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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65화 (265/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65)

전략이란 게 싸워 부수는 거란다.

이게, 전쟁이란 게 무기 들고 달려가서 적을 죽이면 되는 줄 아는 일반인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다.

무려 에렌의 군사의 입에서 나온 전략이다.

“해 볼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참다 못한 야휘가 입을 열었다.

“군사!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보지 않으셨습니까? 후작님. 저희는 최강의 장기짝을 가졌습니다.”

“어찌 그런 불경한…….”

“그게 주군의 뜻이었습니다. 각자 잘하는 걸 하자 하시더군요.”

“…….”

“제일 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걸로 보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전 그것을 전제하에 모든 전술을 짤 생각입니다.”

모두가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오로지 한 명, 차칼릿만이 흥분하며 말했다.

“화끈하시군. 정말 화끈하셔!”

“차칼릿 백작. 지금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후작님. 뭐가 걱정이십니까? 저만 본 겁니까? 저희가 모실 주군이 어떤 사람인지 말입니다.”

야휘는 또 할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이번은 아까와는 다른 이유였다.

봤다.

장님이 아닌 이상 볼 수밖에 없었다.

단순하게 쳐다보고,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정도의 압박을 느꼈다.

아군인. 그리고 포스 유저들인 자신들이 그리 느낀 기운. 그것이 전장에서 적을 향했을 때는 또 어떠할 것인가?

“전쟁은 혼자 하는 게 아니야.”

애써 찾은 변명. 하지만 그걸 린델은 너무나도 쉽게 깨 버렸다.

“주군께서는 혼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

“후작님과 저. 그리고 다른 분들도 계십니다. 출정 전에 모든 계획을 올리겠습니다. 판단해 주십시오.”

야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닫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속전속결. 대전략은 그것으로 하지. 주군께 총지휘관을 위임받은 건 모두 알 터.”

야휘는 단호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보고하게. 지휘 체계부터 일관화시켜야 할 테니.”

그렇게 회의는 끝났다.

* * *

크르릉. 우드드득. 그득그득.

숨소리와 뼈 부러지는 소리와 씹는 소리.

이 괴이한 소리를 동시에 내는 존재가 있었다.

“정말 잘 먹는다. 아주 보면 내 배까지 불러.”

로라스는 흑아의 콧등을 쓸어 주며 입을 열었다.

크르릉.

“말은 아니지만 말 흉내는 내면 안 되겠냐? 자꾸 네가 ‘탈것!’이라는 것을 잊는단 말이지.

로라스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흑아가 고개를 들어 로라스를 노려보듯 보았다.

빠아아악!

그리고 로라스는 그 눈빛을 보자마자, 방금까지 쓸어 주던 콧등을 주먹으로 쳐 버렸다.

끄으으으으으응!

“검둥이! 눈빛 조심하라고 했지? 마물이 되고 싶으면 그렇다는 의지를 보여. 당장 죽여 버릴 테니.”

로라스의 살기에 정말 개처럼 우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들지 못했다.

아주 옛날에야 가끔 사고를 치긴 했지만, 요새는 훈련도 잘 따르고, 사람을 해하는 일도 없다.

하지만 로라스는 흑아가 마물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가끔 이렇게 흉성을 드러낼 때가 있는데, 평범한 사람들 앞에서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흑아를 아끼는 건 사실이나, 사람을 해하는 경우가 생기면 가차 없이 죽일 것이다. 사람을 무는 애완견은 살처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기에 흉성을 드러낼 때마다 혹독하게 다루는 것이다.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

“먹어.”

고깃덩이를 손수 흑아의 입에 갖다 댔다.

크르릉.

방금까지만 해도 주눅이 들어 있던 흑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고깃덩이를 씹기 시작했다.

확실히 마물은 마물이다.

‘지능이 뛰어나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사고를 치고 죽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랬다면.

‘네놈을 써먹을 수도 없었겠지.’

로라스는 먹고 있는 흑아의 콧등을 쓸어 주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네가 밥값 좀 하겠구나.”

크르르릉.

정말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로라스의 말끝마다 추임새를 넣는 흑아.

“실전을 거치지 못한 게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잘해야 한다. 네놈의 흉성을 유감없이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크르르릉.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흑아를 보며 로라스는 미소를 지었다.

