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201화 (201/250)
  • #201. 반전 (2)

    뒤늦게 소식을 들은 민 회장의 자식들이 병원으로 달려왔다. 민 회장은 이미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긴 뒤였다.

    “어머니!”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행사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너희 아버지가 안 나오시는 거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화장실 문을 열어 봤더니 글쎄…….”

    그때의 일이 떠오른 탓에 윤정숙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웬만한 사내 대장부보다 기가 쎈 그녀의 처음 보는 얼굴에 자식들 모두 당황하고 말았으니 사태의 심각성이 비로소 느껴졌다.

    “진작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민준호가 소리를 빽 지르자 윤정숙이 원래의 차분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너희 아버지 성격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니? 손님들 다 모신 자리에서 행사고 뭐고 내팽개쳤다는 거 아시면 얼마나 속상해 하시겠어?”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 쓰러지셨는데 행사가 무슨 소용이에요? 이번 일은 어머니께서 너무 하셨어요.”

    민정현까지 거들고 나서자 윤정숙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엄마, 그래도 잘 마무리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민지선이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래도 혼자일 때보다 자식들과 함께 있으니 훨씬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의사는 뭐래요?”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고 곧 회복되실 거래. 그래도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하더구나.”

    “어머니 혼자서 고생 많으셨겠어요.”

    “내가 고생이랄 게 뭐 있어. 수술 받으신 아버지가 고생이셨지. 그나저나 어서 털고 일어나셔야 할 텐데…….”

    다들 걱정되는 마음에 중환자실 문을 바라봤지만 그러고 있는다고 민 회장이 곧바로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고 하니까 정말 다행이에요.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을 텐데 그만 집에서 쉬세요. 오늘 밤엔 제가 있을게요.”

    “아니다, 내가 있어야지.”

    “경우 말 대로 하세요. 어머니는 내일 오시면 되잖아요. 거기다 아직 드레스 차림이세요. 저랑 같이 가세요. 오늘 밤은 제가 집에서 잘게요.”

    “안 서방은 어쩌고?”

    “하루쯤 혼자 잔다고 탈 나는 것도 아닌데요, 뭘. 아까도 여기 오겠다는 거 일부러 오지 말라고 했어요.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자리만 지키고 있어 봤자 소용 없잖아요.”

    “그건 잘했구나. 나중에 회복 하면 그때 얼굴 보면 되지.”

    결국 자식들의 권유에 못 이겨 윤정숙은 딸 지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금방 괜찮아 질 거란 의사의 말과 달리 민 회장은 며칠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했다.

    답답하다는 듯 장남 민정현이 의사에게 따지고 물었다.

    “금방 회복되실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깨어나지 않는 거죠?”

    “원인을 찾자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람의 건강 상태가 다르듯이 수술 후에도 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방 깨어나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는…….”

    “설마 지금 못 깨어날 수도 있다, 이겁니까?”

    “……꼭 그렇다는 의미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듣다 못한 민준호가 나섰다.

    “큰 수술 아니었다며? 그럼, 당신이 수술 잘못해서 이런 거 아니냐고?”

    “수술은 문제 없었습니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른다면서 그러고도 당신이 의사야?”

    “됐어. 준호야, 그만해!”

    “형!”

    민정현의 만류에 의사를 째려보던 민준호가 밖으로 나갔다.

    “저도 답답하니까 그런 겁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럼요.”

    “어쨌든 아버지가 깨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그 사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민 회장을 자식들은 매일 같이 병실에 들러 살폈다. 안색도 조금씩 좋아지고 수치도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민 회장만은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와 상담을 마친 후 아버지 상태를 확인한 민정현이 병실 밖으로 나온 그때였다.

    “형, 나 좀.”

    이미 돌아간 줄 알았던 민준호가 민정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 그때 마침 아버지 면회를 온 경우가 두 사람이 함께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무슨 일인데? 나 얼른 회사 들어가 봐야돼.”

    “형, 어쩌면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 일지도 몰라.”

