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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34화 (234/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34)

살아남는다. 그렇게 시간을 끌고, 공작이 돌아오면 이기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래. 그러니까 어떻게?”

로란시아의 물음에, 로라스가 반문했다.

“그걸 고민하는 자리 아니겠습니까?”

“으음…….”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또한 모두가 각자의 세력을 움직이고, 그래서 여론을 일으켜 시간을 끌고 싶기도 했고요.”

로라스는 말을 한 템포 멈췄다 다시 말했다.

“사실 디존슨을 제거할 방법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필히 내전이 벌어집니다. 전 그것을 피하고 싶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

“이 에렌이 불타고 땅이 붉게 물들어지는 것을 말입니다.”

“…….”

“그런 것을 막고 싶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나, 선공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먼저 움직이면 반드시 충돌이 일어날 테니까요.”

“그래서 대공자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다음 행보가 어찌 될지 알아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그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굴복한 척해도 좋습니다. 그자가 어떤 그림만 그리고 있는지 알면 됩니다.”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로라스가 원하는 정보를 어찌 구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리 갇혀 손발이 묶여 있다지만, 소통이 되고 있으니 찾고자 하면 방법이 있을 터.

그때였다.

덜컹.

뇌옥의 철문 쪽에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가고, 철문을 열고 나타난 이는 쿠니발이었다.

“모두…….”

쿠니발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어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

원래라면 자신의 신분에서 말 한번 섞어 보기 힘든 사람들.

현재는 자신이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갑의 입장이기는 하나, 단 한 번도 뇌옥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괜히 얼굴을 마주하여 반감이라도 샀다가, 그들 중 하나라도 디존슨에게 회유된다면?

자신에게는 그 뒤를 감당할 만한 담이 없었다.

‘그래서 절대 이곳에 오지 않기로 했는데.’

쿠니발은 최대한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죄수…… 아니, 사람이 오늘 저녁에 들어옵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순간 모두 의아해했다.

로라스를 마지막으로 디존슨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은 모조리 감금 상태. 새로 갇힐 만한 사람이 바로 생각나지 않은 터였다.

“누구인지 알고 있나?”

로라스의 물음에 쿠니발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게…… 군부의 인물이라는 것만 주워들었습니다. 저 같은 말, 단, 은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

말단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힘을 주며 약간의 거리를 벌리는 쿠니발을 보면서 로라스는 생각했다.

‘오리시암 과인가?’

하지만 지나치게 눈치를 본다. 두려움이 크면 반드시 실수를 할 터.

“쿠니발 남작이라 했던가?”

“네. 로라스 백작님.”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이번 일에 휘말린 건 잘 알고 있다.”

“…….”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라. 그 정도의 처신이면 네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내 쪽은 그걸 약속하지.”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잘…….”

로라스는 쿠니발이 오리시암 과라는 걸 확인했다. 이후 크게 문제는 없을 터.

“딱 그렇게. 그리고 지금처럼 미리 연락을 준 건 아주 좋다. 계속 그렇게만 하라. 상이 있을 것이다.”

모른 체하며 나가는 그를 보며 로라스는 생각했다.

‘누구지?’

일단 대화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기다렸다.

* * *

“후우우우!”

뇌옥에서 갇혀 있는 시간이 참으로 무의미하다 할지 모르지만, 좋은 건 확실히 있었다.

밖에 있을 때는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운기조식을 원 없이 한다는 것.

사실 이리 내력 공부에 집중한다고 해서, 특별히 나아질 건 없다.

이미 그럴 만한 단계는 지났다.

게이트 전과 후, 많은 것이 달라졌으니까.

하지만 무의미한 건 아니다.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는 건 늘 옳은 일.

‘대체 이게 다 무슨 조화인지.’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은 믿는다.

고개를 저었다.

철학哲學이란 걸 옆에 오래 두면, 도사들이나 땡중 같이 변해 버리니까.

사람으로 살 것이다. 현재 할 수 있는, 내게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그렇게 심신을 다스리고 있을 때, 인기척이 들렸다.

덜컹. 스르릉. 후우우.

철문 열리는 소리. 쇠사슬이 바닥을 긁는 소리. 간수의 숨소리.

쿠니발이 염려했던 감시자는 따로 붙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덜컹.

쇠문이 닫히는 소리.

“으으으으으.”

고문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기력이 완전히 떨어진 것일까?

신음이 옥 안을 가득 채웠다.

옥을 빠져나가 불을 밝혔다.

옥에 쓰러진 채 신음을 내고 있는 젊은 사내. 눈에 많이 익었다.

“……!”

그리고 생각났다.

“린델?”

쓰러진 사내는 가문의 시험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아이, 린델이었다.

급히 그의 상태를 살폈다.

연신 신음을 내었던 것과는 달리 크게 위중한 상태는 아니었다. 고문의 흔적도 없었다.

‘머리 쓰는 놈이었지?’

신음을 내는 이유는 단순하게 체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어나 봐.”

그의 상체를 일으키고 명문혈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미량의 진기를 주입했다.

면역력과 기운이 떨어졌을 뿐이니, 금방 정신을 차릴 터였다.

“무……물….”

예상대로 정신을 차린 린델은 물을 찾았고, 숨겨 뒀던 물을 먹였다.

“누……누구?”

“빨리도 묻는구나. 잠시 누워 있어. 금방 기력이 돌아올 테니까.”

다시 진기를 주입하니, 그의 눈동자가 초점을 되찾아 갔다.

“로라스구나. 맞지?”

“용케 알아보는구나. 거의 이십 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검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이리 갇힐 만한 인물은 너밖에 없을 테니.”

대답하던 린델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너까지 여기에 갇혔던 거냐!”

“쉿! 소리 지르지 말고. 그리고 갇힌 게 아니라 내 발로 들어온 거다.”

