳에서 냄새를 맡았다. 0레벨 던전의 가장 큰 특징은 짐승 같은 놈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던전 사용자들은 거의 모두가 레인저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수풀 안쪽을 살핀 산박은 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주 귀중한 흔적이었고, 모든 교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던전에서 볼 수 있는 똥이었다. 감각이 떨어지고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도 똥을 통해서 많은 걸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냄새, 이 맛, 이 감촉…….’

    차갑게 식은 똥의 감촉까지 확인한 산박의 머릿속에 하나의 괴물이 떠올랐다.

    ‘고블린이다. 시작부터 보스 몬스터가 누군지 알아내다니, 큰 수확이야.’

    고블린은 매우 위험한 괴물이었다. 키는 초등학생 수준의 110~140cm였지만 그들의 체구를 우습게 보고 달려들면 큰코다치는 수가 있었다.

    ‘한 발은 야생에, 다른 발은 문화에 걸친 무지막지한 괴물이지.’

    인간보다 몇 배는 근력이 강해 체급이 달라도 맞짱을 뜰 수 있는 무지막지한 놈이 고블린이었다. 그런 데다 도구까지 쓰기 때문에 앗 하는 순간에 당할 수 있었다. 고블린은 0레벨 보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최강의 보스 몬스터였다.

    ‘다행이라면 목제 무기와 가죽 방어구밖에 못 쓴다는 거지.’

    던전 레벨이 높은 곳에 간다면 철제 무기부터 독까지 쓰기도 하지만 0레벨의 고블린은 그 정도까지 흉악하지는 않았다.

    물론 보스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므로 산박은 반엄폐 하기 좋게 움푹 파인 곳을 확인했다. 짐승이라면 그런 곳에 몸을 눕히고 머리만 쏙 내미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털을 확인한 산박은 엄지와 검지로 털을 모았다. 그럴듯하게 모양과 색이 나왔다. 갈색과 흰색이 섞여 있었다.

    ‘멧돼지는 아웃.’

    털이 억세고 굵지 않고 복슬복슬했다. 절대 멧돼지 털이 아니었다. 늑대 혹은 여우로 좁혀나갈 수 있었다. 여우면 쉽고, 늑대면 조심해야 했다. 여럿이서 항상 몰려다니기 때문이었다.

    쭈욱! 투두둑!

    산박은 제법 길게 삐져나온 굵은 수풀 줄기를 손으로 쥐고 당기며 잔가지와 나뭇잎을 모조리 뜯어냈다. 단 한 방에 앙상한 나무줄기가 만들어졌고, 순식간에 수풀 안에 함정을 설치할 수 있었다.

    ‘걸려 넘어지면 크게 다칠 거다.’

    네발로 달리는 짐승이든 두 발로 달리는 괴물이든 엎어지면 아픈 법이었다. 특히나 머리부터 박으면 순간 정신을 못 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간단한 함정을 설치하며 던전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숲형의 던전이었지만 개방형이 아니고 통로형이었다. 갈림길이 많았기에 천만다행이었다. 도망치고 쫓기는 쪽은 언제나 던전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괴물보다 빨리 달릴 수 없는 던전 사용자들은 일직선의 통로를 가장 싫어했다.

    보스락.

    산박은 숨을 죽였다. 함정을 설치하는데 앞에서 무슨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던전이었기에 주변이 매우 조용했다. 식물은 있어도 벌레 한 마리 없는 기괴한 환경이었다.

    시야가 수풀과 나무 때문에 가려져 있었으므로 슬링을 쓸 수 없었다. 미리 나무 위에 올라갔다면 모르겠지만, 상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나무 위로 올라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자신이 내는 소리를 상대도 들을 것이 분명했다.

    산박은 눈으로 몸 주위를 힐끔 보며 소리가 나는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고 바로 전방을 주시하며 조심스럽게 환도를 빼 들었다. 공장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항상 규격이 똑같은 75.63cm의 환도는 무릎을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뽑을 수 있었다.

    뭔가가 수풀을 흔들었다. 산박은 앞뒤를 재보지도 않고 바로 달려들었다.

    ‘새끼이이잇!’

    속으로 욕을 지르며 이를 악물고 환도를 수풀 안쪽에 찔러 넣었다. 누린내가 확 코에 맡아졌다.

    “깨애애애앵! 끼애애애앵!”

    갈색늑대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단번에 늑대의 옆구리를 찔러 그대로 옆으로 쓰러뜨린 산박은 주먹으로 늑대의 눈을 세 번 후려갈겼다. 그리고 모가지 뒤를 잡아서 살짝 들어 올리며 바로 무릎으로 목을 후려갈겼다.

    몸을 일으켜서 발로 갈비뼈를 걷어차니 늑대의 몸이 출렁거렸다. 산박은 검을 뽑아 늑대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피가 조금 튀었다. 피가 묻은 환도를 쥔 채로 산박은 그대로 몸을 돌려서 도망쳤다.

    아우우우우!

    컹컹컹!

    던전의 깊숙한 곳에서 바로 늑대들의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보스 몬스터인 고블린도 소란을 듣고 달려올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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