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246화 (외전) (246/250)

#246. 외전 1 ― 일거양득 (1)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스튜디오 안을 가득 울리고 있었다.

“아, 좋아요. 수현 씨, 이번에는 이 카메라가 라이벌이라 생각하고. 그렇죠. 절대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됩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강렬한 눈빛에 포토그래퍼의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모델로 섰을 때 어색해하던 것도 잠시, 이수현은 날이 갈수록 완벽한 프로 모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새명 유통의 L’amour뿐만 아니라 다른 패션 브랜드는 물론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 모델로 서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이수현은 물론 그의 스케줄까지 관리하고 있는 김강철 역시 바빠지고 있었다.

촬영이 모두 끝이 나자 한동안 식단 조절을 해 왔던 이수현이 준비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을 때 포토그래퍼가 다가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수현 씨, 정말 생각 없어요? 좋은 기횐 거 같은데?”

“그쪽은 영 소질이 없어서요.”

“모델 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러지 않았나? 해 보면 모른다니까 그러네. 연기가 어려우면 대사를 조절해 달라고 하면 되죠. 주인공이 아니니까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두 사람의 대화에 영문을 모르겠다며 김강철이 눈을 깜빡이던 그때 경우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 왔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지나가다가 여기서 촬영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안녕하세요.”

“아, 민 작가. 어서 와요.”

“근데 무슨 일 있어요? 분위기가 왜 이래요?”

“마침 잘됐네. 민 작가가 수현 씨랑 친구라고 했죠? 근데 친구라면서 이렇게 괜찮은 사람을 그냥 냅뒀어요?”

“네? 그게 무슨……?”

“됐어. 그냥 가자. 저 그쪽엔 영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괜한 수고 마세요.”

“수현 씨도 알다시피 모델은 아는 사람이 한정적이잖아. 근데 그 바닥은 달라. 자고 일어났더니 톱스타가 되어 있었다, 이런 게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니깐?”

“그럼 다음에 봬요. 안녕히 계세요.”

이야기가 더 길어질까 싶어, 이수현은 경우와 김강철을 이끌고 재빨리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차에 오르자 이수현이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갈 거냐?”

“우리 늘 가던데. 그나저나 아까 뭐였어? 무슨 얘기 중이었는데?”

“별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러자 운전석에 앉아 있던 김강철이 입을 열었다.

“그 작가님이 얘 드라마에 출연시키고 싶으신가 봐.”

“드라마?”

“넌 그 얘기를 왜 해?”

“내가 뭐 못 할 말 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경우는 알아야지. 그래야 상담을 해 줄 거 아냐?”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은 거였어? 그럼 말을 하지.”

“아니거든. 그냥…… 자기 친구가 드라마 작가라고 나랑 같이해 보고 싶다고 자꾸 그러잖아. 내 주제에 연기는 무슨.”

“네가 어디가 어때서? 솔직히 남들보다 모델 일 늦게 시작했어도 잘하고 있잖아, 안 그래?”

“그 친구라는 작가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응? 그 뭐라더라, 흔한 이름이었는데……. 주원이었나? 이주원? 박주원? 뭐였지?”

“혹시 김준원 작가님?”

“그래, 맞아. 김준원! 김준원이었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김준원이라는 말에 경우의 얼굴이 굳어지는 건 물론, 김강철이 경우의 눈치를 살짝살짝 살폈으니 그 반응에 이수현이 물었다.

“왜 그러는데?”

“혹시 출연 제안 들어온 드라마 제목이 <블랙리스트>?”

“맞아. 어떻게 알아? 그 김준원이란 그 사람, 꽤 유명한 사람이었나 보네. 나는 괜히 그러는 줄 알았더니.”

“유명하지. 잘 알기도 하고. 그 작가가 쓴 <블랙리스트> 때문에 얘네 드라마 까였잖아.”

“엥?”

김준원 작가의 전작 <비밀 요원>과 <마르스>의 대성공으로 시리즈를 이어 가길 바라는 시청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제작된 드라마가 바로 <블랙리스트>였다. 공교롭게도 제작을 맡은 곳이 유니언 스튜디오였으니, 경우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하고 있는 드라마 <열세 번째 달>이 받은 SBC 편성이 취소되고 말았다.

