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177화 (177/250)

#177. 쟁탈전 (5)

자고로 드라마의 OST란 드라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드라마를 감정적으로 보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연히 담당 PD를 선정하는 것만큼이나 음악 감독을 뽑는 것도 까다로웠다.

드라마 OST를 담당하는 음악 감독은 드라마가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숙지한 뒤 등장인물의 감정을 토대로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니 때론 등장인물의 대사 한마디보다 OST를 통해 감정이 더 잘 전달되기도 했다.

당연히 일반적인 가요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반란>의 OST를 부른 사람이 다름 아닌 4인조 걸 그룹 다프네라는 사실에 경우가 뜨악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들이 아이돌 그룹이란 점보다 평소 불러 왔던 노래 스타일이 드라마와 전혀 맞지 않은데 문제가 있었다. 천사 혹은 요정 컨셉의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노래를 주로 부르던 다프네가 <반란> OST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고추장과 아이스크림의 조합이랄까?

“뭐, 남의 드라마에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로맨스 드라마도 아니고 다프네는 좀 아닌 것 같네요.”

“그러게요. 차라리 위치스라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위치스는 걸스힙합을 기본으로 주로 강한 비트의 음악을 하는 걸 그룹이었다.

“거기엔 그만한 사정이 있거든요.”

“사정이라면……?”

“다프네가 소속된 회사가 JT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거든요.”

“그런데요?”

“스타 엔터에서 떨어져 나온 자회사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돌 위주로 관리하는 회사죠. 듣자 하니 이번에 유니언 스튜디오가 JT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했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모기범의 말에 경우가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다프네를 일부러 띄워 주려고 잘나가는 드라마의 OST를 부르게 꽂아 줬다, 이건가요?”

“그런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더라고요.”

“별로 좋은 전략 같지는 않은데…….”

“그러니까요.”

실제로 다프네의 팬과 드라마 <반란> 팬들 사이의 갈등이 조금씩 불거지고 있었으니.

어쨌든 그렇게 한창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세 사람은 마침내 내일 프로덕션에서 보내온 <페르소나>의 OST를 들을 수 있었다.

컴퓨터 파일을 통해 들려오는 노래에 집중한 경우와 신도현. 마침내 노래가 끝이 나자 신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좋은데요? 사실 제가 영어를 못해서…… 영어 가사가 더 신비한 분위기가 난달까? 못 알아들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영어 가사가 그런 분위기를 내는데 한몫하죠. 다른 스토리였다면 모를까,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페르소나>에 꽤 어울리는 노래네요. 물론 가사도 괜찮고요.”

3회부터 새롭게 적용될 주인공 윤혜성의 테마 곡에 두 사람이 좋은 반응을 보이자 모기범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이 OST, 누가 불렀는지 아시겠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한 신도현이 경우를 쳐다봤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리가 아는 사람이라는 건데…… 모르겠는데요. 작가님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럼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누가 불렀냐면요…… 준 리차드 씨요.”

“예?”

“놀라지 마시라니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의 이름이 나오자 누구보다 경우가 놀랐다.

“미국에서 드라마 찍느라 바쁜 준이 왜?”

“전에 준 씨가 내일 프로덕션이랑 같이 드라마 한 적이 있나 봐요.”

“아, 그랬죠. 생각나요.”

“그때 OST 담당했던 음악 감독님이 이번에도 참여하게 된 거구요. 음악을 만들다 보니까 준 씨가 자꾸 생각났다고 하더라구요. 준 씨가 우리 스튜디오 글로리와도 인연이 깊잖아요. 그래서 제안을 했던 건데 흔쾌히 동의해 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준이 한국에 왔던 겁니까?”

“아니요. 시간이 도저히 안 맞아서 음악 감독님이 미국에 다녀오셨죠.”

“고생하셨겠네요.”

“그래도 그 덕분에 이만한 퀄리티의 OST를 만들었으니 오히려 잘한 일이죠.”

