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예상치 못한 수확 (1)
- 요즘 월화수목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드라마죠, MBS <얼어 죽을 로맨스>와 SBC <다잉 메시지>.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바로 한 제작사에서 만들었다는 점인데요, 두 드라마 제작사의 대표이자 드라마 작가이신 ‘스튜디오 글로리’의 대표 민경우 작가님을 모시겠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 요즘 ‘스튜디오 글로리’에서 제작하는 두 편의 드라마 <얼어 죽을 로맨스>에 이어 <다잉 메시지>도 슬슬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 상승 중에 있는데요, 두 드라마 인기, 실감하십니까?
- 네, 시청률은 물론이고 인터넷에서의 반응도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작가님, 이번 드라마 <다잉 메시지>, ‘크리에이터’로서 참여했다고 하셨는데요. 정확히 말해서 ‘크리에이터’란 뭐고 ‘크리에이터 시스템’이란 뭐라 할 수 있을까요?
- 드라마 공동 창작 시스템을 ‘크리에이터 시스템’이라 하는데 여러 작가의 의견을 모으니까 스토리 구성의 시행착오가 줄고 아이디어가 좀 더 다채롭다는 장점이 있죠. 여기서 드라마 제작 전체를 지휘하는 책임자를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 아, 생소한 개념이라 조금 어려운데요. 우리가 흔히 아는 미드라고 하는 미국 드라마 대본 집필에 여러 작가진들이 참여한다고 하는데 그거랑 같다고 보면 됩니까?
-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미드는 에피소드 형태의 시리즈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크리에이터가 개별 에피소드를 집필할 작가를 지명하죠. 물론 각 회별 담당 작가가 달라지니까 전체 흐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크리에이터가 이 부분을 잡아 주죠.
- 아, 마치 교향악단의 지휘자 같은 느낌이군요.
- 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짧게는 16부작, 길게는 50부작의 드라마를 작가 한 사람이 끌고 갑니다. 이야기가 전체 연결되어 있다 보니 장르물이 아닌 드라마에서는 적용이 어렵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수가 협력해 아이디어를 수정, 보완하고 드라마 집필은 소수의 작가들이 하고 있죠. 최대한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게 저희들의 목표입니다.
- 그렇군요. 여기서 민 작가님의 데뷔작이기도 한 <셀룰러 메모리>를 빠뜨릴 수 없는데요. 신인 작가의 데뷔작임에도 탄탄한 구성으로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같은 범죄 수사물인 <다잉 메시지>와 <셀룰러 메모리> 차이점이 뭐가 있을까요?
- 민경우가 집필을 했고 안 했고의 차이? 농담이구요, <다잉 메시지>가 저희 ‘스튜디오 글로리’에서 이 ‘크리에이터 시스템’으로 제작한 첫 번째 드라마입니다. 그만큼 저희가 완성도 높은 대본,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드라마로 제작했다고 자부합니다.
- 네에, ‘스튜디오 글로리’하면 ‘올웨이즈’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거거든요. 미국 드라마 스트리밍 서비스. 이거 날이 갈수록 반응 폭발적인 거 알고 계시나요?
- 알고 있습니다.
- 어떻게 이런 시스템을 생각하셨어요? 저도 미드 좋아해서 자주 이용하거든요.
- 발상의 전환이라고 보면 됩니다. 드라마는 집에서 TV로 본다는 개념을 엎어 버린 거죠. 지금이야 미드에 한정되어 있지만 곧 국내 드라마도 언제 어디서건 볼 수 있도록 시스템화할 계획입니다.
- 미드에 이어 국내 드라마까지. 기대되는데요. 그럼 하루 빨리 그런 날이 오길 기다리며 오늘의 인터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윤정숙은 한참 들여다보던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놨다. TV 인터뷰라면 모를까 누가 본다고 이런 인터넷 인터뷰라니. 아들이 하겠다는 일이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 실망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일이라니 당분간 내버려 두자는 마음도 있었다.
“곧 있으면 공항 도착입니다, 이사장님.”
“당분간은 예신 씨가 수고 좀 해 줘야겠어.”
“수고는요, 늘 하던 일인데요. 근데 이번엔 얼마나 있다 오실 생각이세요?”
“글쎄, 가 봐야 알 것 같아. 아마 빨리 오지는 못할 거야. 생각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거든.”
잠시 후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마친 윤정숙 앞으로 경우가 나타났다.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나타난 아들의 모습에 윤정숙이 눈을 흘겼다.
“여긴 어쩐 일이야?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 못 들은 거야?”
“듣긴 했는데…… 아무도 배웅 안 나오면 좀 쓸쓸하잖아요.”
“쓸쓸하기는. 괜히 찔려서 나온 건 아니고?”
“뭐, 이대로 어머니 가시면 한동안은 못 보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결국 네 마음 편하려고 왔다는 거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불편하게 할걸 그랬다.”
“이렇게 갑자기 출국하실 줄은 몰랐어요.”
“내가 외국 가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새삼스럽기는. 솔직히 너 때문이 아니라곤 못하겠구나. 내 아들이 엄마를 싫다고 하는데 아무렇지 않을 사람이야 없지.”
“…….”
“어쨌든 너도 차라리 내가 옆에 없는 게 더 낫지 않겠니?”
“꼭 그렇지만은-.”
“거짓말은 참 못해. 얼굴이 아예 홀가분해 보이는데 뭘. 됐으니까 나 없는 동안 하고 싶은 일 실컷 해 보렴. 나도 네 말대로 생각은 해 보마. 그렇다고 너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너한테 시간을 더 주려는 것뿐이야. 물론 나한테도.”
“알겠어요. 어쨌든 건강 조심하세요. 연락 자주 하시고요.”
