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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29화 (229/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29)

끼이이이잉!

“왜 우냐? 너 안 잡아먹어.”

로라스는 흑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에르자일이 바로 옆에 다가오자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녀석들.

“얘네들이 왜 너만 보면 이러는 건지 알아?”

로라스의 물음에 에르자일은 별 관심 없다는 듯 마마들을 보며 말했다.

“잠깐 고민해 봤는데, 이놈들이 항마력에 반응하는 것 같아. 게다가 근래 내가 마물을 좀 많이 잡았잖아. 그래서 아닌가 싶네.”

‘개들이 개장수 무서워하는 개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한다.

락에서 마물을 가장 많이 살육한 건, 아버지나 시그탑 경이 아닌 에르자일일 터.

왜 사람들도 그런 거 있지 않나.

자객들이 자객을 알아보는 그런 거. 씻기지 않는 피 냄새라든가, 죽음의 냄새 그런 거 말이다.

로라스는 테라에게 눈짓하여 녀석들을 데려가게 했다. 그리고 에르자일에게 말했다.

“왜 자지 않고?”

“잠이 안 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그런 건가?”

“글쎄. 별다를 것도 없을 텐데.”

에르자일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며 로라스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표정의 변화를 보이며 말했다.

“스승님은 보고 싶네. 그거 말곤 없어.”

“미안하다.”

“뭐가?”

“그냥. 넌 락에 와서 일만 한 것 같아서. 정신없었잖아.”

“남의 일인가. 내 일이기도 한걸.”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로라스는 슬쩍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말 이번 일 끝나면 식 올리자.”

“느긋하게 해. 안 급해.”

자연스럽게 머리를 자신 어깨에 기대는 그녀를 보며, 로라스는 손에 힘을 주었다.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에르자일이 자신의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지도 말이다. 나는 무관심하다는 이유로 정말 무심하기도 했다.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락의 일이 곧 가족 일인데. 아니야?”

다시 한 번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여는 에르자일.

“그래. 우리 일이야. 부모님 일이기도 하고.”

“우리…… 듣기 좋네.”

“언제는 우리 아니었나?”

“안 하던 말을 하네. 왜, 찔려?”

“찔릴 게 뭐 있다고.”

로라스의 말에 에르자일은 고개를 들고는 물었다.

“성녀. 아니 교황에게 확실히 말했다지?”

“…….”

“기다리라고 해. 나도 십 년 넘게 옆에 있었는데. 그 정도는 시간을 두고 봐야 알지 않겠어?”

“그런 사이 아니야. 그렇게 될 일도 없고.”

“내가 어쩌자고 곰을.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락에 있지 않았을걸.”

로라스는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녀에 대한 자신의 의리.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다.”

“그러니까 두고 보자고. 기다리다 보면 알겠지.”

에르자일은 그리 대답하고는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결할 거야?”

“지켜보고. 차라리 대놓고 적이라면 처리가 쉬웠을 텐데.”

“혈육이니까. 그렇지?”

“그런 혈육은 사양하고 싶다. 이미 두 번 양보했다. 세 번은 없어.”

아니, 이미 세 번째였다.

날 폐인으로 만들려고 할 때, 목숨을 노렸을 때, 그때 정리했으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연놈들은 감히 어머니의 목숨을 노렸다.

쥬시스의 보고는 이미 받은 상황.

“내가 미적지근했던 게지. 호구로 보였던 거야.”

로라스는 거기에 생각이 닿자 복잡하던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괜히 너까지. 굳이 같이 안 왔어도 됐는데.”

로라스가 미안함에 하는 말에 에르자일의 표정에도 예기가 어렸다.

“너만의 일은 아니잖아. 마탑이 폐쇄됐어. 스승님이 계셨다면 감히 그따위 짓거리를 했을까!”

로라스는 잠시 잊었다.

지금 상황은 에르자일에게도 분노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영광 찬란한 마법의 탑은 그녀의 친정 같은 곳.