    “기회라니? 너 지금 아버지 저러고 계시는데 딴생각하는 거야? 솔직히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지금 이게 나만 좋자고 하는 소리 같아? 형 생각해서 그러는 거잖아!”

    “야, 민준호!”

    “창립 기념 파티 때 생각 안 나? 우리 쪽 이사들 제외하고 다들 누나 찬양하기 바빴지. 만성 적자였던 새명 유통 흑자로 돌린 것도 모자라 이번에 화정시에 복합 쇼핑몰 확정이라며? 사람들 다 그 이야기만 하더라.”

    “…….”

    “솔직히 형도 위기감 느꼈잖아. 재경 그룹 회장님까지 누나 치켜세우니까 쩌리 된 기분이었으면서 우리 둘이 있을 땐 좀 솔직해져 보자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버지 수술하신지 얼마 안 됐어. 거기다 깨어나지도 못하고 계시고. 지금 당장 깨어나신다고 해도 회사일을 하는 건 무리지 않겠어? 이런 일일 수록 수술하고 금방 회복된다면 모를까, 금방 깨어나지 않으면 후유증이 오래간다고 하더라.”

    “……너 지금 아버지가 저러고 계신 마당에 그런 소리가 하고 싶어?”

    “아버지가 그렇게 된 건 안타깝게 생각해.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 우리가 아버지 쓰러지라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이럴 때 일수록 형이야말로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지금이야 아버지가 수술 마치고 회복 중이라고 말하니까 괜찮지, 깨어나지 않는 게 알려지면 난리 날 걸. 형도 알잖아.”

    동생이 말이 틀리지 않은 게, 민 회장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주가가 출렁였다. 다행히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 중이란 소리에 주가가 어느 정도 회복되기는 했으나 이런 상태가 오래 된다면 결국 회사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했다.

    “아직 후계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 현재 소식이 알려지면 당장 주가부터 떨어질 거야. 그럼 주주들도 난리가 나겠지. 그사이 아버지 자리 노리는 이사들이 아버지 해임안 들고 나오면 어쩌려고?”

    “아무렴 그렇게까지 하려고?”

    “자리 앞에 의리고 뭐고가 어디 있어? 형이랑 나랑 손잡은 거 보면 몰라? 자기 이익에 맞으면 노선 바꾸는 게 인간이야. 그러니까 남들이 그 기회를 가로채기 전에 우리가 선점해야 한다, 이 말이야.”

    동생의 말이 백 번 천 번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틈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가는 건 아닌지 이게 아버지를 위하는 일인지 민정현은 망설이고 있었다.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니까. 일단 판은 내가 짜 놓을게. 그럼 우리 쪽 주주를 시켜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는 거지. 안건은 회장 해임안이 아니라 회장님 상태에 따른 회장 직무 대행을 선출하자고 하는 거야. 그런 다음 형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거고.”

    “직무 대행?”

    “아무렴 바로 회장 자리에 앉으려고 했어? 아닌 척 하더니 결국 형도 욕심이 났던 거구나?”

    “누가 그렇대? 어쨌든 직무 대행이라면 확실히 거부감도 덜 할 것 같긴 하다.”

    “그렇다니까. 막말로 아버지가 깨어난 이후에 우리도 할 말이 있어야 하잖아. 직무 대행이라면 아버지도 수긍하실 거야.”

    “그래 좋아. 그렇게 한다쳐. 그럼 그 다음엔?”

    “칼을 휘둘러야지. 이번 기회에 우리 편에 서지 않은 사람들 다 쳐내는 거야.”

    “야, 그건 좀.”

    “왜? 우리한텐 명분이 있잖아. 회장님 부재로 회사가 위기에 처했어. 당연히 능력없는 사람은 회사를 나가야 하지 않겠어? 다시 없을 좋을 기회라고 생각되는데?”

    민정현은 동생의 페이스에 말리는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했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두 형제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판을 키우기 시작했다.

