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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43화 (243/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43)

테라는 조심스레 물었다.

“디존슨은…… 그쪽으로 갔겠습니까?”

“멘토라스가 자신만만해하는 걸 보면 동쪽과 남쪽을 장악했다고 봐야 해. 디존슨과 그 패거리도 그쪽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거야.”

“그렇긴 하겠군요. 잡히면 반드시 죽이려 할 테니까요.”

“그래. 그러니 반드시 우리가 잡아야 해.”

“성문이 열리는 대로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에르자일.”

“응.”

“넌 마탑을 정상화시켜 줘. 어차피 할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모든 것이 정리되겠지만, 마탑이 빨리 정상화돼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문제없어.”

“번천은 성에 머물도록 하고. 페컴 백작님에게 말씀드렸다. 당분간 그분 곁에 있도록.”

로라스는 살짝 의아해하는 번천을 향해 말을 이었다.

“멘토라스는 똑똑한 사람이니 무리수는 두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만의 하나란 게 있으니까. 쥬시스와 제레미에게도 이야기는 해 뒀다. 그들의 도움을 받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로라스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계획이 많이 어긋나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크게 어긋난 것도 없어. 하지만 또 긴장을 풀 상황은 아니니 조심하도록 하고.”

대충 일을 마무리한 후 방으로 돌아왔다.

“하아!”

육체적으로 힘든 건 없었고, 이후를 걱정할 것도 크게 없었다.

다만 일 자체가 많았을 뿐이다.

‘으음. 언제 끝나려나?’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래서 투덜거릴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냥 멍하니 있을 휴식이 필요할 뿐.

하지만 곧 몸을 일으켰다.

닥친 일부터 후딱 처리하는 게 심적으로 더 나으리라.

잠시 몸을 씻고 의복을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섰다.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오늘 같은 날 어울리지 않는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멘토라스.

그는 자신의 세력을, 그리고 누가 새로운 자신의 세력이 될지 확인하는 파티를 열었다.

아마 많은 귀족, 세력가 들이 초대장이라도 받기 위해 줄을 섰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에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만들기 위한 좋은 방법이긴 할 터.

‘뭐, 지금 즐겨야겠지.’

그리 생각하며 성 밖으로 나섰다.

‘여기는 처음이네.’

에렌에 있을 때 꽤 많은 귀족 가문의 초대를 받고 움직인 적이 있었으나, 이곳은 처음이었다.

요르하 가문의 대저택.

크기는 엄청 컸으나 뭔가 스산한 느낌이 드는 저택이었다.

‘중원이나 여기나 이런 건 똑같군.’

이 저택의 전대 주인이 살았을 때, 여기는 가장 손님이 많은 집이었다. 전 주인이 바로, 할아버지의 심복 중 심복이자 에렌 전군의 움직임을 기획하던 그랑데일 백작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처럼 스산한 느낌까지 주는 곳이 되었다.

린델이 새로운 가주가 되었지만 아직 어려 정계에 영향력이 없었고, 또 군단의 참모로 에렌에 거의 없는 탓이었다.

‘그래도 좀 심한데.’

하기는 요르하 가문도 할아버지의 사람들.

그 이름의 상징성 때문에 디존슨이 엄청난 압박을 가했을 것이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도 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표정에 여유가 있고, 움직임에는 절도가 있었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십여 명이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앉으십시오.”

그리 권했지만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그들이 보여 주는 모습에 이들은 확고하게 날 지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들이 전부란 거지.’

하지만 뇌옥에서 상의했던 숫자보다는 훨씬 적었다.

“페컴 백작님을 비롯하여 몇몇 분들은 사람들의 눈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공석이란 걸 인식했는지, 린델이 말을 올려 보고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으며 다시 말했다.

“앉으세요.”

그제야 사람들이 앉았고, 그들을 향해 말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모여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기억하도록 하지요.”

모두가 멘토라스에게 붙는 상황이다. 그들이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난 그들을 존중해 줘야 했고, 그것을 표현해 줘야 했다.

