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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86화 (286/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86)

아큘라스 공작을 비롯한 고위 귀족들의 참수.

그 사실이 제국 전역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

아큘라스는 제국에 둘밖에, 아니,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공작이었다.

그런 공작의 머리를 바로 참수했다는 소식은 귀족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에렌의 영주가 잔인하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하지만…….

“잘 죽었다.”

“다 버리고 도망쳤다면서?”

“에렌의 영주님이 그 때문에 분노하셨다고 하더군.”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니지. 오히려 우리 같은 평민 포로들은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던데. 몸값도 안 받았대잖아.”

“그 몸값이 얼마나 된다고.”

“그래서 더 대단한 거지. 살려서 보내면 엄청난 돈이 들어오는데, 그 귀족들의 목을 모조리 뎅겅 해 버렸으니. 그 이유도 우리 같은 병사들 버린 것에 화가 나서 말이지.”

그렇게 오히려 귀족으로서, 영주로서 최상의 인물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소문이 붙었다.

신탁의 기사.

에펠리온 교단에서 이미 퍼트리고 있던 소문이, 평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급증하는 마물을 막기 위해 신이 선택한 로라스.

실제로 북부는 여태 왕국연합과의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었고 이번 내전, 아니, 영지전도 남부 아큘라스가 공작이 선공한 것은 사실 아닌가?

그렇게 민심이 더더욱 악화됐다. 뭐, 그렇다고 그게 변화를 이끌어 오지는 못했다.

원래 나빴던 민심이 더 나빠진 것뿐이니까.

그리고 그런 소문을 다 덮을 만한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북부군이 남부로 진격하고 있다.

새로운 소문에 남부는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 * *

핀론드로 새로운 병력이 입성하기 시작했다.

각 영지에서 새로운 병력을 차출한 것은 물론이고, 락과 군단의 병력까지 일부 핀론드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몬스터 퇴치에 힘을 쓴 덕분에, 최소 제국의 북부에는 게이트는 몇 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롭게 편성된 병력이 총 3만.

병력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대승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고, 원군들 역시 그 분위기에 덩달아 사기가 오른 것이다. 무엇보다…….

“주군을 뵙습니다.”

“어서 오세요, 스승님.”

매지스터 헤르메스와 마법사들이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그녀와 마법사들은 이미 하나의 병종으로 구분될 정도의 전력.

특히나 헤르메스는 불 속성 마법의 일인자. 거기에 과거 공작을 따라 수많은 전투에 참전한 만큼, 전쟁에 가장 능한 마법사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성하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광휘의 기사님이다.”

“북부 제일 기사님이시지.”

“제일 기사님은 우리 영주님이시지. 신께 선택받은 분이신데.”

“영주님이 어떻게 기사가 되냐? 기사 중에서는 제일 기사지.”

북부의 영주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로라스라면, 기사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로 시그탑.

그간 몬스터 토벌에 미친 듯이 매달린 탓에, 그는 제국에서 손꼽히는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그가 락의 기사단을 데리고 도착했을 때, 병사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성문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군을 뵙습니다!”

대회의장에 들어서자 백여 명이 넘는 인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이들 대부분은 북부를 이끌어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들.

로라스는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돌리며, 그들과 일일이 시선을 마주하며 자신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모인 이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이후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 전투에서 아큘라스를 비롯한 남부 귀족들이 했던 꼬락서니를 보건대, 정말 많은 피를 흘릴 것이 분명했다.

몰랐다면 넘어갔겠으나, 그 사실을 안 이상 넘어갈 수가 없었다.

에렌의 영주라는 위치는 둘째 치고, 인간으로서 말이다.

“남부로 진격하려 한다.”

인간과 인간의 다툼에서 눈앞의 제 이득에만 눈먼 것들.

“지금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

뒤집어야 했다.

“그것을 하려 한다.”

핀론드까지 오면서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난 그것을 확고하게 결심했다.”

오면서 전쟁으로 인해 제대로 굴러가는 영지는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나 성인 남성들은 죄다 끌려가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 휑한 눈으로 자신들을 보던 여자들과 아이들의 눈빛은 절대 잊지 못했다.

