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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61화 (261/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61)

북부 귀족 총소집령.

그것이 발동되었을 때만 해도 크게 논란이 될 만한 것은 없다.

총소집령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만 소집되는 큰 행사지만, 아주 드문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곧 이은 소문.

아큘라스 공작 역시 자신의 산하 귀족들을 소집하기 시작한 것.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제국의 두 기둥인 에렌과 아큘라스 공작의 영지인 메가에서까지 소집했다는 건, 남부 전쟁에서 제국이 크게 불리해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큘라는 귀족들뿐만 아니라 병력까지 집결시키고 있었다. 그에 모자라 추가로 징집까지 실시했다.

사람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할 때, 그 불안에 기름을 붓는 소문.

아큘라스 공작의 병력이 전장인 남부가 아닌 북부를 향할 거라는 것이었다.

그 탓에 에렌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남부와 영지를 맞대고 있는 귀족들은 혼란스러워졌다.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불충한 로라스 백작의 작위를 거두고, 영지와 재산을 몰수한다.

그리고 황도에서 전해진 소식은, 북부를 혼돈의 도가니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별 탈 없이 로라스 백작이 곧 공작에 임명될 거라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북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우리는 북부의 지배자를 인정하지 못한다.

에렌을 따르지 않겠다고 천명한 귀족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또 다른 세력으로 집결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북부의 입장, 정확히는 에렌의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악의 상황.

그런데 말이다.

-오지 않는 자는 충성의 맹세를 어긴 것으로 간주하겠다.

에렌은 대화를 통한 설득을 시도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소집령에 응하라는 강경 자세를 보였다.

모두가 의아해했다.

에렌이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대 공작이 사라진 지 얼마나 되었단 말인가?

어르고 달래서라도 세력의 결속을 다져야 할 시기에, 저런 대응이라니 말이다.

남부와 영지를 맞대고 있는 귀족들은 다 죽으라는 소리 아닌가?

극단적인 줄 세우기.

어떤 자들은 현 상황을 그리 표현하기 시작했다.

에렌은 아군이 아니면 적이라는 확실한 방침을 세웠다고 했다.

그렇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상황이 만들어질지 모르는 혼탁한 시야 속에서 시간은 흐르기 시작했다.

“극단적이라 생각은 들지만.”

페컴은 그리 말하면서도 로라스의 생각에 찬성을 표했다.

“영주님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보여 줄 필요가 있어.”

린델은 그런 페컴을 보며 감탄했다.

“단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으시는군요. 정말 많은 이들이 의심하고 두려워했는데 말입니다. 저마저도 그랬고요.”

페컴은 피식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해하네. 아니, 오히려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페컴 님은 어찌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신 게 되지만 말입니다.”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페컴은 소리 내며 웃고는 자답했다.

“하지만 난 오랫동안 봐 왔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무인을. 그것도 두 분이나 말이야.”

“그 말씀은…….”

린델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고.

“두 분 모두 비슷하시네.”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린델은 순간 페컴이 충성심이 지나치다 못해 판단력까지 흐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초월자인 베스타인 공작과 지금의 로라스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가?

“곁에 있다 보면 알 수 있는 게 있어. 최소한 무력 면에서는 두 분이 차이가 없으시네.”

“…….”

“그날 자네도 보지 않았나? 대공자…… 디존슨이 모두를 죽이기 위해 처형식을 열었을 때!”

린델도 그날을 떠올렸다.

그래. 분명 그날 로라스가 보였던 무위는 깜짝 놀랄 만했다. 하지만 그는 듀얼마스터. 분명 마법의 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린델의 속내를 알아차린 듯, 페컴이 부연 설명을 했다.

“미안하지만 자네의 포스 수준으론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알지 못할 거야.”

“…….”

“아니, 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 몇이나 알아봤을까? 영주님께서 보인 그 모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페컴은 묘한 표정으로 그날을 떠올리다가, 다시 린델을 보며 말을 이었다.

