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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99화 (299/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99)

이백여 년 전 자신과 자신의 형제들이 나왔을 때, 고작 인간 따위에게 다시 봉인됐다.

그리고 그 봉인이 풀릴 때까지 다시 한 번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봉인이 약해졌다.

그럴 수가 없는 일인데 분명히 그리되었다.

나중에 알았다.

마계와 인간계가 연결된 것처럼, 이 세계와 다른 세계가 연결되었다는 걸.

그때부터는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의 계약자가 바로 그 이세계에서 넘어온 인간 아니던가?

잘 이용했다.

놈에게 힘을 주고, 놈은 자신의 소환을 도왔다.

어느 순간 놈과의 연결이 끊겼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자신은 충분한 힘을 가졌으니까.

이백 년이면, 자신들을 봉인했던 인간 같지 않은 인간 놈들도 다 죽었을 시간 아닌가?

자신 있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인간 중에서 강한 자의 기운을 먹어 치우며 점점 더 강해졌고, 세력을 강화했다.

그건 정말 쉬운 일이다.

인간들이란 제 욕심에 같은 종을 죽이는 것들 아니던가? 자신과 피조물들이 세력을 강화해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본 힘을 거의 회복했을 때, 그 빌어먹을 인간을 만났다.

베스타인이란 이름을 가진 인간.

옛날 자신과 형제들을 봉인했던 인간들만큼이나 강한 놈!

놈에게 뼈아픈 손실을 입고 숨어들었다.

너무 화가 났다.

자신과 계약한 인간의 몸을 손에 넣고, 완벽한 힘을 가졌다면 그 인간을 죽여 버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봉인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힘을 회복하면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인간을 경계하리라.

차근차근 세력을 확장해 모든 것을 갖췄을 때, 모든 것을 집어삼키리라.

분명 그렇게 마음먹었는데 말이다.

말토덱트린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구속구에 갇힌 세 명의 인간을 쳐다봤다.

연결이 끊겼던, 아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계약자가 나타났다.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온전한 힘을 회복하지 않은 상태로 다시 한 번 움직였다.

놈을 잡아먹고 몸을 취해야 했다.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놈의 힘은 자신이 준 것 아닌가?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았다. 그 베스타인이란 놈에게 당했을 때로 충분했으니까.

자신의 거처로 끌어들이고, 피조물들을 이용하여 퇴로까지 완벽하게 막았다. 그리고 잡아먹으려 했다.

화아아아악!

순간 말토덱트린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천장까지 치솟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리고 거대한 몸을 움직여 구속구로 향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리 눈앞에 있는데 잡아먹을 수 없다니. 게다가 먹으면 분명 배는 강해질 것 같은 것들까지.

―그 이세계의 힘도 한계는 있을 터.

말토덱트린은 입맛을 다셨다.

―내 힘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분명 쉽게 먹었을 것을.

하지만 계약한 놈은 다른 힘을 쓰고 있었다.

엄청난 힘인 건 분명했다. 경계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자신이 당했을 것이다.

―다른 놈들도 모조리 먹어 치워 줄 것이다.

말토덱트린은 계약자와 다른 두 놈을 쳐다봤다.

계약자에게는 조력자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자신에게는 다행이었다.

여자 인간이 순수한 신성력만 썼으면 자신이 당했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흡수할 수 있는 힘을 썼으니까.

여하간 지금은 서로의 힘으로 서로를 보호하고 있지만, 결국 한계는 있을 터.

놈들은 약해질 것이고 자신은 점점 강해질 것이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말토덱트린은 리치를 보며 명령했다.

―가라. 나의 땅을 더 확보하고, 더 많은 생력을 가져와라!

* * *

일 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타메라 왕성이 무너진 이후, 검은 땅과 언데드의 출현.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수많은 게이트의 출현과 몬스터 웨이브.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으나, 다행스러운 건 예전과는 달리 모든 국가들이 이 게이트와 마물 제거에 매달렸다는 것.

각국의 위정자들이 착해진 건 아니었다.

마물 제거가 우선이 아닌, 제 나라의 사리사욕을 채우다가는 에렌의 군단부터 상대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말로만 끝나지 않을 테니까.

“방어선 구축은 끝난 거지?”

로라스의 물음에 반년 전 전선에 합류한 린델이 대답했다.

“네. 이제부터 진격만 하면 됩니다.”

로라스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 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정말 그랬다. 단숨에 몬스터들을 제거하고, 놈을 찾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게이트 출현과 그에 따른 몬스터 웨이브. 무엇보다 대지가 썩어 가는 건 예상 못 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

방어선을 구축했고, 사 군단도 합류했으니 이제 끝장을 낼 차례다.

“그런데 주군, 게이트는 여전히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조사대를 파견하셔야 합니다.”

다른 지역의 게이트와 몬스터들은 다 제거되고 있는데, 타메라 왕국은 쉽지 않았다.

확장형 게이트.

왕국 안쪽으로 있어 조사가 어려웠지만, 안쪽에서 탈출한 자들의 이야기를 비교하면 게이트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언데드의 숫자는, 게이트가 커져 그만큼 더 많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있었다.

“나 아니면 누가 조사를 할 수 있겠나? 멸마대 전원이 달려들어 이제야 방어선을 구축했는데.”

“그럼…….”

“바로 쳐야지. 놈을 처리하는 사이 사람들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까 참았다. 이제 들어간다.”

로라스는 그리 대답하고는 에르자일을 보며 물었다.

“새로 생긴 게이트를 이용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직.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결국 정면 돌파밖에 답이 없다는 거군. 다행히 왕국이 작으니 보급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고.”

로라스는 곰곰이 생각하다 린델에게 물었다.

