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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48화 (248/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48)

내공과 포스.

엄청난 차이가 있다면 있고, 눈곱만큼의 차이도 없다하면 없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극에 다르면 그런 차이를 생각하는 것마저도 의미가 없다.’

지금 상황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무거움과 가벼움. 가벼움과 무거움.

빛과 어둠 따위의 상반됨이 아닌, 같은 본질에서 방향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였다.

내가 당신의 무거움을 가져오고, 당신이 나의 가벼움을 가져가는 순간, 더더욱 성질의 같음이 발현된 것은 말이다.

퍼어어어엉!

물론 그 흐름에서 벗어 나간 기류가 폭음을 만들어 내고.

쏴아아아아아!

주변의 사물들을 흩날리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주고, 받고, 받으면서 주는 사이 어느새 주변은 평온을 찾았다.

‘됐을까?’

생사대적을 눈앞에 둔 것도 아니다. 요는 확인이다. 당신의 마음을 평온케 할 증명.

됐을 것이다. 저 미소가 증명이다.

“녀석, 광오할 만하구나.”

“안심이 되십니까?”

“이것 참! 다른 놈 같으면 자만하지 말라 말해 줬겠지만…….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어느새 호기심 가득한 그 표정을 보며 무엇을 물어볼지 예상이 되었다. 내가 이곳의 포스에 대해서, 그리고 마나에 관해서 느꼈던 호기심과 다르지 않으리라.

“네놈이 보여 줬던 성질 중에서…….”

그래서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간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이니까.

“그런 이유로, 포스로는 발현이 어려운 이런 것도 가능하지요.”

손바닥을 머리 위에서 허리까지 내렸다.

퍼어어어엉!

폭음과 함께 연무장에 커다란 손자국이 파였다.

할아버지의 눈이 커다래졌다. 처음 보는 표정.

“하하하하핫! 진즉 이런 걸 보여 줬으면 좀 좋았겠느냐! 진작 너에게 맡기고, 이 흥미로운 걸 공부하다가 가는 것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광소와 함께하는 말에 대답했다.

“늦지 않았지요. 할아버님께서도 금방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포스를 그리 다뤘듯 말입니다.”

무슨 말실수를 한 걸까?

할아버지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너…… 알고 있었던 것이냐?”

“…….”

“그런 게냐?”

뭔 말인지 깨달았다.

‘어찌 아셨을까?’

하지만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베스타인 린 로라스입니다. 할아버지가 주신 이름을 평생 가지고 갈 겁니다.

그저 원하는 대답에 새로운 걱정을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래. 뭘 더 걱정할까? 네가 보여 준 거나 실컷 즐기다가 갈 시간도 부족하거늘. 로라스.”

“네.”

“준비해 두거라.”

무엇을?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원하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 * *

신탁이 내려졌다.

에펠리온 신도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

―그런 소문이 어디 한두 번이야.

―개나 소나 다 신탁이야.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교황께서 직접 대사제님들께 말씀하셨다더군.

―거짓말이 아니래도. 에펠리온이야. 여태 신탁의 ‘신’ 자 한 글자 나오지 않은 곳이라고.

하지만 타 교단에 비해 에펠리온교는 벌써 여러 명의 교황이 바뀌었지만 신탁에 대해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른 종교의 확장세보다 둔하지 않았던가.

―교황님께서 그때 그 전쟁을 성전이라 선포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던 건가?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생각해 봐. 압도적인 전력 차이라 했지만 이긴 건 우리 쪽이었다고.

그리고 과거의 결과가 결부되면서.

―그분이 드디어 현세에 강림하셨다.

에펠리온의 신단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사실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몬스터에 혼란한 시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와카디아가 교의 요청을 받아들여 몬스터의 토벌전에 참가한다고 하더군요.

―신탁이란 사실이란 거지.

―교황께서도 직접 움직이셨다는군. 그 소문이 사실이었어.

―무슨 소문?

―솔선수범하여 전장의 선두에 서시는데, 교황께서 손 한번 휘두르니 언데드 몬스터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더군.

