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220화 (220/250)
  • #220. D-Day (5)

    시작은 대진일보 계열 인터넷 신문사의 작은 기사였다. 모 국회의원이 성추문에 휩싸였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모 국회의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기사의 단어 하나하나를 힌트로 삼아 그 대상을 색출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한석인이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곧장 한석인을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이 일은 반전을 맞이했다.

    대진일보의 종편인 채널 DBN을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 뉴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종을 전한 거였다. 한석인 선거 캠프의 한 관계자에게 한석인 의원을 낙선하도록 도와주면 거액을 주겠다고 제안이 있었다는 뉴스 보도였다.

    당선이 되기 위해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건 일반적이지만 아예 있지도 않은 일을 있었던 것인 양 사람을 모함하려 했다는 사실에 개판 정치에 이골이 난 사람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누가 이런 일을 벌였나 싶은 그때 사람들의 시선은 한석인 다음으로 지지율 2위를 달리고 있는 봉민철에게로 향했다. 이에 봉민철은 즉각 대중 앞에 나서 이번 일에 대해 해명하고 나섰다.

    “이것은 모두 모함이고 정치 공작입니다, 여러분! 최근 들어 저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으니 한석인 의원 측이 말도 안 되는 정치 공작을 펼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억측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

    봉민철은 억지 주장이라며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해 보지 않고 보도를 한 각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할 뜻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 일에는 맹점이 하나 있었으니, 소식을 전한 언론사 어느 곳에서도 봉민철의 이름을 단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저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한석인이 치명타를 입으면 이득을 얻을 사람으로 봉민철을 생각했던 것일 뿐.

    그러니 애초 명예훼손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결국 그 일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 되었고 봉민철을 향한 사람들의 의심은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어. 입 다물고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 또 혹시 알아? 봉민철이 저렇게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말이야.”

    “그랬다면 그것대로 또 말이 많았겠지. 캥기는 게 있으니까 가만히 있는 거 아니냐고.”

    “하긴, 가만히 있으면 지은 죄가 있으니 그런 거다 싶고 항변하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난리겠지? 저 이야기 나올 때부터 정해진 어쩔 수 없는 결과였네.”

    사건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김강철은 경우의 사무실로 와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어쨌든 그가 긴밀하게 움직여 모든 언론사에서 비슷한 시기 동시에 특종을 전한 덕분에 화력을 키울 수 있었다.

    “수고 많았다.”

    “내가 나서서 해결 안 되는 일이 있었냐?”

    “이럴 때는 겸손 좀 떨면 안 되냐?”

    “겸손이 뭔데? 먹는 거냐?”

    김강철의 장난에 경우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여론조사 했다지? 결과가 어떻게 나왔대?”

    “말해 뭐 해? 한석인 의원 당연히 압승이지. 어쨌거나 이번 일도 잘 해결돼서 다행이네. 한 의원, 이렇게 너한테 코가 꿰인 건가?”

    “아직 선거가 끝난 건 아니잖아.”

    “이 정도면 끝난 거나 다름없지. 다 오보고 한석인 의원이 성추행했다는 게 사실로 밝혀지지 않는 이상은 당선될 거니까 걱정 마. 당사자가 나와서 인터뷰까지 했는데 판이 뒤집어질 리가 있냐? 근데, 생각해 보니까 참 신기해.”

    “뭐가?”

    “그렇잖아. 난 처음엔 네가 한 의원 주변 인물들한테 사람 붙이라고 했을 때만 해도 얘가 왜 이러나 싶었거든. 근데 진짜로 저쪽에서 공작이 들어온 것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우리가 사람 붙인 걸 스토커로 오인해서 녹음기를 들고 다녔다니, 일이 되려고 하니까 어떻게 이렇게 되냐고?”

    “그, 그러게.”

    “녹음 파일, 그거 아니었으면 진짜 정치 공작이었다고 자작극 펼치는 거라고 꽤나 공방이 심했을 거 아냐? 근데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녹음된 파일이 딱 공개되고, 거기다 그날 카페 CCTV 녹화한 거까지 뜨니까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거잖아.”

