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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73화 (273/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73)

“호호호호.”

“아이 참! 짓궂으셔라.”

곳곳에서 전쟁이 있다지만, 락의 밤거리는 여전히 화려했다.

예전에야 토벌전 하나 있으면 사내들이 모두 빠져 휑했지만, 이제 락은 그럴 만한 규모의 마을이 아니었다.

락은 하루에도 수많은 외지인과 용병 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며, 이제는 도시라 할 정도로 커졌으니 말이다.

오늘도 용병들로 펍이 가득 찼고, 그만큼 여급들도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그런 밤거리의 한편.

“쉬워.”

풍성한 금빛 머릿결, 손대면 미끄러질 듯한 하얀 피부 그리고 남자라면 반드시 눈길을 줄 그런 몸의 형태를 지닌 여인.

그녀는 쉽다고 이야기했다.

사실이 그랬다.

처음에는 긴장도 했고, 그에 대한 준비도 철저했다. 하지만 지금 보라.

사람들은 매일같이 자신들의 업장을 찾았으며, 그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용병뿐만이 아니다.

락의 원주민들. 특히 군인들은 하루라도 오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찾고 있었다.

덕분인지, 그 탓인지 그녀는 흥미를 잃고 있었다.

단언컨대, 단 하나라도 긴장할 건더기라도 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큰 작전 아닌가?

게다가 이미 칠 인 중 둘이 당한 상태다. 그리고 다시 셋이 협력한 작전.

칠 인 중 일 인.

템테이션은 그래서 지루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지루함을 더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신관들마저도 몰래 변장을 하고 찾더군요. 호호호.”

자신의 심복이자 총괄 마담으로 분장해 있는 여인의 말에 템테이션은 혐오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내새끼들이란.”

“당연한 거 아닐까요? 솔직히 저도 잘생긴 남자를 보면……. 그래서 요새는 일할 맛이 나요. 확 남편 삼고 싶을 정도니까요.”

템테이션은 음흉한 미소를 보이는 심복을 보며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잘난 사내이긴 하지.’

그녀들이 락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사내는 정말 잘난 사내이기는 했다.

테라.

고아 출신이나, 로라스의 신임을 받아 벌써 귀족 작위까지 받고, 락은 물론이고 에렌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사내.

운이 좋아서 그 자리에 오른 이가 아니다.

아이언 센터 출신으로 스스로의 힘이 막강했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포스 마스터의 문턱에까지 있다고 알려졌다.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정말 말도 안 되는 경지.

당연히 단련된 육체는 미끈했고, 외모 역시 소녀들이 매일같이 마음에 품을 정도로 잘생겼다.

요새 말하는 다 가진 사내가 테라였다.

그래서 공을 들였다.

에렌의 영주인 에듀와 그 기사단이 몬스터 토벌전에 나간 상황에서, 그는 락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힘들긴 했다.

처음에는 이쪽으로는 발 한 번 들이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늘 그렇듯 처음이 어려운 거였다. 그 어려운 처음만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술술이다.

―그는 남자 아니야?

처음에는 안 넘어온다고 그리 말하던 조직원들에게 템테이션이 한 말.

―자기 좋다는 여자 마다하는 사내 없다. 적극적으로 해서 안 되면 슬슬 흘려! 요조숙녀가 되란 말이야.

그렇게 자신까지 나서며 포섭에 힘을 썼다.

결과는?

그도 남자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물론 사람들의 눈이 있기에 대놓고 들락날락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시간 끌지 말자.”

템테이션의 결론에 심복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준비는 늘 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온다고 했지?”

“늘 그렇듯 사람들이 빠지면 오겠지요.”

“준비해. 문제 생기면 안 돼.”

“철저하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심복 여인이 나간 후, 템테이션은 화장대 앞에 앉았다.

‘으음.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서면 이상할 테니.’

그녀는 백색의 피부를 살짝 빛나게 해 줄 옅은 화장을 시작했고.

“후우우우!”

마나를 이용하여 자신을 변화시켰다.

물론 그게 신체적으로 직접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원판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하지만 분위기는 변했다.