외국 가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준 리차드가 불렀다는 사실에 다시 OST를 듣던 경우는 어쩐지 친근함 같은 게 느껴졌다.

사실 경우도 그의 노래 실력을 이미 알고 있었다. 브로드웨이 출신이니 들어 보고 말 것도 없었다. 이대로 실력을 묵혀 두기 아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빛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이거 고마워서 어쩌죠?”

“시청자들한테 반응이 좋으면 결국 준 씨에게도 좋은 거 아니겠어요? 이제 할리우드에서도 주목하는 배운데 이런 것도 쌓이면 준 씨에게 좋은 일일 거예요.”

아이돌 일색인 현재 음악 시장에 드라마 OST는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 OST는 생각보다 괜찮은 수익을 올렸으니 유니언 스튜디오에서 다프네를 밀어주려 하는 속셈을 모르지 않았다.

어쨌든 모기범의 말마따나 준 리차드가 부른 이 OST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신도현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페르소나>는 화요일 방송이 나가자 시청률이 소폭 상승했다.

윤혜성의 1주기 추모식이 열린 섬의 별장에서 하나둘 사람들이 행방불명되고 결국엔 시체로 발견되면서 섬에 갇히게 된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이후 죽은 줄 알았던 윤혜성의 등장에 사람들은 경악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과거 어떤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회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지고 있었다.

덕분에 신도현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복병이 터지기 마련이었다.

MBS 측에서 보내온 시청률 그래프를 보던 경우가 의아한 듯 모기범에게 물었다.

“어제 시청률이 꽤 높게 나왔네요. 뭐 특별한 게 있었나?”

“신인 여배우 하윤의 죽음이 별장 내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는 언급 정도만 나왔죠.”

“그런 것 치고는 시청률이 갑자기 늘었네요.”

“그게…… <페르소나>가 인기가 있는 것도 그렇지만 <반란> 시청률이 요즘 심상치 않거든요.”

“심상치 않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현재 <페르소나>는 내일 프로덕션에서 제작하고 있었다. 그 말은 스튜디오 글로리에서 제작하고 있는 다른 드라마가 있다는 소리. 자연히 챙겨야 할 드라마가 많다 보니 경우는 남의 드라마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니 잘나가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리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효과적인 법. 모기범은 현재 난리가 난 <반란> 커뮤니티를 경우에게 보여 줬다.

―지금 장난하나? 아무리 드라마에 PPL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건 선을 넘었지. 배경이 조선 시댄데 마스크 팩이 웬 말이야?

―나도 거기서 좀 깼음. 장녹수가 피부 관리해야 한다면서 하는 게 쌀가루 마스크 팩.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백성들이 있는데 흥청망청해 대는 연산군이나 녹수 보면서 드라마 흐름 깨지 않으려 했던 것 같기는 한데 드라마 끝나고 바로 마스크팩 광고 뜨니까 이건 아니지 싶다.

―이건 백퍼 연출 문제입니다. 사실 대본은 아무 문제 없어요. 문제는 뭐 하나 제대로 된 연출이 없다는 겁니다. 대본,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훌륭해요. 하지만 갑자기 뚝 끊기는 배경음악에 주인공에 맞지 않은 걸 그룹의 테마 하며 특히 길동이 초능력을 표현하는 싸구려 티 나는 CG까지, 문제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요.

└다프네 까는 거냐? 결투닷!

└다프네가 문제라는 게 아닙니다. 저도 다프네 좋아해요. 하지만 <반란>하고 맞지 않는다는 거죠.

―어쨌든 이런 게 결국 쌓이고 쌓이면 드라마의 전체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결과밖에 되지 않음

―연출이 문제였네. 도대체 누가 한 거냐?

―황성준. 얼마 전까진 MBS 소속이었는데 유니언 스튜디오로 옮김.

―그 사람 잘하지 않았음? 아니면 능력 하락인가?

└이적한 뒤로 실력 퇴보 중임. 최근 그가 연출한 드라마 중 폭망한 거 많음. 대표적으로 오연옥 작가의 <핏빛 와인 잔>, 김준원 작가의 <블랙리스트>가 있음.