다름 아닌 그 드라마 때문에.

김준원 작가에 대한 악감정은 없었으나 아무래도 경쟁에 밀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새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그런 사정을 들은 이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신기하다. 아무리 그래도 얘가 밀리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만큼 이 바닥이 냉정하다는 거지.”

김강철의 말에 이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음 타깃은 곧 그가 되었으니.

“정말 드라마에 출연해 보고 싶은 생각 없어?”

“됐다니까 그러네. 너까지 왜 그래?”

“솔직히 그 작가님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거든. 딱 봐도 연예인 하게 생긴 외모잖아. 얼굴만 봐도 사연이 한 백 개쯤 있을 것 같은? 뮤즈라는 말이 왜 있는데? 보기만 해도 영감이 떠오르게 만드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거든. 그 작가님껜 네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그럼 나는 어떠냐? 영감이 팍팍 떠오르냐? 그럼 나도 너네 드라마에 출연시켜 주나?”

눈을 반짝이며 깜빡거리는 김강철의 모습에 경우의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으니.

“너는 그냥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해.”

“이씨! 사람 차별하고, 그러는 거 아냐!”

“차별은 무슨. 친구로서 진심 어린 조언이구만. 그리고 수현이 너, 내가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행여 연기가 하고 싶다면 아무나랑 일하지 마라. 무조건 나나 얘한테 상의해. 알았어?”

“그럴 마음이 없다니까 그러네. 연기는 뭐 아무나 해?”

“그럼. 다른 걸 해 보는 게 어때?”

“다른 거라니?”

“야!”

김강철의 제지에 이수현은 더욱 의아한 얼굴이었다.

실은 얼마 전, 안청모와 함께 술을 한잔하기 위해 들어간 술집에서 경우는 우연히 김강철이 송미디어 소속의 예능 PD 손문국과 술을 마시고 있는 걸 발견했다. 엿들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김강철의 표정이 좋지 않은 탓에 경우는 아는 척도 하지 못하고 근처에 자리를 잡아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으니 이야기는 생각 외의 것이었다.

‘김 과장, 그러지 말고 이수현 씨한테 이야기 좀 잘해 주면 안 될까? 악마의 편집도 없을 거고, 그림도 수현 씨 잘 나오게 뽑아 준다니까 그러네.’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우리 수현입니까?’

‘나 이거 파일럿에서 끝내고 싶지 않아. 요즘 회사 분위기가 좀 그래. 다른 회사로 넘어갈 거 같단 말이야. 김 과장도 알잖아? 우리 같은 직장인들은 이럴 때 잘못했다가 쓸려 나가는 거. 어쨌든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방송 때 빵 터트려 줘야 하는데 그럴 만한 신선한 마스크가 없어요.’

‘그 신선한 마스크가 수현이다, 이거예요?’

‘그렇지. 원래 축구 선수 출신이었다며?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심을 흔들 만한 완벽한 비주얼이니 이수현 씨만 캐스팅된다면 우리 방송 분명 레귤러 편성을 받을 수 있다 이거야!’

‘우리 수현이, 이제 축구 안 합니다. 괜한 애한테 바람 넣지 마시고 포기하세요. 다른 사람 찾으시고요. 술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그렇게 일어서던 김강철은 결국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우와 마주치고 말았다.

그날 결국 안청모는 돌아갔고 김강철과 둘이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으니, 경우는 그동안 이수현에게 들어온 프로그램 제의를 김강철이 거절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다른 거라면 모를까 그 프로그램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김강철의 만류에도 경우가 조심스레 운을 띄운 거였다.

“왜들 그래? 무슨 일인데? 괜찮으니까 말해 봐.”

결국 이수현의 성화에 김강철은 경우를 쏘아볼 뿐이었으니 경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존에 있던 프로는 아니고 파일럿으로 새로 제작하는 예능 프로거든. 반응이 좋으면 정규 편성을 받을 거라고 하더라.”

“예능 프로? 나 사람 웃기는 건 더 못하는데?”

