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167화 (167/250)
  • #167. 왕관의 무게 (2)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외로이 떠 있는 별 하나, 그곳에 어린 소년 하나가 살고 있었다. 혼자라 늘 외로웠던 소년은 마침내 친구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뚝딱뚝딱 우주선을 만들어 타고 우주여행을 시작하는 소년.

    하지만 아무리 우주선을 타고 가도 주변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친구는커녕 다른 생명체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주선에 경보음이 울린다.

    거대한 우주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

    우주 폭풍을 피하려 하지만 피하려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힘에 자꾸만 끌려가는 것 같다. 그때 보이는 검은색의 균열이 있었으니, 바로 블랙홀!

    놀란 소년은 벗어나려 하지만 밀려오는 우주 폭풍에 결국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결국 정신을 잃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소년이 눈을 뜨자 그곳은 새로운 세계!

    모든 것이 반짝이고 아름다운 새로운 세계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소년을 향해 손을 내미는 한 소녀.

    소년은 그곳에서 친구를 만난다.

    새명 유통이 만든 복합 쇼핑몰 ‘스타 플래닛’의 준공식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무대 뒤로 설치된 대형 LCD 패널에선 영화에 버금가는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영화와 같은 압도적인 영상미와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특히 아역 배우로 유명한 이목찬의 열연이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3년의 기간이 걸린 새명 유통의 복합 쇼핑몰 ‘스타 플래닛’의 준공식이 열린 날, 다행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영상이 끝나고 아나운서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민지선은 이런 공식 행사의 딱딱하고 경직된 모습이 아니라 조금 더 자유로운 모습으로 새명의 복합 쇼핑몰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감 있고 당당한 그녀의 모습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빛이 났다. 누가 뭐라 해도 그녀가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게 준비된 행사를 모두 마치고 대미를 장식할 커팅식을 앞두고 있었다.

    고정시의 국회의원 한석인은 물론이고 국토부 장관과 주무부처 관계자들을 비롯한 VIP 인사들이 오색으로 장식된 커팅 테이프 앞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선 민지선!

    아나운서의 신호에 맞춰 테이프가 잘려 나가자 폭죽이 터졌다. 그사이 도우미가 나눠 준 샴페인을 든 이들이 건배를 외치며 샴페인을 마셨다.

    그렇게 공식적인 행사가 모두 끝이 나자 민지선은 준공식에 참석한 VIP를 직접 모시고 쇼핑몰 내부 투어를 하며 쇼핑몰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다. 함께 자리한 기자들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 댔다. 이때 찍은 사진과 인터뷰 내용은 다음 날 신문에 실릴 예정이었으니 기사의 형식이지만 사실상 ‘스타 플래닛’의 홍보 자료가 될 예정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쇼핑몰로 쇼핑은 물론 먹을거리에 놀거리까지 없는 게 없었으니 참석한 이들은 그 규모와 다양한 시설, 거기다 첨단 기술의 도입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생했다.”

    행사가 완전히 마무리되자 세 아들과 함께 준공식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민 회장이 딸 지선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눈빛에서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을 본 민지선은 감회가 새로웠다.

    “고생했어.”

    “쇼핑몰 멋지네.”

    민회장의 눈치를 보던 민정현과 민준호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엎드려 절 받는 것 같았으나 상관없었다. 이로써 자신이 새명 그룹 후계자에 한발 더 다가간 셈이니까.

    그때 뒤쪽에서 괜히 발끝만 보고 딴청만 부리는 경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모습에 민지선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경우가 고생이 많았어요.”

    갑작스러운 언급에 민 회장은 물론이고, 민정현과 민준호의 시선이 경우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경우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갑자기 나는 왜?”

    “이 쇼핑몰 사업권 따낼 때부터 경우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당장 눈앞의 욕심 때문에 평정심을 잃을 뻔했는데, 경우가 옆에서 조언을 많이 해 줬거든요.”