“매지스터와 포스 마스터가 몇이나 왔지?”

“매지스터 넷, 포스 마스터 일곱입니다.”

“멸마대 인원까지 하면 스물은 나오겠군. 그 인원으로 게이트로 간다.”

“너무 위험합니다.”

린델은 물론이고, 주변의 귀족들 모두 깜짝 놀라며 하는 말에 로라스는 말했다.

“위험할 것 없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방어선 구축부터 했던 것이다. 어차피 놈을 처리하고도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혼자 가도 된다. 효율을 생각한 것뿐이니.”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니까, 걱정할 거 없다. 일반적인 언데드들 따위로는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가할 수 없다.”

분명 매지스터와 포스 마스터 스무 명이면 웬만한 나라 하나는 박살 낼 수 있는 전력.

하지만 지금 로라스의 안위는 에렌뿐만 아니라 전 대륙적으로 매우 중요해졌다.

만에 하나 로라스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위정자들이 어떤 탐욕을 부릴지 알 수 없고 말이다.

“모두 그렇게 준비한다.”

해당 인원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로라스는 생각했다.

‘아델리나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자신과 일행들이 검은 대지를 가르고, 그곳을 정화하면 이후 마물 퇴치도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대체 어디 있는 거냐?’

이제는 정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카아아악!

비명은 아니다.

놈에겐 성대가 없었으니까. 아니, 육체가 없이 오로지 뼈로만 이뤄진 존재.

다만 놈이 사라질 때 절규하는 듯한 그 자세가, 환청을 유발했을 뿐이다.

“이건 새로운 놈인 것 같습니다, 주군.”

산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던 몬스터가 어느새 뼈 무더기만 남기고 사라지자, 테라가 해골 머리를 발로 톡 건드리며 하는 말에 에르자일이 입을 열었다.

“리치…… 정말 있었네요, 이 몬스터가.”

로라스가 물었다.

“어떤 놈이지?”

에르자일이 리치에 대해 설명하자 로라스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봤자 마법사 시체란 소리잖아.”

리치를 단순히 그렇게 표현한다는 걸 알면, 모두가 기가 찰 말. 하지만 지금은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리치를 단 세 번의 움직임만으로 갈라 낸 것이 바로 로라스였으니까.

애르자일이 말했다.

“여하간 그 마족이 어떤 마족인지는 몰라도, 이만한 놈을 마구잡이로 소환시키지는 못할 거야. 소멸시키지 못한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엄청 큰 타격은 받았을 터이니.”

“응? 이게 허상이란 거야?”

“허상? 아! 이놈은 자신의 심장을 다른 곳에 보관해. 그래서 죽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거고.”

“귀찮은 놈들이군.”

심드렁한 표정의 로라스를 보고 에르자일이 리치의 잔해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아마 보고 된 세 마리 중 하나일 터이니, 가는 길에 또 걸리면 정말 좋을 것 같네. 당신은 손쉽게 잡을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악몽이니까.”

그리고는 잔해 주변에 떨어진 것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뭐 해?”

“전투에 이겼으면 전리품을 챙겨야지. 이것들 대부분은 아티펙트야. 리치 대부분은 고대의 마법사였을 확률이 높으니 그들이 지닌 건 연구 가치가 커.”

에르자일은 그리 대답하며 몇 가지를 주워 들더니, 테라를 포함한 몇 명의 무인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무인들은 보배라도 되는 듯 그걸 소중히 받아 들었다.

로라스야 별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는 목숨 걸고 따르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강해질 수 있다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리치가 자리 잡았던 성에서 하루 쉰 일행들은 다시 게이트를 향했다.

가는 길. 마물은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로라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수하들의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마물들에게 노출시켜, 그들이 스스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한 달간의 여정.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에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당연히 사기는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마음속 깊이 숨어 있었던 두려움도 엷어져 갔다.

그렇게 로라스 일행은 게이트에 도착했다.

“크긴 정말 크군.”

보통 게이트를 이루는 아치형의 거대한 돌덩어리의 규모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만한 크기의 게이트라면, 내부형이면 오히려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

번천의 말에 로라스가 답했다.

“반대로 외부형이면 한참 헤맬 거야. 하지만 저번 대규모 게이트 때는 혼합형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럴 확률이 높아.”

게이트 안이 전부 마치 던전을 헤매는 것 같지는 않다.

내부형은 그런 분위기가 나나, 외부형은 늪지, 평지, 바닷가 등이 나올 때도 있다. 그 두 개를 섞은 혼합형도 있고 말이다.

로라스는 잠시 게이트를 둘러보다 시그탑을 보며 말했다.

“만에 하나가 있으니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시그탑 경은 제가 들어가고 날이 저문 후 들어오십시오.”

“혼자는 안 됩니다. 게이트가 이 정도 규모라면…….”

시그탑은 그리 말하다 말끝을 흐렸다. 여태 로라스가 어떻게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언데드들을 소멸시켰는지 뻔히 봤는데, 로라스가 밀리면 자신들이 옆에서 보좌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신하 된 입장에서 왕을 홀로 보낼 수는 없는 법이라, 순간 말문이 막힌 것이다.

로라스도 시그탑을 비롯한 그들의 입장과 진심을 알기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염려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그탑 경. 그리고…….”

로라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생각한 것이라면…….”

“해 봐야 말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 맞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로라스의 말에 대부분 의아해했지만, 에르자일과 측근 중의 측근인 테라와 번천의 표정은 달랐다.

‘드디어!’

그들은 서로를 보며 기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로라스의 성격상 저 정도로 말했다는 건 이미 계산이 끝났다는 것일 테니.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

로라스가 어떻게 게이트를 상대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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