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138화 (138/250)
  • #138. 반격 (3)

    송지현을 데려다주기로 한 경우는 차 안에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집단 창작,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사람 생각이야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또 너무 따지신다!”

    “생각이야 바뀔 수도 있긴 한데…… 기억하기론 되게 완강하셔서 의외란 생각이 들어서요.”

    “이번에 <뫼비우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주인공이 위기에 빠진 그 순간에 그렇게 반전을 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왜요? 작가님이야 말로 저 같은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 능하시잖아요. 제가 얼마나 부러워하는데요.”

    “그러니까요.”

    “?”

    “혼자서는 생각 못하는 일을 함께, 같이 생각한다면 두 사람을 합한 그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죠. 저도 이번이 두 번째라 일하면서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제가 가진 생각의 한계에서 벗어나면 훨씬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구나 하고 말이죠.”

    “내 말이요. 그리고 혼자 일하면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솔직히 중압감 느낄 때가 많았거든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내가 원래 성격이 그렇게 까칠하지 않았는데 이게 다…… 얼굴이 왜 그래요? 영 못 믿겠다는 사람처럼.”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우가 시치미를 떼자 송지현이 살짝 눈을 흘겼지만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쨌든 송지현이라는 이름값이 있었으니 그녀가 느꼈을 심적 부담은 경우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을 거라 생각됐다.

    “세 분이 같이 일하는 걸 보니까 어쩐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처음에 일 시작했을 땐 참 즐거웠는데 요즘엔 일하는 게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거든요. 다른 거 다 떠나서 그게 제일 부럽더라구요. 내가 좋아하는 일 즐겁게 하고 싶으니까.”

    “어쨌든 작가님이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하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혹시 따로 생각한 아이디어라도 있나요?”

    차는 어느새 송지현의 집 앞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은 관계로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할 수 있었으니 그녀의 참여로 SBC와의 세 번째 프로젝트 역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 * *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에스더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전작 <비밀 요원>의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들이 모조리 해소되며 <마르스>가 끝이 났다. 덕분에 시청률이 대폭 상승한 것은 물론 인터넷 게시판이 난리가 난 정도로 어마어마한 반응이었다.

    - 그러니까 북한 고위층의 사생아라 이거지? 복수를 꿈꿨던 거고?

    - 체제 전복이 남한을 말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었네.

    - 완전 불쌍. 철저하게 이용당하다가 버림받은 거잖아.

    -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음.

    └ 모르겠으면 처음부터 다시 보고 오셈. 여기서 헛소리하지 마시고!

    - 그럼 이수철한테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님? 난 둘 사이에 뭔가 있을 줄 알았더니.

    └ 그거는 모르는 일. 속편이 나오면 알 수 있지 않을까?

    - 제작진들 제발 속편도 만들어 주세요. 이번엔 우리 수철이도 같이 등장시켜 주세요.

    - 속편 제작 시급!!!!

    이로서 <마르스>와 <뫼비우스> 두 드라마 사이 시청률 대결의 최종 승자는 <마르스>가 차지하게 되었다. <마르스>에 참여한 배우와 스탭들 앞날이 꽃길이 펼쳐진 것은 물론, 책임 프로듀서인 최지연은 입지가 더욱 단단해졌다.

    거기다 SBC 내 ‘유니언 스튜디오’의 영향력 또한 커졌으니 박현호를 등에 업은 최지연은 다음 수순을 위해 물밑 작전을 시작했다.

    박현호의 말이 된 오진원 대표는 SBC의 이사진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전효상 국장이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전효상 국장이야 말로 낙하산 아닌가요?”

    “스튜디오 글로리와 한다는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건 특정 제작사를 밀어주는 것밖에 안 되죠. 우리나라 제작사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특정 제작사와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커넥션이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정 프로젝트가 하고 싶었으면 여러 제작사도 참여하게 했어야죠.”

