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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52화 (252/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52)

역시 내 사람들 중 이론을 현실에 써먹을 수 있는 이들다운 대화.

“그렇다는데, 더 볼일이 남았는가?”

쐐기를 박는 내 말에 콧수염은 발끈했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뭐가 말인가?”

“이건……. 어찌 됐거나 디존슨 백작은 당시 영주 대리였습니다. 당연히 현재 영주께서 책임져야 할 부분.”

믿고 있는 근거가 그것뿐이니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지만…….

“채무는 책임지겠지만, 거래는 아니지. 리스크 없는 성공이 있던가? 그대들은 실패했어. 그리고 중요한 건.”

“…….”

“내가 지금 불쾌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야. 디존슨에게 베팅했다는 건 둘째 치고, 감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를 두고 도박을 했다는 사실이 말이지.”

“그건…….”

“두 번 말하지 않아. 그 거래는 끝이야. 새로운 거래를 제안한다면 들어 줄 용의는 있으나, 그런 게 없으면 돌아가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골드맨스는 빌려 준 돈은 반드시 회수합니다.”

“내겐 간단한 문제고, 내가 빌린 것도 아니지.”

“에렌의 영주이시지만 저희 골드맨스와 척을 지면 영주님께서도 좋을 일이 하나도…… 크흑!”

콧수염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슬쩍 살기를 보냈으니까.

“협박은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거고. 또한 상대도 봐가면서 해야지. 내가 약해 보이나?”

“…….”

“전대 가주께서 계실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정말 내가 그리 만만해 보였나 보군.”

“…….”

“돌아가라는 말을 듣지 않고 협박까지 하니 기가 차는군. 보내려면 눈치 빠른 자라도 보내든가. 날 가볍게 본 벌은 받아야지.”

페컴에게 명령했다.

“뼈저리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때까지 뇌옥에 가둬라.”

“이런 법은 없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이곳의 법이다.”

페컴이 눈짓을 하자 지키고 있던 가드들이 놈들에게 다가갔다.

“반항하면 바로 나가서 목을 쳐도 좋다!”

죽음이 두려웠던 것인지, 거부의 몸짓을 보이던 놈들이 순간 얌전해졌다.

그렇게 놈들이 끌려 간 후, 렌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영주님, 골드맨스는 만만히 볼 세력이 아닙니다. 감금까지는…… 일단 대화로 풀어 보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교만함은 누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저리 말하는 걸 보면 확실히 난 세력이란 소리란 건데.

“대화를 했지만 안 들었잖아.”

“…….”

“두 사람이 걱정하는 바가 무언지는 알겠어.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단 말이지.”

페컴이 물었다.

“무슨 다른 생각이라도 있으신지?”

“생각은 내가 아니라 저쪽에서 해야지. 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해야 하나?”

“그게…….”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하고.”

“…….”

“좋잖아. 외부의 적으로 써먹기에. 놈들의 역량이 그 정도가 된다면 말이지.”

집권 초기다.

에렌을 물려받기 전 주요직 인사들의 충성 맹세는 받았지만, 그게 어디 본심에서 우러나왔겠는가?

‘결속을 다지는 데 적보다 더 좋은 건 없잖아. 린델이 돌아오기 전에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상한 놈들에게 아까운 시간만 뺏겼어. 계속 일들 봐.”

“저들은…….”

“뭔 수작을 부릴 때까지 기다려 줘야지. 그리고 수작을 부리면 과하게 대응하자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는 두 사람.

‘당분간은 바쁘고 할 게 많아서 좋겠네.’

나도 움직였다.

* * *

디존슨이 폐쇄시켰던 마탑은 거의 복구가 되어 있었다.

마탑에서 폐쇄란 일반 건물에서 문을 닫았다가 여는 거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마탑과 마탑의 교신, 그리고 마탑의 방어 체계와 부속시설인 마나진 등 평상시에도 엄청난 마나가 필요하다.

괜히 마탑이 돈 잡아먹는 하마가 아니었다.

그런 마탑을, 그것도 대륙에서 손꼽힐 정도의 거대 마탑을 단숨에 폐쇄시켰으니 복구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스승님.”

로라스가 마탑에서 헤르메스를 부르니, 그녀는 깜짝 놀라며 허리를 숙였다.

“영주님, 어찌 연락도 안 주시고.”

“그랬다가는 괜히 스승님의 시간을 빼앗을 테니까요.”

“무슨 그런 말씀을. 저야 오시면 늘 환영하지요. 이제 저희 마탑의 새로운 물주 아니십니까?”

“하하하. 어디 가지만 마십시오. 스승님이라면 어디든 두 팔 벌려 환영할 분 아닙니까?”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저희 마탑을 말입니다.”

“마탑과 아이언 센터의 지원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하라 지시해 놓았습니다. 혹시라도 바로 진행되지 않는 게 있다면 직접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지금처럼이면 충분합니다. 복구도 거의 다 되었으니 특별히 지원을 요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이언센터를 거론하는 순간 원정에서 죽은 에르페유가 두 사람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로라스는 말을 돌리지 않기로 했다.

“직접 보셨지요? 할아버지께서도 직접 정리하지 못한 그것 말입니다.”

“네. 그래서 이미 그에 대한 것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마탑에도 협조 요청을 구해 놓았으니 단서는 나올 것입니다.”

“일부 인원만 그쪽으로 투입하시고, 스승님께서는 다른 걸 해 주셨으면 합니다.”

“명령하십시오. 전 스승이기 전에 영주님의 신하입니다.”

“부탁으로 정리하지요. 마법병단을 키워 주셨으면 합니다.”

헤르메스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병단이라면 이미?”

