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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47화 (247/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47)

아침부터 에렌은 소란스러웠다.

“이놈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끼야악! 천한 것이! 어딜 밀어!”

끌려 나온 유배지로 향하는 것이지만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귀족의 품위란 게 있지 않은가?

“미친놈들!”

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그들에겐 그런 게 없었다.

“기본적으로 너희는 죄인들이란 말이다.”

귀족들이 품위 찾고 저항할수록 병사들은 오히려 신나 했다. 공식적으로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던 고스트의 발란스가 입을 열었다.

“세상 바뀐 줄도 모르고. 적응을 빨리할수록 괴로움이 덜할 텐데.”

“흐흐흐, 뭔 상관이야. 바뀐 세상이 우리 편이란 게 중요한 거지.”

요르크가 하는 말에 발란스는 진중하게 말했다.

“뒷일 확실히 처리해야 해. 이런 곳에서 책잡히면 백작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신신당부해 뒀다. 뒷주머니 찬 놈이 있다면 내 손에 먼저 죽는다.”

요르크는 그리 대답하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신기한 양반이란 말이지.”

“뭐가?”

“원래 높은 분들은 그런 거 잘 신경 쓰지 않잖아. 아니, 생각조차 잘 못 하지. 하지만 백작님은 그런 걸 절대 놓치지 않거든.”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런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와도 연결이 되지 않았어. 일반인들에게는 후한 분 아닌가. 고아원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때는 많이 놀랐지. 여하간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정말 신신당부를 해 뒀으니까.”

“기존 인원들은 통제가 되지만, 새로 들어온 놈들은 또 달라. 너무 안심하지는 말자고.”

“당연하지.”

고스트의 수장들이 그렇게 의견을 나눌 때.

호화로운 장식이 사방에 가득한 공간. 하지만 그 공간은 이런 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내들의 발자국으로 지저분해지고 있었다.

“이거 예상보다 너무 적습니다.”

사내들 중 하나가 2층에서 1층 홀을 내려다보며 소리치자, 제레미가 고개를 올려 소리쳤다.

“그럴 리가. 이 장식들을 봐 봐. 저 벽에 달린 촛대 하나만 해도 우리 같은 놈들이 일 년을 벌어도 못 사는 것들이라고. 어디에 꼬불친 거 아냐?”

“뭔 그런 식겁한 말씀을 하십니까? 어제 금붙이 하나 꼬불쳤다가 뭔 사달이 난지 알고 있는데.”

“그러니까 더 찾아. 성과가 좋아야 이 중에서 몇 프로만 달라고 슬쩍 건의라도 해 볼 거 아냐.”

제레미가 홀 중앙 자신의 발아래 놓인 금붙이들과 보석들을 눈짓하며 하는 말에 2층의 사내가 다시 소리쳤다.

“정말 없다니까요. 제가 한두 번 털어 본 것도 아닌데, 비밀 공간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럴 리가! 찾아. 반드시 있어. 고스트 녀석들한테 이 구역을 뺏어 오려고 얼마나 노력한 줄 알아?”

“걔들이 와도 못 찾을 겁니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일 때, 쥬시스가 다가오며 물었다.

“뭐야? 왜?”

“이것밖에 없다고 하네.”

제레미의 대답에 쥬시스는 금붙이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말했다.

“그럴 리가!”

“나도 그리 말했다.”

쥬시스는 잠시 생각하다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나올 때는 작은 상자가 손에 들려 있었다.

“어?”

없다고 그리 주장했던 사내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사내를 보며 쥬시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부자일수록, 그리고 음흉한 놈들일수록 절대 재물을 자신에게서 멀리 두지 않아. 그러면서 일반적인 곳에 숨기지 않지. 왜냐하면 도둑들이 뒤지는 곳은 뻔하거든.”

쥬시스는 다시 제레미의 발 쪽에 있는 금붙이에 시선을 주며…….

“저건 미끼지. 이것밖에 없다고 인식시키게 되는 거야.”

“…….”

“대체 어디서 찾으셨습니까?”

“영업상 비밀이지만 힌트를 주자면, 외부인들은 쓰지 않을 그런 공간?”

고민하기 시작하는 사내를 두고는, 쥬시스는 내려오며 말했다.

“서둘러. 늦어서 고스트 놈들에게 다 뺏길 수는 없잖아.”

“어차피 로라스에게 가는 건데 굳이 서두를 필요까지는.”

쥬시스는 그런 제레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넌 아직도 백작님을 몰라? 반드시 떨어지는 게 있어. 타인에게도 주고받는 게 확실한 분인데, 자신의 사람에게 그냥 넘어갈 것 같아?”

“우리에게도 조금 떨어진다는 건가?”

“당연하지. 그러니 서두르라고.”

* * *

“이래도 됩니까?”

렌이 조심스레 묻는 말에 로라스는 반문했다.

“뭐가?”

“좋게 말하면 몰수지만, 나쁘게 말하면…….”

“강탈?”

“네…… 그렇게 보일 겁니다.”

렌의 조심스러운 대답에 로라스는 피식하며 물었다.

“그게 어때서?”

“네?”

“싸움에 졌잖아. 이런 싸움에서 목숨 잃지 않은 걸 감지덕지해야 하는 게 더 정상일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렌, 당신이 그렇게 물렁물렁한 생각을 할 줄 몰랐네. 상계도 정계만큼이나 살벌할 텐데.”

렌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내 것이 됐어. 노예의 것은 주인의 것. 사실을 단순하게 가져가자고.”

로라스의 대답에 렌은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로라스가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나, 지금 에렌의 사람들은 로라스를 엄청 선하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모든 걸 계산하고 있었던 듯했다.