“개구리를 만들어 튀겨 죽이겠어. 반드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다면 농담으로 알겠지만, 에르자일은 정말 그럴 능력이 있는 매지스터.

‘할아버지의 진심은 무엇일까?’

로라스는 이 모든 상황을 할아버지가 모르고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에렌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이번 마물들의 출현이 세계적으로 유행에 가까운 기이한 일인 것을 감안해도,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없는 일.

‘언제든 수습 가능한 일 아닌가?’

곧 알게 될 터였다.

* * *

“귀환하셔야 합니다.”

이미 베스타인 공작이 결정한 일.

결정하기 전에는 심복들의 의견을 매우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공작이다. 하지만 결정 후에는 그것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그의 심복들.

하지만 레빙스턴은 항명할 수밖에 없었다.

“코렐 성문이 닫혔습니다. 공자의 명령 없이는 그 누구도 오갈 수 없다고 합니다.”

“…….”

“게다가 코렐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는 일군단. 이게…….”

레빙스턴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대공자의 반역.

그것을 어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느냔 말이다. 그저 주군인 베스타인 공작이 생각을 달리하길 바랐을 뿐.

“주군!”

하지만 베스타인 공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표정에 생각이라도 드러났으면 좋았겠지만, 그 무표정한 얼굴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군!”

레빙스턴이 다시 한 번 공작을 불렀을 때 헤르메스가 그를 제지했다.

“레빙스턴, 이미 결정된 일이야. 자꾸 뭔 말이 그리 많지?”

“헤르메스!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냐?”

“너야말로 여기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야?”

“…….”

“에르페유가 당했어. 그것이 다시 나왔을 때 그 누가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안다. 하지만 일엔 선후가 있는 거다.”

“레빙스턴! 그 선후를 결정하는 건 네가 아니다. 자중하는 게 좋을 거야.”

레빙스턴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헤르메스의 기에 눌려서 그런 게 아니다.

날카롭게 말하는 와중에 그녀의 눈동자는 주군을 향해 있었다.

‘이 바보야! 주군의 심정을 헤아려!’

헤르메스가 마치 자신에게 그리 말하는 것 같았기에, 입을 열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멍청한 것들! 왜 주군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지?’

레빙스턴뿐만이 아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자기네들도 아는 문제를 주군이 모르겠는가!

‘제발! 주군의 심정부터 헤아리라고!’

헤르메스가 몸으로, 기운으로 그것을 사람들에게 어필할 때였다.

“그 녀석에게 그만한 배짱이 있었던가?”

베스타인 공작이 오랜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아니면 영악한 다른 놈이 있는 건지도.”

베스타인 공작은 스윽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똑똑한 놈들은 전부 여기에 있는데 말이지.”

“…….”

“그래서야, 여기에 집중할 수 있는 건. 똑똑한 놈들은 전부 여기에 있어서. 무엇보다.”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에서, 베스타인 공작의 옷이 순간 펄럭이기 시작했다.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 그리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거니까.”

“…….”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야. 결국 자리는 사람을 찾아가게 마련이지만 사람은 아니지. 죽으면 끝이 난다.”

베스타인은 레빙스턴을 불렀다.

“레빙스턴.”

“네, 주군.”

“너는 내 옆에서 늘 충성스러웠지. 그래서 묻는다. 내 우선순위가 틀린 것이냐?”

“주군…….”

“충성스러운 네가 틀렸다고 하면 다시 생각하지. 너의 말은 내게 그럴 만한 무게가 있다.”

“주군!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레빙스턴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네가 언제 허튼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진심이다, 레빙스턴.”

베스타인 공작의 계속되는 말에, 그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머리가 바닥으로 더 향했을 뿐.

“다른 이들도 말하라.”

공작은 다시 모인 사람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 이 자리에 나와 함께 있는 너희들.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 내게 말해 줄 자격이 된다. 암! 충분히 자격이 되고말고. 에렌, 그리고 이 북부는 너희들의 피, 땀으로 이뤄졌음이니!”