“그래서 이리 모두를 모이라 했다.”

거창한 목적 같은 건 없다.

“그리고 난 단숨에 그것을 이룰 것이니.”

다시는 그런 눈빛을 마주하지 않는다. 그것뿐이다.

“모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회의는 짧고 강렬했다.

* * *

“이게 무슨 문자지?”

한 장의 편지.

마데레스는 딱 한 줄의 글자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각 나라와 민족의 언어를 연구한 지도 사십 년이 넘은 이 노학자는 편지를 들고 온 조수를 보며 물었다.

“이걸 누가 전해 줬다고?”

“에펠리온 신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혹시 알아봐 주실 수 있으신가 하고 말입니다.”

조수의 대답을 들으며 마데레스는 다시 한 번 편지에 시선을 두었다.

你知道吗?

단 한 줄의 글씨.

이게 문자라는 걸 안 이유는 별거 없다. 그림보다는 그래도 글자로 생각하는 것이 신빙성이 있어서다.

“어디서 났는지 이야기는 없었고? 발견 지역만 알아도, 추리가 훨씬 쉬워질 텐데.”

“사제들도 그건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이것의 정체를 아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만…….”

“으음. 고대 던전이나 유물이라도 발견한 것인가? 하지만 이건…….”

“그게 신의 글자 아닐까요?”

“신의 글자? 그런 게 있을 리가.”

“의뢰인이 신전입니다.”

조수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 글자의 정체를 질문한 건 에펠리온 신전이다. 그것도 교황으로부터 내려온 질문이라 했다.

교황으로부터 내려온 질문.

사제들은 그 답을 어떻게서든 찾아야 했고, 그런 이유로 해당하는 지역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 마법사들에게까지 자문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달 전에 건너건너 들었는데…….”

조수는 계속해서 말했다.

에펠리온 교단은 대륙 제일의 세를 지닌 곳. 특히 몇 달 전 제국의 국교로 지정된 이후 그 위치는 더욱더 공고해진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많은 이들이 도전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요새 이 문제가 사교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라고 했다.

“한 명도 알지 못했단 말이지?”

마데레스는 순간 의욕이 불타오름을 느꼈다.

자신이 언어를 사십 년 넘게 공부했다 하나, 학계에 명성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특별한 발견이나 이론을 개발하여 알려야 하는데, 아직 자신에겐 그런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내가 알아낸다면?’

에펠리온의 교황이 직접 답을 찾는 언어. 거기에 수많은 귀족들의 화제가 되기도 하는 이 언어의 답을 찾기만 하면, 단숨에 학계에 명성을 알리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터.

‘신의 글자라…….’

조수가 깊이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닐 터지만 나름 일리 있는 목소리였다.

신탁을 받는 교황 아닌가?

말씀 대신 글자로 받을 수도 있는 문제다. 그래서 고작 이 한 줄에 많은 이들이 관심이 집중된 것일 테고.

‘일단 종교 서적부터 참고해 봐야 하는가?’

마데레스는 그리 생각하며 조수에게 말했다.

“일단 고대 종교에 관한 연구 서적부터 가져와 봐. 일단 상형문자인 건 확실한 것 같으니, 이것과 유사성이 있는 글자의 형부터 찾아봐야겠어.”

그렇게 마데레스가 의욕이 넘쳐 연구실로 향할 때였다.

“마데레스 님.”

연구실로 향하고 있을 때 한 중년의 사내가 그를 불렀다.

마데레스는 자신을 부른 사내를 보고는 반색하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그 집중 수련인가 뭔가가 드디어 끝이 난 건가?”

“네. 어제 끝내고 오늘 인사드리러 이리 찾아왔습니다.”

기다란 흑발에 어울리는, 청명하기 이를 데 없는 눈. 그리고 누가 봐도 단련된 육체와 거기에서 자연스레 흐르는 위압감.

노학자 마데레스와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일듯한 사내는 바로 실버스워드 준우승자 라이너.

“자네 같은 기사가 뭘 수련할 게 더 있다고, 몇 년간이나 나오지도 않고 수련을 하는 겐가. 이 늙은이는 이해할 수 없단 말이지.”

“하하하하. 아직 멀었습니다.”