    봉민철이 자신을 모함하려는 정치 공작이라고 강하게 주장하자 정말 억울해하는 게 아니냐며 얼마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바로 그때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로 정체를 감춘 한 여자의 인터뷰가 민정현의 처가 명하일보의 종편인 MHTV 뉴스를 통해 첫 전파를 탔다.

    여자는 대략 한 달 전, 한석인 의원을 낙선하도록 도와주면 거액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전하고 있었다. 익명의 제보자가 전면에 나서자 사태는 새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가지. 여자는 당시 스토커에 시달리고 있어서 녹음기를 가지고 다녔다며 당시 받았던 제안이 고스란히 녹음된 파일을 공개해 버렸다. 그녀가 받아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던 돈과 당시 두 사람이 만났던 카페의 CCTV까지 이미 확보해 놓고 있었으니.

    “오은채 씨가 그렇게 철두철미한 성격인 줄 누가 알았겠어? 녹음도 녹음이었지만 CCTV도 신의 한 수였다니까. CCTV에 그 임효곤 얼굴이 딱 찍혀 있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어, 안 그래?”

    “봉민철이 임효곤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모든 공작의 배후에 봉민철이 있다는 게 확실해졌지.”

    “하여간 무서운 여자야. 우리 편이었으니까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 의원, 완전 골로 가는 거잖아.”

    “그러게.”

    김강철의 말에 경우는 웃었다.

    사실 그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오은채를 감시하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오은채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목격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경우는 오은채를 따로 만났던 것이다.

    ‘오늘 명함 한 장 받으셨죠?’

    ‘그, 그걸 어떻게……. 설마, 요즘 나를 미행하고 있던 게 그쪽이었어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이거 봐요!’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젭니다. 나는 오은채 씨가 나를 도와줬으면 싶은데요.’

    ‘내가 왜 그래야 하죠?’

    ‘옛말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맞은 놈은 발 뻗고 자고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고요. 요즘엔 뭐 맞은 사람도 억울해서 못 잔다고 하긴 하던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쨌든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말 아니겠어요? 난 오은채 씨가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기회를 줄 생각이거든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경우는 펜 모양의 작은 녹음기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어려운 건 없습니다. 그 사람 만나세요. 그리고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녹음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사례는 충분히 하죠.’

    결국 경우는 임효곤의 목소리가 녹음된 녹음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일이 끝나고 다시 만난 오은채는 놀라워하며 경우에게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그 사람이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라고 할 때 얼마나 소름 돋았는지 알아요? 이런 것까지 예상하고 녹음기를 준비한 거죠? 대체 그쪽 정체가 뭐예요?’

    오은채는 경우가 자신이 즐겨 보는 드라마의 작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드라마를 즐겨 봐도 드라마를 쓴 작가의 얼굴까지 관심을 가지는 이는 드라마 마니아를 제외하곤 많지 않았으니까.

    어쨌거나 경우는 임효곤이 오은채에게 제안한 돈을 수고비로 건넸으니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번 오은채로서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오은채가 인터뷰까지 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됐는데요.’

    ‘돈을 받았으면 돈 받은 값을 해야죠.’

    ‘모자이크로 얼굴로 가렸다고는 해도 오은채 씨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을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알아보면 뭐 어때요?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

    ‘나요, 솔직히 저쪽에서 열 배의 돈을 제시할 때 좀 흔들리긴 했어요. 그쪽이 사례를 한다고 했어도 저쪽에서 제시한 같은 금액을 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거든요. 그래서 눈 딱 감고 돈만 보고 확 저질러 버릴까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그런데 왜 마음을 바꿨습니까?’

    ‘그쪽이 그랬잖아요. 두 발 뻗고 자게 해 주겠다고. 그 말이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적어도 잘 때만큼은 편히 자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전 생에 한석인을 모함했던 그녀의 결말 역시 좋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가 틀린 길을 선택하지 않아 경우는 더 다행이라고 여겼다.

