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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46화 (246/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46)

‘왜 그러시지?’

때가 되었다는 말에 잠시 뭔가 싶었다. 하지만 생각나는 게 있었다.

‘설마?’

얼마 남지 않은 때란 건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무섭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라 이야기한 것이다.”

“…….”

“너도 알 텐데. 내 경지 정도가 되면 건강, 포스 그런 것을 떠나 그냥 안다는 것 정도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알지 않았는가?’

죽음인지, 아니면 등선인지 지금 와서는 헷갈리지만, 몸에서 혼백(魂魄)이 떠나려 한다는 그 감각을 말이다.

“정력을 아끼십시오. 늦출 수 있습니다. 많은 생각도 좋지 않습니다.”

“인형이 되라고 말하는구나.”

“아닙니다. 저는…….”

뭐라 말을 붙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 말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네가 결심이 섰다니 일이 한결 수월하겠구나. 일이 이리되었고, 내 상태까지 들었으니 락으로 돌아간다는 등의 흰소리는 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

“사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염려하실 만한 일이 있으셨습니까?”

“게이트.”

“귀찮지요.”

“거기서 봐서는 안 될 것을 보았다. 아니, 존재치 않아야 할 것을 보았다.”

“할아버님의 권능을 무시할 정도였습니까?”

“놓쳤어. 잡았어야 했는데 도망치고 말았다. 문제는 놈이 날 경험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올 때는 반드시 할아버님을 제압할 수 있다 여길 때 오겠군요.”

“그래. 그래서 찝찝하구나. 내가 죽으면 그 누가 있어 그것을 막을지 말이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길어졌다.

급작스러운 게이트의 출현 그리고 그 원인을 조사하라 명령한 상태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국과 외국들과의 전쟁까지.

“어차피 내가 죽으면 세상이 망하든 무슨 소용이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웃으며 말했지만, 이내 다시 웃음기를 지우셨다.

“하지만 그럴 수야 없지. 내 이름이 남는데.”

“그렇죠.”

“하지만 또 생각하면 죽고 난 다음에 이름이 남아서 뭐 할 것이냐.”

“그것도 맞습니다.”

할아버지는 노려보듯 날 보며 말씀하셨다.

“내가 쌓은 성을 무너트리지 마라. 지긋지긋한 내 의무를 버텨 왔는데 막판에 그것을 무너트릴 수는 없다. 난 베스타인이다.”

“저도 베스타인입니다.”

“널 통해서 내가 존재하겠구나. 가 보거라. 바쁠 터인데.”

“네.”

로라스는 그렇게 집무실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으음. 그냥 연기 같았고, 그림자 같았다라…….’

별의별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니,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확실히 의지를 가졌음에도 처리하지 못한 데에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놈이기에.’

저쪽 세계에서도 할아버님만 한 고수는 찾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보자마자 느끼지 않았던가.

‘아직 보지도 못한 놈, 미리 두려워할 필요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크게 타격을 받았으니 언제 나올지도 모를 테고.’

로라스는 그렇게 마무리하다가, 미처 묻지 못하고 나온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아! 이름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여쭤보려 했는데, 깜박했네.’

하지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로라스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그 시간 공작은 로라스가 있던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을까?’

자신이 에듀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갓난아기였을 때니 모를 확률이 크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보통 아기와는 많은 점이 달랐다는 건 알터.

여하간 이번에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이름을 바꾼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훗날 로라스가 베스타인의 성이 아니란 걸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정통성에 흠집이 생기게 될 터.

그래서였다. 새롭게 이름을 내린 이유는.

자신이 베스타인의 성을 내렸는데, 감히 누가 트집을 잡을 것인가.

‘그래도 또 모르지.’

멘토라스가 걸렸고, 그 외 귀족들이 걸렸다.

‘깔끔히 정리를 해야 하는가?’

공작의 눈에 살기가 흘러나온 건 그때였다.

* * *

로라스 린 베스타인.

예상한 이는 많았다.

그날 대회의 때 바로 옆을 지키게 하였으며, 멘토라스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예상은 예상이고, 실제로 발표가 되자 많은 이가 놀라긴 했다.

그래서 ‘에렌의 영주가 되기에는 너무 어리다, 경험이 없다.’라는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정반대의 말이 나왔다. 특히나 북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부류와 군부에서 그랬다.

―거의 신급이라던데.

―하늘을 날고 번개도 일으킨대.

―임프리아에서 벌어진 이야기 못 들었어?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는 종교급으로 추앙받고 있는 로라스였다.

그리고 그 시간.

“오셨습니까, 교황님.”

“과한 예는 불편합니다, 영주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에듀는 아델리나에게 자리를 권하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찾아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혹시 무슨 긴히 하실 말씀이라도?”

아델리나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축하드립니다. 로라스 백작님은 큰 인물이시니까요.”

“감사합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요. 저도 로라스 백작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데, 영주님께서 모르실 리 있겠습니까?”

자식 칭찬에 에듀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리 봐 주시니 아비로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하지만 로라스 백작님과 관련하여, 여러 우려 섞인 목소리가 있다는 것도 아시지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인정해 줄 거라 믿습니다.”

