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184화 (184/250)
  • #184. 식스 센스 (2)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최영윤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새언니가 엄마에게 붙잡혀 주방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2층 오빠 방으로 향했다.

    “오빠!”

    “내 방에 웬일이야?”

    “그게…… 오빠, 혹시 준호 씨 동생에 대해서 잘 알아?”

    “민준호 동생이라면…… 민경우? 갑자기 민경우는 왜? 아하, 아무래도 시동생이라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구나?”

    “그렇…… 지.”

    “그렇게 걱정할 거 뭐 있어? 어차피 같이 살 것도 아니고. 아니다, 신경을 좀 써야 하려나?”

    “왜?”

    “내가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야…….”

    분명 방안에 둘밖에 없었는데도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영윤의 오빠, 명일은 목소리를 낮춰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둘이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 소문에 의하면 민경우가 자기 형이 하는 말이라면 죽는 시늉도 한다는 거야.”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민준호, 인도 간 거 말이야, 사실은 그 동생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

    “인도에 일 때문에 간 거 아니었어?”

    “야! 생각을 해 봐. 미국이나 유럽이라면 모를까, 인도? 아들을 인도로 보내? 그것도 몇 년씩이나? 출장이라면 모를까 장기간 짱박혀 있던 걸로 봐선 좌천성 인사가 분명해.”

    오빠의 말에 최영윤은 상견례가 있었던 날 경우가 명함을 준 이유가 더욱 궁금해졌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에게서 뭘 봤던 걸까?

    “원래는 거기 사모가 민준호를 엄청 아꼈다는 소문이 있어. 첫째를 제치고 차기 후계자로 밀어주려고 엄청 푸시를 했던 모양이야. 근데 인도로 갔을 때부터 거리 두기를 시작한 거지. 에휴, 우리 동생……. 이제 보니 그 시동생 될 놈이 원수였네. 그놈만 아니었으면 차기 새명 그룹의 사모님이 될 수도 있었던 거잖아.”

    “차기 새명 그룹 사모는 무슨. 그랬다면 준호 씨가 나랑 결혼 안 했을지도 모르지.”

    “무슨 소리야. 그 자식이 그래? 자기가 후계자 됐으면 너랑 결혼 안 했다고? 이 새끼를 그냥!”

    “아니야.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너는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네가 어디가 어때서? 우리 송일도 새명에 꿀리지 않아. 거기다 넌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졸업한 재원이잖아.”

    “그게 뭐 대단한가? 내가 동생이라 오빠 눈에나 좋게 보이는 거지…….”

    한 번씩 의기소침해지는 동생의 모습에 명일은 동생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영윤아, 자신감을 가져. 내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네가 얼마나 대단한 아인데.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왔잖아. 다른 집 자식들 같았으면 돈 주고 졸업장 땄을 일을 넌 오로지 실력으로 해낸 거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할 때 얼마나 멋있었는데. 그때 관객들 얼굴 생각 안 나?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충분히 더 멋진 아이야.”

    “고마워, 오빠.”

    “에휴, 코찔찔이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그런 녀석이 결혼을 한다니 참…….”

    새삼 감회에 젖은 명일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보니 우리 동생,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기분이 이상한가 보구나?”

    “그, 그렇지, 아무래도…….”

    “하긴, 네 새언니도 결혼하기 전에 엄청 싱숭생숭해했어. 그때 진짜 많이 싸웠는데……. 근데, 영윤아. 내가 해 보니까 느낀 건데 결혼이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아니더라. 딱히 달라질 건 없어. 뭐, 같이 살게 된 사람이 하나 더 생긴다는 정도? 그래도 넌 그나마 다행이다.”

    “뭐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잖아.”

    “…….”

    “나나, 네 새언니나 내 친구들도 웬만하면 선봐서 결혼했잖아. 그래도 이렇게 잘살고 있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

    “고마워, 오빠.”

    “이럴 게 아니라 내일 나올래? 오랜만에 같이 점심이라도 하자.”

    “됐어. 나 말고 새언니나 사 줘. 시부모 모시고 시집살이 하면서 얼마나 힘들겠어?”