    “별다른 활약도 없었으면서 국장 자리, 솔직히 과분하죠. 한석인 의원의 입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정도 했으면 한석인 의원의 체면은 세워 준 것 같은데요.”

    전임 홍세환 국장이 물갈이 되면서 그와 알게 모르게 얽혀 있던 이들 또한 갈려 나간 탓에 방송국 내에서 입김이 약해졌던 이사진들은 오진원의 이 같은 행보를 은근히 반겼다.

    전효상은 뒤에서 자신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뫼비우스>에 이어 <마르스>의 활약을 기뻐할 뿐이었다.

    2013년으로 해가 바뀌기도 했고 다음 드라마 이야기도 할 겸 경우는 겸사겸사 SBC를 찾아 국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국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해가 바뀐 지 한 달도 더 지났어요. 새해 인사 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설이 지나야 진짜 새해죠. 빨리 오고 싶었는데 안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저까지 보태고 싶지 않아 일부러 늦게 왔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이번엔 별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올 걸 그랬네요. 다 저 같이 생각한 모양입니다.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시청률 기록 세웠다면서요?”

    “왜요? 섭섭해요? <뫼비우스>도 못지않았던 걸로 아는데요.”

    “원래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법이죠.”

    “그 말은 다음 번엔 1위를 탈환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그게 또 그렇게 됩니까? 근데 어디 1위 기록 세우기가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민 작가한테는 쉬운 일 같은데요.”

    “그럴 리가요. 저도 힘듭니다.”

    “난 왜 민 작가가 하는 말이 엄살처럼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다음 편성 말입니다. 작년보단 좀 늦은 4분기가 적당할 것 같은데요. 3분기까지는 완전히 차 있어요.”

    “저희야, 그럼 좋죠. 지금부터 준비할 시간도 충분하고요. 참, 이번엔 저희 프로젝트에 송지현 작가님이 함께 하시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초반, 경우를 대하는 게 껄끄러웠던 전효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프로젝트가 잘 되고 있어 그때만큼 경우가 어렵지는 않았다.

    거기다 KBC나 MBS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SBC만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덕분에 좋은 시놉은 SBC로 먼저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마르스>가 SBC로 온 것도 <뫼비우스>의 영향이 없지 않았으니 당연히 경우가 고마울 수밖에.

    지금처럼만 해도 나쁘지 않은데 송지현까지 참여한다면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 앞으로도 탄탄대로가 펼쳐진 것 같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얼마나 갈지 그때까진 알지 못했다.

    * * *

    2013년 3월, 스튜디오 글로리에선 SBC와 하게 된 세 번째 프로젝트의 회의가 열렸다.

    경우를 비롯한 송지현과 김해영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집필엔 송지현의 오랜 보조 작가 곽선미와 고명희의 보조 작가 출신 이시연이 결정 됐다.

    이시연은 미리 시리즈를 한 번 집필한 경험이 있었지만 시청률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아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럼 플롯은 그런 식으로 하기로 하고…… 문제는 제목인데, 생각해 보신 거 있으세요?”

    경우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드라마 아이디어를 잡거나 플롯을 짜는 것보다 제목이 가장 어려웠으니 단번에 시청자들의 뇌리에 박힐 만한 임팩트가 있으면서 쉽게 잊히지 않는 제목을 정하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제목을 짓는 걸 가장 어려워하기도 했다.

    “송 작가님도 생각 안 해 보셨어요?”

    “나야, 웬만한 건 다 써 봤으니까. 드라마 한두 편 써 봤겠어요? 이미 짜낼 건 다 짜내서 더는 없어요, 더는.”

    믿었던 송지현마저 고개를 젓자 경우의 고심은 깊어졌으니 사실 다른 프로젝트와 달리 이번 프로젝트는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이 모두 여자들인 만큼 소재는 멜로, 즉 사랑이 베이스로 깔린 이야기였다.

