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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40화 (240/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40)

한때는 조금 낯부끄러운 적이 있었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일격필살이라느니, 우주검이라느니, 그런 초식명들 말이다. 그리고 천하를 휩쓸어 버리듯 내력을 토해 낸다는 구결들까지.

마치 소설 속에서나 나옴 직한 그런 단어들과 문장들.

그건 사람들이 고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천하 고수도 고뿔이 걸릴 때가 있고, 반위로 죽을 수도 있다.

그뿐인가?

치매 걸린 무림인도 있다.

옛날 모 고수가 뒷간에서 자객에게 암살당해 죽은 적이 있다. 하필 뒷간이라 벽에 똥칠이 가득한 흔적이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 치매에 걸려 스스로 똥칠을 하다, 그곳에 빠져 죽은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당시 그 자객이 해 준 이야기다. 자신은 그냥 다가갔을 뿐인데 혼자 그리했다고.

또 그 뿐인가?

어떤 문파의 장문인은 과로사하기도 했다.

그런 사실이 증명하듯 소위 말하는 천수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내외공을 갈고닦아 더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 확률을 높일 뿐이다.

여하간!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다.

장법으로 바위를 부수고 경공으로 허공을 떠돌아다니니, 일반인들이 다른 것도 사람 같지 않은 줄 알고 상상으로 만들어 냈을 뿐.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니 말이다.

그냥 정권 찌르기일 뿐인데, 횡소천군이라느니 무적일권이라느니 그런 거창한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정말 완벽하게 같은 동작임에도 방파마다 다른 여러 이름으로 말이다.

어디 그게 권법뿐일까?

검법과 도법, 창법과 각법 등등 무기마다 다르다.

‘본질은 모두 같은 법인데.’

결국 검은 찌르거나 베는 것이고, 주먹은 뻗어 공격하거나 세워 막을 뿐 아닌가?

그게 내가 초반에 생각했던 무공의 본질.

그 본질을 더 풀어 말하면.

‘모든 움직임은 점과 선, 면으로 설명해 낼 수 있다는 것이지.’

당연하다고?

그래, 무공은 그리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수련을 통해 더 많이 찍어 보고, 그어 보고, 그려 보는 것 아니겠는가?

이야기가 길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면 말이다.

‘수없이 찍어 보고 그어 보고 그려 봤는데, 이건 여전히 설명하기 힘들단 말이지.’

하늘을 걸어 올라가고 있다.

“우아아아아!”

“하늘을…… 하늘을 난다.”

당연한 반응이, 모인 이들에게서 터져 나오고.

“탄!”

“사라나!”

발밑에 있는 마법사가 지팡이를 겨누고, 츠어질이 미친 듯이 방울을 흔들어 댄다.

놈들의 것을 태워 본질이 달라진 백화에 정신을 못 차리더니, 그래도 뭐가 더 위급한지 아는 건가?

하늘을 밟아 점을 찍고, 걸어 선을 만들었고, 그대로 몸을 돌려 커다란 면을 그렸다.

그리고?

올라왔으니 내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지존강림.

참으로 낯간지러운 단어를 쓰지만, 지금 움직임에 매우 걸맞지 않은가?

터어어어엉!

강력하게 보이나, 여전히 잡스러운 기운들.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지만으로 그것들을 돌려보내고.

지존(至尊)이 강림(降臨)했다.

그럼 결과는 정해지지 않았겠는가?

꿇어라!

* * *

사람이 하늘을 걸어 올라갔다.

올라간 건 사람이었는데, 떨어지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사람이되, 거인이었다.

움찔했다.

절로 두 손을 올려 눈앞을 가려야 했다.

쥐구멍에 머리를 박은 쥐처럼, 보지 않으면 그것을 마주한 공포도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쿠우우우우웅!

그리고 폭음과 같은 거대한 충돌음에 머리 위로 올린 두 손을 내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

사람이라면 보았어도 눈을 비비고, 자신이 본 것이 맞는지 고민해 봐야 했다.

하지만 고민을 해도 방법이 있겠는가?

그저 허상이라고 믿어야 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는데 말이다.

“저…….”

제일 용감했던 자였는지, 아니면 제일 우둔한 자였는지 모를 자의 놀란 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퍼어어어엉!

진짜 폭음이 들렸다.

“크으으으윽!”

누군가는 절로 신음을 냈고.

“으아아아아아아!”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다.

머리를 짓누르는 듯한 압력에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으음!”

몇몇 이름 있는 기사들마저도 그냥은 못 넘길 정도이니 일반인들은 어찌 느낄지 상상조차 가지 못했다.

신기한 건 딱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분명 머리가 터져 나갈 정도의 압력임에도 피를 토하거나, 쓰러지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커억!”

지존이 강림하는 그 자리에 있는 당사자들은 달랐다.

츠어질은 소리를 내고 피를 토하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하아아앗!”

마법사 카벨로는 있는 주문 대신 ‘악!’ 소리를 내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쩌어어엉!

뭔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는 순간, 그대로 튕겨 나가 바닥에서 구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림에 굴복하지 않은 대가.

터억!

그리고 로라스의 발이 지면에 닿는 순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강한 자들은 고개를 숙였고, 조금 강한 자는 허리를 숙였고, 강하지 못한 자는 모두가 주저앉아 있었다.

오로지 한 명.

이 모든 광경을 만들어 낸 로라스만이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크허헉!”

상체조차 일으키지 못한 채 연신 피를 토해 내는 카벨로.

‘운이 좋은 줄 알라!’

그는 정말 운이 좋았다.

살기를 드러낸 대가가 죽음이 아닌 것을 말이다.

‘너는 내 몫이 아니니.’

카벨로는 번천의 몫이다. 그래서 살려 둔 것이다.