    며칠 후, 금융가 찌라시를 통해 민 회장의 상태가 퍼지기 시작했다.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새명 그룹의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회장님의 상태는 안정적이라는 회사 차원의 발표를 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긴급 이사회가 소집되었다. 소집한 사람은 다름 아닌 명동에서 돈을 굴리는 홍 사장이었다.

    * * *

    긴급 이사회가 끝나자 김강철은 즉시 경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정현이 형이 회장 직무 대행으로 뽑혔어.”

    [알았다.]

    “야, 근데 괜찮은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이 됐다는데 다행이지 그럼. 나 바쁘니까 끊는다.]

    “야! 경우야, 민경우!”

    하지만 이미 전화는 끊겼으니.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네.”

    김강철이 투덜대자 뒤로 민지선이 나타났다.

    “경우야? 뭐래?”

    “별말 안 하는데요? 결과만 듣고 끊었어요? 어쩌죠?”

    “저도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 그나마 새명 주식, 나한테 다 넘겼잖아. 자기는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그건 절대 아닐 것 같은데…….”

    그동안 경우가 해 온 일을 안 김강철은 뭐라 하지도 못한 채 답답한 마음을 삼켜야 했다.

    민지선 역시 한숨을 내쉬던 그때, 이사회에 참석한 주주들이 회의실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민정현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아버지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판국에 웃고 있는 오빠의 모습이 민지선은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뭐라 할 수도 없고 민지선은 주주들이 돌아갈 때를 기다려 민정현의 방으로 그를 쫓아갔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그럼 비상사태나 다름 없는데 보고만 있어야 했어?”

    “…….”

    “나도 아버지 자식이야. 너만 자식인 것처럼 그런 식으로 굴지 마. 네가 아버지 걱정하는 것처럼 지금 내가 이러는 것도 아버지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니까. 바쁘니까 그만 돌아가. 너도 할 일 많잖아. 회사가 비상인데 이럴 때일수록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니?”

    민지선은 그 말이 어쩐지 지금부터 새명 그룹은 자신의 것이니 가서 네 일이라 잘 하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제 와서 뭐라 해 봐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민지선은 답답한 마음에 결국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돌아가고 난 뒤 민정현은 회장 직무 대행으로서 아버지가 쓰시던 회장실로 입성했다. 동생 준호가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회장실 책상에 아버지의 명패는 사라지고 ‘회장 직무 대행 민정현’이라고 새로 쓰인 명패가 자리해 있었다.

    늘 서서 지켜만 보던 아버지의 의자를 쓰다듬던 민정현이 마침내 의자에 앉았다. 비록 임시였지만 그토록 고대하던 회장 자리에 오른 민정현은 절대 이 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

    잠든 민 회장의 옆에 앉아 그를 보고 있던 윤정숙 뒤로 김예신이 서 있었다. 김예신은 긴급 이사회가 소집되었다는 사실부터 민정현이 직무 대행이 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줬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었음에도 어쩐지 윤정숙은 잠자코 있었다.

    “이사장님.”

    “소식 알려 줘서 고마워, 예신 씨. 그만 미술관으로 들어가 봐. 나까지 자리를 비워서 바쁠 텐데.”

    “이대로 보고만 계실 생각이세요?”

    “보고 있지 않음? 회장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장남이 회장님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는 거지.”

    “이사장님…….”

    평소와 다른 반응에 의아하긴 했으나 그만큼 충격을 당한 탓에 의욕을 잃은 듯 보였다.

    “예신 씨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근데 난 회장님 곧 일어나실 거라 믿어. 회장님만 깨어나면 다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그러니 걱정할 거 없어.”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김예신은 하는 수 없이 그런 윤정숙을 내버려 둔 채 병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예신 마저 돌아가자 병실엔 정적이 감돌았다. 잠시 한숨을 내쉰 윤정숙이 입을 열었다.

    “얘기 다 들은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눈 좀 떠보지 그래요?”

    윤정숙의 말에 민 회장이 살며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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