순간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같이, 절대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이 우선이야. 그렇게 믿어 주면 좋겠다.”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베스타인 공작이 다시 입을 열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소리 질렀다. 그러고는 그들의 머리는 더 이상 바닥을 향할 수 없을 정도로 숙여졌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불안, 불만 같은 건 순식간에 사라졌다.

‘빠르게 토벌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린다.’

그리고 그들에게 새로운 목표가 설정되기 시작했다.

* * *

출정 전날의 밤.

베스타인은 밤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너무 과했나?’

베스타인은 자신의 결정이 독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보필해 왔던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신하들도 자신과 같은 곳을 향하는 이들. 하지만 그들이 평생 쌓아 올린 것들이 에렌에 있다.

그들의 의견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주군.”

그때 회의장에 있었으면서도, 그 누구의 눈에도 있지 못했던 자.

섀도가 공작의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도 같은 생각이냐?”

“저는 그림자입니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답답하긴.”

그런 섀도를 보며 공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갔던 일은?”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공자는 최악까지 갈 생각은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녀석을 변호해 주는 건가?”

“아닙니다. 사실이 그랬을 뿐. 감히 주군께까지 불충할 생각이었다면.”

섀도의 말이 끊겼다.

하지만 공작은 그 뒷말이 뭔지를 잘 알았다.

“할 거면 제대로 했어야지. 어설프게 할 거면 시작하지 말아야 했고.”

“누가 감히 주군을 상대로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

“너무 귀애했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어렸을 때부터 엄하게 대했어야 했어.”

첫 아들. 장자.

아비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특별한 그 단어, 감정들.

그래서였을 것이다. 너무 오냐오냐 키웠고, 후계 결정도 계속 미룬 이유가 말이다.

그 끝을 뻔히 알면서도,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면서도, 미련하게 포기하지 못했다.

“둘째 공자를 움직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을.”

“멘토라스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 가만히 있어도 제게 유리할 것을 뻔히 알 텐데. 그렇다고 내가 명령을 내리면 내전이 되는 거지.”

자신의 안 좋은 쪽의 재능은 다 가진 멘토라스였다.

그에게 디존슨의 반란을 제압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녀석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놈은 타고난 사냥꾼. 필승의 확신만 선다면 죽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아는 놈. 녀석이 숨겨 둔 비밀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도 파악하지 못하지 않았나.”

지금이야 디존슨의 장난질이 전쟁이 아닌 개개인의 암투 수준이지만, 멘토라스가 움직이면 군이 움직이게 되고, 그러면 정말 내전이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에렌부터 정리하고 싶은 베스타인 공작.

‘이번 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고, 또 더 이상 후계 결정을 미루지 않을 작정이었다.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 강한 놈만이 에렌의 영주가 될 거라 생각하며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베스타인은 크게 심호흡하며 생각했다.

‘시간이 더 남아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내 잘못인 게지.’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천수天壽는 정해져 있는 법.

베스타인 공작은 최근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섀도.”

“네, 주군.”

“내가 죽으면 너는 어찌할 것인가? 다른 놈들이야 제 놈들이 일군 세력이 있지만, 너는…….”

“명령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평생을 내게 바쳤는데, 나 죽어서까지 그럴 필요 없다.”

“…….”

“네게 몇 가지 남긴 게 있다. 내 사유 재산이 어디에 있는지는 너도 잘 알 터.”

섀도는 흠칫하며 입을 열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고 싶은 것뿐이다. 너를 아껴 내가 살아 있을 때 까지는 널 떠나보내고 싶지는 않구나. 그 전까지는 내 옆에 있어.”

“언제, 어디서든 주군의 곁에는 제가 있을 것입니다.”

섀도는 힘 있게 대답했지만, 속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는 더더욱 공작을 살펴야겠다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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