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득과 실 (2)
명하일보의 종편 MHTV에서 신년 기획으로 TV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 놓고 2018년 대한민국의 경제는 물론 사회, 문화 등등 전반에 걸쳐 찾아올 변화를 예측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단연 화두는 자율 주행 자동차였다.
“우리의 과학 기술이 이만큼 발전했습니다. 미국도 못 한 걸 우리가 먼저 해 냈다고요! KTX 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라며 놀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자동차를 굳이 내가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까지 왔어요.”
“앞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상용화되기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걸리겠죠?”
“네.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화정시를 보세요. 자율 주행을 하는 미니 버스가 돌아다니고 있어요. 거기다 곧 있으면 새로 문을 연 화정시의 복합 쇼핑몰에도 자율 주행 셔틀버스가 다닐 거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면 뭐든 앞당겨지지 않겠습니까?”
“자율 주행 기술이 일반 시민들에게 보급되면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바뀔까요?”
“교통사고의 위험이 확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특히나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많이 줄어들 거라 예상됩니다. 자동차가 알아서 집까지 데려다 주는데 뭐하러 운전을 하겠습니까?”
“자차의 시대가 끝날 거라고 봅니다. 택시를 이용하듯 부담 없는 가격으로 누구나 쉽게 차를 이용하는 거죠. 어플과 연계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고 봅니다.”
“그럼 택시 회사들이 싫어하겠네요. 안 그래도 플랫폼 카플 서비스 때문에 난리지 않습니까?”
“1811년에서 1817년에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습니다. 기계가 등장해 일자리를 빼앗으니 노동자들이 기계를 때려 부수는 운동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했다고 해서 사람이 기계를 대신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 기계가 대신 일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났고요. 변화를 막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자율 주행 기술을 개발해 낸 새명을 돋보이게 하는 거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명 자동차의 민정현이 숨겨진 주인공인 셈.
후계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위를 돕기 위해 장인인 배정철이 직접 나서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지시했으니 실무자들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민정현을 돋보이도록 만들 것인가 고심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한 데에는 화정시에 오픈한 새명 유통의 복합 쇼핑몰 때문이었다.
고급화 전략을 내세운 2호점이 오픈한 뒤 1호점을 뛰어넘는 대박을 이뤄 냈다. 직접 가본 사람들이 기존 복합 쇼핑몰과는 다른 서비스를 받았다는 후기가 이어지자 그 관심은 고스란히 방문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더 비싼 가격에도 성황을 이뤘으니 자율 주행 자동차로 인기가 반짝했던 사위가 혹시나 다시 뒤로 밀리지 않을까 걱정한 장인의 뜻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재벌 기업들이 3세들로 세대교체를 앞두고 있다면서 경음 그룹, 재경 그룹, 송일 그룹은 물론 새명까지 자식들의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인 양 은근히 민정현을 밀어주기에 바빴다.
어쨌든 민지선이 오픈한 쇼핑몰은 마케팅과 판매 전략에 중점을 뒀다면 아무래도 자동차는 신기술이니 미래 먹거리와도 관련된 문제인 탓에 올려치기도 수월했다.
어차피 대중들은 골치 아픈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게 언론인들의 생각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결국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라 착각할 때가 많았고 나와는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게 만들었다.
물론 이날 방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아내에게 언질을 받아 방송을 본 민정현은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회사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새명 자동차에 출근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신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요즘 계속 야근하던 사람이?”
“무슨 일이나 마나, 아버님 무슨 생각이신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당신, 아버지가 기획한 그 프로그램 때문에 따지려고 이 시간에 들어온 거야?”
“따지는게 아니라―.”
“그럼 지금 그 태도는 뭔데? 일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 일도 내팽개치고 들어와서 그 이야기부터 하는데 따지는 게 아니라고?”
“그래, 솔직히 내가 그거 보고 얼마나 낯 부끄러웠는지 알아? 그거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새명 그룹 후계자 될 욕심이 별짓 다한다고 보지 않겠어?”
“그게 뭐가 어때서?”
“여보!”
“당신은 그냥, 당신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면 돼. 지금껏 당신이 해 왔던 것처럼 그렇게. 이건 아버지가 사위 생각해서 하는 일일 뿐이야. 장인이 사위 생각해서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 아버님은 솔직히 그럴 수 있다, 쳐. 자식 일이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냐 이 말이지. 아버지나 지선이는 내가 장인어른께 부탁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거 아냐?”
“그게 무슨 상관인데? 아가씨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잖아. 혹시라도 아버님이 뭐라고 하시면 당신은 모르는 척 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럼 뭐가 문젠데? 어차피 결정은 아버님이 내리실 거 아냐? 그것 때문에 아버님이 당신을 후계자 자리에서 밀어내는 건 아니잖아. 이건 그냥…… 여론용이다. 사람들 재벌 싫어하면서 은근히 관심 많아. 아버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 지금이라도 회장에서 물러나고 당신이 그 자리 차지한다고 해도 거부감이 없게 만들려는 거뿐이라고.”
“…….”
