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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26화 (226/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26)

“끄아아아아!”

인간의 비명이라기에는 기이할 정도로 찢어진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으악!”

그 파공음에 사람들이 귀를 막으면서 괴로워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것도 일반인들이 아닌 포스, 마나 유저들이 말이다.

“감당 못하겠으면 뒤로 물러나!”

헤르메스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면서도, 두 눈은 베스타인 공작을 좇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의 눈으로도 좇지 못하는, 그리고 그리 검을 휘두름에도 무음에 가까운 신기. 들리는 건 그 검에 찢겨지는 검은 실루엣의 비명.

“내 명령에 무조건 따르리니!”

헤르메스는 지팡이를 검은 실루엣을 향하며 주문을 쏟아 내었고.

화아아아악!

지팡이 머리 부분에서 하얀 불빛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 불빛은 수십여 마리의 뱀처럼 나뉘며 실루엣을 향했다.

파파파파파팟!

빛은 실루엣의 주변에서 섬광을 일으키며 터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빛은 실루엣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다.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은 하나.

마나를 무효화시키는 것뿐.

저 인간 형상의 검은 실루엣과 이미 두 차례 조우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실루엣은 베스타인 공작에게 찢겨졌었다. 하지만 소멸하지 못했다.

순간 이동 계열의 마법으로 도망을 쳤기 때문이다.

‘두 번은 없다!’

헤르메스는 필사적으로 마나로 마나의 기운을 지우며, 베스타인 공작을 지원했고.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침내 긴 비명과 함께 검은 실루엣은 베스타인 공작의 검에 휘말리더니 햐얀 연기로 소멸되기 시작했다.

포스는 두텁게, 그리고 움직임은 맹렬했던 베스타인 공작의 검이 움직임을 멈췄다.

호흡 하나 흐트러진 것 없이, 냉랭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자신의 검을 보는 초월자. 그리고 여전히 깊은 어둠을 간직한 앞을 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한 놈이 아니군.”

그 중얼거림에 헤르메스를 비롯한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검은 실루엣을 소멸하기 위해 이미 이레째 던전 안에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전에는 한 달을 넘게 몬스터 토벌을 했다.

그렇게 휴식과 보급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권신 에르페유가 죽은 순간부터, 이 원정은 멈출 수가 없었으니까.

그때 베스타인 공작이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모두 수고했다.”

“…….”

“오래 있었던 것 같군.”

“정확히 이레가 되었습니다, 주군.”

헤르메스가 사람들을 대표하여 대답하자, 베스타인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이틀로 끝낼 일이 아닌 것 같군. 일단 성으로 돌아가지.”

다행히 베스타인 공작이 먼저 철수의 뜻을 밝히자, 사람들의 표정이 풀렸다.

그렇게 원정대는 제국의 남부에 가까운 베카와 영지로 돌아왔다.

덕분에 아랫사람들은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공작을 비롯한 지휘부는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일반적인 던전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상합니다.”

“그 실루엣이 생물인지 아니면 고스트 계열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모두가 환장하고 답답해했다.

시작할 때는 모두가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다 베카와 영지를 비롯한 주변 영지가 몬스터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고작 던전 하나를 소탕하는 데 지금 원정대 구성원은 너무 과하다 생각했었다.

게다가 베스타인 공작이 직접 나선 일.

덕분에 바람이나 쐬자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에르페유가 그리 당한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몬스터는 그냥 몬스터였지만, 그 실루엣은 달랐다.

검은 연기로 이뤄진 실루엣.

그럼에도 놈의 공격은 마법이 아닌, 물리 공격이었다. 하지만 또 검으로 베면 연기처럼 흩어지는 놈이었다.

오로지 포스 유저의 공격에 반응했을 뿐.

한마디로 마스터급의 무인이 아니면 전혀 타격을 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게 하나가 아니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분위기는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원 포스 유저로 이뤄진 기사단. 그리고 마법 병단을 대동하시지요. 하나가 아니라 둘, 셋, 아니 백이라고 해도 결국 끝은 있을 터.”

오로지 헤르메스만이 전의를 불태울 뿐이었다.

“그보다 주군. 성을 비운 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그때 레빙스턴이 전혀 새로운 문제를 꺼내 들었다.

“일단 에렌 성으로 귀환하셔야 합니다.”

“…….”

“몬스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장기적으로 대처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중앙에서 계획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레빙스턴의 말에 베스타인 공작이 침묵하며 고민할 때였다.

“공작님, 인타입니다.”

베카와 영주인 인타 남작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바깥에 있다가 늦게 도착했습니다.”

인타 남작은 사과를 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그간 에렌에서 도착한 보고서들입니다.”

보고서를 확인하던 베스타인 공작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러고는 인타 남작을 보며 물었다.

“가장 마지막에 올라온 내용도 몇 달 전의 것인데, 이후의 것은?”

“그게…….”

인타 남작은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오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몬스터들이 주도를 막아 그런 것인 줄 알았지만…….”

“대답을 명확히 해라!”

“최소한 주변 지역에서는 몬스터들이 소탕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에렌에서 보내지 않거나, 제가 파악할 수 없는 곳에서 차단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됩니다.”

베스타인 공작의 주름이 깊어지자, 헤르메스가 조심스레 말했다.

“주군, 마탑에 연락하여 에렌에 혹시 무슨 변고가 있는지 확인해 볼까요?”

“얼마나 걸리겠나?”

“이쪽엔 저희 쪽 마탑이 없어서…… 그래도 열흘이면 충분합니다.”

“빨리 확인했으면 하는구나.”

“네, 주군.”

헤르메스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걸 보며, 베스타인 공작은 생각했다.

‘설마…… 아니다. 그건 너무 큰 비약이지.’

베스타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눈과 귀가 막힌 상태다.