“그게 무슨…….”

“일단 네 이야기나 듣자.”

일단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부터 알아봐야 할 터였다.

* * *

“으음. 제거하자고?”

디존슨은 나직이 소리를 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자네가 충분히 시간을 끈다 하지 않았나?”

디존슨은 말을 꺼낸 후드에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이게 뭐야. 덕분에 계획이 어긋났잖아.”

“공작님이 그리 빠르게 정리할 줄은 분명 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크게 어긋난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시간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후드의 말에 디존슨은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충분치 않아. 아버님이 오시기 전에 놈들을 처리하려면 그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걸 만들지 못했어. 깔끔하게 처리하려면 시간이 걸린단 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죽은 후에 만들어도 충분합니다.”

“아니야. 그렇게 처리하다가는 에렌이 분열돼. 난 온전한 에렌을 원한단 말이지.”

디존슨의 말에 후드는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왜 갑자기 똑똑한 척하려는 거지?’

아니, 정확히는 겁을 먹은 거라 생각되었다. 공작이 모든 것을 정리한 후 에렌으로 오고 있다는 그 소식에 말이다.

디존슨은 그런 후드를 보며 말했다.

“제거할 명분. 그것들이 더 있어야 해. 무슨 방법이 없겠어?”

“그리 생각하시면 찾아야지요.”

후드는 동의하였으나 생각은 달랐다.

‘역시 그릇이 달라. 그러니 장자이면서도 이 모양이지. 둘째가 더 나았으려나.’

사실 크게 상관은 없었다.

에렌은 혼란스러울 테고, 1군단의 병력을 황제에게 넘김으로 남과 북의 세력 균형도 맞췄다.

조금 더 혼란스러우면 좋겠지만, 원래 완벽한 계획 따위란 없는 법.

‘멘토라스도 적당히 부추겨 놓았으니.’

이 정도면 목적한 바는 어느 정도 이뤘다 봐야 했다. 다만 문제는.

‘대륙 유일의 초월자라더니, 마족을 그리 빠르게 정리할 줄은 몰랐는데.’

베스타인 공작이 예상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는 데에 있다.

‘그만한 무인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면.’

한 번 만났어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는가? 그와 손을 잡고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그나저나 이 머저리를 어쩐다? 이용하기엔 이만한 놈이 없는데. 아니, 아쉬워하지 말자. 애쓸 가치는 없는 일이니.’

후드는 디존슨의 말에 고민하는 척하며, 자신의 일을 생각했다.

‘한번 보고나 갈까?’

후드는 베스타인 공작에 대한 흥미가 생겼지만…….

‘아니, 언젠가 기회가 닿겠지.’

벌린 일이 너무 많았다.

* * *

“레빙스턴 님이 군단장으로 계셨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다.”

린델은 1군단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했다.

‘미친놈!’

그리고 난 디존슨의 멍청함에 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력의 숫자도 숫자이거니와, 거기에 속한 인재들도 에렌에서는 최상급이다.

그런 전력을 황제에게 내준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나는 건 있었다.

‘그래도 황제는 황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한 건가?’

하지만 일의 선후가 틀렸고, 무엇보다 제 손에 있는 힘을 남에게 넘기는 머저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할아버지가 전쟁 불참을 선언했는데, 그 장자라는 놈이 군대를 보냈으니.

‘어찌 됐거나 할아버지의 위엄에 손상이 가는 건 어쩔 수 없겠구나. 황제는 제대로 수지맞는 장사를 했고.’

린델은 계속 말했다.

“뜻 있는 간부들과 어떻게든 수습하려 했지만.”

“밉보였겠군.”

“내가 너무 성급했지……. 주군의 충복들은 전부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였고, 남은 부대는 전부 대공자의 사람들이었으니.”

린델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입장에서 오죽 급했을까?

“그래도 게이트를 정리했으니 주군이 올라오면 감히 그들이 앞을 막진 못할 터. 그 전에 나를 정리하려 하는 것 같다.”

“내 말대로라면 디존슨이 현재 쥐고 있는 병력은 예상보다 크지는 않겠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현재 막을 세력이 없어. 에렌에 존재하는 독립부대의 군권을 쥐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실력 있는 기사들도 많고.”

린델은 답답하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주군의 밑에 있는 기사들은 모두 철저한 군인들. 그래서 일이 더 커진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거야. 주군의 밑에서는 그런 게 필요 없었거든. 그저 계속 단련하고, 능력만 인정받으면 되었으니까. 남은 건 철저한 상명하복.”

“그래서 모두 디존슨에게 붙었다는 건가?”

“에렌의 영주 대리니까. 일군단의 군단장이기도 하고.”

이미 여기에 갇힌 사람들하고 이야기한 문제이긴 했다.

애초에 어디에 줄을 대지 않은 귀족들, 정확히는 기사들. 그저 상부의 명령에 충실한 이들.

그런 이들이 디존슨의 명령에 따르니, 뭔가 뒤집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래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일단 우리가 선공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

린델에게 회의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래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까지.

“으음!”

린델은 한 단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집중하며 듣더니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 됐든 여기 모인 사람들이 상황을 만들어 낼 여력은 있는 거 아닌가?”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은.”

“그럼 우리가 주도하에 움직여야지, 왜 끌려 다니려고 해?”

옳은 말이다.

상황은 주도해야지, 끌려 다니면 안 된다.

“당장 답이 없으니까. 디존슨이 어찌 나오는지 봐야 하니까. 빈틈을 찾아봐야지.”

“그러니까, 왜?”

순간 깨달았다.

나야 가문의 시험을 힘으로 뚫었지만, 린델은 철저하게 자신의 머리로 풀어낸 녀석이란 것을.

반문했다.

“좋은 방법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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