수하들에게 강요했던 것처럼, 요녀처럼, 그게 안 되면 요조숙녀처럼. 또 그게 안 되면 지고지순하게, 해바라기처럼 그저 한 남자만을 보는 여인처럼.

여자가 낼 수 있는 모든 무기를 가진 그녀.

템테이션이라 불리는 여인은, 화려함, 정갈함이란 동시에 존재하기 힘든 분위기를 갖추기 시작했다.

‘줄다리기도 오늘은 끝이다.’

그를 포섭하고 자신의 치마폭으로 감싸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다크니스와 골드맨이 때를 잘 맞춰야 할 텐데 말이지.’

염려된 건 이쪽이 아닌 그쪽.

성공에 한 치의 불안도 없는 그녀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1층으로 내려갔다.

부드러운 하프와 핸드벨 소리가 가득한 공간.

그녀가 천천히 그 공간에 발을 들이밀었다.

스윽 둘러보았다.

수많은 미녀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분위기를 한껏 발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장소.

템테이션을 비롯한 수십의 미녀가 그렇게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표적을 기다렸다.

저벅저벅.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잘난 테라가 도착했다.

템테이션은 흠칫 놀란 표정의 그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오래 기다렸어요.”

테라가 뭔 말을 하기 전에 여인들이 우르르 그에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를 천천히 템테이션에게 인도했다.

그 순간 정복욕이라도 느낀 것일까?

아니면 제 잘난 맛에 취한 것일까?

의외로 금방 편안한 표정으로, 약간은 거만한 듯한 몸짓으로 걸음을 옮기는 테라.

“오늘은 뭔가 다른 것 같군요.”

하지만 템테이션의 앞에서는 첫사랑을 마주한 순진한 사내가 보이는 그것을 벗어나지 못했다.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부서질까 조심스레 자신을 대하는 테라를 향해, 템테이션은 손을 내밀었다.

안긴 듯, 그렇지 않은 듯, 그에게 몸을 기댄 그녀는 입을 열었다.

“결심했으니까요. 천한 저라도 받아들여 주시면 경을 위해 평생을 봉사하겠노라고.”

붉어지는 뺨. 하지만 동시에 뿌듯함을 숨길 수 없는 저 입가. 그리고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손길까지.

그렇게 테라를 자신의 치마폭으로 안으려는 템테이션의 계획은 수월하지만 확고하게, 그렇게 진행되었다.

미약을 태워 만든 환각제가 공간을 채우고, 수없이 건네지는 미녀들의 손길.

테라의 시선에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템테이션.

청각을 시작으로 촉각, 후각에 시각까지.

그렇게 그녀의 눈이 빛나는 순간 세뇌가 시작되었다.

너는 내 것이다.

다른 염은 필요 없다. 그거 하나면 된다.

여태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포섭.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지만 필요할 때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걸 수 있게 만드는 마법.

그녀가 그녀를 말한다.

“너는 내 것이다.”

그렇게 유혹은 끝났다.

‘너는 이제 내…….’

템테이션은 흠칫했다.

한없이 사랑스럽게 지켜봐야 했는데, 분명 그리해야 했는데…….

싸늘하다.

시릴 듯한 눈빛이 가슴을 찔렀다.

빠르게 인식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경, 혹시 제가 잘못한 것이라도.”

“인정한다.”

“네?”

싸늘한 테라의 목소리. 절대 나와선 안 될 음성이었다.

“아주 대단했다. 인정해. 가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었으니까.”

“…….”

“꿈까지 꿨다. 괴이한 꿈. 원래 내 것이 아닌 꿈을 말이지.”

잘못된 건 알았지만, 템테이션은 끝까지 모른 체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경, 소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더 천천히 했으면 넘어갔을지 몰랐겠다. 이런 방식이 아닌…… 그냥 홀로 다가왔으면.”

“…….”

“아니, 그래도 안 됐을 거다. 운이 너무 나빴어.”

테라는 템테이션을 빤히 보며 말했다.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많이 경험했다는 것을 깨달아서지. 그래,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던 기운.”

“그게 무슨…….”

테라가 대답하기 전에, 그 몽롱한, 아니 몽롱했던 그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마나로 그리 조잡하게 꾸며 놨는데, 테라 경이 넘어오겠느냐?”

