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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31화 (231/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31)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자신을 향해 달려 나오는 멘토라스의 모습에 디존슨은 기분이 좋아졌다.

사사건건 자신이 장자라서 혜택을 다 가져갔다며 멍청이 취급했던 게 이놈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라.

주인을 기다린 강아지처럼 달려오더니 허리를 숙이고 있지 않는가.

“들어오십시오. 환영연을 준비해 뒀습니다.”

이어지는 멘토라스의 말에 디존슨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권력은 차지하고 봐야 하는 거지.’

그리고 디존슨은 양 입가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놀러 온 건 아니잖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형님. 일단 들어가시지요.”

다시 넙죽 허리를 숙이는 멘토라스를 보며, 디존슨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디존슨은 직접 성내를 안내하는 멘토라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준비된 공간, 준비된 상석에 자연스레 앉으며 말했다.

“사방이 몬스터로 난리던데, 여기는 조용하구나.”

“초기에 전력을 다해 대응했습니다. 그 덕인 것 같습니다. 에렌은…….”

“불필요한 말을. 그 어디보다 안전한 곳이다.”

“역시 그렇겠지요.”

“바쁜 나를 여기까지 부른 이유가 뭐냐? 그리고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찾아오는 게 나에 대한 예의일 텐데. 너는 다 좋은데 그런 생각이 없어.”

모욕이라 느낄 만한 핀잔에도 멘토라스는 전혀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한 듯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러니 제가 형님의 아우이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도 늘 말씀하셨지요. 형님을 잘 보필하라고요.”

“어머니 말씀을 잘 따랐으면 좀 좋았겠느냐.”

“그저 이 아우가 부족한 탓입니다.”

계속해서 저자세를 보이는 멘토라스를 보며 디존슨은 생각했다.

‘이놈이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그러고는 자신의 뒤에 시립해 있는 후드를 보았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주변에 숨겨 둔 사람도 없고요.

가장 걱정하는 게 멘토라스가 자신을 암살하는 것.

물론 만반의 준비를 하긴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수천의 보병부대와 두 개의 기병대까지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성내에도 세 개의 기사단이 같이 입성한 상태.

무엇보다 막강한 실력자인 후드가 바로 옆에 있다.

“됐고. 본론이나 듣자.”

디존슨이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형님!”

갑작스레 멘토라스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는 걸 보며 디존슨은 흠칫했다.

“체통머리 없게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이내 탓하듯 말했지만, 디존슨은 지금 순간만큼은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가서 앉아. 형제끼리 이게 무슨 추태냐.”

“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뭔 소리야. 무슨 죄.”

“이 아우가 주제도 모르게 형님의 자리를 넘봤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일어나래도.”

“용서해 주시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허허.”

자신의 확고한 권력을 느껴서였을까?

디존슨은 여유로운 웃음소리까지 내며, 방금 전까지 경계했던 이 동생에게 위로 비슷한 말을 했다.

“그게 어디 네 잘못이더냐. 아버님이 너무 욕심이 많으셨던 게지.”

“죄송합니다, 형님.”

“됐대도.”

디존슨은 자신이 직접 멘토라스를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된 거지. 우린 형제 아니더냐!”

그제야 멘토라스는 몸을 일으키더니, 디존슨이 이끄는 대로 자리에 가 앉았다.

“이리 용서해 주시니…… 이 아우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래도.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하시고 반목하게 하신 건 아버님이니까.”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어디 다른 놈들과 우리 형제가 같습니까? 어디 방계 따위가…….”

디존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걸 아니 됐다. 사실 베스타인 성을 쓴다고 해도 아버님의 핏줄도 아니었다. 방계도 안 되는 놈들을 후계 후보로 정하시다니. 네가 섭섭했겠구나.”

“카르이샤 같은 놈과 같이 취급당했으니까요. 이제 신경 쓸 필요 없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멘토라스가 은근슬쩍 자신을 보며 하는 말에, 디존슨은 잠시 흠칫했다.

‘아!’ 다르고 ‘어!’가 다른 법이다.

카르이샤가 방계라 하나 자신이 그를 제거했다는 소문이 정말 사실이 되면 곤란해진다.

밖에서 볼 때는 자신들은 모두 혈육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으니까.

디존슨은 은은한 눈빛으로 멘토라스를 보며 말했다.

“그래. 네가 큰일을 했다. 우리 형제에게 도움이 안 되는 놈이었다.”

“…….”

“잘했어.”

디존슨은 은근슬쩍 카르이샤의 암살을 멘토라스가 했던 것으로 넘기면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

“누군지는 몰라도 큰일을 한 게지요.”

대답을 회피하는 멘토라스를 보며, 디존슨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지. 너도 아직 멀었구나.’

디존슨은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네가 확실히 내게 충성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믿어 주십시오, 형님. 이 아우는 형님이 당연히 올라서야 할 그 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너도 알다시피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이지. 내 주변에 그런 놈들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원하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삼군단의 병권을 넘겨라.”

순간 멘토라스의 입이 다물어졌고, 디존슨은 계속 말했다.

“내 옆에 군대를 놔두고 충성이니 뭐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 내 말이 틀렸느냐?”

“아닙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형님도 아시다시피 삼군단은 서부 전선을 지켜야 합니다. 실제로 여기에 있는 병력도 오천밖에 되지 않고 말입니다.”

멘토라스는 자세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큰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거기까지 신경 쓰시기에는 번거로우실 겁니다. 지금 있는 병력은 국경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으음.”