‘녀석이 그 정도의 배짱이 있었던가?’

현재는 그저 아니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 * *

코렐성.

제국의 북부와 남부를 잇는, 중요 도로를 차지하고 있는 성이다.

또한 주변의 외국과 접경하고 있기에, 평상시에도 베스타인 공작은 1군단으로 수비를 할 정도의 요충지. 그래서 성이라기보다는 요새에 더 가깝기도 했다.

“하아!”

성 위에서 바깥을 보고 있는 서른 정도의 사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린델.

파격을 넘어선 충격이랄 정도로 초고속으로 승진한 젊은 군사. 그의 아비가 베스타인 공작의 두뇌인 그랑데일이라는 걸 감안해도 너무나도 빨랐다.

“휴우우우우!”

성 첨탑에 올라가 본 세계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하지만 린델은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병사들을 산개시켜야 하는데.’

베스타인 공작은 황제의 침략 전쟁에 조금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걸 천명한 상황. 하지만 상황은 너무 좋지 못했다.

황제파 군대의 지휘관 중 하나인 루니 백작의 실력이 너무 좋지 못했다.

선공을 취했음에도 이렇다 할 전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데다, 오히려 반제국 연합군이 오히려 영토를 잠식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제국의 저력은 거대하다. 풍부한 물자와 병력은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를 불가했다.

하지만 그 자원을 가지고 멍청한 짓거리를 하니, 어느 전선 하나 유리함을 가지고 가지 못했다.

‘그뿐이면 상관없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몬스터들까지 창궐猖獗하고 있었다. 그래서 린델은 불안했다.

병사들을 산개하여 각 도로와 성에 방비를 시작해야 했다.

문제는 그러지 않고 있다는 것에 있다.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베스타인 공작이 그 몬스터들 때문에 에렌을 비운 것.

군단장에게 건의를 하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래 1군단장인 디존슨이 에렌 영주 대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군단을 통솔하고 있는 건 군단장 대리 비이나 백작.

‘주군께서…… 군단장을 잘못…….’

린델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베스타인 공작이 디존슨을 1군단장에 임명한 이상, 자신은 보좌하는 것이 최선. 거기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불충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더 답답해졌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으니 속만 탈 뿐이었다.

자신이 1군단의 군사라 하지만 자신이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부대는 소수.

그때 그의 눈에 기이한 것이 들어왔다. 코렐의 거대한 성문이 닫히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코렐은 요충지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역. 특별한 경우가 없는 이상 항상 문이 열려 있는 곳이다.

‘설마? 외적들이?’

린델은 급하게 걸음을 옮기면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리 닫을 이유는 없었다.

“성문을 왜 닫는 것이냐!”

린델이 성문에 도착하여 큰 소리 치자, 수문장이 급히 군례를 올렸다.

“충성!”

“성문을 왜 닫는 것이냐 물었다!”

수문장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대답했다.

“위에서 그렇게 지시가…… 따로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절대 성문을 열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대체 왜?”

“그건 소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문도 같은 지시를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린델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본영으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군단장 대리 비이나 백작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백작님. 성문을 닫으라 명하셨습니까?”

“노크는 해야 하지 않겠나?”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마음에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급할 게 뭐 있나? 적이라도 쳐들어왔나?”

“제가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성문을 닫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이나 백작은 보고 있던 서류로 다시 눈을 돌리며 답했다.

“에렌의 명령이야.”

“그러니까 왜 그런 명령이 내려왔습니까?”

비이나는 다시 린델을 쳐다보며 말했다.

“군인은 명령에 복종하면 될 뿐이야. 뭔 의문이 그리 많은가?”

“백작님!”

“대리라 하지만 지금은 내가 엄연한 군단장. 호칭을 정확히 하게!”

린델은 자세를 바로 잡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군단장님. 특별한 지시가 없는 이상 열 수 없다고 하는데, 언제 다시 여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네. 에렌에서 명령이 올 때까지는 유지해야지.”

“현재 성문을 닫으면 안 됩니다. 주변에 아무 통보도 되지 않은 상황. 게다가 전쟁 중 아닙니까?”

“북부는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지 않나.”

“전황은 파악하고 있어야 방비도 유리합니다. 게다가 군단 절반 이상이 나가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을 집결시킨 후…….”

비이나 백작은 린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미 따로 명령이 내려갔으니까.”

“무슨…….”

“그들은 남부로 내려갈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남부 전선의 상황이 좋지 못한 것 같아. 황제 폐하께서 원군을 명하셨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십니까? 주군께서 전쟁에는 절대 관여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다는 걸 잊으셨습니까? 그리고 이 중요한 일을 제가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입니까?”

화를 내듯이 말하는 린델과는 상반되게, 비이나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에렌에서 내려온 명령이야. 그거면 된 거지.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이든 자네에게 보고를 해야 하나? 군단장은 나야!”

“군단장님!”

린델이 소리치자 비이나도 같이 소리를 쳤다.

“거기 누구 없느냐!”

밖에서 근위병들이 들어오고, 비이나는 린델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린델을 체포하고 옥에 가둬라. 어떠한 면회도 허락하지 않는다!”

뜬금없는 체포 명령에 린델은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떨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린델이 끌려 나가는 걸 보며 비이나는 생각했다.

‘어떻게든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뻔히 알 텐데 저리 대놓고 날뛰는 걸 보면 회유가 불가능할 터.

‘군사가 대세를 보는 눈은 있어야지.’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났다.

‘초월자가 아닌 초월자 할아비라 하더라도 뒤집을 수는 없지.’

비이나는 그리 생각하다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서랍 안에 있는 술병을 집었다.

‘불안할 이유 따위는 조금도 없는데 말이지.’

분명 그리 확신했지만 술병은 점점 빈병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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