소문은 기세를 올렸고.

―로라스 백작이 우리 교의 신도님이라 하시더군.

―에렌의 후계자잖아.

―그러니까 이제 우리 교는 다시 한 번 대륙 제일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지.

―성전의 선봉장이라는 소문도 있어.

그 기세에 로라스가 올라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에펠리온의 사제들이 있었다.

―에렌의 영주가 되시면 더 걱정할 건 없습니다.

―그분의 출신인 와카디아가 이미 나섰는데, 에렌도 나설 것입니다.

―신탁에 의하면 그분은 이 난세를 종결시킬 분. 모두 믿고 따릅시다.

그리고 그 소문의 끝은 로라스의 신격화였다.

* * *

“당신 작품이지?”

에르자일의 물음에 아델리나는 대답 대신,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맞잖아. 지금 소문들.”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니까요.”

아델리나의 입이 열리자 이번에는 에르자일이 그녀를 대답 없이 쳐다봤다.

그러다 한참 후 그녀의 입이 열렸다.

“으음. 그래도 양보는 못 해.”

“…….”

“하지만 고집은 부리지 않을 거야. 로라스에게 도움이 된다면 누가 되든 환영이니까.”

에르자일의 말에 아델리나는 생각했다.

‘그럴 기회라도 있었으면.’

선을 그으셨다.

굳이 그러셔야 했나?

모른 체할 수는 없으셨나?

그런 생각을 수백, 수천 번 했다. 하지만 그래도 감히 원망의 마음을 품지는 못했다.

사부가 자신을 어찌 생각하셨는지는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자신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감히 욕심 부리지 않았을 테고 말이다.

아델리나는 에르자일을 봤다.

사모(師母)로 흠잡을 데 없는 여인. 게다가 양보는 하지 못하지만 고집은 부리지 않겠다 했다.

놀라운 일이다.

‘다시 욕심나게.’

정리해야 했다. 여지를 남기면 괴로운 건 자신이다.

‘일단은 다시 옛날처럼!’

어렵지 않다.

저 세계에서 중원 일통을 한 과정을 다시 한 번 반복하면 그뿐이다.

로라스를 계속 신격화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과정은 더 쉬울 것이다. 그때 사부는 기반이 없었던 무림인이었지만, 지금은 와카디아란 기반을 가지고 있고, 이제는 에렌의 후계자란 타이틀을 지닌 귀족.

‘의지만 가지고 계시다면 십 년이면 충분하겠지! 그게 대륙통일이라 하더라도!’

일단 거기까지 도달하면 사형제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왜 대답을 안 해?”

그때 에르자일의 물음에 아델리나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생각이란 건 정상에 오른 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 * *

에렌의 새로운 영주

언젠가는 그리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너무 빠른 시기에 모두가 놀랐다.

공작은 아직 정력이 왕성하지 않은가?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살아생전 권력의 이양은 쉽게 볼 수 없는 일. 하지만 공작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처음에는 1군단장으로 임명하였다.

현재 실제 병력 대부분이 없다 하나, 1군단은 에렌의 상징.

그다음으로 한 건 각 군단장과 열아홉 개의 독립부대. 에렌 직속의 여섯 개의 기사단을 모두 불러모아, 로라스에게 충성 맹세를 시켰다.

그렇게 모두가 에렌을 넘기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 생각했다. 이 체제를 유지한 후 로라스는 공작이 죽은 후 에렌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사흘 후 모두가 보는 가운데, 로라스에게 에렌의 영주를 넘긴다는 선포를 해 버린 것이다.

모든 귀족들이 반대했고 로라스마저 사양했지만, 공작의 의지는 굳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멘토라스.

결국에는 자신의 차지라 생각했었던 그는 불같이 뛰었다. 하지만 공작은 이것 역시 너무나도 간단하게 처리해버렸다.

병권을 회수하고, 그에게 자택 근신을 명령했던 것이다.

“대체 어찌한 것이냐?”

자신을 찾아온 로라스를 보며 멘토라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퉁명스럽게 물었다.

