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70)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
내력도 마찬가지다.
그 절대적인 명제에선 나 역시 벗어나지 못한다.
쪽수에는 장사 없다는 말도, 전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다, 그 명제에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다.
사실은 아니나, 남들에게 그렇게 인식시킬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의 한계는 각기 다르다. 그리고 한계를 높이기 위해 수련이라는 걸 한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한계화를 정확히 수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보여 온 것이 있기에, 나름 통계화는 가능하다.
그게 소위 말하는 급級이다.
급은 오랜 시간 전해져 왔던, 개개인의 한계가 보여 왔던 현상에 대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뜻이다.
그 급에 따라 사람을 하수, 고수, 절정 고수라 불르기도 하고, 경지를 통체, 화경, 현경이라는 식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다.
비기너라느니 익스퍼트이고, 마스터라는 식으로 이 세계의 언어에 걸맞은 급을 나눴다.
그리고 한계가 없는 자를 초월자라 불렀다.
초월超越이란 한계, 그 이상을 뛰어넘은 자니까.
하지만 절대적 명제.
체력과 내력, 체력과 포스는 명확하게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초월자가 탄생해 온 이유는 두 개다.
첫째는 당사자들이 그 한계라는 이름이 주는 것을 명확히 파악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다른 이들이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은 신비해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러한 이유로 강한 자들은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안다.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에 집중한다.
난 강하다.
남들보다 더 높고, 넓고, 깊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무한無限한 건 아니다. 무한하지 않지만, 무한하기에 난 내 몸을 전쟁용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고, 호흡 역시 거기에 맞췄다.
말이 어렵다고?
아니,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가지고 있는 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는 것.
보통 힘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낭비한다. 자신이 힘이 있기에 1로 충분한 동작에도 2의 힘을 소비한다.
문제는 본인 스스로는 그것을 모른다.
밥 먹는 데, 말하는 데, 걷는 데 힘을 얼마나 쓰는지 신경 쓸 사람 따위는 없으니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 그 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할 필요가 생겼다. 당연히 거기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
단순하게 찌르고, 베는 동작을 수천 번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모든 힘을 균등하게 배분한다.
수천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어쩔 때는 더 세개, 어쩔 때는 더 약하게 힘을 쓸 수밖에 없다. 당연한 거다.
하지만 나는 당연한 것이, 당연해서는 안 된다.
나의 힘을 100이라 가정하고 적 한 명을 제거하는 데 1의 힘을 소비해야 한다면, 난 100명을 제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 물론 힘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다시 1 이하의 힘을 비축하는 호흡법을 가지고는 있으나, 일단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하간 100의 힘으로 100명을 처리해야 하는데, 힘이 균등하지 않아 어느 순간 2의 힘을 쓴다면 99명밖에 처리 못한다.
1 이하의 힘을 써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1의 힘이 필요한데 그 이하가 돼 버리면 적을 제거 못할 테고, 그러면 칼을 한 번 더 휘둘러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포플러와 전쟁용 육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기계적이 되어, 언제, 어떻게든 휘둘러도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말이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전쟁용 육체를 만들어 힘을 균등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하나를 제거하는 데 얼마만 한 힘을 써야 하는가?
거기서부터 경험이란 놈이 필요하다.
내 한계는 매우 높기 때문에, 나보다 격 낮은 한계를 가졌지만 일반인들보다 훨씬 높은 격을 가진 이들.
그러니까 마스터급의 인물들을 제거할 때 필요한 힘은 얼마일 것인가?
포스 유저를 상대로 할 때는? 일반병은? 거대 마물과 소형 마물 등은?
힘을 사용하는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건 판단하기 편해진다.
소위 말하는 통밥이란 게 나온다. 보는 것만으로도 파악이 되는 그런 감각.
실전이 중요하고, 경험이 중요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거다.
그런 면에서 내 경험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높았다.
전생에서는 고수부터 하수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왔고, 이 세계에서는 수많은 마물들을 처리해 왔다.
린델과 내 수하들에게 했던 말들.
누가 들었다면 잘난 체한다, 어린놈이 겉멋만 들었다고 할 수 있었겠으나, 난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있기에 그리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힘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어떤 자를 상대로 얼마만 한 힘을 써야 하는지 아니까.
괜히 폼만 잡은 건 아니란 말이지.
솔직히 혼자 하려 했다.
뭘 혼자 하려 했냐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전쟁, 전투 말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모든 계산이 섰는데 다른 이들이 필요할까?
그럼에도 이들을 훈련시키고, 데려 나온 이유는 말이다.
‘전설이 되면 그 이름만으로 힘이 되는 법이지.’
어차피 이 전투가 끝나면 내가 목적했던 것은 다 이룬다.
명성.
감히 이름만으로도 압박할 수 있는 그 힘.
나뿐만 아니라, 다른 다수에게도 준다면 이번 승리의 대가는 더더욱 높아질 터.
그래서다.
부대원들을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굴린 이유는 말이다.
‘최소한 내 뒤를 따라올 수 있는 능력은 있어야 할 테니까.’
그렇게 달렸다.
그리고 무쇠 창. 아니, 무쇠 봉을 들었다.
왜 날을 세우지 않았냐고?
봉으로 후려치고 밀어내는 것보다 베어 내는 것이 힘을 적게 소모하지 않냐고?
적이 소수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다수를 상대로 하고 있다.
베어 내면, 순간은 편할지 모르지만 잔해가 남는다. 속도에 영향을 끼치고, 속도가 정속되지 못하면 뒤로 쌓이는 저항이 너무 많다.
까아아아앙!
“커허허허헉!”