    사태가 해결되자 한석인의 목소리에도 한결 힘이 들어갔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취해 왔던 이미지와는 다른 거친 언변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네거티브가 구태의연한 정치 전략이라 생각했던 그는 자신을 향한 네거티브에도 젠틀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내가 부끄럽지 않다면 언젠가 사람들이 알아줄 거란 생각했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다면 호구가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거기다 그런 이미지가 정치인으로서 그를 심심하고 답답해 보이는 한마디로 지루한 인간이 되도록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강한 어조가 모두 네거티브는 아니며 국회의원에게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는 말투부터 달리하려 노력했다. 아예 코치를 불러다 스피치를 하는 것까지 새로 익혔다.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하게 하고 때론 상대를 향한 비난도 주저하지 않았다.

    달라진 그의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그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다음으론 그에게 별 관심 없었던 당원들이 그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고로 정치인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한 번이라도 언론에 자주 등장해 주목도를 이어 가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 방송국 기자 출신이었던 탓에 얼굴이 알려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의 수많은 지역구 의원들보다 형편이 낫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고정시에서 소소하게 인정을 받던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일약 전국구, 영향력이 있는 국회의원으로 성장했다. 전화위복이란 말은 이럴 때 쓰이는 거였다.

    봉민철은 결국 백기를 들고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고 시인했지만 일을 꾸민 건 캠프 관계자들이지 자신이 아니었음을 끝까지 어필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정치 인생은 끝이었다.

    그리고 한석인은 무난하게 삼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 * *

    “후우,”

    회장실에서 나온 박상우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이번 일을 꾸민 건 그였으니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일을 실패한 그는 아버지의 냉대를 받아야 했다. 꽤 오랜만이었다. 아버지의 싸늘한 시선을 느낀 것은.

    어떻게 다시 아버지의 신뢰를 되돌릴 수 있을까 싶은 그때 그의 앞에 나타난 건 바로 동생 박현호였다.

    “아버지한테 많이 혼났어? 하긴, 아버지가 대놓고 혼내는 분은 아니지. 근데 일이 어쩌다 그렇게 됐어, 그래? 하여간 그 비서라는 애 앙큼해. 어떻게 녹음을 할 생각을 다 했을까?”

    “네가 여기 웬일이야?”

    “내가 여기 왜 왔겠어? 아버지가 불러서 왔지.”

    “아버지가?”

    “나한테 사업상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던데?”

    동생의 말에 박상우는 아버지가 전에 자신에게 말했던 사업 확장 건을 동생에게 넘기는 건 아닌가 싶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이네. 봉민철 그 사람이 입 다물고 가기로 했다며? 덕분에 돈은 왕창 깨졌지만 그 정도로 우리 대진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야?”

    “그 입 다물어!”

    “아이구, 무서워라.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

    말로는 걱정이라고 하지만 얼굴에 웃음을 감출 수 없었으니 자신을 비웃는 동생의 모습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혹시 이번 일 네가 터뜨린 거 아냐?”

    “뭐? 나? 형, 형이 나를 싫어한다는 거 알고 있지만 너무한 거 아냐? 어떻게 나를 의심할 수가 있어? 솔직히 형이 언제 이번 일에 대해서 나한테 말해 준 적 있어? 아버지랑 같이 있을 때도 심지어 봉민철 그 인간하고 같이 있을 때도 입도 뻥끗 안 했잖아. 근데 이제 와서 뭐?”

    강하게 부인하는 동생의 모습에 아닌가 싶으면서도 더 의심스러웠지만 물증이 없었다.

    “형은 참 잔인해. 내가 그때 얼마나 소외감 느꼈는데 기껏 나를 의심하다니……. 그래도 피를 나눈 형제니까 내가 충고 하나 할게.”

    “…….”

    “형을 싫어하는 게 나만은 아니잖아?”

    “무슨 뜻이야?”

    “글쎄, 무슨 뜻일까? 잘 생각해 봐.”

    박상우가 뭐라고 입을 열려던 바로 그때 회장실의 문이 열리고 비서가 나왔으니.

    “전무님, 들어오시랍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어서. 미안.”

    그렇게 동생이 사라지자 박상우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도 동생이 했던 말을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으니.

    ‘형을 싫어하는 게 나만은 아니잖아?’

    인간의 상상력은 꽤나 집요하고 무한했으니 동생이 던져 놓은 개미지옥에 빠진 박상우는 한동안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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