과하지 않게. ‘내가 너희들을 기억하겠노라!’라는 뉘앙스만 주는 정도로.

그런 것들이 과하면 그들은 나를 선택한 것에 불안해하고 의심할 것이며, 내게 자신들밖에 없다 생각하여 기어오르려 할 것이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정확히는 정치라는 것이다.

‘이런 거 어디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표정을 굳힌 후에 말했다.

“린델 백작은 사전에 미리 연락하고 참석하지 못한 이들을 정확하게 보고해 주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린델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고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사전에 짜 둔 계획들이 멘토라스 백작의 난입으로 뒤틀렸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전략을 말하려 합니다.”

모두의 이목이 내 입으로 쏠렸고, 옅은 미소를 지어 주며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순간 모인 이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게 새로운 전략입니다. 모두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겁니다. 평상시처럼,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표정까지 흔들렸다.

“백작님, 지금은 세를 결속하고 뜻 있고, 현명한 이들을 모아야 할 시기입니다.”

린델마저도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자, 다른 이들도 표정과 몸짓으로 동의를 표했다.

“린델 백작.”

“네, 로라스 백작님.”

“난 지금 여기 모인 이들에게 엄청난 이권을 주는 겁니다.”

린델을 비롯한 사람들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모였지만 아직 내게 확신이 없는 건가?’

한두 명은 알아차리길 바랐는데 말이다.

“파이는 하나인데 먹을 자들이 많으면, 각자의 몫이 줄어들지요.”

“…….”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 반드시 기억한다고.”

“……!”

“어차피 필요한 분들은 여기 다 계신 것 같은데. 그리고 현명했다면 오늘 여기에 왔을 겁니다.”

“하지만 백작님, 지금은…….”

린델이 다급히 입을 열려는 걸 손을 뻗어 제지시켰다.

‘똑똑한 녀석들의 단점은 이런 거란 말이지.’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해결하려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아마 지금도 머릿속에는 각 세력의 숫자 그리고 이길 수 있느냐, 불리하면 어떻게 빠져나가느냐, 이런 걸 잔뜩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불가항력인, 소위 말하는 절대적인 힘을 보지 못해서다.

‘하긴, 저 녀석은 할아버지 곁에 있지는 못했으니.’

그의 부친이었던 그랑데일이라면 알았을 것이다.

계산을 하지 못하는, 아니 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는 늘 할아버지 곁에 있었던 사람이니.

“내가 그리 말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입니다.”

“…….”

“사람들을 모아 세를 규합하고, 멘토라스와 대항한다? 애초에 그런 방식을 선택할 거였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습니다.”

이해하길 바란다.

“에렌의 진정한 지배자이신 할아버님이 돌아오셨을 때, 당신께서 쌓아 올린 탑이 무너져 있는 것을 보이기 싫습니다. 그뿐입니다.”

내가 왜 빙빙 돌아가고 있는지.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멘토라스에게 굳이 맞설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에렌을 가지기 위해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십시오. 그럼 여러분과 여러분들의 가문은 앞으로 탄탄대로일 테니.”

알아들었을 것이다.

의지를 보였고, 그걸 보지 못했다면 장님일 테니.

* * *

“로라스는…… 안전하느냐?”

“걱정하실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제가 본 것을 영주님께 보여 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

“하늘이 무너져도 로라스 백작은 안전할 겁니다. 무너지는 하늘 위를 걸을 테니까요!”

테라의 확고한 대답에 에듀는 속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

왜 걱정이 없었겠나.

병력도 없이 에렌으로 들어갔는데.

에르자일을 비롯한 테라와 번천 등이 뛰어난 실력자라고 해도, 숫자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였다.

언제든 에렌으로 돌격할 준비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영주님, 그리고…….”

테라가 에렌에서 디존슨이 축출당한 과정, 그리고 로라스의 말을 전했다.

