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178화 (178/250)

#178.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 (1)

찰칵, 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직은 카메라 앞이 어색한 신도현이 기자의 요청에 최대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 보려 했지만 영 소질이 없는 듯 딱딱하기만 했다.

드라마 <페르소나>가 인기리에 종영하자 수많은 매체에서 이 드라마를 쓴 작가 신도현을 인터뷰하기 위해 줄을 섰다.

하지만 영 내켜 하지 않는 신도현 탓에 경우는 여러 언론사 중 새명 그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도록 주선했다.

사전에 질문지를 받아 연습하는 등 경우는 당사자인 신도현보다 더 열심히 그를 도왔다.

드라마가 잘되면 가장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어쨌든 배우였다. 현장에서 함께 고생한 PD나 작가는 물론 스탭들까지 주목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르면 팬덤도 생기고 언론에도 자주 노출될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 어떤 드라마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배우였지 작가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경우는 이런 기회가 올 때마다 작가도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자신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어쨌든 스튜디오 글로리 라운지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지켜보며 혹시라도 미리 보내 준 인터뷰 질문지에 없는 곤란한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 감시하며 지켜보는 그였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기자는 열심히 신도현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먼저 작가님, 드라마 <페르소나> 시청률 1위로 종영한 거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전작인 <제로섬>, <뫼비우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드라맙니다. 연이어 대박을 터뜨린 비결이 뭘까요? 혹시 대박 드라마를 쓰는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글쎄요.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건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대박 비결이라…… 그런 게 있다면 저부터 알고 싶네요. 그럼 드라마를 쓰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을 테니까요.”

“대박 드라마를 쓰신 작가님도 드라마를 쓰는 게 어렵다고 느끼시나요?”

“그럼요. 아마 오래 드라마를 쓰셨던 선배 작가님들도 저처럼 드라마 쓰는 게 어렵다고 느끼실 겁니다. 특히나 저 같은 경우는 드라마에 대해 따로 배우지 못한 채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이후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지는 게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드라마 <페르소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후반부에 드라마의 가장 핵심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신인 여배우 하윤의 죽음이 과거 무명 여배우의 자살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예 관련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 사건을 생각하고 쓴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자체가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거든요. 그걸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연예계였고,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을 드라마 속에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실제 일어난 사건을 떠올리게 해 혹시라도 고인이 되신 분께 실례를 범한 건 아닌가 조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그러니까 드라마 속 모습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 말씀이시죠?”

“네.”

기자가 드라마 <페르소나>의 핵심 사건이라 말한 신인 여배우 사망 사건의 실체는 이랬다.

배우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신인 여배우 하윤은 소속사 사장으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는다.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는 재벌 3세가 만나길 원한다는 것. 익히 스폰서에 대해 들어왔던 그녀는 거절하지만 소속사 사장은 여러 방향에서 그녀를 압박한다.

같은 소속사의 배우이자 평소 그녀의 롤모델인 윤혜성까지 거드는 바람에 결국 잘못된 길로 발을 디딘 그녀는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고 끝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 그녀에겐 경찰인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그녀가 왜 죽었는지 알게 되고 복수를 시작한다.

그는 윤혜성을 끌어들여 자신의 복수에 가담하게 하면서 그녀가 죽었다고 위장한다. 별장에 모인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이 다가와서야 윤혜성의 동생이 사실은 하윤의 남자 친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침내 복수를 이뤄 내고, 윤혜성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며 완벽한 마무리를 한다.

“드라마 제목이 <페르소나>예요. 그렇게 지은 이유가 있을까요?”

“배우들이 맡은 역할을 연기할 때 가면을 쓰는 것에 빗대 페르소나라고 하잖아요. 전 페르소나라는 말이 배우들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저도 집에선 형, 회사에선 작가, 지인을 만나면 신복현이 돼서 상황에 맞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내게서 원하는 모습으로요.”

“참, 신도현이란 이름은 필명이라고 하셨죠?”

“네. 솔직히 말하자면 저의 진짜 모습은 찌질하고 남한테 보여 주기 싫은 부분이 많거든요. 신도현이라는 필명을 통해 본모습은 감추고 작가라는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면이 벗겨졌을 때 진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다 그렇게 제목을 지었습니다.”

“단순한 복수극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심오한 철학이 들어간 드라마였군요. 그럼 현재 작가님이 연기하고 있는 페르소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드라마를 재밌게 써서 시청률 대박 나는 작가? 시청자 여러분이 그렇게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드라마를 향한 작가님의 끝없는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드릴게요. 드라마를 쓰신 작가님으로서 <페르소나>의 명장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무래도 죽은 줄 알았던 윤혜성이 다시 등장하는 장면과 윤혜성의 동생이라 알려진 사람이 사실은 하윤의 남자 친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 이렇게 두 장면을 뽑고 싶습니다. 음, 제가 반전이라 생각해 심혈을 기울여 쓴 부분이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저도 그 장면 참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저도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저한테요? 그러세요.”

“기자님이 생각하시는 <페르소나> 명장면 뭐가 있을까요? 제 대답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

“작가님께서 이렇게 재미있는 분이신 줄 처음 알았네요. 음, 저는 하윤의 남자 친구가 죽는 장면이요. 윤혜성의 손에 의해 죽잖아요. 마침내 복수를 해냈다는 안도감,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후회하는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최고 시청률을 찍은 장면이 그 장면이기도 하죠.”