“대체 어찌했기에, 아버님이 나까지 이렇게 만들고 너에게 작위를 물려주셨냔 말이다.”

“글쎄요. 할아버님의 뜻이 저리 완강하시니 따를 수밖에요.”

“이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야! 아버님이 널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황제 폐하의 허락이 필요할 터!”

“인정 못 한다고 하면 둘째 백부님에게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흥! 안 될 것도 없지.”

“디존슨이 일군단을 바치고 얻고 싶어 했던 그 정통성이란 거 말입니다.”

“…….”

“뭐, 필요할지도요. 하지만 정보가 그리 늦어서 어쩌십니까? 아니, 잊으셨는지?”

“무슨 말이냐?”

“작위 하나 없던 저에게 누가 백작 위를 내렸는지 모르십니까?”

순간 멘토라스의 표정이 굳었다.

‘아차!’

왜 그 중요한 걸 잊었을까?

일부 사람에게 로라스는 에렌에서 얼마 없는 황제파라고 소문난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협박을 할 거리를 잘못 고른 것이다.

“또 다른 당부의 말씀은?”

멘토라스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하나만 묻자. 대체 무엇 때문이냐? 어떻게 했길래 네가?”

“그릇이 다르지 않습니까?”

“뭐라?”

“그릇이 다르다 말씀드렸습니다.”

콰아아아아앙!

“이놈!”

로라스가 에렌을 물려받은 이상, 여유와 무게감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멘토라스는 분에 차 외쳤다.

“그릇을 말했느냐? 그 말은 네 그릇이 훨씬 크다는 것이냐!”

“으음.”

로라스는 나직이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영리한 줄 알았더니 미련하기 짝이 없군.”

“이놈!”

“그 손, 얌전히 내리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하길 조언 드립니다.”

마치 칠 듯이 손을 올린 멘토라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놈이…….”

“그래도 핏줄이라고! 예의를 차릴 때 자중하시는 게 좋을 텐데 말입니다. 상황 판단이 빠른 것. 그게 당신의 유일한 장점.”

로라스는 방에 의자를 찾아 앉고는 말했다.

“앉으세요. 두 번 말하지 않습니다.”

수치심에 멘토라스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하지만 로라스의 말대로 상황 판단이 빠른 게 그의 장점.

얼굴에 철판을 덮어쓰고 자리에 앉자, 로라스가 입을 열었다.

“살려 드리지 않았습니까? 디존슨도 그리고 당신도.”

“…….”

“이런 상황에서 이게 얼마나 큰 기회인 줄 모른다면, 제가 더 이상 여기에 있을 가치는 없고요. 아닙니까?”

“네…… 네…… 말이 맞다.”

간신히 수긍하는 멘토라스를 보며 로라스는 말을 이었다.

“괴이한 유언비어들 더 이상 퍼트리지 마시고, 데리고 있는 인원들을 정리하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냐!”

“두 번 말하지 않습니다.”

“…….”

“이리 존대를 해 드리는 것도 마지막입니다. 제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세요.”

로라스는 멘토라스에게 시선을 주었고, 순간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단순히 그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뱀 수천 마리가 전신을 옭아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핏줄이란 걸 죽는 그 순간까지 감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을 살려 두는 이유는 오로지 그 이유 하나뿐이니.”

안색이 점점 하얗게 변하는 멘토라스.

“핏줄이면서 왜 모르십니까?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데. 생각이라는 게 있으시면 절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순응하셔야죠. 그래야 오래오래 살지 않겠습니까?”

멘토라스는 이번에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는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고 있었으니까.

로라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일 초가 아까운 이 시간에 굳이 이리 온 건, 정말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누구처럼 노예를 만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

“그릇의 차이는 지금 보고 계실 터고.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로라스는 꼼짝도 못 하는 멘토라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에 손을 툭 올리는 순간.

“후아아아아!”

숨이 터지는 멘토라스.

“협조하세요. 에렌이 온전하고 모든 것이 평화로울 때까지. 그 이후부터는 다시 권위를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베스타인이라는 그 성에 걸맞게 말입니다.”

멘토라스는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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