“생각해 보마.”
할 말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윤정숙은 말을 삼키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으려니 모자의 시간을 위해 비켜 준 김예신이 다가왔다.
“그래도 나와 줘서 다행이야.”
“일부러 권해 주셔서 감사해요. 안 왔더라면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거예요..”
“그건 그렇고. 해림 요양 병원, 혹시 내 차 네비게이션에서 본 거니?”
“알고 계셨어요?”
“그러지 않던 애가 갑자기 차 이야기 하면서 몰아 보겠다는 데 좀 이상하다 싶었지. 나중에 이사장님께 듣고 혹시나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했던 것뿐이야.”
“죄송해요. 누나를 곤란하게 할 생각 없었어요.”
“이사장님껜 말씀드리지 않았어. 나도 가끔 이사장님 옆에서 모실 때 어떻게 하는 게 그분께 도움이 되는 일인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으니까. 다행히 이번엔 결과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요?”
“음, 전보다 한결 편해 보이셨거든.”
공항 밖으로 나온 경우는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보며 한숨을 돌렸다.
* * *
계약서를 꼼꼼히 읽은 강도열이 사인을 하는 것으로 ‘스튜디오 글로리’의 첫 번째 전속 배우가 되었다.
<얼어 죽을 로맨스>를 통해 신스틸러로 등극한 그에게 여러 소속사에서 손을 내밀었지만 결국 그는 ‘스튜디오 글로리’의 손을 잡았다.
“배우님, 저희가 제안을 드린 거긴 하지만 솔직히 너무 쉽게 결정하신 거 아닙니까? 다른 소속사로 들어가시면 좀 더 전문적인 케어를 받을 수도 있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가정이잖아요. 소속사로 들어간다고 해도 드라마 출연이 확정된 건 아니니까요. 적어도 스튜디오 글로리에 있으면 드라마 출연을 못 해서 손가락 빠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따지고 보면 저한테는 이편이 더 이득인 거 같은데요.”
우재환이 하도섭 실장의 눈에 띄어 사계절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한 이후에도 한동안 드라마와 영화 출연에 어려움이 있었던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강도열이었다. 지금 그의 인기가 반짝 타올랐다 금방 사그라들 거라 생각한 그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다.
<얼어 죽을 로맨스>의 마지막 촬영까지 마친 상황, 경우는 계약을 마치자마자 <다잉 메시지>의 열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요 인물을 그에게 제안했다. 열두 번째 에피소드의 시놉시스는 물론 해당 회차의 <다잉 메시지>의 대본을 내밀자 강도열은 빠르게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팀원들이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범죄 수사물인 건 알고 계시죠?”
“그럼요. 첫방송 저도 잘 봤습니다.”
“강도열 씨가 등장할 부분은 여기 열두 번째 에피소드인데요…….”
강도열이 맡은 역할은 사회 비리를 쫓는 기자인 박도균 역.
진실을 찾는 일엔 누구보다 날카롭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선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쑥맥이었다. 평소 짝사랑하던 여배우 최미나에게 변변한 데이트 신청도 하지 못했던 그. 그리고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챈 최미나가 데이트 신청을 하자 박도균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한다.
하지만 데이트 당일 약속 장소에서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려도 결국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게 문이 다 닫을 때까지 기다리던 그는 동료 기자에게 그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여배우 살인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 경찰은 단순 강도 살인이라 발표하지만 정황이 의심스러웠던 박도균은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스스로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로 한다.
결국 그녀에게 스폰서가 있었고 그 인물이 정부 고위 관계자이며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을 안 탓에 죽임을 당한 것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그.
사건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이 사건이 과거 일어났던 사건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사건 피해자의 유족을 찾아간다. 그게 바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임 형사였으니.
“어떻게 보면 이 드라마 핵심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죠. 12화부터 마지막까지 나올 예정입니다.”
“마지막회까지요? 비중이 생각보다 많군요.”
“네, 저희 <다잉 메시지> 작가진이 <얼어 죽을 로맨스>의 강도열 배우님 연기를 보고 특별히 생각해 낸 배역입니다.”
“제 연기를요?”
“배우님 연기가 아주 좋았거든요. 이번 드라마도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다잉 메시지>의 촬영이 연이어 이어지던 어느 날 미국으로 날아간 서필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잘 지내고 계시죠? 서 팀장님이 수고해 주시고 있는 덕분에 올웨이즈의 인기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역시 좋은 작품 선점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야 고맙죠. 근데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배드 보이 프로덕션’에 문제가 생겨서요.]
서필진의 말에 경우는 달력을 봤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제가 조만간 미국으로 가겠습니다. 다른 일도 있으니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죠.”
그로부터 일주일 후, 급한 스케줄을 모두 해결한 경우가 미국으로 날아갔다.
공항에서 경우를 맞는 서필진의 모습에 경우는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나눴다.
“그동안 잘 지내신 것 같습니다. 얼굴이 아주 훤해졌는데요?”
“아무래도 어머니가 해 주신 밥을 먹고 있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일단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부터 들어 볼까요?”
이동하는 중에 서필진은 ‘배드 보이 프로덕션’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이대로 데니가 하차를 고집할 것 같아서요. 위약금을 물어도 좋으니 더는 출연하지 못하겠답니다. 그 탓에 지금 제임스 역시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크리미널 리포트>.
최근 세 번째 시즌이 방송되는 가운데 이전 회차들보다 더욱 인기몰이 중이었다.
범죄 수사물이라는 특성상 극이 무거워질 수 있는데 이때 부담스럽지 않은 코믹한 연기로 소소한 재미를 불어넣어 주는 감초 같은 역할인 데니 역의 배우 브라이언 애들러가 하차를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뭐라고 합니까?”
경우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서필진이 이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