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150화 (150/250)
  • #150. 날개 단 호랑이 (5)

    “야, 수습. 너 이걸 기사라고 써 왔냐?”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녀?”

    “도대체 입사 시험은 어떻게 통과한 거야? 혹시 낙하산이야?”

    대진일보 연예부 이성철 기자는 부쩍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이번에 새로 들어온 수습기자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탓이었다.

    진짜로 낙하산이라 뒤에 어마어마한 배경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이성철에게 붙여 준 수습기자는 배우려는 자세도 없고 아무리 쪽을 줘도 움츠러드는 기색이라곤 없었다. 오히려 뚜껑이 열리는 건 이성철 본인.

    연예부 기자란 모름지기 퇴근 후에도 언제 일이 터질지 알 수 없었으니 휴대폰을 분신처럼 화장실 갈 때도 꼭 가지고 가야 했다. 근데 이놈은 퇴근만 했다 하면 감감무소식이니 열을 받을 수밖에.

    “아직이야?”

    “네.”

    “됐으니까, 이 기자라도 가서 취재해. 제보 받았는데 그냥 넘길 순 없잖아. 근데 그 제보자 확실해? 잘못 본 건 아니래?”

    “눈썰미는 좋은 놈입니다. 걱정 마세요. 근데 부장님, 진짜 이놈 뭐 있는 겁니까?”

    “누구? 수습?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

    “그렇잖아요. 저 수습 때도 이러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잘릴까 봐 군기 바짝 들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잖아요. 근데 이놈은 배 째라는 식이니.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더란 말이죠. 그러니까 이제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죠. 네?”

    이성철의 끈질김에 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디서 주둥이 나불거리지 말고 너만 알아 둬. 회장 사모님 먼 친척뻘이래. 가까운 친척은 아니고. 그럭저럭 인 서울 졸업은 했는데 취직을 못 해서 집안 식구들 걱정이 많다나 뭐라나.”

    장난으로 물어본 말이었는데 진짜라는 사실에 이성철은 깜짝 놀랐다.

    “지, 진짜예요?”

    “어디서 듣고 와서 물어본 거 아냐?”

    “그냥 물어본 말이었죠. 하아, 난 것도 모르고 완전 갈궜는데.”

    “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 그냥 하던 대로 갈궈.”

    “낙하산이라면서요?”

    “낙하산이 뭐 다 같은 낙하산이냐? 로열패밀리만 아니면 됐지. 취직을 못 해서 체면상 어쩔 수 없이 꽂아 준 거라고 하니까 너무 신경 쓸 거 없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고 이전처럼 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이성철은 뭔가 생각난 듯 부장에게 물었다.

    “혹시, 그 낙하산 저한테 일부러 붙여 준 겁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아니죠? 부장님이 붙여 주신 거죠?”

    “그게…… 전무님이 어떻게 아셨는지 네가 적당할 것 같다며 너한테 붙이라고 하긴 하셨다만…….”

    “전무라면…… 박현호 전무님?”

    고개를 끄덕이는 부장의 모습에 이성철은 그만 웃고 말았으니.

    “하, 하하, 하하하.”

    “왜 이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아닙니다. 말짱합니다. 걱정 마세요.”

    “진짜 괜찮아?”

    “네. 참, 혹시라도 제가 낙하산 존재 알고 있다는 거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당연하지. 원래 윗선에서 낙하산은 함구하라고 지시한 거 몰라? 네가 하도 지랄 지랄하니까 할 수 없이 말해 준 거지, 아니었으면 나도 말할 생각 없었다고.”

    거기까지 들은 이성철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재작년인가? 자신이 쓴 기사를 의심하며 박현호가 사람을 붙인 적이 있었다. 기자 생활 몇 년인데 낌새 이상한 놈들은 금방 티가 났다. 덕분에 한동안 몸을 사려야 했다.

    얼마 안 있다가 없어졌길래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해는 됐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서 뒷조사를 그만뒀지만 어쩐지 찜찜했겠지. 그러니 취직자리를 구하는 친척에게 원하는 것을 주는 대신 감시를 시킨 거고.

    ‘그러니까 아직도 날 의심한다 이거지?’

    한번 생긴 의심을 완전히 지우기란 어려운 법이다. 다행히 뒷조사를 하는 걸 안 뒤 김강철과 직접적으로 연락한 적은 없었다. 딱히 그럴 일도 없었고.

