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라마 쓰는 재벌가 막내-102화 (102/250)
  • #102. 우물 안 개구리 (2)

    우재환이 돌아간 후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던 강도열은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며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쭉 찢어진 눈꼬리를 올려도 보고 눈에 힘을 줘 인상을 좋게 만들어 보려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아, 쌍꺼풀 수술이라도 했어야 했나?”

    잠시 고민을 하지만 그뿐, 이내 몸서리를 쳤다.

    “내 주제에 무슨. 그러다 실패하면 그야말로 못 볼 꼴이지.”

    그 역시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불만이 있냐며 시비를 걸어온 이들도 많았다. 그 탓에 뜻하지 않게 싸움에 휘말린 것도 여럿, 종단엔 언제나 가해자로 오해를 받곤 했다.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기도 했다. 물론 좀 지내고 보면 그가 생긴 것과 다른 심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배우라고 대답했지만 네까짓 게 무슨 배우냐며 무시하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뭐, 배우라고 하기에도 뭣 할 정도로 단역으로 출연한 게 전부긴 했지만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으니 아무리 작은 역이라 할지라도 자신은 영화 배우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비록 어깨 3, 깡패 2, 양아치 1이 전부라 해도.

    어쨌든 우재환 덕에 한 번 더 기회를 얻은 그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안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이쪽으로는 돌아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 *

    “안녕하세요, 민경우라고 합니다.”

    “강도열이라고 합니다. 우와, 작가님 정말 팬이에요.”

    우재환이 알려 준 ‘스튜디오 글로리’ 사무실을 찾은 강도열은 눈앞에 민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자신도 모르게 단전에서부터 팬심이 올라와 버렸다. 살짝 부담스러워하는 경우의 모습에 강도열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발 물러섰다.

    이렇게 보니 자신보다 확실히 민 작가가 더 배우처럼 보였다. 살짝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자신감을 가지려 마음 단단히 먹었다.

    “자,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먼저 카메라 테스트부터 하겠습니다.”

    경우가 안내한 회의실로 들어가 보니 한쪽엔 벌써 카메라가 세팅되어 있었다. 강도열은 그의 지시에 따라 카메라 앞에 서 오른쪽, 왼쪽, 정면을 보며 그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잘…… 아니,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노력했다. 물론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건지 들려오는 대화는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카메라에 찍힌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 화면을 보며 경우는 김종수와 의견을 나눴는데 PD 출신 김종수가 활발히 의견을 제시했다.

    “확실히 악역에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긴 하네요. 근데 뭐랄까, 가만히 있는 것만 봐서 그런지 포스랄까, 악역에 어울릴 만한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 같아요.”

    “그거야 슛 들어가면 또 모를 일이죠.”

    경우의 말에 김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카메라 테스트가 끝나고 경우는 준비된 자리로 그를 안내했다. 긴장되는 탓에 손에 난 땀을 바지에 닦으며 그가 자리에 앉았다.

    김종수가 카메라 세팅을 바꿔 이번엔 자리에 앉은 그를 담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힐끗 곁눈질을 하는 그때 그의 맞은편으로 경우가 와 앉았다.

    옆에서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고 앞엔 민경우 작가가 앉아 있으니 강도열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영화 촬영장에서도 이 정도로 긴장하진 않았는데 마지막이라는 생각 탓인지 아니면 눈앞에 우상과도 같은 민 작가가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사람들 귀에 들릴 것만 같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강도열 씨, 여기 물 좀 드세요.”

    경우가 생수병을 건네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든 강도열이 물을 마셨다. 그러자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경우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어요. 오늘은 그냥 간단히 강도열 씨 살아온 이야기나 들으려고 한 거니까.”

    “제 이야기요?”

    “네. 우재환 씨랑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

    “오디션 보러 갔다가 만났어요. 웬만하면 저한테 먼저 말 거는 사람 없는데 재환이는 붙임성이 좋은 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오더라고요. 이야기 나누다 보니 긴장도 풀리고 공통점이 많아서 친해지게 됐죠.”

    오디션에서 우재환을 처음 만났던 경우 역시 먼저 접근한 그를 떠올리며 살짝 웃었다.

    “본가가 서울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네. 충북 단양이 고향이에요. 부모님이랑 동생은 아직도 그곳에서 지내세요.”

    “서울로 올라오게 된 계기가 있다면 혹시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가요?”

    “네. 아무래도 시골에 있으면 기회를 잡기 어렵잖아요. 근데 막상 서울에 올라왔어도 기회를 잡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네요. 오디션 참 많이 다녔는데 붙은 적은 거의 없었거든요.”

    “왜 배우가 되고 싶으셨어요?”

    참 많이 받았던 질문이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배우 타령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아마추어 극단에서 있을 때도 조연은커녕 단역이 전부였다. 그런 탓에 경우의 질문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그동안 그가 겪어 왔던 일들이 어째선지 떠오르고 있었다.

    “강도열 씨?”

    “아, 죄송합니다.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요. 왜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으셨죠? 실은 저희 집에서 저만 좀 다르게 생겼거든요.”

    날카로운 인상의 그와는 달리 가족들은 선남선녀라 할 정도로 잘생긴 편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주워온 거 아니냐고. 부모를 하나도 안 닮았다고.

    하도 그런 말을 들은 탓에 그 역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와 발바닥에 난 점이 똑같았다. 거기다 아버지처럼 땅콩 알레르기가 있었으니 의심은 어이없게 끝나고 말았다.

    대신 부모님이 동네 사람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자신들이 보기엔 예쁜 자식이었건만 이런저런 소리를 들으니 속도 상하셨겠지.

