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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85화 (285/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85)

“이게 뭔 짓인가!”

볼륨 백작은 너무나도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니, 그리하려 했으나 그의 외침은 힘이 있질 못했다.

“크헉!”

그리고 계속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리고 이내 원망과 억울함이 가득한 그런 눈으로,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은 자를 노려보며 그대로 쓰러졌다.

“미안하게 됐수. 그러니 줄을 잘 서야지. 댁도 거기까지 줄 잘 서서 올라간 자리. 줄 잘못 타면 내려와야지. 많이 올라올수록 떨어질 땐 치명상이란 것쯤은 알 테고.”

볼륨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는 오리시암. 그리고 옆에 있는 카론을 보며 말했다.

“백작님께서 원치 않은 방법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그의 직속 수하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고맙네. 이렇게 간단하고 깔끔하게 정리했으니.”

하지만 카론이 예상외로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음에 오리시암은 살짝 놀라며 말했다.

“중앙의 다른 놈들도 곧 정리될 것입니다. 혹시 불편하시다면 감금한 후 재판을 통하여…….”

“뭔 소린가?”

“네?”

“존중해 줄 가치가 없는 것들 아닌가. 전시 중에, 전우들은 전장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후방에서 향락에 취한 것들을 내가 존중해 줄 거라 생각했나?”

“아!”

“미안하군. 내가 직접 해야 했는데, 이런 일을 자네 손에 맡겼으니.”

확 풍겨 오는 포스의 야성에 오리시암은 웃음으로, 포스를 흘려보냈다.

‘장군은 장군이란 말이지? 전장에 나선다 하니 사람이 완벽하게 달라지는군.’

오리시암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극이 오르기 전 관중들의 흥을 돋우는 어릿광대. 이제는 본무대의 배우가 올라올 차례였다.

“수고했네. 진심이야. 많이 배우기도 했고.”

오리시암은 웃음기를 지우며 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자네의 공은 내 반드시 보고하겠네.”

“흐흐흐흐. 그런 건 절대 사양하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아주 크게 칭찬해 주십시오.”

히죽대는 오리시암을 보며 카론은 긴장감이 약간은 덜어짐을 느꼈다.

“자네가 앞으로도 쭉 내 부관이면 좋겠군. 자네와 내가 너무 다르지만, 서로 이해할 수 있으니 분명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이네.”

“그건…… 저도 돌봐야 할 영지가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백작님이 새로운 영지를 받을 만한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건수라도 있다면…….”

카론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제 욕망을 이렇게 대 놓고 이야기는 하는 놈들은 많지 않을 것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걸 밉지 않게 말하는 놈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두고 보지. 뒤를 부탁하네.”

“꼭 완벽하게 마무리하시고, 주군과 함께 입성하십시오.”

카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천의 병력과 함께 출성을 시작했다.

* * *

찢어지게 가난했다.

돈 몇 푼에 어미와 누이가 욕보는 걸 보며 자라 왔고, 돈 몇 푼 훔치다가 동생은 손목이 잘렸다.

그래서였다.

인생에 돈을 추구한 것은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 무력이 필요했고,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렇게 하니 규모가 점점 커졌다.

그때 어떤 남자를 만났다.

지독하게도 돈을 좋아했던,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말이다. 그를 따르다가 그 사람의 뒤를 이었다.

골드맨스의 수장. 골드맨.

어느새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것이 그 호칭 하나로 통일되었다. 샤이어라는 자신의 이름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골드맨.

이 얼마나 가슴 뛰는 호칭이란 말이냐.

평생을 그리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리 살아갈 수 있는데, 평생의 위기를 맞았다.

‘졌다고…… 아니, 죽었다고?’

골드맨스는 무엇으로 치장해도 고리대금업자다. 그리고 고리대금업자는 그걸 지키기 위해 무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무력의 정점은 바로 황금 기사단.

포스 마스터 셋에 전원 상위권 포스 유저들.