하지만 봉으로 쳐 낼 때는 그런 거 없다. 정속을 유지하고, 같은 힘으로 하나씩 밀쳐 낼 수 있다.
뭣보다!
이들이 무슨 죄인가?
적에게 동정을 베푸는 장수라는 말은 사양한다.
눈앞의 적 병졸兵卒을 내 적이라 여겼다면, 애초에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죽였지!
적!
그 단어를 충족시키려면 둘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내게 해가 되었거나!
내게 해가 될 존재!
그리고 이 병졸들은 그 둘 중 어디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럼 적에게 동정을 베푸는 게 아니라, 약자에게 베푸는 강자의 아량이 되는 거다.
퍼어어억!
날아가는 적병 하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살아 있기를 바란다. 이리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느냐?’
이미 난 뜻을 세웠다.
이들이 지금이야 내 앞을 가로막지만, 앞으로는 내 뒤를 따를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사람의 힘은, 사람이 아닌 마물, 그 잡것들을 제거해야 하는 데 사용돼야 할 거 아니냔 말이다.
퍼어억! 퍼어억!
기계적으로 들리는 육타음에.
까아아아앙! 까아아아앙!
가끔 철음이 섞여 나온다.
그리고 지금의 돌파는.
‘약해.’
예상보다 훨씬 저항력이 약했다.
사실 계산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무인이지만, 마법사이기도 하다는 것.
처음에는 광역 마법으로 일단 한번 진열을 흐트러트릴 까도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지속적으로 소비될 힘의 총량이 줄어들 테니까.
적이라면 그랬을 테지만 아니기에 그 방법을 쓰지 않았다.
다만 충만한 마나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손해인 듯한 기분에, 돌격 전에 내 신체와 무기를 강화했을 뿐이다.
내력과 마나의 힘은 별개의 것이라, 내 힘의 총량은 늘어났다.
그래서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저항감이 덜한 것이리라.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어느 순간 집중력이 깨졌다.
적의 첫 번째 진형을 돌파했고, 적의 두 번째 진형을 향하기 직전이라 저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제야 천지를 채우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내 부대원들.
잘들 따라오고 있다.
이상한 건 아니다.
아니, 당연한 거다.
이리 큰길을 열어 주고 있는데, 따라오지 못하면 안 된다. 그간 피똥까지 싸 가며 버텨 온 보상은 받아야 하지 않겠나?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낙오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픽업이라는 이름이었다. 흑아를 돌봐 주는 병사.
‘어디를 보는 거지?’
뭐, 굳이 궁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너무 굴렸는지 어디 한 군데씩 이상한 병사들이었으니까.
돌파가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보다 더 쉽다.
2열에 있던 병졸들도 보지 않았겠는가?
내가 어떻게 자신들의 눈앞에까지 와 있는지.
전의를 불태우는 것도, 상대할 만하다는 생각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을 때 생기는 현상.
‘역시 압도적인 게 좋지.’
그렇게 뚫었다. 아니, 반쯤 열린 길을 돌파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
앞서 두 차례의 병력과는 좀 달랐다.
적장의 호위병들이고, 기병騎兵이 아닌 기사騎士들이 상당수 있었을 테니.
물론 그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면 될 힘을 서넛으로 올리면 된다. 게다가 이미 마나 때문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여력이 있는 상태다.
나의 한계는 아직 까마득하게 많이 남아 있다는 거다.
차아아앙! 타아아앙!
육타음보다는 철음이 많이 울렸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밀어서 날려 버리고, 쳐 내면서 떨어트렸다.
“……!”
그렇게 마침내 힘 조절이 아닌, 써야 할 상대를 맞닥트렸다.
“바르샤바 엔 에네츠. 그것이 나의 이름. 그대는 누군가?”
나직하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음성.
말에 타 있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정돈된 기운.
‘십대기사라…….’
보이는 풍모만으로는 그 명성이 어울릴 만한 자다.
그래서 아쉽다. 안타깝다.
훌륭한 무인이다. 저리 경지를 쌓아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하지만 곧 그가 쌓아올린 것들은 모래먼지처럼 휘날리게 될 것이다.
강자니까 살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는 병졸이 아닌 지휘관.
전투의 모든 책임을 가져가야 할 책임자.
다른 상황이었다면 생포하여 뒤를 보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럴 수가 없었다.
초전.
적의 전의를 단숨에 뭉개뜨리기 위해 압도하기로 마음먹었다.
“로라스 린 베스타인.”
그래서였다.
무인으로서 그의 이름을 기억해 주고, 이름을 알려 준 이유는.
“어떻게…… 직접…….”
적지 않게 당황한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어떤 장수인지 난 모른다. 하지만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을 따른 것이 아쉽군.”
“…….”
“그대 정도면 알아볼 터.”
“…….”
“보아 주겠다.”
난 정해진 힘의 이상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대가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것을 제대로 보아 주겠다.”
저만한 무인이라면 능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가진 힘. 그 한계의 차이를 말이다.
“후회 없길 바란다.”
굳게 검을 잡는 상대. 아니, 바르샤바라는 이름을 가진 무인.
“흐아아앗!”
기합을 지르며, 검에 바리바리 포스를 싣는다.
거대한 양의 포스였다. 검을 넘어 바르샤바의 몸에 빛이 나는 느낌까지 들었으니까.
그 탓에 적병의 환희, 아군의 절망 어린 표정도 들어왔다. 하지만 이내 바르샤바의 검을 쳐다봤다.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시이이이이이잇!
검에 실린 포스가 파공음까지 집어삼키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끝까지 보았다.
“훌륭했다!”
그리 말해 줬다. 그리고 철봉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