“저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우둔하고 불온한 무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에듀는 웃음기를 지우며 물었다.

“혹시 뭐 안 좋은 소문이라도 아시는지?”

“저도 확실치는 않지만, 아시다시피 이전 상황이 그리 순탄했던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럴 일은 없을 것이고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제가 더 확실하게 힘을 써 볼 생각입니다.”

에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아델리나 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어떻게…… 혹시 여기까지 이리 찾아오신 이유도 그 때문에?”

“저희 에펠리온 교단이 나서 보려 합니다. 하지만 저도 도움을 청할 게 있습니다.”

“…….”

“그렇다고 이 제안을 무슨 대가로는 생각지 마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들어 보시면 영주님께서도 납득하실 것입니다.”

에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와카디는 이미 에펠리온 교단의 세 확장을 돕기로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설사 교단이 로라스를 돕지 않아도 저는 도울 것입니다. 저는 와카디아의 대영주이니까요.”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영주님의 신념을 제가 모르는 바도 아닌데.”

아델리나는 그리 말하며,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에듀는 뭔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그런 부분이라면 걱정하실 게 없습니다. 그게 어떻게 에펠리온 교단의 일이겠습니까? 이런 건 이쪽에서 나서야 하는 일이지요.”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당연한 일입니다. 이건 교황님께서 부탁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에듀는 그리 말하며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저와 와카디아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다행입니다. 곧 대사제들을 만나야 하는데, 그들에게 어찌 이야기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각 지역의 상황만 알려 주셔도 저희로서는 감사할 일. 그런 일이라면 만 일을 제쳐 두고 제가 나서겠습니다.”

아델리나도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다시 한 번 수많은 신도들을 대신하여 감사합니다. 그리고 안 좋은 소문들은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려야겠습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아델리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마차에 올라탔다.

‘그 기질은 어디 가지 못하시지.’

하긴 난세는 영웅을 부르는 법이다. 이건 숙명과도 같은 법.

‘어쩌면…… 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으로 사부가 홀로 왔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여하간 이리된 이상 최대한 뒤에서 손을 도울 것이다. 자신과 사형제들이 천왕성에서 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보고 싶네. 다들 오긴 온 것인지.’

아델리나는 불현듯 사형제들이 보고 싶어졌다.

‘나처럼 기억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면.’

그랬다면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은 않을 터.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단을 장악한 이상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차는 어느새 신전에 도착했다.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교황님을 뵙습니다.”

사람들 중, 금색 띠를 두른 십여 명의 대사제들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며 인사했다.

아델리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마주 예를 올렸다.

“에렌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시지요.”

그렇게 동그란 원탁을 두고 둘러앉아 회의가 시작되었다.

“몬스터들에 의한 피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각 교구에서 성기사단의 요청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급한 대로 각국과 영지에 협조 요청을 보내고 있지만 응답하는 곳은 극소수입니다.”

가장 나이 많은 대사제가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쟁 때문이니까요. 오베른 제국은 왜 하필…….”

동대륙의 최강자인 오베른 제국은 왕국연합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게이트들이 너무 많이 나타난 상황.

“그나마 다행이지 않습니까? 에렌까지 그 전쟁에 참여했다면, 정말 어찌할 방법도 없었을 겁니다.”

피해가 크긴 큰 듯, 대사제들은 쉴 새 없이 안건들을 쏟아 냈고, 아델리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듣기만 했다.

준비한 말들을 다 쏟아 냈는지, 대사제들은 대화보다는 그녀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교황님께서 나서 주시면 호응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나이 든 대사제의 말에 그제야 아델리나가 입을 열었다.

“저 역시 꾸준히 보고를 받고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그 현장에 있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와카디아의 영주로부터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습니다.”

대사제들은 그제야 뭔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 그래서 락에 계셨던 겁니까?”

아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대답들을 하고 있었다.

“하긴 락이라면, 와카디아라면 몬스터 토벌에는 도가 튼 영지이니까요.”

“그렇지요. 와카디아가 도와주기만 하면 더할 나위가 없지요.”

“그뿐입니까. 이번에 후계로 지목된 로라스 백작이 락의 소영주였으니. 왜 갑자기 그 척박한 땅에 본단을 옮겼는지 의문스러웠는데 이제 그 해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신도들 앞에서 무게란 무게는 다 잡는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아이들만큼 흥분한 듯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미 이 사태를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고 다시 물었고.

“설마!”

또 한 번의 자문자답을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순간은 방금과는 전혀 달랐다. 아까는 마냥 기뻐하더니 이번에는 웃음기는 사라지고 진중하게 변한 것이다.

아델리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하신 그것이 맞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대사제들. 그러고는 바닥에 꿇어 엎드리며 소리쳤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그분이 강림하시니…… 세상의 복입니다!”

“제가 모시는 교황께서 신탁을 받으셨으니 제게도 큰 영광입니다!”

대사제들이 감격에 어쩔 줄 몰라 하며 한마디씩 하는걸 보며, 아델리나는 생각했다.

‘왜인지 모를 때는 만들면 되는 것. 뭣이 어려울까?’

로라스를 돕는 것.

그건 그녀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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