멀쩡한 놈을 넘겨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은 이것이 자신으로서 최선.

‘하지만 너는 아니지.’

로라스는 츠어질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나댔어야지. 너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로라스는 진심으로 츠어질에게 유감이 없었다.

해피랜드가 와카디아에서 넘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넘봤지만, 잘한 것도 분명 있었다.

특히 종교 활동을 하며 어머니가 활력을 찾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로라스는 츠어질이 꾸몄던 짓을 눈 감아 주고 용서해 줄 의향까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사람들을 죽이려 했다.

‘도망쳤으면 숨어 살았어야지.’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

굳이 찾아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죽여 달라고 달려드는 놈을 살려 줄 필요 또한 없었다.

로라스는 계속 츠어질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지나쳤다.

…….

머리 없는 몸 위에서 로라스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에는 자신이 먹던 요리 접시에 머리를 처박는 바람에 얼굴이 엉망이 된 디존슨이 있었다.

* * *

뭔가 잘못되었다.

디존슨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늘 그랬듯이 그 자각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 큰아버님.”

문제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디존슨은 현재 상황을 인지하는 데만 총력을 기울여야 했으니까.

“재판으로 저의 무죄를 증명하였고.”

그리고 그것을 간신히 인지했을 때.

“다른 이들 모두의 무죄 역시 증명되었으니.”

이미 모든 것은 엎어진 상태였다.

“모두 풀어 주시지요. 약속대로 말입니다.”

중얼거리듯, 하지만 들리는 소리는 마치 천둥 같은 로라스의 음성이 광장을 채웠다.

‘이건……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그리고 상황을 인지했음에도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고작 몇 명 이겼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결국 남은 건 억지.

“이런 큰일에 결투재판이란 방법을 제안한 것은 제가 아니라 큰아버님입니다만.”

“물론 그랬지. 하지만 이걸로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다!”

로라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 결투재판으로 모든 것을 끝내자고 선언한 것 역시 제가 아닙니다만.”

“이…….”

“저와 단둘이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여기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셨습니다. 그걸 부정하실 생각이십니까?”

디존슨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떻게든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그냥 죽였어야 했어! 명분은 쥐뿔!’

하지만 엎질러진 물.

디존슨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래라면 이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지만, 오늘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오늘 처형장에 끌고 나온 죄인들. 특히 뇌옥에 가둬 뒀던 죄인들은 절대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모두 한가락씩 하고, 세력도 있던 이들을 별 탈 없이 제압하고 감금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기에 그들의 허를 찔렀고 각개격파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풀어 주고 자신의 가문에 돌아가는 순간, 구심점이 생긴 반대 세력들이 치고 나올 것이다. 절대 이번처럼 피 흘리지 않고 가둬 둘 수가 없는 것이다.

‘엎질러진 물이라면…… 걸레로 닦고 다시 항아리에 짜면 되는 거지.’

어차피 자신은 그런 구정물을 마시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 망신 한번 당하는 것이 더 낫지. 그리고 나중에 오늘 이곳에 모인 자들을 모조리 죽이면 될 터!’

디존슨이 그렇게 흉악한 마음을 먹을 때, 로라스가 다시 말했다.

“지금이라도 크게 늦지 않았습니다. 성문을 열고 군대를 해산시키시지요.”

“…….”

“할아버님이 돌아오시면 그래도 길은 있을 겁니다.”

“말은 잘하는구나.”

디존슨은 그리 말하며 주변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뭐 밑에 뭐라고, 디존슨의 의도를 철석같이 이해한 측근들이 슬금슬금 움직였다.

“친위대는!”

그렇게 디존슨이 쐐기를 박기 위해 소리칠 때였다.

쌔애애앵!

강렬한 파공음.

파아앙!

그리고 그의 앞에 있던 탁상에 굵직한 볼트가 박혔다.

‘뭐…….’

디존슨이 어버버 하는 순간, 주변에 있던 그의 친위대가 달려들며 소리쳤다.

“주군을 보호하랏!”

쌔애애앵! 쌔애애앵!

그리고 파공음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 * *

“병신 같은 놈.”

성벽 끝에서 멘토라스는 정말 욕을 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 준비를 했으면서도 아무것도 끝나 있지 않았다.

우유부단한 놈인 데다 주목 받기 좋아하는 놈이니, 또 엄청 시간을 끌었던 듯했다.

‘그래도 대가리 몇은 잘라 놨어야지!’

처형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판단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로라스가 꽤나 훌륭한 무인이며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그리 준비하고도 당한단 말인가?

‘어디서 저런 실력 없는 것들을 데리고 와서.’

하긴 주인이란 자가 그 모양이니 실력 있는 자들이 모이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나 정도는 돼야.’

멘토라스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갑주를 차려 입은 중년 사내가 서 있다.

“하명하실 일이라도?”

사내의 물음에 멘토라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베네.”

“네, 주군.”

“아무래도 작전을 바꿔야겠다.”

“네? 하지만 지금 철수하기에는……. 대공자의 귀에 반드시 들어갈 겁니다. 그럼 또다시 견제를…….”

멘토라스는 명확한 상황 판단력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그를 보며 다시 한 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작전은 취소하지 않아. 다만 좀 다르게 연출하자는 거지.”

“소신의 얕은 머리로는…….”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너는 네가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될 것이다.”

“그럼 지금 움직일까요?”

멘토라스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사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네 야스.

3군단의 용장이자, 서부 전선의 최고 지휘관.

자신의 강력한 검.

그가 움직이자 멘토라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이제 하나뿐인 후계자가 될 자신은 언제나 깔끔하고 멋지게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난 그들의 구원자가 될 것이니까.’

멘토라스는 방금 생각해 낸 묘책에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며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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