“덕분에 주가 올라서 회사 실적도 좋아지면 결국 주주들도 좋은 거 아니겠어? 난 당신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사실 아내 말이 맞았다. 이런 프로그램으로 영향을 받는 건 회사 일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일반 대중. 혹시 나중에 후계자 문제로 잡음이 생길까 봐 동생인 민지선보다 그가 더 유능하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내는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찬양하고 있는 자율 주행 기술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 소수만 아는 문제였던 탓에 이렇게 주목도가 올라가는 게 민정현으로서는 부담스러웠다.
“미안해. 내가 요즘 좀 예민했나 봐.”
“알았으면 됐어. 저녁 준비할 테니까 씻고 나와.”
민정현을 내버려 둔 채 토라진 그의 아내가 부엌으로 사라졌다. 답답한 마음에 얼굴을 쓸어내린 그는 어쩐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했다.
* * *
한 무리의 외국 사람들이 스튜디오 글로리에 나타났다. 모기범의 안내로 사무실 쪽으로 가는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 누구래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카리스마 진짜 쩐다.”
“근데 난 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배울까요?”
“외국인 배우? 근데 외국인 배우가 우리 회사엔 왜?”
“혹시 이번에 제작하는 드라마가 무슨 이태원에 사는 외국인 이야기에요? 아니면 이번엔 CIA나 FBI가 등장하려나?”
“확실히 CIA나 FBI 정도는 돼야지, 딱 봐도 인상이 배우할 얼굴들은 아니잖아요. 엄청 무섭게 생겼더만.”
“혹시 웹플릭스 관계자 아닐까요?”
“거기 관계자가 왜?”
“이요, 엄청 잘 됐잖아요. 그래서 민 작가님 직접 만나고 싶어서 찾아왔다던가,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가? 그럼 잘된 기념으로 성과금도 받고 그러려나?”
“그러진 않을 걸요. 거기 제작비는 넉넉하게 주는 대신 성과금은 입 씻잖아요.”
“그래?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워낙 주워 듣는 게 많다보니까…….”
“그만큼 일도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쯧쯧쯧.”
괜한 눈치에 휴식 시간도 그쯤으로 끝나려던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후다닥 뛰어나온 사람이 있었으니 구연하 작가였다.
“바, 바, 헉헉. 바, 방금, 헉헉, 데, 데이비, 헉헉, 헨더―.”
“뭐래? 숨 좀 고르고 천천히 얘기해 봐요.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잖아.”
그 말에 숨을 고른 구연하가 겨우 입을 열었다.
“헉헉. 데이비드 헨더슨이요. 방금 여기 왔다고 하던데 못 봤어요?”
구연하의 말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는 것도 잠시 누군가 깨달았다는 듯 박수를 짝 쳤다.
“그래, 그 사람! 아까 전에 그 사람이 바로 데이비드 헨더슨! 헉!”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고 말았다.
구연하의 말마따나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때문에 홍보차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헨더슨이 일부러 시간을 내 스튜디오 글로리를 방문했으니.
“I'm David Hendson. I wanted to see you.”
“It's a great pleasure to meet you. My name is Min Kyungwoo.”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자 경우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먼 곳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민경우 작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데이비드 헨더슨이 경우를 향해 미소 지었다.
* * *
소식을 들은 민정현이 놀라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그…… 셔틀버스에서 사고가 났답니다. 오늘 화정시 청사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생 대회가 열렸는데요, 거기에 참석한 아이 중 하나가 화정시 주변을 도는 셔틀버스에 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이 다쳤답니까?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데요?”
“사고가 난 즉시 병원으로 옮겼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직원을 보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라고 했으니 금방 소식이 올 겁니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다리에 힘이 풀린 민정현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사, 사장님.”
“당장 언론사 접촉하세요. 기사가 퍼지지 않게 막으시고, 만약에 기사가 난다고 해도 최대한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와 돌발 행동을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하세요. 사람이 운전해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이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기계도 그런 점은 마찬가지라고 최대한 아이의 과실로 기사를 유도하라 이 말입니다.”
“하지만 사장님―.”
“됐으니까 윤 부장은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알았어요?”
“……네.”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미 들은 보고를 통해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였다.
셔틀버스 앞으로 갑자기 아이가 뛰어간 게 아니었다. 아이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다만 셔틀버스가 아이를 발견하고도 멈추지 못했던 것일 뿐.
사생 대회에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목격을 해 버렸다. 아무리 언론을 막는다고 해도 목격자가 많은데 온전히 막을 수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었다. 그나마 셔틀버스가 저속으로 달렸다는 게 희망적이었다. 윤 부장은 부디 아이의 상태가 무사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나저나 아이는 초등학교의 4학년으로 키가 이미 140㎝를 넘었다고 들었다. 작은 물체만 인식을 못한다는 그들의 말은 결국 거짓이었던 셈.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씨랩스 인수를 추진했던 그였기에 윤 부장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민정현 앞에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으니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될 따름이었다.
윤 부장이 사태 해결을 위해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사이 민정현은 머리를 짚었다. 왜 이렇게까지 돼 버린 건지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군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천천히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아버지였다.
민정현은 휴대폰 벨소리가 꼭 장송곡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