“최정예지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규모를 늘리는 겁니다. 현재 마탑의 매지스터들로 구성된 병단이 아닌, 3서클 이하 마법사들 말입니다.”

헤르메스는 즉각 로라스의 의도를 알아냈다.

“전쟁입니까?”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너무 거대했습니다. 분명 나서려는 인간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전.”

로라스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시간 아깝게 일일이 대화로 풀지 않으려 합니다. 에렌의 영주로서, 북부의 지배자로서, 권위를 확실하게 보여 줄 겁니다.”

헤르메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제 주군이시니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지시 사항이 더 있습니까?”

“규모! 그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기왕이면 에르자일에게도 병단이 하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락의 규모로 봐서는……. 매지스터급 마법사를 더 파견해야겠군요.”

헤르메스는 그리 대답하고는, 이내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런데 혼인은 언제 하실 겁니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말입니다.”(위 대사랑 함께 헤르메스의 대사 같습니다.)

헤르메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자이면서 딸입니다. 그런 도둑 결혼은 용납이 안 됩니다. 제 주군이라 해도 말이지요.”

“하하하……. 그렇게 표현하시면…….”

“일에 집중하십시오. 그 일은 백작 부인과 제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짜가 정해지면 따라 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는 문제없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한 로라스는 밖으로 나왔다.

‘혼인이라……. 하긴 얼렁뚱땅 맞이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

그게 기다리면서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은 에르자일에 대한 예의.

로라스는 기왕 이리된 것 제대로 혼인식을 올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 * *

에렌의 새로운 영주에 대한 소식이 제국을 휩쓸었다.

아들이 아닌 방계, 그것도 한 대 아래인 새카맣게 어린 사내가 베스타인 공작의 뒤를 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적인 사실로 다가왔다.

“서로 싸우다 다 죽은 건가?”

“혹시 공작이 노망이 든 거 아냐?”

수많은 의혹과.

“그 무슨 이유든 미친 거지. 에렌이 어떤 곳인가? 제국의 반이야.”

“그런 애송이에게 그런 중한 자리를.”

수많은 우려가 생겼다.

“바꿔야 해.”

“늦었지. 공작이 직접 군단장들을 비롯한 대영주분들에게 충성 맹세를 시켰다지 않은가.”

“그분들도 어쩔 수 없는 거였지. 공작님의 명령이었다면.”

그래서 주장하는 이들이 생기자.

“반려될 거야.”

“공작께서 정한걸. 그리고 역대 베스타인 가문의 가주들이 그랬듯이, 공작께서도 모든 것을 놓고 유람을 떠나셨다는데.”

“에렌의 영주가 북부의 지배자라지만, 결국 황제 폐하의 허락이 있어야 해. 아직 백작 아닌가.”

“역대로 거부되었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아니지.”

이목은 황제에게로 집중되었다.

“지긋지긋한 영감이 드디어 죽었다고?”

황제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심복이 말했다.

“아직 방심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자리를 물려주고, 유람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리가! 다시 돌아올 문제라면 넘겨주지도 않았을 거야. 역사상 물려준 자리를 다시 되찾은 적도 없고, 이건 황가만이 아는 사실인데.”

황제는 그리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베스타인 가주들의 최후를 굳이 남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실해. 새로운 영주가 에렌을 말아먹어도 그 영감이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 거야. 그걸 기본으로 생각해야 해.”

자신감 있는 황제의 말에 심복은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이 기회에 북부를 황가의 아래에 두심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영감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다지만 아무 능력 없는 자를 그 자리에 앉히지 않았을 테니.”

“이제 서른이라 들었습니다. 그 막중한 자리를 맡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황제는 실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러니 더 좋지. 너무 능력이 뛰어나면 짐의 말을 듣겠는가?”

“그건 그렇습니다.”

“게다가 로라스 백작은 짐의 사람이란 말이야. 아무 작위도 없는 그를 고위 귀족으로 만든 게 바로 짐 아니었던가?”

“그때 충성 맹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해야지. 공작이 되려면 짐의 윤허가 필요하지 않은가.”

“아!”

심복이 소리를 내자 황제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디존슨도 짐에게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에렌의 일군단을 보냈는데, 그에게는 뭘 내놓으라 할까?”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에렌의 전력이 참전하면, 싸우기도 전에 항복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그리고 전역에 몬스터들도 정리 좀 해야지. 북부는 어느 정도 줄었다던데?”

“그렇습니다. 병력이 대부분 몬스터 토벌 쪽으로 움직였으니까요. 와카디아는 예전보다 더 몬스터들의 숫자가 줄었다고 합니다.”

“북부가 추워서 몬스터들이 더 힘을 못 쓰나 보군.”

심복은 순간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입 밖으로 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유독 추위에 약한 몬스터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하간 이제 제대로 짐의 권위를 세울 수 있겠군. 이리 간단하게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희희낙락하는 황제와 심복에게 시종 하나가 다가와 보고했다.

“에렌에서 사자가 도착했습니다.”

황제는 거 보란 듯이 심복에게 미소를 보여 주고는, 시종에게 말했다.

“거처를 마련해 주고 보름 후 알현하겠다 하라.”

“네, 폐하.”

시종이 물러가자 심복이 황제에게 말했다.

“빨리 마무리 짓는 게 낫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전장에 원군을 보내면 그만큼 유리할 테니까요.”

“그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좀 애를 태워야 말을 잘 듣지 않겠나.”

시종은 마치 처음 알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하지만 짐도 오래 끌 생각은 없어. 슬쩍 자네가 먼저 만나도 좋겠지.”

의중을 미리 전하라는 말에 심복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막중한 임무를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심복이 자리를 떠난 후 황제는 옥좌에 손을 올리며 생각했다.

‘이제 정말 나의 시대다. 진정한 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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