“원하신다면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 철군을 감독하시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멘토라스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형님이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시면 저처럼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실 터. 남부 전쟁의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

“서부 전선은 십 년째 제가 맡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는 제가 낫지 않겠습니까?”

간곡한 그의 말에 디존슨은 고민했다.

사실 멘토라스의 병력을 철수시키고 일을 마무리하면 걸리는 것은 없었다. 이후에 자신의 세력이 더 공고히 되면, 동생의 세력 따위는 언제든 정리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워낙 음흉한 놈이라 쉽게 결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멘토라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형님께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제 충심을 보여 드릴 증거이기도 합니다.”

“무엇이냐?”

디존슨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묻자, 멘토라스는 대답 대신 문 쪽에 있는 시종에게 눈짓을 주었다.

“모든 것을 깔끔히 마무리할 선물입니다.”

“그거 기대가 되는구나.”

“하셔도 좋습니다.”

“거참!”

디존슨은 혀를 차며 기다렸고, 잠시 후 나갔던 시종이 들어왔다.

“……!”

그리고 디존슨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떻습니까, 제 선물이?”

옆에서 의기양양한 멘토라스의 말이 들렸지만 디존슨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시종이 데려온, 아니 끌려온 사람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하하하!”

그리고 큰 소리로 웃던 디존슨은 웃음기를 싹 지우며 말했다.

“우리 조카님. 여기서 뭐 하시는 겐가?”

끌려온 사람은 바로 눈엣가시 같았던 로라스였다.

* * *

솔직히 조금 두려웠다.

아무리 주군이라지만 그 실루엣도, 그리고 나타나는 몬스터들도 쉬운 놈들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에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모시는 주군이 얼마나 엄청난 무인인지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일도양단(一刀兩斷_.

말은 쉽지만 포스 유저도 하나의 적을 그리 만드는 것은 절대 쉬운 게 아니었다.

깨에에에에에엑~!

수많은 몬스터들의 비명이 동굴 안에서 메아리쳤고, 이내 그것은 하나의 비명인 양 합음(合音)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건 단 한 사람.

…….

일검에 양단되지 않은 것이 없음에도 검음조차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

그래서였을까?

몬스터들의 비명에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오히려 공간은 적막해지는 착각이 들었다.

한없는 적막감.

삼백 명에 가까운 원정대원들 속에서 자신의 몫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헤르메스와 레빙스턴 등 몇몇의 심복만이 그나마 베스타인 공작이 움직일 때 보조를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줄 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저 공작의 등만 보고 따를 뿐이었다.

그 탓에 자신들이 왜 이 원정대에 속했는지 자괴감이 들 때였다.

눈앞의 공간이 넓어지면서 엄청난 개활지가 나왔다. 던전이라 해도 믿지 못할 만큼의 공터.

‘저건가?’

전면의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 둔 듯한 3층 높이의 벽. 그리고 벽에 만들어진 입구.

그것을 보며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 입구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질 것이라는 걸.

“전투준비!”

레빙스턴이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그곳에서 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어 다니는 놈, 걸어 다니는 놈, 뛰어 다니는 놈. 그리고 날아다니는 놈까지. 마물들은 형태도, 움직이는 방식도 모두 달랐다.

“방어진!”

그리고 쏟아지는 속도에 레빙스턴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진군!”

원정대원들이 모이자 앞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에 임하듯이 그들은 완벽한 가상의 선을 만들었고, 그것을 벗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하나의 거대한 전투 개체가 되었다.

그리고 베스타인 공작의 앞을 방패처럼 막았다.

몬스터들과 원정대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사이 베스타인 공작은 움직이지 않았다.

“후우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몬스터 너머 벽, 그리고 가장 위에 있고, 가장 커다란 구멍을 바라볼 뿐.

‘나오너라. 이 세계에 존재치 말아야 할 놈아!’

단일 세력으로는 최대인 제국의 북부를 움켜쥔 절대자.

개개인의 무력으로 더 이상 형용할 수 없다는 경지에 오른 초월자.

이 두 가지 타이틀을 쥔 이가 바로 베스타인.

그래서 외로웠고 또한 고독했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존재. 그래서 그 힘의 의무에 더 집착했는지도 몰랐다.

스스로 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그것밖에 없기에.

하지만 하늘이 왜 그런 힘을 자신에게 내렸는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저 흉악한 것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베스타인 공작의 시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베스타인 공작이 마침내 움직였다.

크아아아악! 캬아하하하!

마물의 괴음.

“하아아앗!”

“죽엇!”

“옆을 지켜!”

원정대원들의 기합과 외침.

인간과 마물이 한곳에 뒤엉켜 싸우는 그 전장에 공작의 발자국이 남았다.

그 두 종족이 빽빽한 곳에서도 공작의 움직임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마치 공작을 위한 길이라도 있는 듯, 대원들을 지나치고 마물을 스쳐 나갔을 뿐이다.

아무도 몰랐다.

공작이 그 혼돈의 전장을 지나쳐, 어느새 꼭대기 동굴의 입구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오너라.”

마치 시골 촌부가 옆집 총각 부르듯이 입을 여는 공작.

“…….”

“나오너라.”

다시 열리는 공작의 입.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가 너무 버러지들에게 의존하는구나. 그럼 나마저 같은 격이 되지 않겠느냐?”

“…….”

“오냐. 네가 나오게 해 주마. 언제까지 버티는지 보자꾸나.”

그 말이 끝이었다.

공작은 입을 다물고 검을 뽑았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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