“왕국 제일 기사가 그리 말하면, 다른 기사들은 무안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네. 겸양도 지나치면 건방지게 보인단 말이지.”

라이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인걸요. 그런데 급해 보이셨는데, 제가 연락도 없이 이리 찾아와 방해가 된 것은 아닌지…….”

“자네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내 자네가 검을 잡았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자네가 포스를 수련한 것만큼 학문을 수련했으면 대륙에서 알려졌을 거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라이너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학문을 돌본 학생. 하지만 어느 순간 검을 잡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왕국 유일의 포스마스터가 되어 있었다.

“아! 재미있는 문서 하나가 있는데, 보겠나?”

노학자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라이너에게 편지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어떤 글자인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인데 말이지. 내 생전 그런 글자는 처음이란 말이지. 최소 이 왕국에 그런 글자가 적혀 있는 자료는…….”

그러다 라이너의 얼굴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자네, 표정이 왜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는가?”

“응? 뭐라 했는가?”

마데레스는 순간 의아해하며 물었으나 답은 들리지 않았다.

“왜 그러나?”

경악하는 표정의 라이너. 마데레스가 조금 큰 목소리로 다시 묻는 순간.

“선생님, 이 편지는 어디서 받으신 겁니까?”

“자네 그게 뭔지 아나? 해석이…… 아! 혹시 그 문자의 뜻이 ‘너는 알고 있는가?’ 이런 거였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에펠리온 신전에서 의뢰와 함께 가져온 것이지.”

“선생님, 죄송하지만 전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뭔지 알고 있는 건가?”

“제가 아는 글자입니다. 아마 극소수만이 알고 있겠지요. 죄송합니다.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라이너가 급히 몸을 돌려 나가자, 마데레스는 급히 쫓아가며 외쳤다.

“라이너! 그건 주고 가야지.”

* * *

“아니라고 하지 않았더냐!”

오베른 제국의 황성은 아침에 급히 전해진 전령의 보고로 소란스러웠다.

“헛소문이라면서!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면서!”

황제, 조이 오베른은 몇몇 귀족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핀론드에서 멈출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이들은 다 어디 있지?”

“…….”

“결국 여기서 손을 내밀 거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던 놈들 어디 갔냔 말이다!”

황제의 호통에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이들이 없었다.

사실 일이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안 건 한참 되었다.

아큘라스 공작을 비롯한 참여 귀족들의 참수.

그 누구도 그렇게 귀족들을 죽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아큘라스 공작이 선공을 한 건 사실이나, 만인이 보는 가운데 그렇게 참수한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공작도 그렇게 죽였는데, 에렌을 적대시한 귀족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 아닐까?

그런 위기감이 한참의 침묵을 깨트렸다.

“먼저 사람을 보내야 한다 생각합니다, 폐하.”

“맞습니다. 먼저 로라스 백작에게 폐하의 아량을 보이시고 다독이시면, 그가 더 뭘 어찌하겠습니까?”

물꼬 트인 물길처럼 이제는 귀족들이 모두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미뤘던 공작 위를 주셔야 합니다.”

“아큘라스 공작이 먼저 영지전을 일으킨 만큼, 그의 영지를 로라스 백작에게 하사하시는 것도, 폐하의 마음을 보여 주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황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아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제대로 자신의 뜻을 펼치고,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게 다 바보 같은 짓 같았다.

‘이딴 놈들을 믿고, 어찌!’

황제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랏! 꼴 보기도 싫으니!”

귀족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슬슬 물러나는 모습을 보니, 황제는 더더욱 기가 찼다.

‘어찌 제대로 된 놈이 하나 없는가!’

모두 물러간 이후로도 황제의 고민은 끝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서도 답이 없었다.

아큘라스 공작이 그 전력을 가지고도, 에렌에 이렇다 할 피해도 주지 못하고 죽었다. 더더군다나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병력이 모였다지 않은가.

‘설마 반역까지는…….’

황제가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였다.

“폐하, 태사께서 알현을 청합니다.”

밖에서 시종이 하는 말에, 황제는 반색을 하며 외쳤다.

“어서 들어오라 하라!”

그리고 안으로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가 들어왔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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