템테이션의 고개가 돌아갔고, 거기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기다란 검은 머리카락과 전체적으로 흰색에 금선이 기다랗게 떨어져 내리고 있는 사제복.

아델리나였다.

* * *

단 한 번도 같은 성에게 시선을 3초 이상 준 적이 없던 템테이션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말이다, 여인아.”

“…….”

“마나나 주술. 그런 걸로 진심을 얻기에는 너무 저급하지 않겠느냐?”

분명 탓하는 내용이었으나, 목소리는 감미롭기 이를 데 없었다.

“똑바로 상대를 보고, 호흡을 함께하고, 바른말을 해야지. 그래야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넌…….”

비웃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으나, 그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직 멀었구나. 진정한 유혹이란 건 말이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넘어오게 하는 것이지.”

템테이션은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그녀에게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을.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단 한마디도 못하고, 멍하니 지켜보고, 듣고 있는 것이 증거.

“남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내 것이 내 것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너는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니, 남의 것을 탐할 주제가 되지 못하겠다.”

말을 하려 했다.

뭔가 옭아맨 기운을 떨쳐 내고, 힘을 발휘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를 보지 말고,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아야 하고, 그녀에게 취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차라리 눈이라도 감았으면 좀 낫겠지만, 내 눈꺼풀이 내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보고, 듣고, 향할 수밖에 없었다.

“꿇어라!”

저항하려 했다.

투욱! 투욱!

이미 자신의 수하들는 즉각 그녀의 말에 반응하여 무릎 꿇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마를 바닥에 대고 있었다.

“네 것이 네 것이 아닌데, 의지가 있겠느냐? 꿇어야지.”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템테이션은 무릎을 꿇었다.

대체 왜 자신이 그녀의 말에 따르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렇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웬만하면 밑에 두고 쓰임새를 생각했겠지만, 가지고 있는 수단들이 너무나도 조잡하고 저급하여 내가 쓰기에는 지나치게 역하구나.”

말 몇 마디로 모든 이를 굴복시킨 순백의 여인, 아델리나는 아주 가볍게 한마디 했다.

“자결하라!”

따르지 말아야 했다. 그러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의지는 그녀의 말대로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크으윽!”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또는 죽이기 위해 가지고 있던 힘, 그리고 이에 숨긴 독약.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아델리나의 말에 충실하게 따랐다.

그 명령에서는 템테이션도 벗어나지 못했다.

“테라 경?”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멍해 있던 테라가 급히 정신을 차렸다.

“교황님.”

“자리를 옮기지요. 냄새가 역하지 않습니까?”

테라는 급히 아델리나의 곁에 서서 그녀를 바깥으로 에스코트했다.

“교황님이 아니었다면 큰 죄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지…….”

움직이면서 하는 테라의 말에 아델리나가 대답했다.

“혼인하세요. 테라 경의 정력은 너무 올바릅니다.”

테라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아델리나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오지 않았어도, 걱정했던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

“테라 경은 인지 못하셨겠지만, 몇 년간 제 곁을 지켜 주시면서 항마력은 충분히 올라가 있었어요. 아주 적절한 종류의 항마력으로 말이지요.”

교황이 되기 전 로라스의 명령으로 그녀의 곁을 지켰던 테라다.

테라가 템테이션에게 했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운이 나빴다.

그녀보다 훨씬 강력한 유혹, 아니, 그걸 넘어서 지배력을 행사했던 아델리나 곁을 수년간 지켜 왔으니까. 그래서 템테이션에게 넘어가지 못했다.

테라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바쁘신데 이리 시간을 허비하게 해서,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제 심지가 더 굳었다면…….”

“자책하지 마세요. 걱정은 걱정으로 끝났을 테니까. 테라 경은 제가 없어도 굳건했을 겁니다. 제 말을 믿지 못하시나요?”

테라는 고개를 저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랬다면 그랬던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녀가 그리 말한 이상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 테니까.

“그나저나 왜 이리 귀가 간지러운지 모르겠네요.”

아델리나가 귀를 만지작거리며 하는 말에, 테라는 걸음 속도를 높였다. 생각할 건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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