그들이 있기에, 그 누구도 골드맨스의 돈을 떼어먹으려 하지 않았고, 그러할 때마다 철퇴를 내려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없다.

골드맨스 역사상 최대의 위기.

‘다시 채우면 된다.’

이번 투자는 실패했다.

그뿐이다.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 건 사실이고, 몇 년간은 그 쓰라림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룰 것이다. 하지만 인정하고 다시 채우면 된다.

손해 한 번에 무너질 골드맨스가 아니다.

‘돌아가자마자 빠져나가야 할 것이다. 수성전? 그 전력으로도 이기지 못했다면 그것도 소용없다.’

빠른 머리 회전.

골드맨은 지금은 뒤도 보지 말고 튀어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문제는 그것마저 쉬워 보이지 않는단 것이다.

수뇌부들이 도망친 후, 시간이 지날수록 패잔병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오백여 명.

지휘부들을 보는 시선은 매우 불손하였다. 그래도 수뇌부의 호위 기사들이 있으니 대놓고 뭐라 하는 놈은 없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보급품이 떨어질수록 눈에 띄게 사나워져 갔다.

당장 자신의 호위 병력이 필요했다. 현재 있는 몇 명의 기사들만으로는 불안했다.

그렇게 핀론드의 며칠 거리에 다가갔을 때.

“골드맨.”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늘 후드를 쓰고 다녀 얼굴 보기 힘든 사내, 스카이 캐슬.

“자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평상시라면 이리 반가운 마음을 겉으로 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이후 핀론드에서 빠져나갈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그의 등장은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다름없었다.

“직접적으로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저도 한 발 걸치고 있음을 잊으셨습니까?”

후드의 말에 골드맨은 그제야 그가 황제 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음을 자각하고는 말했다.

“그쪽 분위기는 어떤가?”

“저도 지금 와서 상황을 알았는데, 황도에서 아큘라스 공작이 패한 걸 어찌 알겠습니까?”

“아! 그렇겠군. 그런데 자네는 어쩐 일로?”

“일이 있어서 북부에 올라가던 도중에 알게 되었지요.”

후드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리고 아직 골드맨도, 아큘라스 공작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뭘 말인가?”

“핀론드는 에렌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날벼락을 맞아도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적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격 아니냔 말이다.

“말도 안 돼!”

“소리 낮추십시오. 남들이 알면 곤란해집니다.”

골드맨도 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게 말이 되는가? 에렌 놈들이 우리를 앞질렀다고?”

“아큘라스 공작은 단 한 번도 에렌을 앞지른 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혹시 볼륨 백작이 배신이라도?”

“앞지른 적이 없다니까요. 애초에 핀론드는 에렌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바로 오늘 같은 경우를 대비하여 거짓 항복한 거지요. 완벽하게 공작과 그 측근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도착하기 전에 빠져나가야겠군.”

하지만 골드맨은 금세 침착함을 되찾으며 말했다.

“도와줄 수 있겠나?”

“돕는 건 어렵지 않지요. 이미 전 움직이는 길을 구축해 놓았으니까요.”

“다행이야. 본의 아니게 신세를 지게 됐군. 그렇지 않아도 이 멍청한 행렬에서 빠져야 할 필요도 있었는데.”

골드맨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을 때 후드가 말했다.

“신세라니요. 제가 대가 없이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대가라…… 그래, 그렇지. 그게 정상이지. 뭘 원하나?”

“골드맨스 쪽에는 황실에도 채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위부터 아래까지, 제 주제도 모르면서 흥청망청 써 대는 데 정말 많은 빚을 지고 있지.”

골드맨은 슬쩍 후드를 보며 말했다.

“얼마나 필요한가? 원한다면 이십 프로 정도 넘겨주면 될까?”

“셈 빠르신 분이 흥정을 그리하면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

“급한 건 제가 아닙니다만.”

흥정 기술 중 하나인 침묵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골드맨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삼심 프로. 그것만 해도 제국 일 년 예산은 돼!”

“그럴 일은 없을 거고, 없어야겠지만, 만에 하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큰일 아니겠습니까?”

