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216화 (216/250)
  • #216. D-Day (1)

    막 도착한 오은채는 곤히 잠들어 있던 강미란의 모습에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그녀를 깨웠다.

    “사모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어머, 내가 그새 깜빡 잠들었나 보네.”

    “평소 안 하던 일을 하시느라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오 비서도 오늘 나 따라다니느라 고생 많았어. 고마워.”

    “아닙니다, 사모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래도. 늦었는데 어서 가 봐.”

    안에까지 따라 들어올 것 없다며 차 키를 받아 간 강미란이 집안으로 들어간 것을 본 오은채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 이른 아침부터 스케줄이 있어 서둘러 오느라 정신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차를 어디다 주차해 뒀는지 잊어버린 탓에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려야 했다.

    처음부터 한석인의 집 앞에 두면 될 일이었지만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으리으리한 집 앞에 자신의 경차를 세워 두기가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 꺼림칙했다.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주차했으니 이렇게 날이 어두워졌을 땐 차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한석인 의원의 수행 비서였던 그녀는 오늘처럼 강미란이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할 때면 그녀의 수행 비서 노릇도 겸하고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있다 보니 강미란이 참여하는 행사가 전보다 늘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보다 같은 여자인 오은채를 편하게 여긴 탓이었다.

    마침내 차를 발견하고 그리로 향하던 그녀는 새삼 대궐 같은 강미란의 집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에 남편은 국회의원…… 누구는 참 좋겠다.”

    드라마 속 회장님들만 산다는 동네에 흙수저 기자 출신 한석인이 살 수 있는 것도 처가 덕분이라 들었다. 거의 준재벌에 속할 만큼 땅 부잣집 딸이었던 강미란은 평생 고생이라고는 해 본 적 없이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와 결혼한 한석인을 두고 돈 보고 결혼했다느니, 처음부터 야심이 있었다느니 수군대기 일수였지만 놀랍게도 두 사람은 연애결혼. 그것도 강미란이 첫눈에 반해 한석인에게 매달렸다나 뭐라나.

    어쨌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두 사람의 금슬은 꽤나 좋은 편이었다.

    “나는 언제 이런 집에서 살아 보나. 에휴, 하늘에서 그냥 돈이 뚝 떨어졌으면 좋겠네.”

    여기저기 주워들은 걸 토대로 혹시나 콩고물이 떨어질까 싶어 힘들다는 국회의원 수행비서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평생 개미처럼 일해도 이런 집은 꿈도 꾸지 못할 거라며 투덜대던 그녀가 마침내 자신의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자 전조등이 커진 그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 사사삭 지나가는 게 보였다.

    “이상하네. 내가 신경과민인 건가?”

    신경과민으로 넘기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누군가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다는 시선을 느낀 게 벌써 여러 날이었다.

    처음엔 선거를 앞두고 특종을 노리는 파파라치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럴 거라면 한석인이나 강미란에게 붙었어야지 왜 자신이 표적이 된 건가 의아했다. 물론 착각한 건가 싶기도 했지만 자신이 쉬는 날 동네에서도 오늘과 비슷한 시선을 느꼈으니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지켜보는 건 분명 자신이었다.

    “진짜 뭐야, 무섭게.”

    항간에 떠도는 스토커 관련 소문이 생각난 그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액셀을 밟았다. 골목을 거의 다 빠져나가 모퉁이를 돌던 바로 그 순간.

    끼이익!

    갑자기 나타난 차 때문에 오은채는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다.

    * * *

    스튜디오 글로리 회의실.

    경우는 신도현과 함께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문자 메시지 알람이 울리자 메시지를 확인한 경우가 말을 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로운데 전면 수정이요? 아니, 왜요?”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하긴 한데요. 지난번 작가님 말씀도 있고 해서 다시 생각해 봤거든요.”

    웹플릭스는 원래 다른 방송국의 콘텐츠를 내보내던 서비스였다. 물론 웹플릭스 내에서 직접 만든 콘텐츠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으나 그 흐름이 활발해진 건 재작년인 2014년부터였다.

    철저하게 시청자의 취향에 맞춰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재미있다며 입소문을 타자 전보다 빠르게 가입 회원이 늘어났다. 다른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콘텐츠가 기업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것은 물론 회사 경쟁력을 상승시킨다는 것을 절실히 체감한 이후 웹플릭스에선 자체 제작 콘텐츠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올 초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한국 회원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한국 시청자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만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러 작가들에게 협업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직 웹플릭스가 생소했던 다른 작가들은 모두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경우를 제외하곤.

    한국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로컬 콘텐츠를 제작하려는 그들의 의도와 달리 앞으로 웹플릭스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잘 알고 있었던 경우는 자신의 드라마를 볼 수많은 해외 시청자들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결정을 신도현은 가장 가까이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기존 TV드라마와는 환경 자체가 전혀 다른 새로운 시스템에 매력을 느낀 신도현은 경우와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드라마를 쓰기로 결정했다. 물론 신도현이 구상하고 있던 정치 스릴러를 개발하는 것으로.

    “이 드라마의 원래 이야기가 그거잖아요. 국회의원 테러 사건.”