    “그러다 읍내에서 영화 촬영을 하더라고요. 제목이 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조폭 영화였거든요. 구경을 갔는데 분위기 진짜 장난 아니더라구요.”

    “영화 촬영 현장에 매료되신 거군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근처 식당에서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밥을 먹고 있더라고요.”

    “?”

    “얼굴에 팔에 피칠갑이 되어 있는데 분명 분장인 걸 알고 있는데도 솔직히 무서웠거든요. 근데 식당에서 그 배우가 나오니까 사람들이 와 하고 다가가서 사인을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 주인공도 아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나도 영화 배우가 되고 싶다, 영화 배우가 되면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구나 싶었던 거죠.”

    생각보다 소박한 이유에 경우는 물론 지켜보고 있던 김종수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강도열 씨 혹시 <애타의 시대>라는 드라마 아십니까? 꽤 오래된 단막극인데요.”

    “아, 죄송합니다. 처음 들어 봤습니다.”

    “잘됐네요.”

    “예?”

    경우가 웃으며 단막극 대본을 강도열에게 건넸다.

    “제가 드라마 처음 배울 때 봤던 대본입니다.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선 교과서 같은 작품이죠.”

    “아, 네.”

    “일주일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나오는 창희 역할을 분석해 오시면 됩니다. 창희가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여기 이 대사를 왜 하는 건지 창희가 어떤 결말을 맞았으면 좋겠는지요. 아, 물론 연기로 보여 주시면 됩니다. 오디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경우의 설명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참, 이왕이면 단막극은 찾아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남의 연기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영향을 받죠. 전 강도열 씨가 분석한 창희를 보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강도열이 돌아간 후.

    “인상 때문인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잘 모르겠더니 이야기하는 것 보니까 훨씬 생기 있네요.”

    “그러게요. 연기력만 받쳐 주면 나름 유니크한 배우가 될 것 같기도 한데요.”

    “그거야, 본인 하기 나름이죠. 어떻게 해 오는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근데 작가님 너무 짓궂은 거 아닙니까? 신파도 그런 신파가 없는 오래된 대본을 주면 어떡합니까?”

    “강도열 씨 다른 매력을 보고 싶었거든요.”

    “하긴, 구식이긴 해도 감정선이 참 예술적인 작품이긴 하죠. 그나저나 그 드라마를 민 작가가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그날 밤,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하고 난 뒤 경우는 낮에 강도열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만큼 사람이 솔직해지는 순간이 있을까? 그것만 보고서 그 사람에 대해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진짜 모습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출연했던 영화 목록 중 가장 마지막에 있었던 <찬란한 감옥>.

    경우가 강도열을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된 영화였으니, 사실 그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하나인 노송경 감독의 작품이었다. 분명 영화를 여러 번 보았으나 그가 나오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경우는 그 핑계를 대고 다시 영화를 보았다.

    강도열이 출연한 분량은 딱 두 씬이 전부였지만 사실 그가 지금까지 출연한 것 중 가장 많은 분량이기도 했다.

    뿔테 안경을 쓴 그는 여자에게 대차게 차이고 포장마차에서 펑펑 울면서 남자 주인공과 만난다. 그의 우는 모습에 남자 주인공이 감흥을 얻는 제법 중요한 씬이었다.

    우는 모습을 보기 전엔 에휴, 저러니까 차이지 싶다가도 우는 모습에 여자가 너무했다 싶을 정도의 마음을 느끼게 했다.

    마침 <찬란한 감옥>의 촬영 감독이 박종연의 절친 조상욱이었다. <시체가 나타났다>에서 함께 일한 이후 두 사람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우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강도열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기억하지. 솔직히 한번 보면 안 잊히는 인상이긴 하잖아.]

    [원래 그 역 다른 사람이 하기로 되어 있었어. 근데 그 사람이 너무 긴장해서 급체를 하는 바람에 못 찍고 갔어.]

    [그때 단역 출연 끝나고 현장 구경하던 그 친구가 자기가 하면 안 되냐고 사정사정해서 찍은 거야. 일정이 있으니까 그냥 안 찍고 넘어가면 예산 문제도 있잖아. 감독님이 봐서 나중에 들어낼 생각으로 일단 찍긴 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살린 씬이지.]

    [그 친구 보기보다 처연함이 있달까? 확실히 보통 배우들하곤 다른 매력이 있어.]

    [어떻게 보면 그 친구가 매달려서 결국 해낸 거 아냐. 그래서 기억에 남아. 누구든 자기 자신은 열정적이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렇지 않거든. 그냥 저냥 사는 김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지.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잘돼야 하는데 사람 운이라는 게 참…….]

    그래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출연한 <찬란한 감옥>을 보며 떠오른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애타의 시대>.

    꽃뱀을 사랑하게 된 건달 이야기였다.

    주변 환경 때문에 건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창희가 순정을 다 바쳐 사랑하게 된 사랑에 상처가 많은 여자 애수.

    오래된 드라마라 요즘 트렌드에는 맞지 않을 수 있을지 몰라도 <카사블랑카>에 비견 될 남자의 순정을 다룬 고전적인 드라마였으니 강도열이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해졌다.

    * * *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강도열은 대본을 읽고 또 읽었다. 대본에 집중을 한 탓이었는지 그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불쌍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던 거친 남자 창희가 애수를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처절한 사랑이 어디 있다고. 그러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나에게 그런 사랑이 있었나? 그런 면이 있나?

    그 자신은 이런 사랑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이미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만 깨닫지 못했을 뿐.

    창밖이 어두워지고 날이 다시 밝아 올 때까지 강도열은 대본을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오디션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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