    “아니에요. 누나가 괜히 그러는 거예요. 제가 무슨 도움이 됐겠어요.”

    “오늘 준공식 홍보 영상도 경우의 아이디어였는 걸요.”

    누나가 자꾸만 자신을 추켜세우자 경우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괜히 그랬든 아니든, 어쨌거나 형제간에 서로 돕는 모습, 보기 좋구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땐 그렇게 도와야 하는 법이다.”

    “네.”

    “네, 아버지.”

    아버지의 말에 민정현은 물론 민준호도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했다.

    민 회장은 어쨌든 자식들이 앞으로도 경쟁자가 아닌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사이가 되길 바랐다. 물론 자식들의 마음은 그와 같지 않았지만.

    * * *

    “아, 현장에 오셔서 직접 보셨어야 하는데. 오늘 누나 완전 멋있었어요, 매형.”

    [누나 멋있는 거야, 내가 더 잘 알지.]

    “으, 닭살! 그대로 인정해 버리면 제가 뭐가 됩니까?”

    [당연한 걸, 뭐.]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경우는 이제 매형이 된 안청모에게 준공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실 청모도 준공식에 초대되었지만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아내가 일을 하는 데 지장이 생기진 않을까 싶어 일부러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진작 매형한테 고맙다고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늦었어요.”

    [뭐가?]

    “신도현 작가님이요. 김은기 PD님께 소개해 주신 거요. 저희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제가 신경 쓸 겨를이 없었 거든요.”

    [그럴 거 같았어. 내 도움이었다기보다 신 작가님 운이 좋았던 거겠지.]

    “그래도요. 솔직히 매형도 알다시피 신 작가님 작품은 좀 트렌디한 편이라 제작 시기를 잘 맞춰야 하잖아요.”

    [그렇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그래서 연출은 누가 맡기로 했대요? 편성은 잡혔다고 이야기는 해 주는데 왜 아직도 연출자에 대한 소식이 없는 건지 모르겠어요. 작가님이야 대본 열심히 쓰시느라 정신이 없으시지만 이번엔 내일 프로덕션 쪽에서 하기로 했거든요. 뭐가 정해져야 서포트라도 할 텐데요.”

    [아, 그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본의 아니게 사활을 걸게 생겼거든.]

    경우는 안청모를 통해 이번 작품에 MBS 드라마국 국장 자리가 걸렸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당연히 김 PD님이 돼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거야, 우리 생각인 거고. 연차로 따지면 황성준 PD가 유리한 건 사실이야. 스펙도 좋고 경력이 화려하잖아. 그동안 연출한 작품들 중 흥행작도 꽤 되고 말이야.]

    “그럼 김 PD님 조금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번 작품이 중요하다는 거지.]

    “이거 본의 아니게 승부욕이 생기는데요.”

    [그래서 마음에 맞고 능력도 되는 연출자를 고르느라 신경 써서 그래. 조만간 결정한다고 했으니까 조금 더 기다려 봐.]

    “알았어요. 고마워요, 매형.”

    [고맙긴. 그럼 수고해.]

    전화를 끊은 경우는 생각이 많아졌다. 본의 아니게 내부 전쟁이 끼어들게 된 셈.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첫 작품을 함께한 인연까지 있었으니 경우는 이왕이면 김은기 PD가 차기 국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게 스튜디오 글로리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러니 그를 위해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 * *

    삼청동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게를 통째로 빌린 민준호는 홀로 여유로운 점심 식사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의 바로 옆엔 조병배가 보초를 서듯 지키고 서 있었다.

    “병배야!”

    “네, 상무님.”

    “세월이란 게 참 야속하더라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동생이 나 없는 사이에 참 커진 거 있지?”

    씁쓸하게 웃던 민준호는 지난번 어머니를 찾아 예당 미술관을 찾았던 일을 떠올렸다.