    여당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 후보로 나온 다선 국회의원은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온 도둑이 휘두른 칼에 찔려 치명상을 입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직 국회의원이 집을 털러 온 괴한의 칼에 찔려 생명이 위독해지자 나라가 발칵 뒤집힌다.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경찰은 모든 경찰력을 동원하여 마침내 범인을 찾아낸다. 빈집인 줄 알고 들어간 것일 뿐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다, 놀란 마음에 칼로 찌른 거라며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행임을 주장한 범인의 일관된 주장에 우발적인 사건으로 결론 내고 검찰로 송치된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사건이었지만 어차피 맡아봐야 별로 좋은 꼴 못 볼 거란 생각에 다들 꺼리던 와중, 또라이로 불리는 한 검사가 어쩔 수 없이 사건을 맡게 된다. 처음엔 단순 절도범의 우발적인 사건이라 생각했지만 사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이번 사건이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사실 처음 제가 생각한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거든요.”

    “그럼 어떤 이야기였는데요?”

    “대통령 암살 사건이요.”

    “예? 뭐요?”

    놀란 것도 잠시 경우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확실히 국회의원과 비교하면 대통령은 느낌부터가 다르네요.”

    “네. 이렇게 말해서 뭐하지만 국회의원 한 명이 어떻게 된다고 해서 내 삶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진 않거든요. 그런데 대통령은 다르잖아요. 당장 북한과의 관계도 있고 뉴스에서 코스피가 폭락했다는 소리가 들릴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러다 보니 사건 자체보다 그 주변 상황이 너무 복잡해진 탓에 드라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대통령에서 국회의원으로 바꾼 거예요.”

    “그런 말씀을 하신 것 보니까 지금은 생각이 달라지신 것 같은데요?”

    “네, 저 혼자라면 힘들 테지만 작가님하고 같이하면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사람들 그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방송에서 어떻게 저런 걸 내보내냐고, 작가 머리가 이상한 거 아니냐고요. 근데 웹플릭스라면 뭘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셨네. 전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럼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죠.”

    슬쩍 발을 빼는 신도현의 모습에 경우는 웃고 말았다.

    “이제 와서 그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들어 버렸는데요. 지금 안 들려요? 이야기 듣자마자 내 머릿속이 제멋대로 굴러가는 소리?”

    “무슨 생각을 하시는데요?”

    “만약 내가 범인이라면 대통령의 목을 언제 노릴까? 일단 대통령이면 대부분 청와대에서 일하잖아요. 경비가 삼엄한, 곳곳에 경호원들 있고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고. 그러니까 청와대로 곧장 쳐들어간다는 건 불가능. 아무래도 대통령이 외부로 나와야 가능할 것 같은데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전국민이 다 아는 스케줄이 있잖아요.”

    “전 국민이 다 아는 스케줄이요? 그게 뭔데요?”

    “국경일이요. 오전 10시만 되면 TV에서 기념행사 방송하잖아요. 국무총리가 대신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대통령이 참석하죠. 3.1절 기념식이나 광복절 기념식 같은 경우에 테러가 난다면 일본 쪽 극우 단체와 엮기도 좋고 추념식이라면 북한 소행을 의심해 볼 여지도 있는 거고, 정치적인 이유를 따진다면 상대 당이나 자기 당에서 벌인 자작극일 수도 있잖아요. 이러고 보니까 대통령한테 적이 참 많군요. 그런데도 그거 하겠다고 다들 저 난리니…….”

    짧은 시간 동안 거기까지 생각해 낸 경우의 모습에 신도현은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게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 대통령 테러 사건으로 해요?”

    “일단 그쪽으로 생각해 봅시다. 생각해 보다가 안 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괜히 하기도 전에 이거 따지고 저거 따지다 못 하지 말고 마음껏 생각해 보자고요.”

    “그럼 죽일까요, 살릴까요?”

    지난번 두 사람이 같이했던 드라마 <뫼비우스>에서 배우 강범석이 맡은 박경택을 두고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경우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너무 사람 목숨을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우선은 살려 둡시다.”

    “좋습니다.”

    그렇게 틀이 정해지고 나니 이야기에 살이 붙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회의실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피곤하기는커녕 얼굴엔 생기가 가득했다.

    * * *

    운전대에 머리를 기댄 오은채는 그사이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브레이크를 재빨리 밟은 덕분에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마터면 아직 할부도 안 끝난 차를 공장으로 보낼 뻔했다. 남들이 보기엔 초라한 경차였을지라도 그녀에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차였다.

    다시 생각하니 화가 치솟았다. 이 모든 게 갑자기 튀어나온 상대 운전자 때문이란 생각에 그녀는 차에서 내렸다.

    성큼성큼 앞으로 간 그녀는 운전석 유리창을 거칠게 두드렸다.

    “이봐요, 나와서 이야기 좀 하시죠!”

    잠시 후 딸깍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아니, 이것 보―.”

    “오은채 씨 되시죠?”

    알지도 모르는 상대방에게서 자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오은채는 무척 당황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남자는 품 안에서 꺼낸 명함을 건네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할 이야기도 있고요. 오늘은 늦은 것 같으니 나중에 시간 나면 그 연락처로 연락 주세요.”

    그렇게 바람처럼 나타났던 남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우에 홀리기라도 한 게 아닌가 싶었던 오은채는 살며시 볼을 꼬집었다.

    “아얏!”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니었다. 근데 뭐지? 뭐가 왔다가 사라진 거지?

    의아했던 그녀는 그제야 손에 들린 명함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새시대 정치연구소?”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에 의문만 늘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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