어린 사내아이가 장난감 검을 처음 받고 나서의 설렘이랄까?

빨리 전장에서 흑아의 쓰임새를 확인해 보고 싶은 그런 욕구가 들었다.

거마巨馬종에 비해도, 최소 반 이상은 큰 놈이다.

힘은 또 어떤가?

이놈들에게 가장 큰 애정을 쏟고 있는 시그탑이 실제로 실험도 해 봤다.

일반 말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여 황소와 비교해야 했고, 결과적으로는 세 마리의 황소가 끄는 힘을 발휘했다.

“게다가 마물 아니랄까 봐, 네놈의 피부는 가벼운 칼질로는 흠집조차 내기 힘드니 전마로서는 최고란 말이다.”

크르릉.

“그러니 이번에 잘하자. 잘하면 종마로서 써 줄 테니까.”

크르릉! 크르릉!

이 역시 시그탑이 몇 년 전부터 일반 말과 교접을 시도 중이다. 성공만 하면 락의 엄청난 수익 창출원이 됨과 동시에, 전쟁의 판도가 바뀔지도 모르는 엄청난 시도다.

로라스가 좋아 날뛰는 흑아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할 때였다.

“주군. 렌 경이 도착했습니다.”

번천이 다가오며 하는 말에, 로라스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가자.”

로라스는 번천과 함께 이동하며 고민했다.

렌은 자신에게 없어선 안 될 측근 중 하나.

그는 습격에 불구가 된 이후, 락에서 치료 중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움직일 상황이 되지 못했기에, 사람을 보내 계속 경과보고만 받고 있는 중이었다.

로라스는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 무슨 말을 어찌해야 위로가 될까?

평상시처럼 해야 할까? 아니면 어떤 관심을 보여 줘야 할까?

고민은 성내 응접실에 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백작님! 이제야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활기찬 목소리로, 겨드랑이에 목발을 낀 채로 다가오는 렌.

평생 걷지 못할 거라 들었는데, 목발의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제대로 예를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리가 이 모양이라!”

“허례지. 그런 걸 원하지 않아.”

로라스는 그리 말하며 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와락 포옹했다.

“백작님…….”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렌.”

오면서 수많은 말을 생각했지만,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할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 하지만 어쩌겠나?

보자마자 그런 감정이 솟구쳤는데.

힘들 때, 밑바닥에서부터 같이 올라온 식구가 너무 소중했는데 말이다.

“흐흐흐. 당황스럽습니다. 백작님이 이러시니 말입니다.”

다행히도 렌이 유연하게 대처하니, 어색함은 크지 않았다.

“다리는? 움직일 수 있게 된 건가? 치료를 위해서라면 뭐든 아끼지 말라 했는데.”

“흐흐흐흐.”

렌은 대답 대신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바지춤을 슬쩍 올렸다. 허벅지에서부터 부츠 안까지 이질적인 금속의 막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로라스의 눈빛이 흔들리자, 렌은 급히 말했다.

“보기엔 이래도 제법 훌륭하게 움직입니다. 이래 봬도 마법 아이템이니까요.”

이걸 만들기 위해 락의 대장장이들이 총동원되었고, 마탑에서도 마나석을 사용, 조금이라도 사용하기 편하게 마법적 처리를 거쳤다는 의족.

렌은 그걸 마치 자랑하듯이 설명하니, 로라스의 마음은 더 무거웠다.

“놈들, 조만간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천 배, 만 배. 결과를 보면 억울한 마음은 조금도 없을 정도로!”

나직하지만 잔뜩 힘이 들어간 로라스의 말에 렌은 다시 한 번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 아닙니까? 다리 하나 내주긴 했지만, 제가 전장에 나설 것도 아니고. 움직이는 데 지장만 없으면 되지요.”

“보답은 반드시 받을 것이다, 렌.”

렌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로열 상단과 함께, 군 대상 최우선 상단으로 지정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고. 네 부상은 별개지.”

“지금도 충분합니다. 떼돈 벌게 될 것 같습니다.”

“전쟁상인의 위험부담이 있는데 당연히 보상이 있어야지.”

“흐흐흐. 백작님이 움직이시는데 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초기 때 투자했던 게 더 위험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렌이 계속 쾌활하게 대응하자, 로라스로서도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병참에 어려운 건 없고?”