    물론 경우가 끼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이전에 보았던 평범한 멜로는 아니었지만 멜로엔 유독 약했던 경우 역시 제목이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슬그머니 손을 드는 한 사람, 바로 곽선미였다.

    “저,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열세 번째 달>이 어떨까요?”

    “오, 좋은데요.”

    “그러게, 난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러고 보니까 12월 32일이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어쩐지 그 노래도 생각나고, 완전 우리 드라마하고 잘 맞는데! 그렇죠, 민 작가님? 민작가님?”

    “네?”

    “제목 괜찮냐고요?”

    “아, 네. 괜찮네요. 그럼 이번 드라마 <열세 번째 달>로 하죠.”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익숙한 제목에 놀랐던 경우는 생각해 보니 자신이 쓴 드라마 <열두 번째 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가 되기 전 안청모에게 처음 보여 줬던 대본이 바로 <열두 번째 밤>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작년 대만 드라마 선정할 때 본 게 아닐까 싶었겠지만 그때 곽선미는 스튜디오 글로리 소속 식구가 아니었고 송지현도 지금처럼 회사에 매일 출근하던 때가 아니었으니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경우는 어쩐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시놉도 이 정도면 얼추 나왔고 제목도 정해졌으니 이제 중요한 캐스팅을 해야겠죠?”

    “먼저 말씀 꺼내시는 거 보니까 생각해 둔 배우가 있으신가 봐요.”

    “네. 여주인공으로 서도희 씨 어때요?”

    송지현의 입에서 서도희라는 이름이 나오자 이시연과 곽선미는 물론 김해영까지 놀란 눈치였다.

    드라마보단 영화에 출연하는 서도희는 최고의 몸값에 걸맞은 호소력 짙은 연기로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사랑 받는 여배우였다. 강범석처럼 영화 출연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라서 캐스팅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으나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근데 우리 작품에 출연할까요?”

    “우리 작품이 어디가 어때서요?”

    “서도희 씨, 작품 선택에 남다른 기준이 있는 것 같아서요. 솔직히 서도희 씨한테 까였다는 작품들 중에 수작도 꽤 있다고 들었거든요.”

    “뭐, 특별한 건 아니고 무슨 필이 와야 한다나 뭐라나. 그래도 우리 드라마는 할 거예요. 서도희 씨 데뷔작이 내 드라마였으니까.”

    “그랬죠, 참.”

    “전에 만나서 술 한 잔 했는데 도희 씨가 먼저 그러더라구요. 그때 너무 못 해서 미안하다고 만회하고 싶다고요. 마침 여주인공하고 캐릭터도 잘 맞는 것 같은데 여러분만 괜찮다면 서도희 씨로 캐스팅 했으면 싶어서요.”

    “당연히 좋죠.”

    “서도희 씨면 감사하죠.”

    만장일치로 찬성하자 누구보다 의견을 낸 송지현이 기뻐했다.

    하지만 캐스팅은 작가들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놉시스를 받은 뒤 긍정적인 답변을 해 온 서도희 측과 계약을 위해 스타 엔터에 다녀왔던 모기범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모 PD님 혹시 스타 엔터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게요. 서도희 씨는 못 만났고 최원혁 실장을 만나고 왔는데요.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서도희 씨가 출연하는 대신 이영 역에 소속 아이돌 가수를 캐스팅하게 해 달라고요.”

    주연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소속 배우를 끼워 팔기 한다는 건 많이 들어 봤지만 솔직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거기다 그쪽에서 이야기한 이영이라면 조연임에도 비중이 상당히 높은 중요한 역할이었다. 욕심낼 만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나 줄 수 없는 일.

    “어쩐지 지금까지 일이 너무 순조롭기는 했어요. 그래서 이름이나 들어 보죠. 그 아이돌 가수가 누군데요?”

    “데뷔한 지 5개월 된 4인조 걸그룹 에바의 멤버 하주라고…….”

    모기범의 말을 들은 경우의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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