“초월자셨던 주군을 곁에서 오랫동안 보아 오지 않았다면 나조차도 몰랐겠지. 특유의 끈적끈적하면서, 시릴 듯한 그 묘한 기운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뿐이니까.”

“주군께서 정말 초월자시라면…….”

린델은 순간 답답해하는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왜 말씀해 주시지 않았을까요?

“영주님에게는 그게 큰일이 아니었으니까.”

“…….”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일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게 특별하지는 않은 거야. 그게 중요한 건지도 모르시는 게지.”

“하아…….”

어이가 없어 숨을 내쉬는 린델을 보며 페컴은 어느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답답하지. 잘 알아. 하지만 그분들은 범인들과는 달라.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아이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할 때도 있고, 정말 할 수만 있다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변죽이 들끓기도 하시지.”

“그러고 보니 이번 일도 무조건 밀어붙이라 하셨지요……. 뒤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시고. 아이처럼…….”

“보여 준다고 하셨나? 그럼, 이번에는 모두가 알 수 있을 거야. 자네는 물론이고 평범한 사람들도 모두 알 수 있게. 직관적으로 그런 모습을 말이지.”

린델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영주님께서는 대체 언제 돌아오시는 겁니까?”

“늦지 않게 오신다고 하셨네.”

“대체 지금 이 시기에 어딜…….”

“하하하. 자기는 장기짝이라고 하시던데. 그리고 장기짝은 움직이기 전까지 가만히 있는 거라 하시고. 그리고 고생은 원래 밑의 사람이 하는 거라 하시더군.”

린델은 정말 할 말이 없었다.

* * *

“하아하아!”

내력을 사용하지 않고, 이리 순수 육체의 힘만 쓴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귀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미칠 듯이 뛰는 심장 박동의 감각, 입에서 느껴지는 단내와 콧속을 찌르는 땀 냄새.

인간의 감각이 거의 동시에 느껴지는 이 순간은 정말.

‘힘드네, 힘들어.’

역시 내력 공부가 더 편하다.

다만 이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경지에 이르렀고, 또 내외공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개천지보의 위력은 절반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이 고생을 해 가며 신체 강화 훈련 중이다.

‘폼은 있는 대로 다 잡았는데, 자칫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지.’

그런 알량한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후우우! 후우우!”

너무 격렬하게 움직였는지,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체감한 몸 상태여서 그런지, 호흡은 쉽게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운기조식으로 하면 금방 가라앉겠지만, 이건 이것대로 그냥 즐기기로 했다.

수련이란 놈은 그렇다.

힘들면 힘들수록 그 성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 내면 그것이 자신감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오른 자신감. 실력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격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에는 힘겨운 진실.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면 달려가겠지만 보이지 않으면 참담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반드시 나아질 거라는 믿음.

왜 이렇게 개똥철학을 중얼거리냐면 말이다.

“그러니 한계를 짓지 마라. 네 몸뚱이는 네 예상보다 훌륭하니까.”

“죽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덩치는 산만하여 헐떡거리는 이놈은.

“포플러! 네가 여태 재능 부여 받은 몸뚱이만 믿었다는 증거다. 하려면 악착같이 한계를 밀어 올려갔어야지.”

“전 환자란 말입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날 이놈을 보고 오랜 시간 핍박당하고, 육체적 고문까지 당한 것을 알아봤으니까.

지금은 그때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살이 올라왔지만, 예전의 몸집에 비하면 아직은 반쪽.

“한계를 만들지 말라 방금 말했다. 그 어떤 일에도 핑계를 대지 마라. 그게 마스터로서 가는 첫걸음이다.”

“정말 제게 왜 이러십니까!”

“나한테 자신을 대장으로 모시라는 사람은 네가 유일했으니 신기해서?”

포플러는 억울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뒤끝이 있으십니다.”

“억울하면 나보다 강해져라.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살다 보면 뭘 해도 싫지 않은 사람들을 알게 된다. 별거 아닌데도 곁에 두면 그냥 즐거운 사람들.