    그런데 그런 자신을 아직까지 의심해 저런 수습까지 붙여 놓은 걸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수습이 일을 어느 정도라도 하면 모를까 완전히 미운털이 박힌 상태였으니 이성철은 당한 만큼 되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분이라도 풀릴 테니.

    “그럼 저 취재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와.”

    마치 하늘이 기회를 내려 주기라도 한 듯 제보가 들어왔다.

    최근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가 포장마차에서 취객과 실랑이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이 출동해 인근 경찰서로 갔다는 비교적 상세한 내용의 제보였다.

    크게 주먹다짐을 한 것도 아니고 단순 시비였으니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래도 일단 취재를 나가야 했다. 제보라는 게 원래 말로 듣는 것과 직접 현장에 가서 알게 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대상이 <블랙리스트>에 출연하는 정윤석.

    만약 일의 치명도에 따라 배우는 물론 그 뒤에 있는 ‘유니언 스튜디오’의 박현호에게 물을 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이성철은 제보가 들어온 포장마차로 출발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기가 딱 좋았다. 첫 방부터 대박을 터트렸던 <블랙리스트>는 7화를 기점으로 견고하던 시청률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세 번째 시리즈였으니 아무래도 전작과 겹치는 이야기가 있었고, 시청자들이 싫증을 느낀 탓이었다.

    매번 비슷한 패턴의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니 시청자들의 이탈을 막을 수 없는 일.

    거기다 선한 이미지의 정윤석이 기존 이미지를 벗고 악역으로 새롭게 변신했다고 하나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니었는지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느낌이라 솔직히 매력적이진 않았다.

    “이럴 때 폭탄이 터지면 참 볼만하겠어. 그러게 가만히 있는 사람은 건드리는 거 아니란 거 안 배웠나 몰라.”

    이성철의 차는 제보가 들어온 포장마차로 빠르게 달려갔다.

    * * *

    “그 기사 봤어?”

    “무슨 기사?”

    “정윤석!”

    “아, <블랙리스트>? 제목 따라간다더니 이러다 정윤석 블랙리스트 오르는 거 아냐?”

    “아무렴 그렇게까지 하려고.”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대? 하차하는 거야?”

    “당연한 수순 아냐? 원래 문제 생긴 배우들은 죽는 걸로 하차시키잖아. 뭐, 악역이니까 죽이면 깔끔하겠네.”

    “하긴. 솔직히 정윤석이 그 역에 안 어울리긴 했어. 악역은 눈매도 좀 날카롭고 악랄한 데가 있어야 볼 맛이 있는데. 정윤석은 좀 순둥이 이미지잖아. 연기가 어색하다기보다 몸에 안 맞는 역할이었다고나 할까?”

    “얼씨구 평론가 납셨네. 그럼 이제 정윤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대로 연예계 은퇴하나요?”

    “에이, 그냥 단순 시비라며? 이것도 기존 팬들이 난리를 쳐서 하차하는 거잖아. 자숙하고 있다가 시간 지나면 또 나오겠지.”

    “하긴. 자고로 연예인 걱정은 하지 않는 거랬는데.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그러게 술을 마실 거면 곱게 마시지. 괜히 본인도 그렇지만 드라마에도 피해를 준 거 아냐?”

    “피해는 무슨. 안 그래도 <블랙리스트> 시청률 요즘 떨어지고 있었잖아. 오히려 이번 일로 정윤석 어떻게 하차하나 보려고 시청률 오르는 거 아냐?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것도 있잖아.”

    “그거야 모르지. 완전히 미운털 박혀서 있던 시청자도 떨어져 나갈지도. 근데 이러다 <열세 번째 달> 시청률 좀 오르려나?”

    “같은 시간대 경쟁 프로도 아닌데 시청률 영향은 없겠지.”

    “그래도 반사 이익이라는 게 있잖아. 요즘 <열세 번째 달> 완전 물올랐던데? 시청률 더 오를 거 같더라.”

    “하긴.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거라고 같은 계열사라 그런지 S&Media 쪽 드라마 잘됐으면 싶더라니까.”

    “잘하면 우리도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으려나?”

    “왜? 그쪽으로 가고 싶어?”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냥 같은 계열사니까 관심이 간다, 이거지.”

    “꿈 깨. 홈쇼핑하고 케이블하고 같냐?”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건 또 모르잖아.”

    “하여간 꿈도 야무지다.”

    신상 겨울 외투의 홈쇼핑 방송을 앞두고 상의할 일이 있어 홈쇼핑이 있는 11층에 다녀오던 김강철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난 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정윤석에 관한 기사가 바로 이 손에서 나온 것을 아는 사람은 소수 몇 명뿐이었으니.