    6년 동안 인도의 스모그를 마시며 관료들을 만나고 온갖 로비를 한 덕에 하나둘 사업권을 따냈다.

    정말 딴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일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와 동생의 멱살을 잡고 무슨 짓을 할지도 몰랐으니까.

    전화위복이라고, 그것이 자신에게도 유리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회사 사람들은 온통 쇼핑몰 얘기뿐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인도의 인프라 건설보다 눈앞에 있는 쇼핑몰에 관심이 쏠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했던 자신의 노력이 한 줌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거기다 어머니인 윤정숙의 태도.

    ‘어머니 말씀대로 인도에서 일만 했어요. 그럼 저에게도 뭔가 보상을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보상이라……? 그럼 전무는 어떠니? 사장은 무리지만 전무까지는 괜찮을 것 같은데.’

    ‘어머니, 그런 말씀이 아니잖아요.’

    ‘그럼?’

    ‘다 아시면서 왜 모른 척하세요? 제가 지난 6년 동안 인도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어머니가 더 잘 아시잖아요.’

    ‘그래서 후계자 자리를 내놓으라고 나한테 그러는 거니, 지금?’

    ‘…….’

    ‘인도에서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들어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네가 저질렀던 지난날의 잘못을 만회한 것에 불과해. 넌 겨우 출발선에 선 거지. 정현이가 앞서가는 동안. 거기다 이젠 지선이까지……. 내가 여기서 뭘 더 해 주길 바라니?’

    ‘……죄송합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난 늘 너한테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내 기대를 저버린 건 너야. 그러니 다시는 날 실망시키는 일 따윈 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특히 지금 같은 그 태도, 무척 거슬려.’

    결국 그는 그렇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품 안엔 인도로 떠나던 날, 예신을 통해 어머니가 보낸 편지가 들어 있었지만 그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임을 민준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제 누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모든 게 바로 동생인 경우 때문인 것만 같았다.

    “돌아오기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그는 이제야 자신의 현실을 직시했다. 그가 예전부터 두려워했던 사실, 어머니에게도 팽당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자조하던 민준호는 옆에 서 있던 조병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한테 약속한 자리는 못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괜찮습니다. 자리에 연연해서 상무님 뜻을 따랐던 건 아니었습니다.”

    “알지, 알지. 우리 병배, 의리 빼면 시첸 거 내가 잘 알지.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한 건 아니잖아?”

    “…….”

    “그래서 생각이란 걸 해 봤단 말이야. 이대로 가만히 당하는 채로 있으면 이러다 속이 터져 죽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느낀 감정을 동생한테도 똑같이 해 주고 싶은데 말이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리 병배, 나 배신 안 할 자신 있어?”

    “물론입니다. 그때 상무님께서 절 도와주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사람 구실 못 했을 겁니다.”

    “그 마음 변치 말았으면 좋겠다.”

    “걱정 마세요.”

    “그래, 그래서 말인데 주변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내 동생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만으로 즐거운지 민준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경우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알아봐 줘.”

    “네, 상무님.”

    * * *

    그 시각, MBS 드라마국 편집실 복도를 서성이던 김은기는 마침내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등장하자 반색을 하며 다가갔다.

    “한 PD!”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한진명은 김은기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입을 가렸다.

    “아, 선배님.”

    “괜찮아, 괜찮아. 날 새워서 편집했는데 당연히 피곤하겠지.”

    “근데 선배님이 여긴 어떻게…….”

    같은 드라마국 소속이라고 해도 각자 바쁘다 보니 대박작이 아니고서는 다른 PD들이 현재 뭘 하는지까지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김은기의 연차쯤 되면 편집과는 더욱더 거리가 멀었으니, 그런 김은기가 편집실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으니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아, 혹시 누구 만나러 오셨어요? 누군데요? 제가 불러다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나 한 PD 만나러 온 거거든.”

    “저요?”

    의아해하는 한진명을 향해 김은기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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