“걱정 마. MC 두 사람만 개그맨이고 나머지 출연자들은 배우, 가수, 너처럼 모델에 운동 선수들까지 다양하니까. 웃기려고 했으면 전부 개그맨을 섭외했겠지?”

“무슨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 그걸 사람들이 봐?”

“아마 볼걸. 스포츠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지 않겠냐? 사회 각 분야 여러 사람들을 모아서 조기 축구회를 만드는 프로그램이거든.”

경우의 이야기에 김강철은 얼굴을 감쌌고 이수현은 순간 머리가 정지된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 * *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진짜 팬입니다.”

“어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잘생겼네. 우리 딸이 이수현 씨 팬이래요. 끝나고 사인 한 장만 해 줘요.”

“무, 물론이죠.”

전태림을 향해 떨리는 모습으로 인사를 나누는 이수현의 모습에 누구보다 담당 PD인 손문국이 흡족해했다.

“예, 좋아요. 두 사람이 같이 있으니 그림 좋네. 이거 잘될 것 같은 느낌 들지 않아요? 우리 열심히 해서 프로그램 한번 띄워 봅시다!”

그토록 바라던 이수현을 캐스팅할 수 있어서 손문국은 흡족해했으나 사실 이수현은 그런 걸 별로 따질 여력이 없었다. 바로 눈앞의 이 남자, 전태림을 만났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백지상태나 다름없었다.

한창 선수 시절에도 빼어난 외모 덕에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던 그였다. 지금은 후덕한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음에도 잘생긴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 덕에 조금은 친근한 이미지로 바뀌었지만 이수현에겐 여전히 우상.

사실 그날 경우의 입에서 축구와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 제의를 받은 이수현은 뜨악했다.

김강철은 물론 경우도 이수현이 축구를 포기한 이후 축구와 관련된 건 얼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웬만하면 축구 경기도 보지 않으려 했다. 혹시라도 미련이 남을까 싶어서.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축구를 그만둔 이후로 축구가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우가 그런 소리를 하자 이수현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흘겼다. 뭐라 입을 열려던 순간 경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좀 알아봤는데, 축구단을 만들려면 코치나 감독이 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그 감독으로 전태림 씨를 캐스팅했다고 하더라고.’

‘뭐? 누구?’

‘전태림. 설마 그 사람이 누군지도 잊어버린 거 아니지?’

잊을 리가 있나. 전태림이라면 이수현이 축구 선수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토록 국민들이 염원하던 16강 진출에 탈락했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그래도 성과는 있었으니 바로 신예 스타 전태림의 등장이었다. 어린 나이에 국가 대표로 출전해 해외의 유명 선수를 압박 수비해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는 4년 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떨쳤다.

전태림의 경기는 죄다 찾아볼 정도로 그의 광팬이었던 이수현은 축구부에 들어갔고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이 좌절된 지금 그의 옆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나 다름없었다.

‘할게. 나 그거 할래. 하고 싶어.’

‘야!’

오히려 그의 결정에 김강철이 놀랄 정도.

어쨌거나 전태림과 악수를 나눈 손을 한참이나 들여다볼 정도로 이수현은 이 모든 일이 꿈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의 기분은 상관없이 촬영은 진행되었으니 이수현에게 포커스를 맞춰 달란 제작진의 요구를 받은 MC들과 전태림이 슬쩍 눈빛을 교환했다.

“자, 축구를 하려면 그냥 공만 잘 차서는 안 되겠죠. 축구 말고도 모든 일엔 기초 체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준비한 오늘의 훈련!”

잔디밭 위에 놓인 여러 도구에 이수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그만둔 고등학교 시절까지 매일 축구부에서 하던 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탓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그조차도 하기 싫은 훈련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전태림이 자신을 지목하고 말았다.

“자, 이 중에서 그래도 이수현 씨가 경험자 아닙니까? 훈련 조교로 추천합니다.”

하는 수 없이 대표로 열심히 뛰었건만 되돌아오는 소리는 신랄한 질책.

“아…… 수현 씨, 보기보다 몸이 너무 무거운데요?”

MC를 맡은 개그맨 김형주의 지적에 이수현의 안에 무언가가 투두둑 하고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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