‘노예라고까지 표현하신 걸 보면, 그들은 락의 개척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겠군.’

여하간 정신은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알고 있지 않았는가!

성인식도 치르기 전에 자신을 조종했던 사람이 로라스였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안 됐다.

“회수한 재물을 제가 모두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 될 터. 그것만으로도 대륙의 제일가는 상인이 될 것이다.

“쓸데라도 있어? 재정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많은 병력이 움직이는 바람에…….”

“아! 그랬지. 내 걱정하는 아버님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그게 아닙니다. 그 비용은 충분히 감당할 범위였습니다. 다만 이다음이 문제입니다.”

“군이 움직일 이유가 있어?”

“영주님께서 몬스터 토벌대를 조직하고 계십니다. 와카디아 지역은 물론이고 에렌 북부 전 지역을 상대로 말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로라스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갑자기 왜?”

“에펠리온 교단의 요청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의아한 건 영주님이 바로 수락하셨다는 점입니다.”

“몬스터 토벌이라 특별히 문제 될 건 없잖아. 안정적으로 성공만 하면 재물은 회수하고도 남잖아.”

“그렇긴 하지만 규모가 큽니다. 제 입장에서는 만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만한 이유가 있으셨겠지. 알았다. 고스트에게는 이야기해 둘 터이니 알아서 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고생해. 에렌의 상권도 네게 일임할 것이니까.”

렌은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정말이십니까!”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락이 지금처럼 자리 잡은 데 네 공이 큰 걸 부정 못하니까.”

“하지만 에렌은 로열상단이…….”

로열상단은 베스타인 가문이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받는 상단이다.

로라스가 웃으며 말했다.

“날로는 못 먹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는 만들어 줄 수 있어. 네 능력이라면 그 정도면 되잖아. 안 돼?”

렌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같이 기회만 주신다면 자신 있습니다.”

“방심은 하지 말고. 나야 양쪽 모두 내 품에 있게 될 상단이니까. 네 편을 들어주지는 못해.”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정말이었다.

로열상단이 거대한 이유는 베스타인 가문에 관련된 모든 물자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걸 바탕으로 에렌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공정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치고 나갈 자신이 있었다.

“기대하지. 아! 고스트나 제레미 쪽에서 들어오는 재물은 모두 가져가지 말고, 어느 정도 풀어. 무슨 뜻인지 알지?”

“이해했습니다. 불만 가지지 않도록 조절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렇게 마무리하는 걸로.”

“감사합니다.”

렌이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나가는 걸 보면서, 로라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만족하는 걸 보니 보상은 확실히 된 것 같고. 또 누가 남았지?’

모두 자신의 사람이고,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푸는 것에 인색하면 안 된다.

베풀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사람들은 없겠지만, 기쁘게 해 주면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는 법.

‘상벌만 확실해도 못났다는 소리는 안 듣지.’

로라스가 그리 많은 미팅을 끝내고 잠시 쉴 때였다.

“있느냐?”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로라스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베스타인 공작이었다.

“네, 할아버님. 필요하시면 부르시지 그러셨습니까?”

“언제 부르고, 기다리느냐. 시간이 아깝다. 좀 걷자.”

“네.”

로라스는 공작의 옆에 섰고, 두 사람은 그렇게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뭔가 용건이 있는가 싶었지만, 공작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냥 걸었을 뿐이다. 로라스 역시 굳이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옆에서 따르기만 했다.

그리고 정원을 벗어날 때쯤 공작이 입을 열었다.

“일은?”

“대부분 정리가 되었습니다.”

“일군단을 내보낸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로라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하지 마십시오. 건강에 안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공작이 예전과 같다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포스는 어디 가는 게 아니니 겉모습은 멀쩡했지만, 정력(精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절대적인 무의 소유자도 시간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건강을 챙기고 안 챙기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건 너도 알 터.”

공작은 그리 말하는 사이 정원을 완전히 벗어났고, 로라스는 흠칫하며 공작을 쳐다봤다.

“할아버님.”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다.”

“지금은 무리십니다.”

“감히 내게 무리라고 하는 것이냐?”

로라스는 정말 무리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확인해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마지막까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말이다.

로라스는 앞의 연무대를 보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먼저 올라가 공작을 돌아보았다.

“손자는 감히 할아버님에게 여유라는 걸 두지 못합니다. 오르십시오.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좋구나. 응당 그래야지.”

공작도 연무대에 오르며 물었다.

“뭐로 할 것이냐?”

“할아버님과 제게 손에 무기가 있고 없고가 의미가 있겠습니까?”

“뭐라! 하하하하하!”

공작은 성이 울릴 정도의 앙천대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날 앞에 두고도 그런 말이 잘도 나오는구나.”

“그래서 뒤를 맡기신 거 아닙니까? 기왕이면 지금이라도 물러나셔서 정력을 보존하십시오. 그래서 걱정하던 것을 이 손자가 마무리하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하하하하!”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 정도의 자신은 있어야 베스타인이란 이름을 가지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작의 주변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분위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공기가 무거워졌다.

정원에서 바람을 타고 연무대 주변으로 흩날리던 마지막 봄의 증거들이 공작의 주변에만 가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을 보던 로라스는 천천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숨과 날숨이 한없이 길어지더니, 어느덧 소리마저 날아갈 정도로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공작은 무겁고, 로라스는 가벼웠다.

그런 중(重)과 경(輕)이 서로의 영역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갔다.

파아아앗!

그리고 어느 순간 둘 사이의 공간에서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돌개바람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바람은 하늘로 치솟고, 바닥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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