에듀는 아무 표정 없이 듣다가 다시 한 번 확신했다.

로라스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멘토라스는 디존슨과는 달리 뒤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 상황이 이러면 대놓고 손을 쓸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은밀하게 손을 쓸 수는 있을 것이다.

독이나 어쌔신을 보내서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자신도 걱정하지 않았다.

로라스가 어떤 아이던가?

허술한 듯 보였지만 그건 너무 노련하여 그리 보이는 것이고, 아무하고나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그는 자신보다 사람을 가리는 성격이었다.

경계가 명확하다고 할까?

아들로서, 소영주로서, 친구로서, 누군가의 충성을 받는 주인으로서, 역할을 명확히 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곁에 두는 이는 적다.

그만한 나이에 그리고 그만한 능력으로, 부리는 수하가 두 손을 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문제다.

거기다가 무력은?

특급 어쌔신이 아니라 그런 놈들이 수두룩 와도, 로라스가 원치 않으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터였다.

실제로 아들이 부리는 특급 어쌔신은 시도조차 못하고 굴복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로라스를 잡으려면 개개인으로는 안 되지.’

최소한 원거리 병종과 중갑병이 갖춰진 집단이라야 시도나 해 볼까?

여하간 에듀는 크게 안심할 수 있었고, 다음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어쩔 생각이라더냐?”

그래서 안심하고 물을 수 있었고, 테라는 대답했다.

“그냥 기다리신다 했습니다.”

“기다린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했습니다. 충돌을 우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테라의 대답에 에듀는 로라스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하긴…… 어렸을 때부터 그분을 좋아했지. 반대로 총애도 받았고.’

그러다 디존슨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간을 찡그렸다.

‘우둔해. 그냥 제자리에서 자신의 할 일만 해도 얻을 수 있었거늘. 생각해 낸 게 고작…….’

에듀는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시그탑 등을 불러 모았다.

이미 로라스가 그리 결정한 이상 괜한 분쟁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사람들이 모이자 에듀는 명령했다.

“군을 경계 지역까지 물린다. 그리고 에렌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을 철저히 검문검색하고, 이곳 지리에 능한 현지인을 불러 혹시 산길이나 우리가 모르는 소로가 있는지 파악한 후 거기도 철저히 경계한다.”

그러고는 테라를 보면서 말했다.

“잘 알았으니 제 주인 곁으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혹시라도 뭔가 변화라도 있으면 내게 알려 다오!”

“네, 영주님.”

그렇게 사람들이 물러나고 에듀는 그제야 몸을 기대며 생각했다.

‘오늘은 편히 잘 수 있겠군.’

로라스가 설사 천하무적이라 해도 걱정이 되는 에듀. 그도 아비였다.

* * *

햇살이 밝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평상시의 에렌의 아침은 늘 그랬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성내의 모든 하인, 하녀 들이 비질을 하고 집기를 닦는다 하며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사실 그들도 힘들었다.

그동안 폭풍 전야 같은 시기 아니었던가?

귀족들도 몸 사리느라 난리인데, 그들을 모시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도 끝이었다.

에렌의 내성, 외성 할 것 없이 모든 성문이 열렸다.

성문만이 아니었다.

일반인들의 문과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에렌의 대로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빠아암! 빠아! 빠아아암!

성내에 긴 나팔 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성문 쪽으로 쏠렸다.

빠아암! 빠아!

계속되는 나팔 소리와 함께 성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동시에 울리는 함성.

성문에서 시내 중심으로 그리고 다시 반대편 성문으로까지 함성은 파도 타듯 울렸고.

그런 인파를 뚫고 아주 익숙한 듯이 들어오는 사람들.

“영주님 만세!”

“공작님이 돌아오셨다! 만세!”

두 손 들어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그건 연출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의 영주를 한마음, 한뜻으로 환영했다.

봄이었으나 겨울 삭바람처럼 추웠던 에렌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났다.

진정한 에렌의 지배자가 귀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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