    모든 일은 이성철에게 온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정윤석은 포장마차에서 일행과 술을 마시다 옆 테이블에 있던 이들과 폭행 시비가 붙어 결국 경찰서까지 간다. 하지만 쌍방이 잘못했던 일이라 서로 합의해 일을 잘 마무리 지었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으니.

    하필이면 그가 술을 마셨던 포장마차의 알바생이 이성철과 아는 사이, 혹시나 싶어 제보를 넣었던 것이다.

    경찰서까지 취재를 간 이성철은 자기 이름으로 기사를 내고 싶은 욕심은 있었으나 그랬다간 박현호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결국 김강철에게 넘기고 말았다.

    이성철에게서 소스를 받은 김강철은 이를 다른 기자에게 재차 넘긴 것이고.

    별일 아닌 것 같은 이 일이 파급력이 있었던 건 정윤석과 함께 포장마차에 있었다는 일행이 다름 아닌 유명한 여자 연예인.

    결국 여자가 섞이면 없던 말도 생기는 게 이 바닥이었으니 폭행 시비도 그랬지만 열애설까지 물어뜯을 게 많았던 통에 한번 터진 기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그동안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기존 팬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정윤석은 하차 요구를 받게 되었다. 안 그래도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었던 <블랙리스트>로서는 악재였던 셈.

    반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열세 번째 달>은 서서히 시청률의 흐름을 탄 상태였다.

    박경준의 이별 선언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과거의 송혜원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경준이 그러는 이유가 미래의 자신 때문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그저 자라 온 환경 탓에 자신을 위해 물러서려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박경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을 벌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때문에 그녀의 선택으로 인해 현재 송혜원의 삶이 뿌리째 흔들린다. 그 결과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예상치 못한 전개가 펼쳐지고 있었으니.

    초반 큰 특징을 보이지 않았던 연출력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해 시청률 견인에 한몫하고 있었다.

    마침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김강철의 휴대폰이 울렸다. 경우였다.

    “대낮에 어쩐 일이야?”

    [너 혹시 아는 평론가 있어?]

    “갑자기 평론가는 왜?”

    [필요할 것 같아서. 어쨌든 몇 명 섭외 좀 해. 기사 몇 개 쓰고 TV비평 같은 데 출연하면 좋겠어.]

    “우리 쪽 우호 기사 써 주는 곳에 부탁해 볼게. TV쪽은 MBS가 적당할 것 같고……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지상파 드라마를 위협하는 케이블 드라마! 이왕이면 다음 편 드라마 방송 전까지, 오케이?]

    “왜? 시청률 때문에? 너네 드라마 요즘 시청률 매주 기록 경신이라며? 안 그래도 곧 있으면 시청률 1위 달성하겠던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래, 네 말대로 이대로 가도 시청률 1위는 할 것 같단 말이지. 근데 다 끝날 때 돼서 시청률 1위 하는 거랑 중간에 바뀌는 거랑은 차이가 있지 않겠냐? 이왕이면 그 시기를 좀 앞당기고 싶단 말이지.]

    “평론가들이 움직이면 시청률이 더 오를까?”

    [전문가들이 좋다고 하면 없던 관심도 생기는 게 사람 심리니까. 어쨌든 수고 좀 해 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의 전화에 아는 평론가가 어디 있냐고 투덜거리던 김강철은 이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각종 언론에서는 비슷한 논조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독점이나 마찬가지였단 지상파의 시대가 끝이 난다는 이야기였다.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콘텐츠가 늘어 가는 상황에서 시청률을 독점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게 문제라 꼬집었다.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면 5퍼센트대의 시청률 하한선도 곧 무너지게 될 거라고.

    거기다 케이블 방송사가 자본력과 해외 인재 영입으로 퀄리티를 앞세운 프로그램들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케이블 프로그램들이 지상파 프로그램을 위협하면서 독점 체제나 마찬가지였던 방송 시장이 무한 경쟁 체제로 달라질 거라며 마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는 듯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굳이 <열세 번째 달>을 거론할 필요도 없었다. 퀄리티 높은 케이블 프로그램은 결국 <열세 번째 달>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관심 없던 이들도 한번 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경우의 예상대로 새로운 시청자들이 빠르게 유입이 되기 시작했으니.

    마침내 일일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를 제외한 지상파의 모든 드라마를 누르고 케이블 드라마 <열세 번째 달>이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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