골드맨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나친 욕심이야! 자네의 도움이 현 상황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

후드는 그런 그를 보며 속으로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이 상황에서도 흥정을 하겠다? 돈에 대한 집착은 세계 제일이라 할 만하네. 하지만 네놈이 돈을 어디에 보관하고, 어떻게 이동시키는 지가 궁금할 뿐.’

후드는 그런 자신의 속내를 숨겨야 했다.

‘너무 쉽게 넘어가면 오히려 의심을 품겠지?’

후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지요. 어차피 저야 제 할 일만 하고 가도 손해는 없으니. 부디 다음 모임에도 몸 건강히 뵐 수 있길 바랍니다.”

흥정도 없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후드를 보며 골드맨은 속으로 ‘어어!’ 했지만 어느새 사라졌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핀론드가 이미 점령당한 건 확인하지 못한 일.

스카이 캐슬이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고 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하지만 정확히 이틀 후.

전령에 의해 핀론드가 완벽하게 카론 백작의 손에 떨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다시 나타난 후드에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러는 법은 없다!”

“포로를 죽이다니! 그것도 귀족을!”

“가문에서, 아니, 다른 귀족들이 이 사실을 알고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줄줄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포로들이 소리를 질러 댔다.

“왜 우리만?”

“이건 말도 안 되는 것 아니냐!”

하지만 그 포로들은 일반적인 병사들이 아니었다. 전원 자신의 병력을 끌고 온, 영지를 가진 귀족들뿐.

보통 귀족들은 그 대가를 치르고 풀어 주는 게 대부분인 현실에서, 딱 몸값을 치를 귀족들만 처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또 하나 있었다.

보통 적의 처형식은 상대편의 병사와 영지의 백성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번 전쟁에 패해 에렌에 사로잡힌 남부군의 포로들. 그들이 상당 숫자 섞여 있었다.

―원래라면 해당 영지의 영주들이 병사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풀어 줘야 하나, 그 몸값은 내가 다 지불하겠다.

실제 병사들은 가진 갑주와 무기를 모두 빼앗기고, 남은 거라곤 입은 옷과 뭐 두 쪽만이 전부로 풀려나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엄청나게 감사하고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영지에 따라 헐값으로라도 몸값을 지불하거나, 또는 스스로 노예가 되어 몸값을 갚아야 하는데, 자신들은 그냥 풀려난 것이다.

모두가 로라스의 은혜를 칭송했고, 그 칭송한 만큼의 분노가 자신들을 이런 상황으로 몬 귀족들에게 향했다.

그들이 바로 지금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귀족들.

“주군,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심이…….”

야휘가 조심스레 먼저 입을 열었고, 린델도 그를 도와 입을 열었다.

“귀족들을 다 저리 죽였다간 남은 귀족들이 불안해합니다. 또 앞으로 남은 귀족들은 절대 항복하지 않고, 결사 항전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로라스의 표정은 오히려 심드렁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저들이 항복한 적들인가?”

“그건…….”

“결국 마지막에는…….”

로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항복이란 그런 게 아니지. 저들은 잡힌 거지, 항복을 한 게 아니야.”

“…….”

“다 죽이면 항복을 안 할 거라고? 그것도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

“죽기 싫으면 싸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정상 아닌가?”

너무나도 확고한 주장에 야휘도 그리고 린델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그때 로라스가 또 말했다.

“놈들의 수급은 남부로 보내. 특히 아큘라스와 고위 귀족들의 수급은 사람들이 보게 해.”

린델이 기겁하며 말했다.

“그렇게까지는…….”

“야만적이라고? 야만인들도, 제 사람들을 사지에 밀고 무책임하게 도망치진 않아.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도 그런 사람은 없었고, 있었다면 지금 같은 꼴을 당했을 것이다.”

“…….”

“이 일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듣지 않겠다. 보여 줘야지. 책임지지 못할 짓을 벌인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확고하게 말이다.”

그렇게 처형식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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