“네. 많은 시청자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네요. 아, 여기, 스튜디오 글로리를 이끌어 가고 계시면서 작가로도 유명하신 민경우 작가님도 계신데요, 작가님께도 한 말씀 여쭤도 될까요?”

“저요?”

기자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경우는 살짝 당황했지만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은 드라마 작가로서 <페르소나>의 명장면을 뽑자면 어떤 장면을 뽑고 싶으세요?”

“음…… 전 맨 마지막 장면이요. 윤혜성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요.”

“아, 윤혜성이 하윤과 처음 만나는 순간을 회상하죠?”

“네.”

“왜 그 장면을 뽑았는지 이유가 궁금한데요?”

“만약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윤혜성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럼 윤혜성도 하윤도 다른 결말을 맺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우리도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적어도 후회하는 선택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요즘 스튜디오 글로리가 드라마 명가라는 소문이 있던데 이유가 있었네요.”

“실은 그 장면 민 작가님이 조언 주셔서 넣은 장면이거든요.”

“아, 뭐예요. 결국엔 그래서 뽑으신 거네요, 그럼.”

기자의 투정에 경우는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크게 후회를 한 자신의 과거를 항상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민경우가 되어 과거로 돌아올 수 없었다면 잘못된 선택을 했던 자신의 인생은 그날 차가운 도로 위가 끝이었다.

그래서인지 경우는 윤혜성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비록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었지만 이렇게까지 감정 이입이 될 줄 몰랐다.

그렇게 길고 긴 인터뷰가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원고 작성 끝나면 기사 싣기 전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참, 기자님. 저 마지막에 물었던 질문은 삭제해 주시죠.”

“왜요? 재미있는데?”

“어쨌든 신 작가 인터뷰잖아요. 오로지 포커스가 신 작가한테 맞춰졌으면 해서요.”

아쉬운 마음에 기자가 입맛을 다셨다.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들이 돌아가자 신도현은 진이 빠진 듯 축 늘어졌다.

“보통 일이 아니죠?”

“네, 대답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나 봐요. 피곤하네요. 그래도 작가님과 미리 연습한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신도현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드라마도 끝났고 당분간은 출근도 하지 말고 좀 쉬어요. 아, 포상 휴가 가기로 했죠? 어디로 가요?”

“사이판이요.”

“가뜩이나 요즘 날씨도 추운데 사이판 좋죠. 부럽네. 준비는 다 했어요?”

“네, 여권부터 만들었어요. 사실 저 여권 처음 만들어 봤어요.”

“잘했어요. 언제 출발하는데요?”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신도현 작가의 인터뷰가 인터넷상에 공개되었다. 아직 드라마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페르소나>의 팬들은 작가 인터뷰에 큰 관심을 쏟았다.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오르며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못지않은 주목을 받자 신도현은 얼떨떨해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는 생각지도 못했던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 * *

“기사가 생각보다 잘 나왔네요.”

“그러게요. 걱정 많이 했는데 인터뷰하길 잘한 것 같아요.”

“작가님 이야기나 하라니까 왜 제 얘기까지 보태셨어요?”

“어느 부분이요?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 주는 제작사 덕분에 드라마 집필에만 올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같은 작가로 누구보다 작가들 마음을 헤아려 주는 민경우 작가의 도움이 컸다. 여기요? 맞는 말씀 했는데요, 뭘.”

“대표님, 그걸 읽으시면 어떡해요? 그리고 작가님, 분명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는 언제 하신 거예요?”

“완성된 원고 보내왔을 때요. 첨가했으면 좋을 것 같아 서면으로 보냈는데 다행히 실어 주셨네요.”

“하긴 이런 알짜배기를 기자 입장에서 놓칠 수 있나요?”

“그래도요. 괜히 다 민망하네.”

“왜요, 난 부러운데.”

“죄송해요, 대표님. 대표님 언급도 했어야 했는데…….”

“농담입니다, 농담. 그래도 잘 하셨어요. 작가님이 말씀 안 해 주셨으면 우리도 섬에서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 모르고 넘어갈 뻔했잖아요.”

김종수의 탓에 경우가 쑥스러워했지만 그 모습을 본 신도현은 오히려 뿌듯해했다.

“제가 현장에 없어서 직접 보지 못해서 얼마나 아쉬웠는데요. 한진명 PD님이 말씀하시길 헬기 타고 오신 작가님이 영웅처럼 느껴졌대요.”

“영웅은 무슨……. 그러지 마세요.”

“미담은 나눌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덕분에 실시간 검색어에 우리 스튜디오 글로리까지 올랐으니 이보다 더 좋은 홍보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러다 민 작가님, 배우들보다 더 유명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이미 유명하시지만 더 유명해지시면 좋죠. 아까 모 PD님이 그러더라구요. 블로그 방문자 수도 배나 늘었다고요. 새 드라마 홍보하는 데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아, 생각해 보니까 요즘 작가님들 인터뷰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혹시 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김종수와 신도현의 모습에 경우는 살짝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그 문제로 마침 대표님께 상의드리고 싶었던 게 있거든요.”

경우가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이러는지 그간 겪은 일이 많았던 김종수가 살짝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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