    “철든 거 보니 정말 결혼할 때가 되긴 한 모양이네. 언제 이렇게 컸지? 철든 모습을 보니까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내가.”

    “오빠도 참.”

    우는 시늉을 하는 명일의 모습에 웃던 영윤은 잠시 명일을 보다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오빠는 항상 내 편이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들어 줄 거지?”

    “그런 질문이 어딨어? 당연할 걸.”

    “내가 용서받지 못할 나쁜 짓을 해도?”

    “내 동생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근데, 만에 하나 그런 일을 했다고 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거야. 난.”

    “고마워, 오빠. 오빠 같은 사람은 오빠 말고 세상에 없을 거야.”

    “당연하지.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오빠를 뒤로 하고 방을 나온 영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는 했다는 거지?”

    영윤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 * *

    “와, 정말 예쁜데?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웨딩드레스를 입은 최영윤의 모습에 감탄한 민준호가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래, 우리 영윤이 정말 예쁘구나. 근래에 본 신부들 중에 가장 예뻐.”

    “감사합니다, 어머니.”

    예비 부부의 예복을 맞추러 윤정숙이 동행했다. 까다로운 윤정숙의 안목을 알고 있었던 최영윤의 엄마가 윤정숙에게 봐 달라며 양보한 결과였다. 덕분에 아직은 불편한 예비 시어머니 앞에서 여러 벌의 웨딩드레스를 갈아입어야 했던 최영윤은 어느새 녹초가 되고 말았다.

    “내가 봤을 땐 이게 가장 나을 것 같은데. 점잖고 세련됐어.”

    “전 두 번째께 조금 더 나았던 것 같은데요?”

    “그건 너무 많이 파였잖니? 양가 어르신들 모셔 놓고 하는 결혼식에 단정치 못해.”

    “하지만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이잖아요. 이왕이면 마음에 드는 웨딩드레스를 입어야죠.”

    아들의 강력한 주장에 결국 윤정숙도 수긍하고 말았다.

    “좋아. 그럼 영윤이가 골라 보거라. 네 마음에 드는 걸로 하자.”

    “그럼 이걸로…….”

    자신의 손을 들어준 예비 며느리의 선택에 윤정숙의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봐라. 영윤이도 이게 제일 낫다잖니.”

    “그거야―.”

    한마디 덧붙이려던 민준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으니 자신에게 팔짱을 끼는 최영윤의 의미를 알아차린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러 벌의 드레스를 갈아입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어머니와의 신경전은 벌여선 안 되는 거였다.

    “알았어요. 이 드레스로 하죠.”

    그렇게 신랑, 신부의 예복을 맞춘 후 세 사람이 찾은 곳은 주얼리샵이었다.

    아직은 보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최영윤을 대신해 윤정숙이 샵 매니저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말해 놓은 거 준비됐죠?”

    “네, 사모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드레스를 고를 때보다 더 설레는 표정으로 기다리던 윤정숙은 잠시 후 무언가를 들고 나오는 매니저의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윤아, 이리 온.”

    진열대 바로 앞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매니저가 케이스의 뚜껑을 열자 영롱한 빛깔의 다이아몬드 반지와 목걸이 세트가 반짝이고 있었다.

    “어, 어머니…….”

    반지를 집어 든 윤정숙이 최영윤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줬다.

    “맞춘 것처럼 꼭 맞네.”

    “너무 과한 것 같아요.”

    “과하다니. 내 며느리한테 내가 이 정도도 못 해 주겠니? 더한 것도 해 줄 수 있단다.”

    자신들을 바라볼 때와는 다르게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최영윤을 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민준호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싶을 만큼 근래에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너도 모르는 건 아닐 테니 하는 소리지만 따지고 보면 네가 내 첫 며느리지 않니? 아들을 장가보내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했는데 겪어 보니 나쁘진 않구나.”

    “어머니…….”

    “너도 알다시피 내가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못 돼. 내 나름 표현을 한다고는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더구나. 그래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내 마음을 표현해 본 거란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어머니 마음 충분히 알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구나. 결혼해서 살다 보면 좋은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을 거야. 때론 내가 미울 때도 있을 거고. 그럴 땐 오늘을 기억해 주겠니? 이런 내가 너를 이만큼 생각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네, 어머니.”