└그 유명한 마이너스의 손인가? 손대기만 하면 망하네! ㅋㅋ

└솔직히 저건 대본 탓도 있지. 초반엔 괜찮았는데 갈수록 망했잖아.

└대본만 탓하기엔 오연옥 작가 다음 작품 대박 났던 거 기억 안 남? KBC 주말 드라마 시청률 30퍼센트 넘었음.

생각보다 매운 시청자들의 반응에 경우까지 어지러울 정도였다.

“뭘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런 반응이래요? 어차피 나중에 볼 거지만 시간 내서 보고 싶을 정도네요.”

“사실 드라마는 대본발이라는 말 많은데 이런 거 보면 연출도 아예 무시할 수 없나 봐요.”

“그럼요. 아무리 드라마라도 대본만 가지고 좋은 결과를 얻긴 힘들죠. 일일 연속극이라면 모를까 특히 사극은 신경 써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옷 하나부터 손짓 하나까지 오히려 현대극보다 더 힘든 게 사극이에요.”

“일일 연속극은 왜?”

“보통 아침에 많이 보잖아요. 바쁜데 집중하고 볼 시간이 없죠. 그래서 대사 전달만 정확히 되면 됩니다. 다른 드라마에 비해 연기력보다 딕션 좋은 배우 뽑는 것도 그 이유고요.”

“아하.”

“그래서 <반란> 시청자들이 빠지면서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이겁니까?”

“무시할 수 없는 게 지금 다른 방송국 드라마들도 이렇다 할 게 없거든요.”

모기범의 말마따나 그동안 월화수목 시청자들을 모두 MBS가 잡고 있는 통에 상대적으로 KBC나 SBC의 시청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두 드라마 모두 종영을 앞두고 있었으니 <반란>의 시청자들이 그쪽으로 유입되기도 쉽지 않았다.

타 방송사에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된다면 모를까 <반란>에서 이탈해 갈 곳을 잃은 시청자들이 결국 <페르소나>로 왔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드라마 초반에 불과한 데다 인기가 좋은 덕에 다른 드라마보다 관심을 끌어 접근하기 용이했다는 모기범의 설명이 이어졌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네요. MBS 쪽은 이왕이면 동반 상승이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경우의 말마따나 잘나가던 MBS는 비상사태나 다름없었다.

* * *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입 다물고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마이너스의 손이래요, 마이너스!”

“죄송합니다.”

김동권의 호통에 황성준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드라마를 평가하는 가장 큰 지표는 누가 뭐래도 시청률. 아무리 막장이네, 뭐네 해도 시청률만 높으면 괜찮은 게 이 바닥이었다.

분명 시작은 좋았는데 다른 것도 아닌 연출 탓에 논란이 생기니 황성준 입장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담당 PD 교체하도록 하세요.”

“구, 국장님.”

“그럼 조기 종영이라도 할까요?”

“그, 그건……. 국장님, 이제 드라마 겨우 절반을 넘겼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회복하겠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기회를―.”

“그럼 황 PD가 물러나시면 되겠군요. 책임 프로듀서 자리를 내놓으시겠다면 굳이 담당 PD까지 갈 거 뭐 있습니까? 안 그런가요? 물론 황 PD 입장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제 입장도 있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도 이사진들이 난린데 의리만 생각해 끝까지 갈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아, 알겠습니다. 담당 PD, 교체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만 나가 보세요.”

황성준은 힘없이 국장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현석아…….’

이 일을 조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는 벌써 암담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희생할 순 없었다. 그가 살아야 훗날이 있다는 생각엔 변함없었다. 어떻게든 모가지 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게 그로서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차기 국장 자리도 날아갔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으니.

하여간 이 모든 게 그놈의 욕심 많은 박현호 때문이었다. 그 자식이 걸그룹만 들이밀지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황성준은 자신을 이런 식으로 궁지에 몰아넣은 김동권은 물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박현호를 떠올리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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