“저희 상단은 락에서 단단히 단련되었습니다. 매년 한 번씩 토벌하고, 얼마 전 대규모 토벌전에서도 저희가 다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전쟁상인에 익숙하겠군.”

“네. 규모의 문제지, 행정적인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 전쟁도 북부에서 벌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 텃밭입니다. 병사들이 무기가 없어 못 싸우고, 굶주릴 일은 전혀 만들지 않겠습니다.”

“비싸게 받아. 나 역시 비싸게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

렌은 대놓고 기뻐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백작님과는 늘 이런 부분에서 마음이 맞았다니까요. 보통 윗분들은 돈에 관련된 건 하찮다 여기시는데.”

“그거야말로 정말 뭣도 모르는 이야기인 거지.”

“바가지는 씌우지 않겠습니다. 저는 상단주이면서 와카디아의 재정 담당관이고, 백작님의 개인 재정 담당 아니겠습니까? 돈을 불리지, 축소시키지는 않습니다.”

“반가운 소리군. 나도 어디 창고 하나에 골드를 채워 넣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부담 없이 렌과 대화를 끝낸 로라스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병참은 우리 군사와 상의할 일이지만, 너는 언제, 어디서든, 내게 연락이 올 수 있게 만들겠다. 애로 사항이 생기면 바로 보고할 수 있도록.”

렌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넘치는 배려 감사합니다.”

* * *

타아아앙! 타아아앙!

쉰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 육체는 한창 때의 단련된 무인의 몸이었다.

타아아앙! 타아아앙!

그런 그는 망치를 모루에 후려치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일반적인 망치는 아니었다. 머리 부분이 어른 머리통보다 더 큰, 은어로 깡깡이라 불리는 거대 망치.

그런 망치를 아이들 장난감 다루듯 너무나도 편안하게 휘두르는 그의 이름은 바부스.

에렌 최고의 대장장이라 칭송받는 그는 자신의 직업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에렌 최고의 대장장이는 곧 북부의 최고의 대장장이란 뜻이다. 아니, 어쩌면 제국을 넘어선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라 부를 수도 있다.

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가 바로 에렌이었으니까.

여하간 바부스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만큼 그 명성도 너무나도 사랑했다. 그래서였다.

‘내가 만들고야 만다! 내가 못 만들면 누가 만들어!’

영주님이 새로운 무기를 자신이 아닌, 락에 주문을 했다는 소식에 크게 반발한 것은.

그래서 목숨 걸고 직접 성에 찾아와 영주께서 주문한 무기를 자신이 만들겠다 호언장담했다.

정말 지금 와서는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어처구니가 없는 일.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전대 영주인 베스타인 공작의 무기를 담당하는 것이 자신이었고, 그분의 컬렉션이었던 검들을 주기적으로 손봤던 것도 자신이었다. 그러한 일을 해 왔기에, 이런 명성을 얻기도 했고 말이다.

타아아아앙! 타아아아아앙!

망치는 강력하게, 하지만 모루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게. 자신만의 감각으로!

바부스는 이 일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솔직히 이건 고난이도의 작업은 아니다.

그래 봤자 고작 철창, 아니 철로 만든 봉일 뿐이었다.

다만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무게가 완벽하게 같아야 하며, 매우 정직한 일직선을 뽑아내야 했고, 그걸 두 개로 나눴다가 합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까다로울 뿐이었다.

타아아앙! 타아아앙!

이제 거의 완성 단계의 철봉.

철봉의 모든 지점의 무게와 강도를 같게 하는 작업도 오늘로써 끝이 날 것 같다. 그래서였다.

자신이 만든 무기에 대해 그리고 그 쓰임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그런데 이걸 전장에서 쓰실 생각이신가? 이럴 거면 차라리 낭아봉이 더 낫지 않나?’

이 철봉은 무겁다. 일반인은 들고 있는 것조차 버거워할 만한 무게다.

결국 힘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인데, 무게를 이용하여 쳐 내고 부수는 것 이외에는 용도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낭아봉을 생각한 것이고.

‘창이 살상력은 더 뛰어날 텐데?’

바부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다시 망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모든 역량을 퍼부은 중요한 직업에 딴생각은 금물.

자신은 영주님의 요구에 맞게 만들면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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