    “그래.”

    윤정숙은 호들갑 떨지 않는 차분한 최영윤이 마음에 들었다. 괜히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보다 이 편이 진중해 보였다. 자식들만큼이나 며느리도 아껴 줘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녀였다.

    “근데, 결혼 앞둔 신부 얼굴이 왜 이렇게 까칠해?”

    “얼마 전까지 독창회가 있어서 피곤했던 모양이에요. 좀 쉬면 나아질 거예요.”

    “그래, 아무래도 몸을 써야 하는 일이니 피곤했겠구나. 이따가 같이 마사지받으러 갈까?”

    “어머니, 그런데는 친정 엄마랑 같이 가는 게 더 편하죠.”

    “아, 그렇겠구나. 그럼 사부인하고 마사지받으러 가렴. 예약은 내가 해 놓으마.”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내가 해 주고 싶어서 그래.”

    소문과는 달리 자신을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에 최영윤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예물까지 다 맞추고 난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 마침내 두 사람의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 * *

    민준호와 최영윤의 결혼식이 열리는 더 퍼스트 밀레니엄 호텔로 하객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부모님의 곁에 서서 함께 인사를 하던 경우는 멀찍이 선 채 손짓하는 김강철의 모습에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왔어? 준비는?”

    “잘했지. 내가 누구냐?”

    “어쨌든 수고했다.”

    경우가 김강철의 어깨를 툭툭 치자 그가 더 가까이 다가가 은밀히 말하기 시작했다.

    “근데, 괜찮을까?”

    “걱정할 거 없어.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니까.”

    “그래도 난리가 날 걸 생각하면―.”

    “쉿! 누가 듣는다.”

    경우의 경고에 김강철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지만 서로 자기들 이야기를 하느라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김강철은 슬그머니 두 손을 내렸다.

    “들어가 있어.”

    “넌 어디 가려고?”

    “신부 대기실.”

    “거긴 왜?”

    “인사는 해야 할 거 아냐?”

    초조해하는 김강철을 내버려둔 채 경우는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혹시 누가 있나 싶어 고개만 살짝 내밀어 안을 살피는데 다행히 신부 대기실에는 최영윤 혼자 앉아 있었다.

    “왜 혼자 있어요?”

    “방금 전까지 친구들이 있었는데 들어가라고 했어요.”

    “네에.”

    “…….”

    “괜찮아요? 결혼 앞둔 신부 얼굴이 왜 그래요?”

    “내 얼굴이 어떤데요?”

    “금방 울 것 같아서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잘 하는 짓인지.”

    “그럼 지금이라도 그만둬요. 아직 안 늦었으니까.”

    경우의 말에 최영윤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뭐라 말하려 입을 달싹이던 그때.

    “잠시 후 민준호 군과 최영윤 양의 결혼식이 있겠습니다. 내빈 여러분께서는 식장 안으로 들어와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시작할 모양이에요. 난 들어가 봐야겠네요.”

    “……네.”

    “그럼 이따 봐요.”

    경우가 천천히 돌아서 신부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최영윤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장 안으로 들어간 경우는 가족석에 가 앉았다. 화촉 점화를 위해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탓에 홀로 앉아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옆엔 누나가 매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또 그 옆엔 아직 이런 환경이 낯선 조카를 달래고 있는 큰형 부부가 있었다. 잠시 후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들 모두 알지 못했다.

    오직 경우만이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마침내.

    “신랑 입장!”

    사회자의 말에 경우가 고개를 들었다. 형 준호가 버진로드를 씩씩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끝에 다다른 민준호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돌아봤다. 눈부신 조명을 받은 채 서 있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신부 입장!”

    사회자의 멘트가 나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해야 할 신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부가 긴장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그럼 다시 한번 불러 보죠. 신부 입장!”

    결혼 행진곡이 연주되고 있었지만 신부의 모습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사람들이 하나둘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신부가 없어졌어요!”

    놀란 얼굴의 경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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