내게는 그런 사람들이 제레미와 포플러다.

그러한 이유와 마음의 빚도 살짝 느끼고 있었기에, 녀석을 파트너 삼아 나왔다.

신체 강화는 말 그대로 반복 작업. 그 지루한 시간을 이겨 내기에는 파트너를 두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으니까.

“정 힘들면 아이언 센터를 생각해. 에르페유 스승님은 제자들은 많았지만 수발 제자를 따로 두지 않았다. 권신의 칭호를 누군가는 이어야 하지 않겠나?”

포플러의 두 눈이 반짝인다.

‘넘어올 줄 알았다.’

나서기 좋아하고 시선 받는 걸 즐기는 녀석이다.

슬쩍 운만 떼도 의욕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근골과 재능은 탁월하니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

“일어서. 권신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가볍지 않은데, 네 의지는 너무 가벼워 보인다.”

이를 악물며 일어서는 포플러에게 물었다.

“그런데 목마르지 않냐?”

“아까 물 다 마셨습니다.”

“그러니까.”

“…….”

“목마르지 않냐? 장래 권신?”

포플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지금에서야 눈치챘나 보다.

“정말 제가 에르페유 님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두 말은 안 한다. 너라면! 그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나이 쉰 전에 가능할 거라 약속하지.”

“다녀오겠습니다.”

산을 내려가는 녀석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곁에 두면 정말 즐겁다.

그리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부들거리던 근육이 진정되었다.

‘슬슬 완성이 된 것 같기는 한데.’

사실 개천지보를 위한 내외공의 조화는 완성을 이뤘다. 다만 내가 원하는 건 그 이상.

‘개개인이 아닌 집단전이라면! 그리고 공간이 도시가 아닌 공터라면!’

몸을 전쟁용으로 바꿔야 한다.

이해가 안 갈지 모르겠으나, 내력도 상대에 맞춰 그 결을 달리 활용하는데, 그걸 구현하는 육체야 두말할 것 없지 않은가?

물론 현재 경지로 봤을 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그냥 마음가짐의 문제다.

인간의 의지, 의욕 이런 건 약하기 이를 데 없어서, 매번 갈고닦아 줄 필요가 있다.

어떤 왕도 복수심을 잊지 않기 위해 쓸개를 핥고, 섶에 누워 잠을 청했다는데, 난 그걸 몸에 기억시키겠다는 거다.

쉴 새 없이!

생각할 것 없이!

앞에 적이 있으면 찌르고!

옆에 적이 있으면 베어 내고!

이성보다 본능적으로, 훈련했던 대로 즉각 반응을 보이는 그런 전쟁용 신체!

물론 그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하나 더 훈련해야 한다. 육체 수련보다 더 지루할 것이 분명한 기본 동작 훈련.

그때는 파트너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때는…….’

정말 스스로와의 싸움이라고 할 정도의…… 그것이 될 테니까.

그렇게 경직이 풀린 근육을 다시 조이려 준비했다.

“후우우!”

지금의 운기조식은 그러기 위한 운기조식

개천지보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자연 속에서 함께 신체를 회복하려 할 때였다.

‘응?’

개천지보에 감응하는 기운이 있었다.

그 기운은 매우 미약하여 나조차도 놓칠 정도의 미량이었지만, 확실했다.

‘누구지?’

별거 없는 산이다. 게다가 한창 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사냥꾼들이나 약초꾼들도 산에 오르지 않는 시기이다.

그런데 개천지보가 감응하는 기운을 가진 이가 있다는 건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운을 찾아 움직였다.

그렇게 산등성을 타고 움직이는 가운데 사람들을 발견했다.

한 청년을 같은 집단으로 보이는 십여 명의 사내들에게 포위 되어 있었다.

집단의 사내들은, 청년을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그리 행동하고 있었다.

잠시 지켜보았다.

중간에 낀 청년은 미친 듯이 발악을 하며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모양새이나, 중과부적에, 그 실력도 사내들에 비해 나은 게 없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물었다.

“너희들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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